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말을 찾아서>를 읽고...

깃또리 2018. 11. 14. 12:18

<말을 찾아서>를 읽고...
이순원
창비
2017.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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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20 년 전 이 단편을 읽었었다. 지금 기억하기로 당시 나는 '말'이 동물 말(馬)이 아니고 언어 말(言)이겠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실재 읽어 내려가다 보니 말이 아니고 '노새'였다. <노새를 찾아서>라 해도 될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노새는 암말과 수 당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말과에 속한 잡종 동물로 생식능력이 없으며, 노새는 영어 사전에 'mule', 나귀는 'donkey', 당나귀는 'ass, 또는 donkey'로 나와 있다. 나는 노새와 나귀가 외양이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한다. 더구나 나귀와 당나귀는 또 어떻게 다른 지도 모르겠다. 글꼴로 보면 나귀는 재래종이고 당나귀는 중국에서 들어온 나귀 인듯하다. 이왕 이야기기 나온 김에 1970년 대 말부터 1980년대 초 내가 약 4년 일했던 이집트 카이로에서 말이나 나귀, 아니면 노새가 짐수레를 끄는 걸 보았으며 아랍어로 노새는 '호마루'로 부르고 사람에게 쓰면 '멍청한 놈, 미친 놈' 정도의 욕으로 우리말의 ‘개새끼’ 정도로 현지인들이 자주 쓰는 걸 들었다.
 
 이야기가 한 참 벗어났다. 작가 이순원은 1957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나 1988년 문학사상에 <낮달>로 등단하여 동리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나 아직 이상문학상 수상 경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순원의 작품을 여러 편 읽지는 않았지만 <은비령>이 가장 인상 깊었고, 내 기억으로는 강원도에서 자라고 성장한 자신의 경험을 살려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면서 소설 속에서 독특한 풍경과 정서를 잘 보여주었다.  사실 나는 30대 중반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로 하조대 해수욕장을 처음 간 이후부터 강원도의 깨끗하고 소박한 자연 풍광에 매료되어 강원도 최북 쪽 미시령 고개를 비롯하여 한계령, 진고개, 대관령, 백봉령을 수 없이 넘어 다녔으며 최근 구룡령까지 넘어 태백산맥을 넘는 자동차 고개 길은 거의 다 넘어 본 셈이다. 사실 이 고개 중에 한계령이 가장 아름다운 길이어서 일부러 그 고개를 많이 넘어 다녔으나 이제는 터널이 개통되어 예전 같은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다. 하여튼 이런저런 일로 이순원의 작품은 내게 더욱 친근하다.
 
 <말을 찾아서>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과 서사 내용이 비슷하다. 이순원 작가는 의식적으로 <매밀 꽃 필 무렵>의 새로운 버전으로 이 작품을 쓴듯하다. 작가에게 평창 출신 이효석은 고향 선배이며 존경의 대상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에서 이순원은 당숙 작은 아버지 부부가 애를 낳을 수 없었기에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래서 당나귀 대신 생식 능력이 없는 '노새'를 내세우는 설정으로 불임의 상징성을 높인듯하며 대강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1인칭 작가인 화자 '나'인 수호가 봉평의 나귀에 관한 원고 청탁을 거절하고 얼마 전 일본 관광길에 말고기를 먹고 토한 일, 그리고 정초부터 말 꿈을 꾸고 기분이 뒤숭숭했던 일들을 서두에 길게 서술한다.

 

 사실 이 소설에 나오는 작가인 '수호'도 고향이 강릉이다. 소설의 주인공이 어린 시절 아들이 없는 작은 아버지의 양아들로 정해지자 불만을 품고 '양재 안가'를 입에 달고 지냈다. 왜냐면 당숙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받고 어린애들조차 놀림을 받는 노새를 끄는 '노새 애비'로 불리는 사람이라 그의 양아들이 되는 게 창피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여기서 '양재'는 '양자'의 쉬운 소리 발음이다. 그러나 당숙은 이런 조카지만 항상 자랑으로 여기고 은근히 사람들 앞에서 자랑까지 하였는데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당숙이 불렀으나 못 들은 척하고 달아나자 당숙은 실망하여 깊은 산속 나무 끌어내리는 산판으로 가버렸다. 친 부모의 말없는 압박도 있었지만 당숙에게 미안한 마음에 자신만이 당숙을 집으로 데려 올 수 있다는 생각에 깊은 산판까지 찾아가 당숙을 찾아 내 봉평으로 내려오면서 비로소 처음으로 '아부제'라 불러 당숙을 기쁘게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메밀꽃 필 무렵>의 모방 소설이라 할 수 있으나 모방은 대개 부정적인 의미이므로 이런 경우는 '오마주'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사실 오마주는 원래 프랑스어, Hommage 로 '다른 작가나 감독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특정 대사나 장면을 인용하는 일'로 영화계에서 사용하다가 지금은 폭넓게 쓰고 있다. 역시 영화나 음악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던 '패러디, Parody'는 풍자적으로 모방하는 것으로 약간 조롱의 뜻이 담겨서 부정적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말을 찾아서>는 <메밀꽃 필 무렵>의 오마주라 해도 크게 무리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