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우연의 음악, The Music of Chance>을 읽고..

깃또리 2019. 1. 2. 12:41

<우연의 음악, The Music of Chance>을 읽고..
폴 오스터 장편소설/ 황보석 옮김
2015. 05. 02.


 폴 오스터의 소설에 음악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작가가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즐겨 듣는 것 같다. 책 제목에 음악이 들어 있어 기대를 하고 읽어 보았으나 예상과 달리 음악 관련 소설은 아니다.


 보스턴 시 소방관으로 7년째 일하던 34살의 주인공 '나쉬'는 아내 테레사가 딸 줄리엣이 두 살이던 해 이유 없이 가출하더니 이혼을 요구하여 실의에 빠진다. 나쉬는 혼자 딸을 키우기 힘들어 할 수 없이 미네소타에 살고 있는 누나 '도나'에게 줄리엣을 맡긴다. 그러던 어느 날 모르는 변호사가 찾아와 나쉬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유산으로 20만 달러라는 거금을 유증했다고 알려 준다. 두 살 때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가 무슨 이유로 거금을 물려주는지 궁금했지만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고 나쉬는 이 돈으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쓰기로 마음을 정한다. 소설에서는 왜 나쉬가 이 돈을 제대로 쓰지 않고 여행으로 탕진하는가는 밝히지 않는다. 아마 독자들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쉬의 심리상태를 추적해 보라는 작가의 고도의 계산이 아닌가 한다. 이 소설에서 나에게 흥미를 느끼게 하는 부분은 나쉬가 승용차 샤브를 구입하고 그간 살았던 보스턴을 출발하여 미국 전 지역 동서남북을 돌아다니는 대목으로 평소 드넓은 미국의 지리에 관심이 많던 내게는 지리 상식을 넓히는데도 퍽 도움이 되었다.


 먼저 보스턴에서 누나가 살고 있는 미네소타를 들린 다음 서쪽으로 와이오밍으로 갔다가 남쪽의 뉴멕시코-오리건-텍사스-애리조나-몬테나-유타 그리고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왔다가 두 번째는 아버지가 철물가게를 하며 살았다는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으로 갔다가 대륙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횡단하여 마이애미로, 다시 라스베이거스-루이지애나-애틀란타-플로리다로 돌아 왔다가 미네소타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서 가까운 대학도시 버클리로 갔다. 버클리에서 피오나 웰즈라는 여성과 잠시 지내는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서로 어울리는 사이가 되어 나쉬는 웰즈와 결혼을 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웰즈는 오래 전에 헤어졌던 남자 친구가 나타나자 나쉬에게 그와 함께 살기로 하였다고 고백하고 나쉬를 떠나 다시 깊은 실의에 빠진다. 이리저리 돈을 소비하여 마지막으로 2만 불 정도가 남았을 때 외진 도로가에서 비틀거리는 도박판에서 폭행을 당한 23살의 잭 포지와 조우하여 차에 태우게 되고 동정심이 발동하여 그간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듣는다. 잭 포지가 카드게임의 고수라 생각되어 나쉬는 자신의 나머지 전 재산을 포지의 카드 게임에 투자하기로 결정한다. 포지가 상대할 사람들은 평범한 회계사와 검안사로 친하게 지내던 사이로 함께 구입하였던 복권이 당첨되어 엄청난 거부가 된 사람들이다. 이 두 사람은 애초부터 결혼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동성애자는 아니며 숲속에 지은 거대한 저택에서 카드 게임으로 소일하며 잭 포지와 게임을 한 번 했던 사람들이다.


 나쉬의 기대와 다르게 잭 포지는 이 두 사람들에게 게임에 져서 돈을 다 잃고 나쉬는 마지막으로 샤브 승용차까지 걸어 게임 돈을 대주었지만 포지는 지고 만다. 나쉬는 다시 만 달러를 빌려 만일 게임에 지면 포지와 둘이서 노동을 하여 빚을 갚기고 하였으나 포지는 어이없이 게임에 지고 만다. 나쉬와 포지는 빚을 갚기 위해 산속에서 감시를 받으며 돌로 벽을 쌓는 일을 한다. 두 복권 당첨자는 유럽에 있는 허물어져 가는 고성을 구입하여 해체 한 다음 미국에 들여 왔으나 원형 복구하려던 생각을 바꿔 긴 벽을 쌓기로 하였는데 나쉬와 포지는 마치 노예처럼 이 벽 쌓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이 상황에서 포지는 노예생활을 억울해하고 불만을 품지만 나쉬는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밖으로 나간다 해도 별로 할 일도 없고 큰 희망도 없다는 생각으로 이 상황을 인정하고 즐기기조차 한다.


 작가 오스터가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설정했겠지만 어려운 처지에 봉착했을 때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과의 운명에 맞서는 자세의 극명한 차이를 이 부분에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포지는 마지막 며칠을 더 버티지 못하고 탈출하다 붙잡혀 목숨을 잃을 정도로 폭행을 당하였지만 나쉬는 끝까지 일을 마친다. 사실 나는 나쉬가 아직 나이도 많지 않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에 당연히 나쉬의 재기 또는 어떤 희망으로 소설이 끝나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 마지막을 나쉬의 죽음으로 맺는다. 이 죽음이 사고 인듯하기도 하고 자살 같기도 하여 끝 부분을 다시 읽어보기도 했지만 결국 잘 알 수 없었다. 자살이라면 나쉬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끝없는 좌절과 실의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나쉬가 클래식 음악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쿠푸랑, 패즈 윌러, 바흐, 모짜르트, 베르디 등의 작곡가들을 언급하며 18세기 현악 사중주에 나오는 안단테가 모짜르트이거나 하이든이 작곡한 것인가 궁금해하는 대목도 나온다. 이 소설을 이해하고 나쉬의 심리상태를 더 잘 알기 위해서는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