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철수>를 읽고....

깃또리 2018. 12. 3. 09:46

<철수>를 읽고....
배수아
작가정신
2016. 08. 10.


지금까지 배수아의 소설 몇 편을 읽고 느낀 점은 대부분 표현이 과격하고 도전적이며 문체가 독특하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정한 직업이 없이 닥치는 대로 이런저런 일을 하는 대략 24세 여자 주인공의 이런저런 일상을 소제로 삼았다. 책 제목 '철수'는 주인공 이름이 아니고 주인공보다 세 살 나이가 많은 남자 친구 이름이다. 군대 휴가를 나온 철수의 성급하게 요구하는 섹스에 응하는 부분이 퍽 사실적이고 자연스럽다. 이 대목에서 철수는 이 섹스를 통하여 어떤 깊은 유대감과 의무감을 느끼지만 주인공 여성은 이 섹스의 영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철수의 부모 문제로  두 사람 사이에는 틈이 깊어지지만 그러나 철수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벽을 쌓고 있다. 나는 아무렇거나 기분대로 이 세상을 사는 인종들이 언제나 싫었어. 나, 너에게 의무감을 가지려고 했다." 그러나 여자의 대답은 이렇다. "너의 변소가 너의 닭을 먹었으니 이제 너는 의무를 다했어."라 하며 철수를 떠난다. 왜 여기서 닭과 변소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면, 철수의 어머니가 면회를 가는 여자에게 닭은 떠맡기듯 주었으며 철수가 닭을 같이 먹자고 하였으나 여자는 조금도 먹지 않고 변소에 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여러 생각을 하였다. 남녀의 육체관계에서 50년, 60년대와 많은 변화, 아니 정반대의 현상으로 바뀌었음을, 즉 그 당시에는 많은 남자들은 자신의 욕구 충족을 우선하고 의무감이나 유대의식은 약하였다. 반면 여자들은 육체관계를 중요시하고 한 두 번의 관계도 평생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로 여겼다. 그래서 남자가 돌아서면 목숨을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여 젊은 여성의 죽음 대부분은 남자들의 변심이 크게 작용하였었다. 그러나 지금 젊은 세대에서는 오히려 남자들이 상처받고 버림 받았다는 생각이 강하며 젊은 여성들은 처녀성 자체를 하등 문제 삼지 않을 뿐더러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기기까지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성은 처녀성 자체가 물리적인 대상이라 생각 하는 듯하다.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엄청난 반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에서 철수는 여자와 육체관계를 허겁지겁 치렀다고 해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앞날의 설계를 하였으나 여자 주인공은 남자 친구 부모의 위선적인 생활 태도와 천박성 때문에 철수와 헤어지기를 결심하면서 그간의 철수와 관계는 아무런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여자 주인공의 결정을 수용하고 지지 할 수도 있으나 철수의 부모와 달리 철수가 크게 잘못이 없음에도 결별하는 여자 주인공의 태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한다. 또 하나는 예전과 달리 요즘의 소설은 소위 Happy Ending보다 모호한 결말로 이끌어 독자들의 상상과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소설 작법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고 오히려 가정적 부족함을 지닌 사람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욱 인애하고 지혜를 발휘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의 결정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