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저지대, The Lowland>를 읽고...

깃또리 2018. 11. 15. 09:55

<저지대, The Lowland>를 읽고...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마음산책
2017. 0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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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2003년 <이름 뒤에 숨은 사랑, Namesake>를 발표하고  10년 후인 2013년 장편소설 <저지대, The Lowland>를 두 번째로 발표하였다. 소설 본문만 538페이지로 제법 두꺼운 책이지만 쉽게 쓰여 졌고 재미있어 지난 주말 이틀 동안 읽을 수 있었다. 일부러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으나 수년 전 호세이니가 쓴 아프카니스탄 배경의 소설 두 권을 읽었고 이 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파키스탄의 말라라가 쓴 자전적 이야기 <나는 말랄라, I am Malara>를 작년에 읽었으며 이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아래에 있는 나라인 인도 캘카다가 배경인 이 책 <저지대>를 읽어 같은 지역에 있는 이 세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읽은 셈이다. 또한 이 세 사람이 쓴 책들이 각자 자신의 나라 현대사를 자주 언급하여 이 지역의 현대사와 사회상을 알게 되는 계기기 되기도 하였다. 소설은 예술성, 사회성, 오락성을 두루 지닐 때 독자의 사랑을 받지만 역사적 지식을 비롯한 교육성도 무시 할 수 없는 요소라 생각한다. 두꺼운 분량의 소설을 간단히 간추리는 일은 쉽지 않고 앞으로 소설을 읽으려는 사람에게 길게 소개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후일 다시 읽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대강의 줄거리를 적어 두어 흔적을 남겨 볼까 한다.


 형 수바시는 1943년생이고 동생 우다얀은 1945년 생으로 두 살 터울이다. 형은 차분하고 침착하며 동생은 활달하고 모든 일에 열정적이고 감성적인 점은 나라와 시대를 떠나 어느 곳이나 비슷한 것 같다. 두 형제가 사는 집은 인도 캘커타 시의 톨리건지 지역으로 부자 동네는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빈민촌도 아니지만 아버지의 수입이 충분치 않아 어머니가 바느질 일로 두 아들 학비를 보태기도 하는 수준이다. 두 형제는 모두 고등학교 성적이 우수하여 형 수바시는 인도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인 자다푸르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하였으며 2년 후 동생 두다얀은 프레지던시대학교 물리학과에 합격하여 부모님은 동네 사람들에게 잔치를 열기도 하였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 60, 70년대와 비슷하다. 이 형제의 집은 약간 올라간 언덕에 있으며 조금 떨어진 앞에는 저지대가 펼쳐져 우기에는 물이 차고 건기에는 바닥이 갈라지는 황량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저지대의 풍경이 인도, 켈커타 그리고 동생 우다얀의 비극적 운명을 예고하고 더 나아가 수바시에게 드리운 우울을 상징하기도 한다.


 형 수바시는 졸업 후 미국 로드 아일랜드로 이주하였다. 우다얀은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심취하여 지하운동을 하면서 친구 마나시의 여동생 가우리를 아내로 맞으려 했으나 부모의 반대에 부딪친다. 그러나 우다얀은 가우리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다 1971년 그의 나이 26살 때 급습한 군인들의 총에 맞아 숨어 있던 저지대에서 죽는다. 이 때 가우리는 임신한 상태였으나 우다얀은 이를 모르고 죽었다.  동생의 피살 소식을 듣고 고향을 찾은 수바시는 혼자 남은 동생의 아내 가우리와 태중의 조카를 보살피기 위해서는 가우리를 자신의 아내로 맞기로 결심하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에 데려왔다. 잠시 이 부분에서 결혼한 형이 조카와 형수를 남기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삼는 '형사취사혼, 兄死娶嫂婚'이라는 관습이 있으며 인류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고대 여러 지역과 최근까지도 남태평양의 일부 부족사회에서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특히 전쟁이나 기근으로 집안의 형이 죽었을 때 남보다 가장 가까운 남자 동생이 어린 조카들을 돌보기 위한 방편이었다 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제사취사혼, 弟死娶嫂婚'이 이루어진 셈이다. 아마 인도에서는 근대에도 이런 제도가 존재했던 것 같다. 아무튼 켈커다에서 철학과를 졸업한 가우리는 미국에서 딸을 낳고 수바시는 '벨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벨라는 '자스민'의 인도어라 한다.


 가우리는 벨라를 낳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그 간의 못했던 지적 충족을 위해 가까운 대학에 입학하고 수바시는 벨라를 자신의 딸 이상으로 사랑하며 키웠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자신의 삶을 바꾸려는 가우리는 1984년 벨라가 12살 일 때 가출 하여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나는 이 대목이 석연치 않았다. 물론 부부 사이의 일은 당사자들 외에는 누구도 잘 알 수 없고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고 해결도 역시 쉽지 않지만 그래도 소설 속에서 가출 사유가 명쾌하지 않다.


 단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자신의 정체성 자각을 배경으로 가출을 해석할 수 있으나 독자를 위해서는 조금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 아무튼 더욱 이해하기 힘든 점은 가우리는 자신의 딸 벨라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나 연락이 없다. 벨라는 이곳저곳을 떠돌다 큰 아버지이자 자신을 키워주고 이제 쓸쓸히 혼자 사는 수바시의 집으로 25 년 만에 찾아온다. 38살의 벨라는 캘리포니아에서 찾아 온 어머니를 문전박대하는데 사필귀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벨라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동안 잠깐 만나 하룻밤을 잔 남자와 사이에 낳은 4살 된 메그나를 키우는데 이런 벨라의 떠돌이 삶에 가우리의 책임이 일정부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인도의 불행했던 근대사와 함께 한 가족의 일대기를 통하여 부모, 형제, 부부 그리고 자식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