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현의 노래>를 읽고...

깃또리 2018. 12. 20. 10:49

<현의 노래>를 읽고...
김훈장편소설
문학동네
2015. 03. 07.


 우륵은 고대 가야 사람으로 지금의 경북 고령군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오고 그래서 고령읍에 ‘우륵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김훈은 서초동 ‘국립국악원 악기박물관’에서 고악기와 출토된 토기에 부조된 금을 뜯는 악사 모습 등을 관찰하고 삼국사기 기록 등을 참고하여 우륵을 주인공으로 하여 소설형식을 빌려 이 작품을 썼다 하였다. <칼의 노래>는 이순신장군의 진중일기인 <난중일기>를 참고하여 쓴 이야기로 많은 독자들을 모았으나 이 소설 <칼의 노래>는 내가 2005년 쯤 읽었지만 별로 많은 독자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으로 업무가 정지되어 있는 동안 측근의 추천으로 읽어서 대중에게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나는 다시 도서관에서 책을 찾았더니 개정판으로 모습이 바뀌었다. 처음 김훈의 문장솜씨에 감탄했었으나 그 동안 김훈의 책을 여러 권 읽다보니 이제는 엇비슷한 문투에 약간 식상하였고 특히 이 소설은 내용보다 문장의 장식이 과도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쩌면 내가 감지한 이런 아쉬움이 이 소설이 독자들을 끌지 못하는 원인이 아닌가 한다. 소설 내용을 살펴보면 역사적 실존인물이라 할 수 있는 가야국의 가실왕과 신라의 진흥왕 신라장군 이사부 우륵 그리고 우륵의 제자 이문- 이 소설에서는 니문, 尼門으로 표기-이 등장하고 가공 인물로 우륵의 부인 '비화, 飛'火‘ 대장장이 '야로, 野蘆' 야로의 아들 '야적' 그리고 가실왕의 궁중하녀 '아라, 阿羅'를 등장시켰다.


 소설 시작은 가야의 가실왕이 늙고 병들어 죽음을 앞두고 왕과 함께 묻힐 순장자를 40여 명 각 신분에 따라 뽑았으며 이 순장 대상자 중에 왕을 가깝게 시중들던 꽃다운 18살의 처녀 '아라'는 밤에 오줌을 누러가는 척 하다가 대궐 담장 아래 열린 배수구를 통하여 달아났다. 한편 우륵은 부모 잃은 고아 니문을 거두어 제자로 삼고 '비화'라는 여자를 아내로 삼아 오동나무에 줄을 건 금(琴)이란 악기를 만들어 뜯고 춤과 노래도 곁들여 대궐이나 부족장의 여러 행사에 불려가 재주를 보여 살아갔다.


 김훈 작가는 악사 우륵, 대장장이 '야로' 신라장군 '이사부' 이 세 사람을 70세의 같은 연령대로 설정하였으며 악사 우륵에게 ‘소리란 주인이 따로 없고 정처가 없으며 대장장이 야로에게도 쇠라는 것이 본시 소리와 마찬가지로 따로 주인이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개입시켰다. 이에 따라 가야에 살고 있는 야로는 쇠를 다뤄 만든 병장기들을 몰래 배에 실어 신라장군 이사부에도 보내고 가야국에도 무기를 조달하는 이중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설정하였다. 이사부는 가야의 고을 하나하나가 신라 수중으로 들어오자 신라 땅에 살고 싶어 찾아 온 우륵에게 지금의 충주인 낭성으로 올라 가 살도록 한다. 우륵은 이사부의 뜻에 따라 낭성에서 니문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이어간다. 당시 신라 진흥왕은 나이가 18살로 한창 혈기가 넘치고 가야와 백제로부터 아우른 새로 편입된 영토를 순시하면서 신라의 최북단인 하림성에 닿았다.


 그러나 작가는 하림성이 지금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아 궁금하다. 진흥왕이 하림성에 도착하였다는 전갈을 받고 달려 온 이사부는 낭성에 살고 있는 우륵을 불러 진흥왕 앞에서 금을 뜯고 춤을 추도록 한다. 이 부분은 작가는 <삼국사기>를 참고 하였다하며 진흥왕이 점령지에 도착한 시기는 서기 551년 3월이라 한다. 우륵의 공연이 끝나자 진흥왕은 우륵에게 "너는 이제 낭성을 떠나서 국원(國原)으로 가라 국원은 새로 차지한 고을로 지금은 어수선하나 삼한의 중심이다. 내 거기 소경(小京)을 열고 백성을 이주시켜 새로운 왕도를 세우려 한다. 너를 위해 국원에 거처를 마련해주마. 너는 국원에 살면서 너의 소리를 과인의 나라의 소리로 키워라."한다. 다른 한편 가실왕의 손자인 '월광'은 신라에 투항하여 가야와 겨루는 전투에 17세의 약관의 신라 화랑 사다함과 출전하였으나 전투가 끝나자 이사부는 월광을 오지로 쫒아 목숨만 부지하고 죽을 때까지 어디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한다. 또한 자신의 지난날의 헌신을 믿고 찾아 와 몸을 의탁하는 대장장이 야로는 이미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무참히 베어버리는 비정함을 보인다.


 여기에 나오는 국원은 지금의 원주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면 원주는 고려시대에 5소경 중 하나였기 때문이며 원주는 한 반도의 남북의 중간지역이고 동해와 서해의 중간지점이기도 하며 예부터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천혜의 고장이라고 이 지역 사람들은 자부심이 크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 IMF가 시작하던 시기에 원주에 일자리를 얻어 2 년 반을 일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고장 사람이 원주는 신라시대 5소경 중하나였다는 자부심이 실린 이야기를 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하림성과 낭성은 지금의 어디인지 궁금하다. 진흥왕은 자신의 영토를 순시하고 순수비를 세웠는데 서울의 북한산 ‘비봉, 碑峰’은 당시 진흥왕 순수비가 있었던 곳이며 원래의 비석은 중앙박물관 1층에 서 있으며 비봉에는 모조품이 서 있다. 그 외에도 창녕 척경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등이 진흥왕 시대에 세워진 비석이다. 신라의 영토를 넓히는데 큰 역할을 한 이사부도 세월에 떠밀려 세상을 떠나고 진흥왕은 서라벌에 돌아 간 다음 세 사람을 뽑아 우륵에 보내 음악을 배우게 하는데 이 사실도 <삼국사기> 기록에 의한 것이라 한다. 신라, 백제와 달리 가야는 각 고을마다 독립성이 강한 느슨한 연립체여서 밀려드는 신라의 공세에 무릎을 꿇고 결국 서기 562년 마지막 대가야가 정복되어 신라의 대가야 군으로 편입되었다.


 사실 나는 북한산 비봉에 오르기 전에 아마 바위 봉우리가 날아갈듯 한 형세여서 비봉, 飛峰 이려니 지레 짐작하고 지냈는데 어느 날 비봉에 올랐더니 안내문과 함께 임시로 깎아 만든 진흥왕 순수비가 있어 나의 무식함을 탓한 적이 있었다. 이제 비봉에는 제법 실제 비석과 같은 모습의 비석이 있으니 아직 보지 못한 사람은 비봉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소설 마지막은 우륵은 ‘니문’의 보살핌 속에 숨을 거두었고 우륵을 양지바른 곳에 묻은 니문은 국원을 떠나 무너진 가야 고을을 떠돌며 소리를  베풀어 얻어먹고 지내다 세상을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야 대궐 뒤 무덤 봉분아래에서 사마귀를 바라보며 네 줄짜리 가야금을 뜯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소설에서 김훈씨의 에로틱한 문장의 압권은 ‘아라’가 왕의 죽음을 예감하고 순장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기 전에 떡갈나무 아래에서 오줌 누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명색이 왕국의 대궐인데 왕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수발하는 궁녀가 "대궐 침전 뒷 숲에 오줌 누는 자리를 정해두고 있었다."라는 문장은 좀 무리한 설정으로 생각된다. 차라리 도망치느라 참았던 오줌을 숲 떡갈나무 아래에서 시원하게 내보내는 설정으로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18살 처녀의 배설을 다룬 글이 인상 깊다.


 그러고 보니 작가는 <자전거 여행>에서도 배변 묘사를 탁월하게 하였는데 이 방면 글쓰기에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김훈은 남녀 몸을 섞는 묘사도 자못 예스러운 표현을 동원하면서 은밀하고 황홀한 무아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절묘하게 그렸다. 우륵과 비화 부분에서 "비화는 바람 부는 자리를 좋아했다."라는 문장으로 비화는 네 벽으로 막아진 방보다 바람 불고 달이 뜨는 야외에서 교접하는 걸 좋아했던 여자로 하여 "바람 부는 수수밭 둔덕이나 대숲의 달빛 속에서 비화는 거침없이 아래를 열었다."라는 문장을 보였고 "몸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등불이 켜질 때 비화는 - 아, 거기 ..... "라는 문장도 나온다. 궁궐에서 도망 친 ‘아라’는 야로의 하룻밤 여자다 되어 목숨을 부지하였다가 우륵을 만나고 우륵은 니문과 한방을 쓰게 하는 대목에서도 김훈의 글이 빛을 내고 있다. 이 소설은 이런 문장에 이끌리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