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흑산, 黑山>을 읽고...

깃또리 2019. 1. 7. 10:43

<흑산, 黑山>을 읽고...
김훈 장편소설
학고재
2015. 03.20.


 김훈의 비교적 최신작에 속하는 이 소설책은 도서관 대출이 어려웠다. 그 만큼 인기가 높다는 반증이다. 소설은 현실에 있을 법한 내용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는 일이지만 실재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에 없거나 모자라는 부분을 상상하여 이야기를 꾸미는 소설은 나름대로 흥미도 있고 역사 공부도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오류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소설가는 무척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역사가나 눈 밝은 독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훈작가는 일러두기 첫 줄에 "이 책은 소설이다."라를 먼저 내세웠고 "소설 속의 인물들은 누구도 온전한 실존 인물이 아니다."라고 강조하였다. 또 "소설이 배경으로 삼은 시대의 정확성도 온전하지 못하다."라 하여 인물에 이어 시대조차도 비켜서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200여 년 전 당시 조선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기도 하고 흥미도 있다. 나는 좀 어려운 책일 경우 머리말, 해설, 후기 등을 먼저 읽어 본문을 읽을 때 쉽게 이해하지만 이런 종류의 읽기 쉬운 소설은 그렇지 않다. 그간 김훈의 여러 글을 읽어 이 작가의 글 솜씨나 역사 지식 그리고 사실 묘사가 뛰어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본문을 읽으면서 다시 이곳저곳 문장에 감탄과 흥분을 하였다. 예를 들면 흑산도 앞바다의  묘사라든가 양반집 마당과 대청의 정경 묘사 등이 특히 뛰어나다.


 본문을 다 읽고 책 뒷부분의 <참고문헌>, <연대기>, <낱말풀이>를 읽고 나서 비로소 무엇이 이 뛰어난 작가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즉,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자료와 책을 읽었으며 이에 관련하여 <참고문헌> 목록 앞에 이런 문구를 덧붙였다. "이 소설은 그 내용의 일부를 이루는 정보와 정황, 어휘와 이미지에서 여러 서물에 빚지고 있다. 빚진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을 소개하자면 ‘북한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의 <비변사 등록>을 국역한 150권의 책을 열람하였고 정약전의 <자산어보> 국역판, <상해 자산어보>,<현산어보를 찾아서> 1.2.3.4.5권, <한국천주교회사> 1.2.3. 권 등을 읽고 참고하였다 한다. 대단한 분량이다. 더구나 내가 소설 본문에서 특별히 감탄했던 부분들이 김훈씨가 참고 문헌소개에서 친절하게 밝혀 더욱 반가웠다.


 그 중 몇을 골라보면, 정약용지음, 박석무 역주 <다산 산문선, 茶山 散文選>에 "녹암 권철신 묘지명"이 수록되어 있는데 권철신 집안 분위기를 묘사한 대목을 김훈씨가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 소설의 정약현 집안으로 옮겨 놓았다고 하였다.
 사실 나는 30여 년 전 30대 초반에 <茶山 散文選>을 읽고 다산선생에 관련한 많은 지식과 조선시대 생활상도 알게 되어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이후 나의 책읽기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였다. 작년에 이 책을 다시 읽으려고 개정판을 구입하여 서가에 꽂아두었으나 아직 읽지 못하고 있으나 서가에 책이 있는 한 언젠가는 읽게 될 것이다.


 장약전은 <자산어보, 玆山魚譜>를 썼으며 이태원은 국역으로 <玆山魚譜를 찾아서>를 썼는데 김훈작가는 "바다의 물고기와 새에 대하여 많은 정보와 지식을 이 책 다섯 권에서 얻었으며 소설 본문 갈매기, 개다리, 날치, 고둥, 고등어와 청어 상태를 묘사할 때 이 책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물고기를 직접 보려고 흑산도에 두 번,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자주 갔으나 자신의 눈에는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하며 대신 어시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시장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작가의 눈에 비친 시장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른 소설책에 등장할 것 같다.


 나는 수년 전 한승원 작가가 쓴 <흑산도 하늘 길>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소설은 바로 <자산어보>를 쓴 장약전을 주인공으로 역시 역사적인 사실을 재구성하여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삶을 마칠 때까지를 그린 소설이다. 흑산도는 바다 멀리서 보면 바위와 소나무가 검은 빛을 띠어서 흑산도라 하였다 한다. 정약전은 귀양살이 하면서 별로 할 일도 없어 바다 물고기와 새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관찰한 내용을 글로 남겨 우리나라 최초의 바다 생태보고서를 쓴 셈이다. 정약전은 <흑산어보>라고도 하고 같은 뜻이면서 다른 표현으로 <자산어보>라 했는데 이는 정약전이 문인이라 조금 멋진 표현을 쓰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라 추측하였다. 어느 책에 보면 '玆'는 '자'로 읽기보다 '현'으로 읽어야 하므로 <현산어보>로 표기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주장하였다. 바른 우리말 표기가 중요할 수도 있고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김훈작가는 <자산어보>로 하였다.


 다음엔 이강회가 지은 <운곡잡저>1.2.3. 권에서는 소설에 나오는 소나무 징발의 문제와 섬에서 일어난 박민의 풍경을 기술하는데 참고하였다 한다. 또 남사고의 <격암유록>을 읽어 이 책에서 소 울음소리의 이미지를 얻었다 한다. 사실 나는 소 울음소리가 길게 묘사되어 김훈작가가 시골에서 어느 날 소 울음소리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아 이 소설에 실감 있게 묘사 하였구나 했는데 실은 <격암유록>이었다 하니 추측이 빗나갔다. 나는 30여 년 전 건설회사에 근무하면서 현장 일을 보고 있을 때 남보현씨라는 나보다 10여 살 나이가 많으신 자재주임과 함께 일했는데 소싯적 한학을 공부하신 분이었다. 내가 이런저런 책을 끼고 다니는 걸 보고 몇 십 페이지 되는 복사한 자료를 주며 읽어보라고 하였다. 자신의 몇 대 거슬러 올라가는 어느 학자이셨던 ‘남사고’의 글이라 하였으며 나는 이 어려운 글을 이해할 수도 없고 무슨 참언이나 요술서로 치부하여 건성으로 넘겨보아 지금은 내용도 기억에 없다. 세월이 흘러 남사고는 한국의 노스트라담스라는 말도 있고 누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위서라는 평도 있으나 아무튼 기인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뒤 돌아 보면 당시 그 자료를 준 분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남사고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보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후회를 하지만 당시 이미 혈압이 높고 건강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이 세상분이 아닐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앞선다.


 소설에서 북경으로 가는 사신 행렬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김태준 외 6명이 쓴 <연행의 사회사>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고 "멀리서 보이지 않는 바다를 붉은 바다, 흰 바다, 검은 바다"라고 한 표현은 장한철이 지은 <표해록>에서 그대로 옮겼다고 하였다.
 내가 2012년에 읽은 <표해록>은 제주도에 경차관으로 갔던 최부가 지은 표류기이자 여행기인데 지은이가 장한철이라니 좀 이상하다, 앞으로 알아 볼 일이다.


 책의 내용은 일정한 줄거리는 없으나 천주교에 입교했다가 겨우 목숨을 부지한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귀양살이 하는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오고 정약전의 형 정약현의 딸인 정명현과 결혼하여 조카사위가 된 황사영의 이야기가 다음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형제들 중에 가장 신심이 굳어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 정약종의 이야기도 상당부분 나온다. 몸이 튼튼하여 중국 사신 행렬에 자주 참여한 노비 '마노리,와 노비에서 하급 포졸로 신분 상승한 '박차돌' 박차돌과 어린 시절 헤어져 얼굴도 모르고 지내던 누이동생 '박한녀' 궁녀에서 퇴출된 '길갈녀' 해장국집 주모 '강사녀' 하녀 '아리' 흑산도의 수군별장 '오칠구' 정약전의 숙식을 담당했던 '조풍헌' 조풍헌에 의해 정약전의 수발을 들다 정약전과 한방에서 잠을 자는 사이가 된 '순매' 등이 작가가 상상으로 만든 가공의 인물들이다.


 책머리는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 가는 길에 뭍에서 바람이 멎기를 기다리며 며칠 머무는 시기와 장면부터 시작한다. 형제 다섯 중에서 세 명이 천주학에 발을 디뎠으나 둘째 약전과 막내 약용은 배교하여 목숨을 건진 다음 귀양살이를 시작하였으나 셋째 약종은 모진 고문과 회유에도 의지를 꺾지 않아 망나니의 칼을 받았다. 조카사위 황사영은 18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처삼촌들과 천주학에 물들어 쫓겨 다니다가 충청도 제천 배론으로 피신하여 천주교 박해를 알리는 소위 “황서영 백서"를 쓴 것이 발각되어 1801년 서소문 밖에서 참수된다. 그런데 여기에 나온 황서영백서가 나는 검은 종이나 천에 흰 글씨를 쓴 것으로 추측하였으나 사실은 비단에 쓴 글씨여서 그 동안 잘못 알고 지낸 셈이다.

 가공 인물이며 천주학을 믿었던 마노리, 박한녀, 길갈녀, 강사녀, 아리 등은 모두 목숨을 잃고 정약현의 딸이자 황사영의 아내 정명련은 제주도 대정 고을의 관비가 되어 제주도로 가는 도중 뱃사공에게 부탁하여 추자도에 잠시 배가 머물렀을 때 두 살 된 아들 경한을 내려놓았다 한다. 그 동안 양반집 딸이며 장원급제한 젊은 선비의 아내로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머나먼 제주도 작은 고을의 여자 종 신분으로 떨어진 심정이 어떠했을까 상상이 안 된다. 더구나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두 살 된 아들을 연고도 없는 당시에는 거의 외진 섬이었을 추자도에 떨구고 가는 어미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짐작도 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으로 자신의 고이 기른 딸이 머나먼 제주도의 관비가 되고 손자가 흑산도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할아버지인 정약현이 알았을 텐데 그냥 수수방관만 했는지 아니면 은밀하게 도움을 주었는지 아니면 국법을 어겼기 때문에 도리가 없다고 체념하고 살았는지 퍽 궁금하다. 흑산도에서 정약전과 순매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고 정약전은 섬 아이들을 모아 소학을 가르치며 소일하다 흑산도 수군진 별장 오칠구 대신 새로 부임한 중년의 신임 무관이 군관 두 명을 데리고 흑산도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책을 읽고 다시 느낀 점으로 조선시대 사람들의 신분제도의 엄격함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신분은 태어날 때부터 구별이 확실하였고 노비로 태어난 경우 그 신분은 죽을 때까지 바꿀 수 없었다. 양반과 양가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 딸들은 양반이지만 같은 양반 아버지를 두었으나 어머니가 여자 노비인 경우는 태어난 아들, 딸도 거의 노비 신분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특히 딸의 경우는 더 그러했던 것 같다. 정약용이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수발들던 천민출신 여자와 한 방을 써서 딸이 태어났지만 정약용이 해배되어 강진을 떠날 때 별다른 양심의 거리낌 없이 살던 여자와 딸을 두고 마재 고향으로 떠났으며 정약전도 흑산도에서 순매와 사이에서 난 아들도 역시 상민신분으로 살다가 일생을 마쳤을 것 같다.


 정약용의 형제들이 다섯이지만 어머니는 세 사람이었다. 맏형 정약현은 첫 부인에서 태어난 아들이었고 부인이 병으로 사망하여 두 번째 정실부인에서 태어난 아들들이 약전, 약용, 약종이며 첩에서 태어난 아들이 약황인데 약황은 공부도 하지 않아 고향 마재에서 농사나 짓고 네 명의 형들과는 현격한 신분차이에서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정약황의 기록은 거의 없다. 즉 아들이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정약용이 요즘으로 치면 책을 통하여 서양 문물을 습득하여 서자이고 배다른 동생 약황을 여러 면으로 관심을 가지고 대하였다는 글이 보이기도 한다. 이순신 장군의 경우도 하녀 사이에 소생이 있엇다는 말은 없지만 있었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장군이었다는 말조차 못하고 천민으로 살다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당시 사회제도 아래에서는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시기가 불과 200년 전의 우리나라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상민이었으나 글을 가르친 '창대'라는 총각과 가까이 지내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창대'라는 인물은 실존 인물인 듯하다. 왜냐면 한승원의 소설 <흑산도 하늘 길>에도 '창대'가 나오기 때문이다. 주인공 정약전의 세 형제가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명문집안을 이루었지만 천주학에 관여되어 몰락하였으나 정약용은 18년 유배생활을 하며 다산학이라고 불리는 조선시대를 통 털어  커다란 족적을 남긴 학문세계를 이루었고 정약전은 <자산어보>라는 귀한 자료를 남겼다. 이 집안 형제들의 간략한 이력을 알아두면 유익할 것 같다.


정재원: 아버지
정약현(1751~1821)  장자
정약전(1758~1816) 호: 손암 약용의 멘토 사마시 합격, 증광문과 병과 급제, 병조좌랑
정약종(1760~1801) 호: 선암
정약용(1762~1836) 호: 다산, 삼미자, 여유당 22세 초시, 28세 대과 2등 급제, 부승지, 참의
정약황: 서자


 책 마지막에 실린<연대기>는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하여 여러 문헌에서 관련 자료를 모아 학고재 편집부가 정리한 것이라 하며 중요한 사건 몇을 골라 옮겼다.


1644년 인조 22 청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가 북경에서 예수회 샬. 폰. 벨 신부와 친교
1697년 숙종 23 장길산의 난
1733년 영조 9   <남사고 비결>발견
1776년 정조     정조 즉위
1784년 정조 8  이승훈 북경에서 그라몽 신부로부터 세례 받음
1785년 정조 15 윤지충, 권상영 전주전동성당 자리에서 참수 됨
1794년 정도 18 수원성 축조
1797년 정조 21 정약용 배교 상소 올림, 연암 박지원 당진지역 내포 면천군수부임
1800년 정조     정조승하
1801년 순조 1  정약용, 홍낙민, 최창현, 홍교만, 이승훈, 최필용 서소문 밖에서 참수
              이가환, 권철신 옥사 정약전, 장약용 신지도, 장기로 유배, 주문모 신부 새남터  밖 능지처참, 정약전, 정약용 흑산도 강진 유배

1815년 순조15 정약전 자산어보 완성
1816년 순조16 정약전 흑산도에서 사망, 정약종 아들 정하상 북경방문
1818년 순조18 정약용 강진에서 해배
1845년 헌종11 김대건 조선인 최초로 사제 서품, 새남터에서 군문효수 됨
1855년 철종 6 메스트로 신부 제천 배론 성 요셉 신학교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