독서 후기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How to live, How to love>를 읽고...

깃또리 2019. 1. 30. 12:53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How to live, How to love>를 읽고...
장영희 지음
예삼
2015. 10. 28.


 그간 장영희교수가 쓴 에세이집 몇 권과 번역소설을 읽었으나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장영희교수의 글을 읽지 못하여 아쉬워하던 차에 도서관 서가에 꽂힌 이 책에 눈에 닿아 꺼내 들었다. 장영희 교수가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했던 내용을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 실었다.


1. 문학의 숲에서 사랑을 배우다.
2. 책을 읽는 것은 꿈을 품는 일이다.
3. 밑지는 사랑은 없다... 청춘들에게!
4. 나의 삶, 나의 문학(Q&A)


 책 마지막에 실린 서평은 장영희교수가 재직했던 같은 학교 서강대학교 국문학과의 김승희교수가 "문학의 소울 메이트, 장영희"라는 제목으로 장영희교수와 함께 했던 시간을 그리워하며 따뜻한 느낌을 주는 글을 적었다. "그녀에게 문학은 한 낱 가르치는 도구가 아니라 온 몸으로 사랑하는 생명체였으며 제자와 독자들은 문학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꿈을 나누는 소울 메이트(Soul-mate)였다."라는 문장이 특히 눈길을 끈다.

 이전에 읽었던 다른 책과 다르게 장영희 교수가 생전에 머릿속의 내용을 글로 쓴 것이 아니고 말로 했던 것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솔직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친근감 있는 어휘와 표현으로 개인적인 문제도 곁들여 장영희교수를 이해하기에 좋은 글들이다.


  제일 처음 실린 <문학은 왜 읽는가?>라는 글에 "문학은 인간의 공통적인 감정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글이 나온다. 결국 문학이란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우선이 되는 인간에 대한 앎과 이해를 위한 글쓰기와 읽기이며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문학은 철학과 종교보다도 더 소중하고 영향력이 크다고도 하였다.


 '모든 학문의 왕'이라는 가장 오래된 학문, 철학은 이제 철학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어 보통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고, 온 세상을 천국이나 천당으로 만들듯 하던 종교, 역시 인간 구원에 제 몫을 다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시대에 문학은 소리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할 수 있다. 사실 혹자는 문학도 이제 죽었기 때문에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고 비관적인 탄식을 하기도 하지만 컴퓨터와 스포츠, 오락게임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설가와 시인은 존재하기 때문에 문학의 부침은 있을지 몰라도 인류와 함께 영원하리라는 희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많다.
 <남이 되는 연습>이라는 두 번째 글에 윌리엄 포크너(William Curhert Falkner 1897~1962)가 쓴 <에밀리에게 장미를, A Rose for Emily 1930)이라는 단편소설 이야기를 하였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필수서이자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문구가 보여 주제넘게 나도 읽고 싶어진다.
 
 <문학적 표현은 상상하게 한다>라는 글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렸다. "여담이지만 제가 작년에 외국에서 책을 한 권 사왔습니다. 아주 비싼 책이어서 새 책을 구입하지는 못하고 누가 보던 헌책을 샀는데, 줄이  좀 그어져 있기는 했지만 쓸 만했습니다. 사놓고 한동안 바빠서 그냥 두었다가, 며칠 전 틈이 나서 꺼내 읽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책의 원래주인이 어쩌면 저랑 생각이 그렇게 똑같은지, 제가 줄긋고 싶은 데에 딱 줄이 그어져 있고, 제가 메모하고 싶은 말이 딱 적혀 있는 게 아닙니까. '신기하다, 나랑 글씨 모양도 같네'하고 다시 보니 제가 2, 3일 전에 읽다가 꽂아 좋았던 것이었습니다. 다시 읽으면서도 예전에 읽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 것이지요. 여러분 나이에는 상상도 못할 이야기겠지만 나이가 들면 그런 일이 종종 생깁니다."


 나도 같은 경험을 했었는데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그랬는데'라고 혼자 말을 할 것 같다. 문학과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즈(Charles Dickens 1812~1870)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영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물 중 한 사람이라 하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대체 어느 작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설령 있다 해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왔거나 이름만 겨우 알고 있는 작가일 경우가 많을 것 같다. 나 역시 뚜렷이 어느 작가라 말 할 수 없으니 부끄럽기는 마찬가지 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동안 김훈씨의 책을 거의 다 읽었으니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김훈씨일 것 같다. 앞으로도 김훈씨가 계속 좋은 작품을 써 주길 기대해 본다.


 <성공의 패스포트, 문학>이란 글은 "미국에 아주 가난한 소년이 있었습니다.'로 시작하여 11줄로 이 사람의 간단한 소개를 하지만 끝까지 읽는 동안 이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훗날 그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바로 그 사람이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lon 1809~1865)입니다. 라 하였다. 즉 링컨은 초등학교도 다 마치지 못했지만 엄청난 독서로 자신의 능력과 소양을 제고하였으며 대통령까지 되었다는 내용이다. 링컨은 조지 워싱톤의 전기를 읽고 언젠가 자신도 워싱톤과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하였고 <엉클 톰스 캐빈 Uncle Tom's Cabin>을 읽은 후에 노예해방을 결심했다 한다. 남북전쟁이 북쪽의 승리로 끝나고 노예해방이 되었을 때 링컨은 <엉클 톰스 캐빈>을 쓴 해리엇 스토(Harriet Stowe 1811~1896)부인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한다. "당신이 바로 그 거대한 전쟁의 원인이 된 작은 여인이시군요." 장영희 교수는 이와 관련하여 남북전쟁이 실은 작은 문학작품에서 시작되었고 그 전쟁을 통해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고 인간임을 확인 받았다 하며 문학의 힘을 설명하였다. 그나저나 해리엇 스토를 말할 때는 어김없이 부인이라는 명칭을 붙이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여성 작가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다 생을 마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한데 스토부인은 항상 부인이 따라 붙는다. 이어서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이야기를 하였다. 에디슨이 평생 읽은 책을 대략 헤아려 보면 약 350만 페이지라 한다. 과연 나는 이제껏 몇 페이지나 읽었는지 궁금해진다.


 <가지 않고도 만날 수 있는 방법> 장영희교수 아버지 장왕록 전 서울대학교 교수는 적은 국립대학교 교수 월급으로 여러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집에서도 항상 책상에 앉아 책을 쓰거나 번역에 몰두했다 한다. 지체장애자인 어린 장영희는 이런 아버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책 읽기에 빠지고 특히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여 더욱 책을 가까이 했다 한다. 그래서 '아이러니 하게도 저의 신체장애가 문학 강의의 초석이 되었다'고 술회하면서 그래도 학생시절에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남들이 다 가보는 창경원이었다고 하는 대목은 읽는 이의 가슴 아프게 한다.

 <늘 책과 함께>에서는 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의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으면 최소한 만지고 쓰다듬기라도 해라, 쳐다보기라도 해라.'는 말을 소개하며 시작하였다. 그래서 군인이었고 정치가였지만 <세계2차 대전 회고록>을 집필하여  처칠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 같다. 장영희교수의 글에는 항상 문학 작가가 등장하는 특징이 있다. 영문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 글에서 다시 허만 멜빌()이  쓴 <백경, Moby Dick>을 소개하면서 어릴 적 책을 구경하다 이 재미없는 책 전부를 다 읽었다하며 책 속 한 구절이 자신의 시선을 끌었다 한다. 선장 에이해브가 고래를 쫒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모비 딕에 대한 '개인적 복수심이 아니라 운명의 힘에 대항하는'이라는 부분이었다 한다. 마지막으로 한 편의 시를 소개하였다.
 
 <책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꿈, A book is a pocket or portable dreamweaver> 이 말은 유명한 비평가 힐리스 밀러(J. Hillis Milller 1928~)가 쓴 책에 나온다 한다.


 <‘Man’이 아닌 ‘man’에 대해 써라>는 글쓰기의 요령에 대하여 쓴 글로 내게도 참고가 되는 글이다. 장영희교수가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부전공으로 '비소설 쓰기'를 선택했다는데 에세이 즉 수필 등을 말하는 것 같다. 글쓰기의 원칙 중 첫째가 거창하고 추상적인 이론이나 일반론을 쓰지 말고 개인의 삶에서 겪는 드라마나 애환에 대해 쓰면 읽는이가 공감과 감동을 한다고 했다. 두 번째로는 '모래시계의 형태를 지켜라'인데 앞뒤는 폭 넓게 중간은 좁게 쓰라는 얘기인데 즉, 일반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다가 한 사람의 삶이나 에피소드를 쓰는 식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로 쓴 다음 마지막에는 일반화하여 글을 맺는 방식이라 하였다. 그래서 소제목이 거창한 인류, 인간 Man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남자, 개인인 man에 대하여 쓰라는 뜻이다. 항상 기억해 둘 충고라 생각한다.


 <청춘에게 주는 시>에서는 여학생 또는 딸에게 주는 시로 베로니카 소프스톨(Veronica A. Shoffstall, 1946~)이 쓴 <얼마 후면, After a while>을, 남학생 또는 아들에게 주는 시로는 루디야드 키플링(J. Rudyard Kipling, 1865~1936)이 쓴 <만약에, If>라는 시를 추천하였다. 또 자신이 그 동안 고통 받았던 질병 이야기를 하였다. 어느 날 무심코 건강진단을 하였더니 유방암이 나타나 수술 두 번과 방사선 치료를 하여 완치되었다는 병원의 소견서를 받고 "흠, 역시 장영희군. 남들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암을 이렇게 초전박살 내다니......"라 하며 쾌재를 불렀다 한다. 그러나 허리와 목의 통증을 느껴 진찰을 받으니 유방암이 전이되어 척추암으로 번져 신문연재도 중단하고,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느낀다는 글이었다. 즉, 이글은 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쓴 글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이런 고통 속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윌리엄 포크너가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라고 했던 구절을 인용하며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있다. 장영희 교수가 남긴 문장을 다시 읽어보니 이전에 어느 책에서인가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다시 옮겨 본다.


 “떠나기 전에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선 소중한 지면을 내게 할애해 준 신문사에 감사한다. 위대한 작품을 남겨준 작가들의 재능이 너무 고맙고, 이번 학기 들어서 꼭 두 번밖에 보지 못한 나의 학생들, 변변치 못한 선생을 두어서 걸핏하면 내 글의 소재가 되는 나의 학생들에게도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글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너 안의 잠자는 거인을 깨워라>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을 위한 편지라는 설명이 붙은 글이다. 세 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글이지만 여러 작가들이 남긴 말을 인용하였다. 먼저 <실낙원, Paradise Lost, 1667>을 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이 했던 "얼마나 오래 사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미국의 희곡 작가 테네시 윌이엄스의 "삶은 해답 없는 질문이지만 그 질문의 위엄성과 중요성을 믿기로 하자." 다음으로 <세비야의 이발사, IL Barviere di Siviglia>를 쓴 보마르세(Pierre Beaumarchais, 1732~1799)가 했던 "사랑과 평화는 한 가슴 속에 공존할 수 있는가? 청춘이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은 끔찍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화 없는 사랑, 사랑 없는 평화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다시 새무얼 버틀러(Samuel Butler, 1835~1902)는 "살아 있는 일은 결국 사랑하는 일"이며, 이어서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는 "한껏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잘못이다." 알베르 카뮈(Albert Canus, 1913~1960)는 "눈물 날 정도로 혼신을 다 해 살아라!"라고 충고했다 한다.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1936)은 "네가 세상을 보고 미소 지으면 세상은 너를 보고 함박웃음을 짓고, 네가 세상을 보고 찡그리면 세상은 너를 보고 화를 낸다." 이와 비슷한 문구를 보아 왔지만 이 문구는 처음 보는 이야기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을 돌려서 한 말로 기억해 둘 말이다.


 <엉클 톰스 캐빈>을 쓴 해리엇 스토우부인은 "어려움이 닥치고 모든 일이 어긋난다고 느낄 때, 1분도 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도 포기하지 마라. 바로 그때 그곳에서 다시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라 충고 했다.

 장영희교수는 무려 아홉 명의 유명작가들이 남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소중한 말을 인용하였다. 이 유명한 사람들이 한 말이라서 그런지 평범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이 드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장영희교수가 이글의 마지막에 쓴 "사랑하는 네게 이별을 고할 때다. 너의 승리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 아름다운 시작을 온마음 다해 축하하며, 너의 선생 장영희 씀" 이란 구절이 못내 깊은 아픔과 긴 여운을 남긴다.
죽음을 앞두고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격려의 말일 것이다.


 <문학 전도사, 장영희> 장영희교수와 인터뷰한 내용을 적은 글이다. 내가 읽은 번역소설 <종이시계>에 대한 내용이어서 즐겁게 읽었다. 원래 제목이 <숨쉬기 연습, Breathing Lessons>이었는데 미국 작가 앤 타일러(Ann Tyler, 1941~)과 편지로 협의하여 <종이시계, Paper Clock, 1988>로 바꾸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책 속의 주인공이 결혼 1주년을 맞아 남편에게 준 선물이 종이시계였기 때문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오래되어 내용은 대부분 잊었는데 이 책을 다시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 마지막에 신문에 영미시를 소개하는 칼럼을 쓸 때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영시를 소개하였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06)
<희망은 한마리 새, Hope is Thing with Feathers>

사라 티즈데일(Sara Teasdale, 1884~1932)
<연금술, Alchemy>

윌리엄 블레이크(Willian Blake, 1757~1827)
<순수를 꿈꾸며, Augurie of Innocence>

-에밀리 디킨슨은 장영희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다.

자신의 글쓰기 장점을 묻는 질문에 '술직하고 쉽게 쓴다.'라고 하였다. 경청할 말이다.
책 마지막에 장영희교수가 특별히 읽기를 추천하는 아주 짧은 헤밍웨이의 단편<A Clean, Well -Lighted Place>가 실렸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by Robert Frost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책 뒤에 장영희 교수가 영문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여러 페이지의 글이 나오는데 영문학도는 Speaking이 아니라 Writing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미국이나 심지어 필리핀, 싱가폴의 거지들도 영어로 구걸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통역학과를 졸업한 실력 있는 통약자라면 말하는 사람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옮기려면 그 언어의 문화적 소양을 풍부히 갖춰야 한다고 했다. 장영희 교수가 영어를 공부한 방법을 소개하였다.


 중학교 1학년 영어교과서 첫 번째 문장 “This is a book."부터 고등학교 3학년 영어교과서 맨 마지막 연습(Exercise) 문장까지 모조리 외었다 한다. 월말고사는 보통 시험범위가 서너과 쯤 되는데 눈감고 연습문제까지 모조리 외웠다 한다. 그러나 왕성한 기억력을 유지 할 나이에는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 상식으로는 믿기지 않는다. 내가 어디엔가 장영희 교수는 악바리라고 조금 거친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악바리라는 표현이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책 마지막 뒤에 추천 101개 도서가 있다. 죽 훑어보니 내가 읽은 책은 고작 네 권뿐이다. 분발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