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2004년 이상문학상 <화장>을 읽고...

깃또리 2018. 12. 6. 13:32

2004년 이상문학상 <화장>을 읽고...
김훈외
문학사상사
2015. 0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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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작가의 작품을 다 읽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작품을 쓰지 않고 세상을 떠났거나 일찍 절필한 사람의 경우는 예외이며 예를 들면<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 bird>를 쓴 미국작가 하퍼 리(Harper Lee 1926~ )가 대표적이다. 하퍼 리의 사망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지금 나이가 90세 쯤 되었으나  아직 생존한 것 같다. 34세에 이 작품을 써서 퓰리처상을 받고 미국대통령 메달 수상의 영예를 얻었으며 미국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는 작품이라지만 이유를 밝히지 않고 단지 이 작품만 쓰고 더 쓴 작품이 없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느냐면 그간 나는 다른 사람의 글에서 어느 작가의 전작을 완독했다는 글을 읽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면 부럽고 시샘이 나면서 나는 언제 어느 작가의 전작을 완독할 수 있을까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김훈씨의 작품을 대부분 다 읽고 서너 권만 더 읽으면 전작 완독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나는 김훈씨의 문체를 퍽 좋아한다. 조금 과장한다면 '우리 모국어의 마술사'라는 말에 기꺼이 찬동하기도 한다. 물론 가끔은 공허하고 기교가 넘치는 면이 있기도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의례 사소한 일부터 일어나기도 한다. 김훈씨가 늦은 나이에 작품 활동을 하여 나이에 비하여 작품 수가 적은 것도 내가 전작 완독에 욕심을 부릴 수 있었다. 이리하여 며칠 전 도서관에서 <자전거 여행 1. 2.>, <밥벌이의 지겨움> 그리고 <화장>이 수록된 2004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모두 4권을 빌려왔다. 사실 10년 전에 이미 <화장>은 읽었고 <자전거 여행 >도 그 어름쯤에 읽었으나 웬일인지 후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예 쓰지 않았는지 아니면 지워졌는지 모르겠다. 같은 글을 두세 번 읽는다 하여 해가 될 일도 아니고 후기를 쓰는 일에 욕심을 부리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닐 것 같아 다시 읽어보고 쓰기로 하였다.


 단편인 <화장>의 소설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50대 중반으로 어느 화장품제조회사 중역인 오 상무가 주인공인 1인칭 소설이다. 첫 문장이 "운명하셨습니다."로 시작하여 이 소설이 음울하고 무거운 소재라는 것을 일찍부터 암시한다. 이상문학상 수상자를 고른 일곱 명의 심사위원 심사평 중에서 여성인 서영은은 '한국문학사에서 유례없는 비정하고 잔혹한 소설'이라 하였으며 아울러 '잔혹함과 소설 미학적 탁월성은 우리이 문학사에서 초유라고 할만하다. 이 작품은 신기루와 아비규환을 하나의 얼굴로 가진 삶이라는 저 오묘한 수수께끼를 여지없이 명징하게 파헤친 명작이다.'라고 평하였다. 잡지기자로 남편 학비를 마련하는 등 젊어서 고생을 하였으나 이제 살만하고 딸이 약혼하여 결혼을 앞두고 있던 주인공의 아내가 뇌종양으로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입, 퇴원을 번갈아 하다 결국 나무젓가락처럼 피골이 상접하여 세상을 떠나 화장을 한다.   아내는 죽음 직전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집에 두고 온 진돗개 '보리'에게 밥을 주라고 헛소리를 한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가 죽자 아내 없이 '보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수의사에게 부탁하여 안락사 시킨다. 아내의 뇌종양으로 사망, 키우던 개의 안락사 시키는 일등이 연이어 나와 처연하지만 어쩌면 이제 이런 일들이 사실 특별한 글감은 아니다. 수학여행 떠난 아들딸들이 여객선 침몰로 꿈도 피워 보지도 못하고 밤바다에 수장되고 일부는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비극과 수백 명을 태운 여객기가 실종되기도 하고 또 다른 여객기는 생사도 모른 채 바다 깊은 곳으로 사라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한 여인과 개의 죽음을 너무 참혹하게 그려 이런 종류의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읽기를 권하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김훈씨가 신문사의 사건기자로 이런저런 험한 사건사고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취재했던 경험들이 이런 냉혹한 소설을 쓸 수 있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였다. 첫째는 매양 김훈의 소설이 그렇기도 하지만 철저한 사실성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는 점과 이는 기자생활에서 터득한 필법이라고 보며, 둘째로는 죽음은 필연이고 죽음은 지극히 공평하며 죽음은 삶에 끊임없이 자극을 주어 비로소 삶을 완성시키는 그래서 삶의 또 다른 동의어라는 생각을 하였다. 소설을 읽고 나면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앞서 남아 있는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죽음은 예고가 없고 불시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죽음을 예비하고 나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크게 두개의 얼개로 구성되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아내의 뇌종양과 사투를 바라보는 주인공과 또 하나는 주인공이 50을 넘겼을 때 입사했던 기획실 여직원 '추은주'에 기울어졌던 연모의 감정이다.    아내 상중에 추은주는 5년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외무공무원인 남편을 따라 워싱턴으로 가는 결말이며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 5년 동안에 주인공과 추은주 사이에는 별다른 정서적, 육체적 교감은 없었다. 단지 주인공 오상무는 조금씩 조금씩 깊어지는 추은주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홀로 감당한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추은주는 다른 여직원들과 함께 문상하러 와서 절하고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너무 일찍 가시는군요. 저희 어머니하고 동갑인데......"라는 의례적인 말을 하고 주인공은 "뭐, 병원에서 해볼 만큼 다 해봤으니까......"라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말로 대응하는 것이 끝이었다. 오상무가 초상을 치르고 아직 출근하지도 않은 기간에 추은주는 사표를 내고 오상무에게 인사도 없이 회사를 떠나기도 하여 더욱 인간관계의 삭막함을 더해 준다.


 이 단편소설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문장으로 주인공 아내가 두 번째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병실로 실려 왔을 때, "나는 아내가 이제 그만 죽기를 바랐다. 그것만이 나의 사랑이며 성실성일 것이다. 아내는 삭정이처럼 드러난 뼈대로 다만 숨을 쉬고 있었다."라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이 죽음에 관한 글이라면, 남몰래 애모하는 추은주에게 바치는 헌사로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이다. 김훈의 소설을 읽다 보면 어딘지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월적이며 소위 마초기질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크레다 출신 소설가 카잔차키스를 김훈과 겹쳐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나는 김훈씨가 나보다 몇 살 정도 위이고, 서울 어느 대학교를 다니다 그만 두었으며 신문기자로 일하다 50살이 넘어 전문작가로 나섰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 뒤의 <수상소감>과 <자전 에세이>를 읽고 김훈씨는 부산에서 피난시절 유년기를 보내고 서울에서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정치외교과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때 영국의 낭만주의에 심취하여 다시 영어영문과에 들어갔으나 바로 군대에 갔다고 한다. 제대 후 복학을 하려 했으나 마침 여동생이 같은 학교 같은 과인 영문학과에 입학하여 "너는 학교를 다녀야 인간이 된다."는 말을 동생에게 해주고 집안 형편도 어려워 한국일보신문사에 기자로 입사하였다 한다. 아마도 자신은 남자이기 때문에 대학을 중퇴하여도 힘은 들겠지만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여자인 동생은 학교를 다녀서 험한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다고 스스로 마음 정했던 것 같다. 아무튼 속 깊은 오빠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자신은 세상 어디에서 누구와 맞설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한다. 이런 투지와 자존감이 작품 몇을 썼으나 우리나라 양대 문학상이랄 수 있는 동인문학상과 이상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하였으며 펴내는 책마다 독자들을 끌어 모으는 저력이 아닌가 한다. 한 가지 궁금한 일로 그의 여동생은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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