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읽고...

깃또리 2018. 12. 24. 09:31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읽고...
장왕록 지음/ 장영희 엮음
샘터
2015. 03. 09.


 서강대학교 영문학교수였던 장영희씨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소녀 같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장영희씨는 세상을 떠났어도 아름다운 글을 남겨 남은 사람들의 기억을 새롭게 한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은 장영희씨 혼자 쓴 책은 아니지만 장영희씨 책 못지않게 진지하게 읽었다. 사실 내가 어디에서 밝힌바와 같이 내가 시골 중학교에서 3년간을 배운 영어교과서 저자가 모두 장왕록 서울대학교수여서 오랜 시일이 지났어도 기억하고 있다. 아마 장왕록이란 이름이 조금 특이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 후 세월이 지나고 내가 40대 초반쯤 서강대학교교수로 영미문학에 관한 칼럼을 신문에 쓰는 장영희씨의 글을 자주 읽는 중에 어느 월간지의 장영희씨 글에 자신의 아버지가 장왕록 씨라는 사실을 알고 아! 이 여자교수의 아버지가 장왕록 씨였구나 하고 내심 반가워했다. 아마 그 전, 후 쯤 장영희교수가 지체부자유자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장왕록교수가 속초바다에서 해수욕을 하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 후 나는 장영희교수의 책을 대부분 손에 넣어 읽었다. 며칠 전 도서관 도서 반납대에 놓인 이 책을 발견하고 대출하였으며 이 책은 딸 장영희씨가 아버지와 함께 영어교과서를 공동으로 집필하였으나 갑작스런 타계로 교과서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하였던 아쉬움이 남아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신 펴낸 책이라 했다. 그래서 책의 속표지 다음 헌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하늘나라로 보낸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분들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 이다.


 다음 페이지에는 <지혜의 빛이 되어 주십시오. - 고 장왕록 선생님께>라는 제목으로 이해인 수녀의 '장왕록 선생 서거10주기 때 쓴 추도시'가 실렸고 서문은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이란 제목으로 장영희교수가 아버지를 기리며 쓴 조금 긴 글이 나온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라는 문구도 보인다. 요즘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자, 부녀, 모녀, 모자 사이가 예전과 같지 않고 불편한 경우가 많은데 장왕록교수와 장영희교수 부녀사이는 그렇지 않다. 특히 두 사람이 모두 영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였으며 장영희교수는 결혼도 하지 않아서 부모와 갈등의 소지가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서문의 마지막 문장은 "누구나 결국 이 세상을 떠나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을 믿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 것 같아 외롭지 않고 마음이 든든하다."이다. 자신도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 생활을 오래하였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남보다 많은 생각을 하여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한다. 사람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과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과 차이는 삶의 태도가 사뭇 다를 것이다.


 장왕록교수가  한국 영문학계에 끼친 영향력도 적지 않아 전 홍익대학교 영문과 교수이자 시인인 윤삼한씨는 <발자국이 모여서 길이 되듯이>라는 시를 헌정하였고 전 동국대학교교수이자 수필가 이창배씨의 장왕록교수 1주기 추모사가 실렸는데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추모사 내용에 장왕록교수는 범인을 초월하는 비상한 재능의 소유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공헌한 역사적 인물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큰 장점으로 부지런함과 행동의 날렵하였음을 칭송하였다. 그 결과 60여 권의 영미문학 번역서를 냈으며 우리나라에 펄 벅, 헤밍웨이, 헨리 제임스, 존 업다이크, 토마스 울프, 서머세트 모옴, 윌리엄 포크너 등을 처음으로 소개하였다고 소개하였다. 


 이 추모사 끝 부분에 "사람들이 장수하면서 인생의 추락기가 대부분 초라하며 말년에 겪는 고독감, 소외감, 허무감, 주책, 추태, 병고가 따르지만 이를 겪지 않고 아직 활력이 넘칠 때 저 세상으로 다이빙하여 들어갔으니 이것 또한 일생의 멋진 결산이 아니겠오."라 하였다. 장왕록교수가 속초 바다에 해수욕을 하러 바다에 뛰어 들어 갔다가 세상을 떠난 일을 비유하여 쓴 글로 누구나 부러워 할 죽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판타지, 그녀 서가에 꽂힌 시집>이라는 장왕록교수의 첫 번째 글은 마치 피천득씨의 수필 <인연>과 내용이 엇비슷하다. 장왕록교수가 이화여고 영어교사 시절이므로 30대 초반 쯤으로 가르치던 제자의 언니와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10년 세월이 흐른 뒤 미국 아이오와 대학 대학원 교환교수로 갔다가 어느 한국교민 물리학박사의 저녁 초대에서 그 여성을 다시 만났다 한다. 그 여성은 당시 물리학박사의 부인이 되었으며 그 집 서가에 자신이 10년 전 헤어질 때 선물하였던 <워즈워즈 시집>이 꽂혀 있었다는 내용이다. 글에는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이미 아들, 딸을 둔 남의 부인이었기에 여러 사람 앞에서 서로 아는 체를 하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내 아호에 대한 변>에서 장교수는 다른 사람의 아호를 지어주기도 하였으나 막상 다른 친구가 지어준 아호가 멋지기는 하지만 실체감이 없고 너무 명상적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 아호를 '우보 又步.로 지었다 한다. 자신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보다 일단 행동을 시작하고 평소 생활에서도 걷는 것을 퍽 좋아하기 때문에 '우보'가 좋아 현세에서는 물론 내세에 가서도 그렇게 걷겠다하였다. 우보선생은 학교연구실에서도 3층에 가려고 계단을 올랐으나 몸은 언제 4층에 와 있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한다. 걸음이 빨라서 앞서 걷는 일로 젊은 시절 아름다운 여성과 데이트가 실패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고도 하였다. 하긴 내가 감히 우보선생과 비교할 인물은 아니지만 빠르게 걷는 일에 관해서는 나도 지지 않는다. 내 경우에도 걸어서 어느 곳을 찾아가다가 너무 빨리 걸어가다 목표 지점을 지나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우보선생이 속초에서 너무 빨리 바다에 들어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는데 나 역시 이 점에 주의하여 우보선생처럼 허망하게 세상을 하직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정의 시금석>이란 글은 오래 전 어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진정한 친구를 가려내는 이야기와 영국의 몇 몇 시인들이 친구를 추모하여 쓴 추모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밀턴의 <리시더스>, 셀리의<애도니스>, 테니슨의 <사우보> 등인데 특히 테니슨이 쓴 자신이 아끼던 케임브리지 대학교 동창인 아더 핼람의 죽음을 애도한 <사우보>는 세계문학사상 최고의 비가,悲歌라 평가하였다. 친구를 사모하여 덧붙이고 덧붙이기를 무려 17년간 하여 장시를 완성했다는데 정말 대단한 우정인 것 같다. 세상은 갈수록 파편화하여 옛날과 달리 이제는 진정한 우정도 찾을 수 없는 시대이다.


 <번역유감>이란 글은 자신도 수많은 영문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실수도 했으나 다른 사람이 잘못 번역한 문장의 예를 들면서, 번역은 영문해석 답안지를 쓰듯 단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사유와 관념까지 우리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하였다.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화학적 변화를 시켜야 한다."라 하였다. 몇 가지 예를 들었는데, She crossed herself. 는 그녀는 길을 가로 질러 갔다. 가 아니라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He threw a party. 는 그가 파티를 박차고 나갔다. 가 아니고 그는 파티를 열었다. He learned the ropes. 는 그들은 밧줄에 대하여 배웠다. 가 아니고 그들은 요령을 터득했다. 라 해야 한다고 했다.


 <틀린 직역과 맞는 의역>에서는 나다니엘 호손의 <The Scarlet Letter>에 대하여 소설 내용도 소개하면서 오래 전부터 쓰여 온 제목 <주홍 글씨>를 <진홍빛 글자>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장왕록 교수는 펄벅의 작품을 가장 많이 번역하였는데 1963년 번역한 한국배경의 역사소설 <The Living Reed>를 <살아 있는 갈대로> 번역하지 않고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라고 하여 일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나 사실은 펄벅 여사가 방한하였을 때 이 사실을 설명하였더니 자신의 우리말 제목에 만족하였다 한다. 그 외에도 여러 책들의 제목의 번역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는데 퍽 흥미로웠다.


 뒷부분은 장왕록교수가 주로 미국의 작가들을 방문하거나 세미나 등에서 만난 일들을 적었다. 국내에서는 <Tropic of Cancer, 북회기선>으로 알려진 헨리 밀러를 '자유 분망하고 예민한 지성인'이라고 평하였다. 1967년 펄 벅 여사를 두 번째 만났던 일을 간단히 적고 대신 펄 벅 소개를 길게 적었다. 그 중에서 펄벅이 1961년 미국의 <루크>지에 기고한 과거에 미국이 한국에 잘못한 세 가지 내용이 주목할 만하다.


 첫 째는 1905년 루주벨트 대통령이 일본과 러시아가 포츠머스 조약을 맺도록 동의할 때 일본 편을 들고 한국의 독립 문제를 소홀히 했던 점 때문에 1910년 일본이 한국을 병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일이다.
 

두 번째는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으나 1919년 파리 세계평화회의에 민족자결을 요구하는 한국망명사절단에게 언권을 주지 않고 3.1. 운동 때에도 미국과 그 동맹국은 수수방관한 점.


 세 번째는 세계2차대전시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에서 루즈벨트, 윈스턴 처칠, 장개석이 한국문제를 잘못 처리하여 한국 국민이 원치 않는 남북분단의 비극적 결과가 초래된 사실이라 하였다. 이글을 읽어보니 펄 벅 여사는 작가를 떠나 동북아 역사 특히 한국에 대한 역사지식이 풍부하고 우리나라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미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펄 벅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는 동료교수들과 자신의 은사에 대한 글이 나온다.
먼저 영문학자이며 동료교수였던 최준기씨와 황한호씨의 회갑축사 그리고 <나의 은사 이양하교수>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 나온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무>, <신록예찬>이 실려 이양하교수는 수필가로 알려지고 있으나 일본 동경제국대학교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금시계를 상으로 받고 같은 대학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한다. 1934년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를 시작으로 해방직후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50년부터 1957년까지 하버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학술연구와 한영사전편찬을 하고 귀국하였으나 5년 만에 회갑도 맞기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소개하였다. 장왕록교수는 용강군이 고향이고 이양하교수는 용강군과 인접한 강서군으로 같은 평안남도 출신에 평양고보 선후배였으며 서울대학교의 은사라 한다.


 이양하교수의 수필이야기가 나오니 생각나는 것으로 국어교과서에서 읽었던 수필들이 다시 읽고 싶어 작년에 이태동교수가 엮은 <아름다운 우리수필>1. 2권을 구입하여 읽었었다. 1권에 피천득씨의 <수필> 이양하씨의 <나무> 이상의 <권태> 김진섭의 <백설부>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등 교과서에 실렸던 명수필들이 수록되었는데 아무래도 감성이 유연한 시기에 읽었던 글들이어서 지금 읽어도 역시 좋았다.
 뒷부분에 영국출신의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였던 레이너씨에 대한 글에서 그는 정식대학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영문학을 혼자 공부하고 중국무한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로 15년을 재직하다가 서울을 떠났다 한다. 장왕록교수와 친하게 지냈으며 17세기 영국시인 로버트 헤릭의 시 한편을 써주고 갔다 하여 이 시를 옮겨보았다.
 
<Counsel to Girls>                  <소녀에게 주는 충고>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              장미 봉오리를 모을 수 있는 동안 그것들을 모으라
Old time is still a flying:                         세월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 날아가고
And this same flower that smiles to-day         오늘 미소 짓는 바로 이 꽃이
To-morrow will be dying.                        내일이면 지리니.
 
The Glorious Lamp of Heaven, the Sun,          하늘의 영광스러운 등불인 태양이
The higher he's a getting                        높이 떠오르면 오를수록
He sooner will his Race be run,                  그의 경주는 곧 끝날 것이고,
And nearer he's to Setting                        일몰에 가까워지리니.
 
That age is best which is the first,                젊음과 피가 따뜻한
When Youth and Blood are warmer:               첫 시절이 가장 좋고
But being spent, the worse, and worst            그것이 지나면 더 나빠지고
Time's still succeeds the former.                  가장 나쁜 시절이 잇따르리
 
Then be not coy, but use your time:              그러니 수줍어 말고 시간을 활용하라
And while ye may, go marry:                      그리고 결혼 할 수 있으면 하여라
For having lost but once your prime,              청춘을 한 번 잃으면
You may for ever tarry.                           너는 영원히 기다여야 하리.
 
 장왕록 박사의 화려한 연보를 보면 한국 영어영문학회 회장, 한국 호손학회 창설 및 초대회장, 한국 마크 트웨인 학회 창설 및 초대회장, 한국 헨리 제임스 학회 창설 및 초대회장, 한국번역 문학 번역상 3회 수상, 국민훈장모란장(대통령상), 50여 편이 넘는 역서와 방송통신대학교 <영미산문 1>, <미국소설> 등 편저에도 다수 참여한 한국 영문학계의 걸출한 인물이다.


 이 책의 앞부분에 <20년 늦은 편지>라는 제목으로 장영희교수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의 수신 주소는 "천국 우주시 지구동 천안묘지공원 백조단지 10 장왕록 귀하"이다. 생전 가톨릭신자였던 장영희교수도 이젠 아버지와 같은 곳에서 죽음도 고통도 없이 함께 영생을 누리기를 바라며 즐거운 읽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