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을 읽고...

깃또리 2018. 12. 31. 09:31

<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을 읽고...
신경림, 김명곤, 장영희, 최영미 외 지음
예담
2015. 03. 24.


 책 제목은 ‘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이지만 책 내용을 보면 부제 "명사 28명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시와 문장" 으로 부제의 ‘시와 문장’이 더 어울린다. 즉 '한 구절"이 아니고 시와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추천의 말은 시인 신경림씨가 <향기와 멋있는 삶>이란 제목으로 한편의 시나 산문이 또는 한 구절의 문장이 어떤 사람에게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때로는 힘이 되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한다고 하면서 똑같은 문장이나 구절도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딴 것으로 재창조되면서 그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이 흥미롭다고 하였다.


 이 책에 글을 보탠 28명은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진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람들이다. 시인, 음악가, 배우, 교수, 사진작가, 탈렌트, 개그맨, 소설가, 변호사 그리고 사업가 등 실로 각 분야의 사람들이다.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사람의 이력사항도 소개하여 궁금증도 풀어주는 점도 있지만 2006년 출판되어 근 10년이란 세월이 지난 탓에 현 서울시장 박원순씨는 변호사로 세상을 떠난 장영희교수는 서강대학교 교수로 나와 있어 현재성이 떨어지는 점도 있다. 제일 먼저 나오는 장영희씨는 가슴으로 읽는 시로 에밀리 디킨슨(Emilly Elizabeth Dickinson 1830~1886)이 쓴 시를 소개하였다.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보통 난해한 암호 같은 복잡한 시를 쓰는 사람이었지만 이 시는 정말 에밀리 디킨슨이 쓴 시인가 의심이 갈 정도로 간결하고 메시지가 직접적이라고 하였다. 원래 제목이 없어 첫 행을 제목으로 삼았다 한다.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이 시를 소개하면서 장영희교수는 20여 년 전 유학시절 같이 공부하였던 ‘카알’이란 친구로부터 20년 만에 받은 메일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시인도 영문학교수도 되지 않고 평범한 의료기기 제조회사에 다니다 은퇴하였으며 부인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라고 했다한다. 장영희씨는 그래서 그가 에밀리 디킨슨 같은 시인은 되지 않았지만 그 시를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죽거나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위대한 사람이 되는 일도 좋지만 자신을 헌신하여 남을 돕거나 ‘살아있는 존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도 큰 보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두 번째는 조안리씨이다. 이름이 독특하고 눈에 익은 이름이며 약력을 보니 1954년 출생으로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23살에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른 살 가까이 나이가 더 많은 당시 서강대학교 학장인 켄 킬로렌 신부와 결혼하였으며 사업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고 지금은 스타커뮤니케이션즈라는 헤드헌터 사장이라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이런 정도의 과정을 겪은 사람은 극과 극의 평가를 받기 쉽다. 한마디로 '의지력이 대단한 여성' 이라는 찬사, 아니면 '잘 난 척하는 여자'라는 비아냥이다. 아무튼 이 여성분이 2003년 한국어판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원제: The Traveler's Gift>를 우연히 읽고 '선택-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겠다.'라는 문장에 마치 전기 줄에 감전된 것처럼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한다. 그나저나 켄 킬로렌씨는 신부였는데 결혼했다니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나는 매일 매일을 웃음으로 맞이할 것이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의 소유자이다.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였다.


 사실 나는 조안리라는 한 인간의 평가를 떠나 평소 삶을 긍정하고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를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며 사는 사람을 존경하고 나 자신도 그렇게 살겠노라고 다짐하며 지낸다. 그래서 조안리의 삶의 태도에 동감한다. 덧붙이자면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동시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안리는 이를 너무 내세우고 주장하다보니 극성스런 사람으로, 튀는 여자로 세간에 비치기도 하는가 보다. 조심할 일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으로 잘 알려진 최영미시인은 중학생 때 보들레르의 <이방인>을 처음 읽었다 한다. 14살의 어린 소녀가 이 시를 이해 할리는 없었겠지만 그저 좋았다한다. 세월이 흘러 시인이 어른이 되어 프랑스 노르망디지방 르 아브르로 가는 길에 옹플뢰르 미술관에서 화가 부댕의 <흰 구름, 파란 하늘>이란 공책만한 크기의 작은 파스텔화를 보았는데 설명문에 보들레르가 이 그림을 보고 시 <이방인>을 썼다. 라는 문구가 있었다 한다. 자신도 부댕과 보들레르처럼 구름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 순간 기쁨이 더욱 컸으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한다. 시의 이미지가 강렬하여 옮겨본다.


-너는 누구를 사랑하느냐?
 말하라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아버지냐, 어머니냐, 누이? 아니면 동생이냐?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동생도 없소
-친구들은?
-조국은?
-나의 조국이 어느 위도 상에 있는지도 몰라.
-미인은?
-미인이야 기꺼이 사랑하겠지, 불멸의 여신이라면,
-그럼 너는 황금을 사랑하느냐?
-나는 황금을 미워해, 당신이 신을 미워하듯이
-그렇다면 도대체 무얼 사랑하는가? 이 괴상한 이방인아,
-나는 구름을 사랑한다....저기 흘러가는...구름... 저 신기한 구름을....
 
 부모, 형제, 친구 인간사에 얽힌 인연도, 자신이 의탁해야할 가장 정치적인 조국도, 떨치기 쉽지 않은 물욕의 대명사 황금까지도 그리고 신조차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이 괴상한 이방인, 바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는 그러나 자연을 사랑하노라고 말한다. 어찌 자연이 구름뿐이겠는가!
 
 우리나라 곳곳의 바다와 섬을 떠돌며 시를  쓴다는 이생진 시인은 '나도 내 시를 사랑한다.'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시 <수많은 태양>과 <바다에서 돌아오면>을 실었다. 그런데 사진작가 김영갑도 '사랑이고 자유이고 구원인 섬'이란 제목으로 역시 이생진 시인의 <수많은 태양>을 내세우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제주도 성산포를 이야기 하였다.
 
<수많은 태양>
 
아침 여섯시
어느 동쪽에서도
그만한 태양은 돗는 법인데
유독 성상포에서만
해가 돋는다고 부산필거야
아침 여섯시
태양은 수 만 개
유독 성상포에서만
해가 돋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도
해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