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자전거 여행>을 읽고...

깃또리 2018. 12. 10. 10:18

<자전거 여행>을 읽고...
글 김훈/ 사진 이강빈
생각하는 나무
2015. 01.10.


 <자전거 여행2>의 출판연도는 2004년이고 <자전거 여행>은 2000년이다. 나는 <자전거 여행2>를 2007년에 읽고 무척 감탄한 적이 있다. 꽤 오래되었음에도 특히 기억에 남는 대목은 전북 부안의 내소사 절 앞에 있는 해우소 안에서 작가가 볼일을 보면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자신의 느낌을 쓴 부분은 혼자 읽기가 아까웠다. 그래서 아침 출근하자마자 주변 젊은 사무실 동료들에게 이 부분을 읽어 주면서 화장실 안에서 보고 얻은 생각을 쓴 문장으로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재미있는 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기억으로는 임진강 상류 북한지역에서 홍수로 떠내려 온 북한여성의 브래지어가 전시장 유리 상자에 있는 걸 보고 쓴 글도 기억에 남는다. 2권이 있으면 1권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도서관 서가에서 <자전거 여행>을 발견하고 손에 들었다. 책 제목이 <자전거 여행 1>이 아닌 걸 보니 원래 한권을 펴냈으나 워낙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두 번째 책을 펴다보니 그렇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책에 실린 글도 김훈씨가 500만원을 주고 산 '풍륜,風輪'이란 명명한 자전거를 타고 사진작가 이강빈과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자신의 느낌을 덧붙여 쓴 여행기록이다. 책머리에서 작가는 이 책을 쓰고 풍륜이 낡아 퇴역시키고 새 자전거를 장만했다며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거라"라고 책머리에서 익살을 부렸다. 어느 글에서 책이 생각보다 잘 팔려 1000만 원 이상을 주고 산 자전거 월부 값을 치르는데 아무 걱정이 없었다 한다. 마침 이글을 쓰는 오늘 2015년 1월 10일 조선일보에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 절판되었으나 독자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출판사를 바꿔 재 발행하였다는 기사가 나왔다.


 15년이 다 된 오래 된 책이라서 이곳저곳에서 이미 내가 읽은 내용도 있거니와 아무래도 <자전거 여행 2>에서 받았던 강한 인상으로 이 책은 예전 감흥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그러나 재미있게 읽고 여운이 남는 몇 부분을 골라본다. 2015년 새 봄도 이제 머지않았다. "겨울이 깊어지면 봄은 가까이 와 있다."라고 누군가가 노래하였다. 내가 사는 아파트 현관 앞 산수유가 오늘 올려다보니 작년에 맺었던 열매를 매달고 있으면서 가지 마디마디가 봉긋하여 벌써 봄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책의 첫 번째 글인 <꽃 피는 해안선, 여수 돌산도 향일암>편에 마치 요즘 계절에 알맞은 글이 실렸다. 돌산도 어느 가정집 앞마당에 매화가 꽃을 피운 것을 시작으로 그 꽃이 질 때는 꽃 잎 한 개 한 개가 바람에 흩날려 산화한다고 하였으며 배꽃, 복사꽃, 벚꽃이 모두 다 그러하다고 하며 이를 '풍장,風葬'이라 하였다. 원래 풍장이란 일부 시골지역에서 죽은 사람을 땅에 바로 묻지 않고 일정기간 움막 같은 곳에 넣어 두어 육탈한 다음 뼈만 추려 매장하는 장례방식을 말하는데 이는 바람이 육신을 거두어 간다는 의미로 풍장이라 했던 것이며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사라지는 것을 이에 빗대어 풍장이라 했으니 멋있는 비유라고 생각한다.


 산수유는 꽃송이가 보이지 않고 어느새 피었는가 하면 언제 지는지 눈치 채지 않게 지기 때문에 김훈씨는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라는 표현을 썼다. 섬세한 관찰이고 절묘한 표현이다. '산수유가 사라지면 목련이 피고, 목련의 등불 켜듯이 피어난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목련은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절정이고 자의식이 가득 차 있다고 하였으며 꽃이 질 때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고 하였다. "향일암 앞 바다 동백꽃은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봄 빛 부서지는 먼 바다를 바라보며, 바닷가에 핀 매화 꽃 잎은 바람에 날려서 눈처럼 바다로 떨어져 내린다."고 하였다. 보지 않아도 작가의 글을 읽으면 눈앞에 바다 위로 흩날리는 매화 꽃 잎 모습들이 머릿속에 그려져 마음 같아선 달려 내려 가보고 싶다.


 사실 나는 이맘 때 새봄을 맞을 때마다 똑 같이 느끼는 생각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삭막하고 죽은듯하던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경이롭고 황홀하여 주변사람을 붙잡고 이 찬란한 봄이 우리들에게 몇 번이나 남았을까 물어 보기도 한다. 아마 올 해도 어김없이 화사한 봄은 기어이 올 것이고 그리고 새 봄이 오면 내 삶에서 남은 봄 하나가 줄어드는 슬픔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봄은 환희의 계절이면서 동시에 슬픔의 계절이 된다. 그렇다고 슬퍼만 할 수야 없지 않은가 삶은 신비이므로...   내가 생각하는 봄꽃이 피는 순서는 사실 이러하다. 매화는 도회지에서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에 산수유, 개나리가 제일 먼저 피고, 목련이 피었다 질 때쯤엔 벚꽃이 만개한다. 벚꽃이 만개할 때 쯤 라일락이 온 천지를 향기로 휘감아 나는 저녁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어둑한 퇴근 무렵 라일락 꽃 나무는 보이지 않지만 온 아파트 경내를 감싸고 있는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집에 올라오는 일을 좋아한다. 이런 때엔 출출한 시장기조차 잠시 잊고 라일락 꽃나무에 다가가 서 있기도 한다. 이 라일락 향기가 가실 때 쯤 도시의 이곳저곳 담장에 넝쿨장미가 꽃망울을 터트리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 시작하면 봄은 이내 끝나가고 여름이 한 발을 들여 놓은 시기가 된다.
 
 넝쿨장미를 생각하다 보니 요즘 우리말의 확장을 위해 복수의 표준어 인정이 늘어가는 추세가 머리에 떠오른다. 넝쿨장미와 덩굴장미는 모두 표준어이다. 그러나 덩쿨장미는 비표준이다. 옥수수/강냉이, 어저께/어제, 도미/돔, 땅콩/호콩, 나귀/ 당나귀, 멍게/우렁쉥이 등 꽤 많은 복수 표준어가 있다.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안면도> 김훈씨의 숲에 대한 찬가이다. "'숲'을 발음하면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라는 말과 함께 자음과 모음 받침 하나하나를 떼어내 자신의 견해를 밝혔으며 글자 모양도 "'숲' 속에 온 것 같다."라 하였다. 그러고 보니 "숲'이란 글자는 숲과 같은 형상이기도 하다. 저자는 소나무 숲, 전나무 숲, 잣나무 숲, 단풍나무 숲, 자작나무 숲 그리고 안면도의 승언리, 방포 해수욕장 가는 길의 모감주나무 숲에 대하여 길게 이야기 하였다.  특히 안면도 소나무는 '안면송'이란 고유명사가 있을 정도라 하였다. 나는 같은 소나무라 해도 금강산 일대에 서식하는 '금강송' 경북 봉화 춘양에서 자라는 '춘양목, 춘양송'은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으나 안면송은 처음 들었다. 같은 소나무 군락이라도 특색이 있으면 별도의 고유명사로 호칭하는 것 같다.


 <무기의 땅, 악기의 바다. 경주 감포> 경주의 감포에 있는 감은사지 삼층석탑 사진과 함께 감포 앞 바다의 문무대왕 수중 능과 함께 이 부근의 역사적 사실들을 나열하고 있다. 감은사지에 관련하여 생각나는 일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영남대학교 재직시절 펴내 전국답사여행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등 지금까지도 꾸준히 독자를 모으고 있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 나와서 일약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며 내 기억으로 유홍준씨는 이곳에 대하여 쓸 수 있는 글로 "아 감은사여! 감은사!" 밖에 더 할 말이 없다고 그 책에 썼다. 나도 또한 이 책을 통하여 깊은 인상을 받아 근처 출장길에 들린 일이 있었다. 그러나 마침 그 기간에 석탑주변 정비작업을 하고 있어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리서만 바라보고 아쉽게 돌아 온 일이 있다.


 <땅에 묻히는 일에 대하여, 여수의 무덤들>편에서 김훈은 가끔 죽는 꿈을 꾼다고 하였다. 여기에 이런 글이 나온다. "취한 벗들은 병풍 너머에서 마구 떠들었다. 내가 살아있을 때 저지른 여러 악행이며, 주책이며, 치정을 그들은 아름답게 윤색해서 안주거리로 삼고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죽은 친구의 상가에 조문을 온 친구들이 죽은 친구의 악행이든 치정이든 떠들어대기라도 한다면 그 죽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라 생각한다. 이젠 세상이 삭막해지고 돌출을 곱게 보지 않는 세태라서 예전처럼 상가에서 고인의 행적을 이야기하는 분위기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운 것들 쪽으로, 선암사>라는 소제목 아래 '사랑이여, 쓸쓸한 세월이여, 내세에는 선암사 화장실에서 만나자!"라는 글이 먼저 나온다. 사진 두 쪽과 함께 글 쪽이 모두 선암사 화장실에 대한 찬사이고 똥을 누는 일에 대한 경건한 글이다. 앞에서 말한 <자전거 여행2>에 나오는 부안 내소사 해우소 명상의 전편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며 배설에 대하여 쓴 가히 명문 중의 명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시간이 허락하면 이 부분만이라고 읽어볼 것을 권한다.

 후기를 쓰려고 다시 이 책의 이곳저곳 페이지를 열어보다 보니 어느 부분도 그냥 넘길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후일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조선일보 3월 28일자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전봉관의 인문학 서재라는 칼럼에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은 이야기를 썼다. 전봉관교수는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러운 꼴을 보이지 않는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 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산수유,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좋은 문장들이다.


 그리고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라는 문장들을 마음데 드는 문장으로 인용하였다. 나도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절묘한 표현들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