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2005. 황순원문학상 수상 작품집 제5회>

깃또리 2018. 12. 11. 09:55

<2005. 황순원문학상 수상 작품집 제5회>
김훈의 <언니의 폐경>외
중앙일보
2015.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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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문학상은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다음으로 황순원문학상 정도이다. 김훈씨는 46살이란 늦은 나이에 <빛살 무늬 토기의 추억>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2001년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 2004년 <화장>으로 이상문학상 그리고 2005년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하여 그야말로 혜성같이 나타나 짧은 기간에 우리나라 문학상을 휩쓸었다. 2007년에는 <남한산성>으로 대산문학상까지 수상하여 명실공이 국내문학상을 모두 받은 셈이다. 나는 그동안 김훈씨의 독특한 문체에 이끌려 에세이든 소설이든 김훈의 책은 손에 닿는 데로 읽었으며 시간이 흐르다 보니 몇 권만 더 읽으면 김훈씨의 책을 다 읽게 되는듯하다. 그러나 초기에 읽은 몇 권은 독서후기를 써 놓지 않아 기왕이면 내 독서후기 목록을 채우려고 단편 몇은 다시 읽고 이글을 쓰고 있다. 사람은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욕심을 부리는 게 되지만 독서후기 정리하는 일에 욕심을 부리는 일은 그리 비난 받을 일이 아닐 터이니 마저 해보려 한다.


 2005년 황순원문학상에서 김훈의 <언니의 폐경>이 수상작이고 최종후보작이 9편 뽑혔는데 말 그대로 국내 문단의 중추를 이룬다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이다. 대부분 이상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이미 받았거나 이후에 받은 작가들이다. 내 기억으로 김연수, 박민규, 윤대녕, 은희경, 임철우는 이상문학상을 이미 받은 작가들이고 구효서, 성석재, 박성원씨도 현재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중견작가들이다. 먼저 나는 김훈의 <언니의 폐경>을 읽고 느낀 점으로 아무리 글 쓰는 일이 직업이라고 해도 남자가 여자의 내면과 신체현상을 이렇게 사실적이고 치밀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물론 스스로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여자들을 상대로 조사, 관찰을 했을 수도 있으며 책을 통하여 여성의 심리나 신체 구조를 알 수 있겠지만 아무튼 타고난 글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일인칭 주인공인 '나'는 50살로 남편은 어느 큰 회사의 전무자리에 오른 능력 있는 사람이지만 서로 사랑이 깊지 못하여 일정기간 별거 후에 이혼에 이른다. 이 여성은 이혼을 숙명처럼 받아들여 지극히 조용히 말썽 없이 받아들인다. 요즘 세태에서는 조금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이다. 재산분할도 7:3이라는 숫자가 조금 그렇다. 대부분 반반이 대세이며 이혼절차도 꽤 복잡하고 시끄럽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나 이 소설에서는 하나 있는 미국 유학하고 있는 딸 학비 조차도 각각 7:3으로 분할한 재산 중에서 다시 7:3으로 공동 부담하는 조건이니 조금 어이없다. 일산 맞은편 한강 남쪽에 살고 있는 다섯 살 위의 주인공 언니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2002년 130여명의 사상자를 낸 김해공항 근처 돗대산 여객기 추락사고를 배경으로 삼은 듯하다.


 동생처럼 성격이 온순하고 순종적이어서 남편과 함께 이룬 재산과 사고유족 보상금 등 20여 억 되는 돈을 시집식구들과 제 잇속만 챙기는 장가간 아들에게 대부분 빼앗기고 쓸쓸히 혼자 살아가며 한강 건너 역시 홀로 된 동생과 동병상련의 감정으로 자주 만난다. 언니는 남편이 사고를 당한 이후부터 폐경이 시작되었으며 특히 정신적 충격이 심하면 아래로 피를 쏟아 나들이 할 때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언니의 폐경기 심리상태와 신체변화를 자세히 묘사하였으며 여동생의 경우는 결혼 직후 입덧증세에 대하여 역시 치밀하게 묘사하여 나는 이 부분을 읽는 동안 이 글은 어느 여성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기초하여 자세히 회상하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의 시간 설정은 2002년 여객기 추락사고 2년 후인 2004년으로 하였으며 두 자매가 한 사람은 남편을 불시에 잃었고 또 한 사람은 큰 잘못도 없으면서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두 사람 모두 험한 세상에 홀로 남는 상황이다. 그러나 두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삶을 이어간다. 언니는 동생이 사는 아파트 베란다 창문으로 강화도 쪽에서 이륙하여 창공에서 사라지는 항공기들을 바라보면서 동생에게 똑 같은 말을 여러 번 한다. "얘, 저 안에 정말로 사람들이 타고 있는 거야?" 아마 남편이 항공기 추락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비행기가 노을 속으로 사라지면 더욱 삶이 허망하게 느껴지고 비행기의 실체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동생은 언니가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때 이렇게 생각한다. '베란다 창밖의 하늘은 언니의 말처럼 물고기들이 날아다니는 수족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는데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평택에서도 가끔 오후에 해는 졌으나 하늘 높은 곳은 아직 햇살이 비쳐서 항공기들의 모습이 마치 은빛 물고기처럼 소리 없이 헤엄치는 듯 보였던 일이다. 한편 동생은 남편이 별거를 요구하고 난 다음 딸이 필요하다는 서류를 준비하는 일로 몇 번 만나게 된 남편회사의 인사부장과 가까워진다. 원래 남편과 입사동기였으나 진급에서 밀려 이제는 남편의 부하인 인사부장 김순일로 직장에서는 권고사직 대상이 된 낙오자이고 가정적으로는 부인과 사별한 사림이다. 그래서 이 남자도 남편과 이혼직전의 쓸쓸한 직장 윗사람의 부인과 쉽게 마음과 몸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지금까지 읽은 김훈씨의 작품 중에서 언어나 문장 표현은 김훈씨 다운 글이지만 글이 전달하는 감동은 그리 크지 않았다. 내 견해로는 한 마디로 세태를 반영하는 지극히 통속소설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최종 후보작 중 하나인 박민규의 <그렇습니다. 기린입니다>는 가난한 알바학생과 능력이 부족한 그의 아버지 이야기이다. 아버지를 기린으로 묘사한 내용이 퍽 재미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천지간>과 <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를 쓴 윤대녕의 <탱자>도 후보작으로 실렸다. 고등학교 여학생이 절름발이 국어교사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하였으나 얼마 후 헤어지고 돌아와 집안의 천덕꾸러기로 지내다 기차역 하급역무원에게 시집가 고생하다가 남편이 일찍 죽는다. 아들 하나를 키우며 열심히 돈을 벌어 아들을 미국에 보내고 자신을 인간 대접해주었던 주인공인 조카를 찾아 제주에서 한 달을 지내고 돌아간다. 아직도 절름발이 선생을 못 잊어 제주도에 오기 전 이제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로 살고 있는 그 선생을 만나 본 다음 그와 추억이 담긴 탱자를 한 됫박 가지고 제주도까지 왔다가 서울로 돌아갔었다. 그러나 얼마 후 주인공 조카는 고모가 서울로 돌아 간 바로 다음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게 된다. 즉 고모는 친척들과 절름발이 선생 그리고 자신의 아들로부터도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평생을 살다 자신이 폐암으로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고모로 대접해주었던 조카를 만나 본 후 세상을 하직한 셈이다.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은희경 작가의 단편이다. 마침 이 작가는 내가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녀 정신적 고향이나 다름없는 전북 고창 출신이라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소년을 위로해줘>라는 책을 구입하여 작가를 만나 사인을 받기도 하였다. 몇 몇 작품을 읽었으나 마음에 드는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었다. 젊은 시절 출판회사 신입사원을 시작으로 이제 어엿한 출판사 사장이 된 주인공 그리고 같이 회사를 세웠던 후배, 동료 J, K, M에 대한 이야기이다. 구 쏘련의 우주인, 러시아로 코스모나츠들 그 중에서도 인류최초로 유인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났다가 귀환한 당시 27세의 유리 가가린 중위의 이야기를 중간 중간 끼워 넣었다. 그가 타고 간 우주선은 보스토크 러시아어로 '동쪽'이라는 말이며 1961년 4월 21일 그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지구는 푸른 별이다"라 했다. 주인공은 1992년 어느 날 컴퓨터에서 짧은 메일을 받는다. "우리 약속 잊지 않았죠?"라는 제목에 발신자는 '은숙' 내용은 짧은 단 세줄, 오늘이 약속한 날이예요. 리버 쎄느에서 8시에 기다립니다. 은숙. 이다.


 주인공 출판사 사장은 자신의 머릿속을 뒤져 리버 쎄느를 찾아내려고 애쓰지만 번번이 맞지 않는다. 심지어 인터넷 검색을 해도 실마리가 잡히지 않다가 15년 전 거슬러 옛일을 생각해낸다. 뒷부분은 다시 읽어 보아도 '은숙'이라는 여자와 주인공의 관계를 알 수 없다. 조금 난해한 소설이다. 남자인 김훈씨는 마치 자신이 여자인 것처럼 <언니의 폐경>을 썼고 여자인 은희경씨는 마치 자신이 남자인 것처럼 출판사 사장을 주인공으로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을 썼다. 작가들은 아무튼 대단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