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고...

깃또리 2018. 12. 12. 10:54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고...
김영하장편소설
문학동네
2015. 0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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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 작가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신세대 작가로 분류하였으나 1996년 제 1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은 시기로 기준으로 보아도 20년 가까운 문필생활을 하여 이젠 중견작가로 불러야 할 것 같다. 한 동안 나는 김영하의 소설에 매료되어 그의 소설 몇 권을 연이어 읽었었다. 이 소설은 바로 신인작가상을 받은 작품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조경란의 <식빵 굽는 시간>과 함께 신인작가 공동 수상작이다. 그러나 2회부터는 한 사람만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차례를 보면 1. 마라의 죽음 2. 유디트 3. 에비앙 4. 미미 5. 사르디팔의 죽음으로 다섯 개의 소제목으로 제목 자체도 조금 독특하다. 사실 나는 이런 내용의 책은 한 번 읽어서 쉽게 이해를 하지 못하여 다시 읽을까 말까를 고민한다. 주요 등장인물은 유디트라는 별명을 가진 '세연'이란 아가씨, 주인공의 형 'C', 동생 'K' '미미'라는 이름의 행위예술가 그리고 자살을 도와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이렇게 다섯이지만 소설 배경도 자주 바뀌고 각장의 화자도 바뀌기 때문에 140페이지 밖에 안 되는 비교적 짧은 장편이지만 소설 줄거리를 쓰기가 쉽지 않다.


 소설 시작부터 "고객과 일이 무사히 끝나면 나는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 돌아오면 고객과 있었던 일을 소재로 글을 쓰곤 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완전한 신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살인을 하는 길." 여기서 고객이고 의뢰인이라 불리는 사람은 자살 희망자이고 일이 끝난다는 것을 고객이 자살에 성공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살하려는 사람을 도와 편하고 쉽게 자살에 이르게 하며 이를 소재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유디트는 세연이란 여성으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에 나오는 유디트와 조금 닮았다 하여 별명으로 붙여졌으며 동생 'K'의 애인이었으나 나중에는 형 'C'의 애인이 된다. 세연은 성행위를 하는 동안에도 추파춥스를 씹는 기벽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자살 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세상을 하직한다. 그녀의 출생은 1975년 1월 21일이었다.


 프랑스 생수 이름인 '에비앙'을 소제목으로 한 내용도 엽기적이다. 자살 도우미가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며 만난 홍콩 여자에게 들은 이야기로 작가의 완전한 상상력인지 아니면 엇비슷한 사실을 약간 부풀려 쓴 것인지 궁금하다. 아무튼 그 홍콩 여자는 생수 특히 에비앙을 독약보다 더 싫어했으나 자신의 험하고 힘들었던 과거 이야기를 들어 준 자살 도우미와 호텔방에서 입을 맞추고 서로 앉은 채로 섹스를 한 다음 어둠 속에서 에비앙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홍콩 여자는 베니스로 떠나고 자살 도우미는 그리스로 제 갈 길을 간다. 이 부분에서 섹스는 마치 함께 하는 한 차례의 식사처럼 가볍고 산뜻하게 처리되었다.


 네 번째 '미미'는 동생 'K'와 형 'C'의 이야기이다. 동생은 총알택시 기사이고 형은 비디오 아티스트이며 '미미'라는 여자는 콧대 높은 전위행위 예술가이다. 미미는 비디오 카메라에 자신이 담겨지는 걸 싫어했지만 "C"에게만 이를 허락한다. "C"가 미미에게 왜 자신에게 비디오 찍는 걸 허락했느냐고 물었는데 ‘미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길거리에서 만난 어느 남자가 클림트를 좋아하느냐고 물었으며 그와 함께 이틀을 보내고 자살을 하려 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돌리자 그 남자는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이제 세상에 다시 태어났으니 평생 하지 않았던 일을 해보라고 하며 "C"와 비디오 작업을 해 보라고 권했다 한다.


 마지막 장 <사르다나팔의 죽음>은 자살 도우미와 ‘미미’의 이야기이다. 예술가로써 15년을 살아왔으나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였으며 "C"에게도 구원을 기대 할 수 없음을 알고 ‘미미’는 결국 여행을 떠나는 자살 도우미에게 '나는 이만 가 볼게요.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붉은 피가 빠르게 퍼져나가는 욕조에서 서서히 눈을 감는다. 이 부분에서 "미미는 멋지게 떠났다. 유디트는 편안하게 갔다. "지금 이 순간 절실하게 그녀들이 그립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글도 완성되었고 이제 이 글은 그들의 무덤 위에 놓일 아름다운 조화가 될 것이다." 라는 문장이 나온다. 섹스와 자살은 보통사람들이 손쉽게 다룰 수 없는 주제이지만 작가들에게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소재이다. 그렇다고 작가라 하여 아무나 쓴다고 작품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이 소설에서 서양의 유명한 그림 세 작품이 등장한다. 먼저 1793년 다비드(1748~1825)가 그린 유화 <마라의 죽음, La Mort de Marat>은 책 표지에도 나오며 프랑스 혁명기의 실존 인물인 자코뱅당의 <장 폴 마라>의 피살을 묘사한 그림이다. 마라를 죽인 사람은 반대파였던 지롱드당의 열성 처녀 당원인 샬롯 코데이라 하며 자택에서 목욕 중인 마라의 가슴에 칼을 꽂았으며 그녀는 곧 붙잡혀 25살의 꽃다운 나이에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마라의 죽음 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시작되었으며 화가 다비드는 자코뱅의 미학을 알고 이 그림을 그렸다 한다.


 두 번째 그림은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유디트, Judith>로 클림트의 또 다른 유명한 그림 <키스>보다는 덜 인기가 있지만 이 그림 역시 속표지에 실렸으며 나도 예전에 서울의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본 기억이 난다. 원래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로 적장인 앗시리라 대장 홀로페르테스를 섹스로 유혹하여 목을 베어 죽인 여인이며 유대 민족은 자신들의 조국을 구한 성녀로 여기고 있으나 서양에서는 성적 매력을 이용하여 남자를 파멸시킨 팜 파탈(요부)의 화신으로 묘사하여 화가들의 그림에 자주 나온다.


 마지막 그림 <사르다나팔의 죽음, The Death of Sardanapalus>이란 그림은 제목조차 생소하다. 들라크루아(1798~1863)가 그렸다하며 성도의 함락을 눈앞에 둔 바빌로니아 왕 사르다나팔이 무사들에게 명령하여 자신의 왕비와 애첩들을 모두 살해하였다는 전설을 내용으로 하였다 한다. 그림에서 왕은 죽음의 광경을 괴로움 없이 관조하는 모습이며 만일 3류 화가라면 왕이 머리를 감싸고 비통해하였겠지만 거장인 들라크루아는 죽음을 주저하는 자의 내면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작가 김영하는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고 있다. 평범한 내용의 소설보다 이런 소설을 읽게 되면 다른 세상을 여행하고 돌아 온 느낌을 받기도 한다. 아무튼 좋은 소설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