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꿈의 도시>를 읽고...

깃또리 2018. 12. 19. 11:03

<꿈의 도시>를 읽고...
오쿠다 히데오 장편소설/ 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2015.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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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내 책상 책꽂이에 꽤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었다. 곧 읽으려는 책은 책장에서 꺼내 쉽게 보이는 곳에 놓는 습관 때문인데 너무 오래 되어 이 책이 어떻게 내 손에 들어왔는지조차 기억에 없다. 그래서 600여 페이지나 되는 꽤 두툼한 책이라서 읽을까 말까를 망설이다 인터넷 검색해 보니 작가 '오쿠다 히데오'는 일본의 유수한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특히 2004년 <공중그네>라는 작품으로 131회 나오키 상을 받기도 하여 읽기를 시작하였다. 참고로 나오키 상(直木賞)은 일본문학상 중에서 아쿠다가와 상(芥川賞)과 더불어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아쿠타가와 상이 순수문학에 수여되는 반면 나오키 상은 대중작가의 통속소설에 상을 주기도 하는 점이 다르다. 기왕 책을 읽을 바에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작품을 고르면 절반은 크게 후회하지 않는 경험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책은 잘 골라야 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명의 전혀 다른 주인공들이 일정한 순서로 등장한다. 배경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짐작하면 도쿄의 북부지역인 센다이시(仙臺市)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짐작되며 작가는 인구 12만 정도인 '유메노 시'라는 지도에 없는 상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였다. 원래 이 도시의 중심지는 '무코다"라는 읍이었으나 주변 다른 소읍 두 곳을 병합하여 만든 통합신설도시로 설정 하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주인공들은 모두 다섯 명이지만 원래가 작은 소읍이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일과 사건으로 주인공들은 함께 얽혀 있다. 소설 내용을 간단히 소개 하자면 먼저 아이하라 도모노리는 32세로 지방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어 유메노시 사회복지과에서 근무한다. 도모노리 눈과 입을 통하여 특별한 생산시설이나 관광자원도 없어 매력을 잃은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젊은이들이 떠난 쓸쓸한 일본 지방도시의 황량함과 무기력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떠나지 못한 이곳 주민들은 지방정부의 복지정책에 매달리는 희망 없는 생활상을 보여준다.


 두 번째 주인공 구보 후미에는 17살로 이곳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으로 도쿄의 릿교대학교나 아오야마가쿠인 대학교를 목표로 공부하는 착하고 외모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여학생이다. 역시 이 여학생의 눈과 입을 통하여 일본 젊은이들의 가치관이나 생활태도를 엿 볼 수 있다.


 세 번째 주인공 가토 유야는 25살로 상업고등학교를 다녔지만 화이트스네이크라는 폭력조직 서클회원으로 공부는 뒷전이었으며 반건달생활을 하였으나 졸업 후 역시 이 서클 선배가 운영하는 무코다 전기 보안센터라는 약간 엉터리 전기점검회사에 다니며 밥벌이를 하지만 떳떳한 직업도 아니고 일찍 동거하다 결혼한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지낸다.


 네 번째 호리베 다에코는 48살 이혼녀로 혼자 사는 부인이며 이 도시에서 제일 큰 대형쇼핑 센터의 자체 보안요원으로 일한다. 즉 쇼핑센터 내부의 소매치기나 값을 치르지 않고 물건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을 감시하는 일이다. 마지막 야마모토 준이치는 45살로 오랫동안 지역기반을 이용하여 현 의원으로 재산과 명예를 얻었던 아버지의 후광으로 시의원이 되었으나 아버지 시대와 달라진 상황에 대처하며 제법 잘 해 나갔으나 마지막에 야쿠자와 연루된 이권사업으로 곤경에 빠진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몇 가지 일본사회의 문제점은 몇 선진국에서 겪고 있는 심각한 노령화로 사회 전체가 생기를 잃고 복지비의 증가로 앞날이 어두운 점이다. 여기에 더하여 유메노시는 그나마 가동되는 몇 개의 생산 공장을 위해 브라질 노동자들을 받아 들였으나 그 수가 점차 늘어나고 정착세대와 2, 3세들이 일본인들과 갈등을 빚어 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두 번째로는 금전만능과 문란한 성도덕 그리고 이에 수반된 이혼율 증가가 역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세 가지는 무엇이 먼저라고 할 수 없이 연계되었다. 금전이 우선시 되어 나이에 관계없이 여성들은 섹스를 통하여 쉽게 돈을 버는 소위 '원조교제'가 만연하고 남성들은 여성을 구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돈을 벌려고 하여 이런 상황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히 가정문제가 악화되어 이혼이 늘어나며 이혼으로 가정이 파탄 나고 다시 원조교제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수백 년 완만한 변화로 안정되었던 지역사회가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미처 대처하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정서불안과 고립감을 느껴 상호불신과 음울한 사회가 되어 범죄가 늘어간다. 나는 책 제목이 <꿈의 도시>이기 때문에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끝부분에서 이 피폐한 도시가 일대 반전을 일으켜 진정한 '꿈의 도시'가 되리라 기대하였으나 첫 번째 주인공 도모노리는 '원조교제'로 고른 세 번째 여성이 전처 '노리코'여서 또 다시 열패감을 느낀다. 여학생 '후미에'는 게임 세계에 빠져 후미에를 가상세계의 공주로 여기고 자동차로 납치한 23살의 정신분열자의 집에 감금된다. 보안센터 직원 '유야'는 가장 친한 직장 선배가 홧김에 사장을 살해하여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자신의 집에 찾아와 어쩔 줄 모른다. 매장 보안요원 '다에코'는 신흥종교와 연루되어 직장을 잃은 상태에 오빠가 홀대하는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시게 되어 돈에 쫒기다 어느 다른 매장에서 물건을 훔치다 들켜 갖은 수모를 당하다 여동생 나타나 겨우 곤경을 헤어 나온다. 시의원 '준이치'는 야쿠자 조폭과 연계되어 이권사업을 추진하다 그들이 저지른 살인사건 현장에 있게 되어 자신의 정치생명은 물거품이 되고 가정도 위기를 맞는 상황이 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어떤 불만을 지닌 사람이 고의로 일으킨 대형 트럭을 이용한 추돌 교통사고로 다섯 주인공 모두 부상을 입고 허둥대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여기 등장인물 다섯 중 여학생과 시의원 두 사람만 빼고 모두 이혼한 사람들이고 역시 여고생을 제외하고 네 명이 불순한 성관계를 맺는 부분이 나오며 시의원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살아가는 것으로 나온다. 소설가가 일본사회의 문제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쓴 가상의 이야기겠지만 아주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본 사회현상을 대부분 추종하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그러하다. 지명과 등장인물들을 조금 바꾼다면 우리나라 어느 소도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재라는 생각에 더욱 우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 한 가지 소설 내용과 관계없는 이야기이지만, 일본작가들이 쓴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작자들보다 영어로 된 명사를 더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플리스 재킷, 카디건, 마크리스트, 엔지니어 부츠, 블루종 칼라, 점프 재킷, 프리터 등으로 꽤 많다. 처음 보는 단어도 있어 사전을 뒤적여 몇 개는 그 의미를 알았으나 프리터와 마크리스트는 사전에 없는 것으로 보아 일본 사람들이 영어를 이용한 신조어인가 생각된다. 즉, freeter=free+ter로 일정한 직업이 없이 부모에 얹혀사는 사람으로 추측되고 마크 리스트는 mark+list=marklist로 생활보호 수급자 중 요주의 마크가 붙은 시청직원들끼리 쓰는 은어라고 나와 있다. 이 소설에서 좀 재미있는 표현의 문구가 눈에 띠어 옮겨본다.


 시청 남자직원들끼리 여직원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수수한 여성을 '섹시한 매력이 없는 것도 정신 사납지 않아서 좋다.'고 하였다. 여성들 입장에서는 결코 기분 좋은 말이 아닐 테지만 반대로 여성들끼리 수더분한 남자직원에 대하여 '그 남자는 섹시한 매력은 없지만 정신 사납지 않아서 좋은 사람이다.'라 하면 피장파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처가 이혼한 다음에 바람을 피웠던 남자에 대하여 '그 쪽이 더 속궁합이 잘 맞았어'라는 말을 했다는 말이 돌고 돌아 전 남편인 시청직원 도모노리의 귀에 들어왔을 때 처음 그 말을 듣고 '누런 흙탕물의 강에 처박힌 떠돌이 개 같은 기분이었다.'라는 문장도 재미있는 표현이었으나 도모노리의 처지를 생각하면 기분 좋을 수 없다.


 일본 지방도시의 사회상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으로 '대략 20세대에 한 세대가 생활 보호대상 가정인 셈이다. 지방의 이혼율이 높은 것은 젊은 남녀의 데이트 기회가 한정된 결혼 대상 안에서 무작정 결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로에게 별다른 호감을 품고 있지 않아서 너무도 쉽게 바람을 피운다.'라는 말이 나온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하다. 생활 보호대상자가 되려면 '이건 규칙이에요. 자가용이나 에어컨과 마찬가지로 법규상 휴대전화는 인정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우리보다 공공복지나 생활보호가 일찍 시행되고 폭도 넓은 일본에서 이런 기준을 세운 것은 일견 타당한 조치인 것 같다. 꿈의 도시를 꿈꾸고 읽은 소설이 결국 혼돈의 도시, 절망의 도시로 끝맺어 기분이 우울하지만 일본의 실상을 엿보고 우리의 앞날을 가늠케 하는 글 읽기가 된 것은 한 가지 수확이다. 원제목 <無理>를 우리 말 번역에서 <꿈의 도시>로 바꾼 건 아마 반어법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