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읽고...

깃또리 2018. 11. 12. 10:14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읽고...
박상우 지음
창비
2017. 0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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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30대 중반의 여섯 명의 친구들이 21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날 저녁 서울 종로 뒷골목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사실 나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종로 수송동 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여 이 근처를 무수히 지나 다녔으며 퇴근길에 회사 선배, 동료, 후배들과 이곳에서 어울렸기 때문에 소설 속 풍경이 낯설지 않다.


 소설에서 술친구들은 지난 시절에 실망을 주었던 정치에 대하여 너무 많은 대화와 논쟁을 했으므로 이젠 다른 주제를 이야기 하자고 약속한 사이였다. 그러나 겨우 이야기가 닿는 곳은 '고스톱과 포커, 볼 만한 포르노와 폭력물 그렇고 그런 구천일심의 테크닉과 미아리 텍사스'로 이어졌다. 이제 결혼 한 사람도 있어 1차 술집을 나올 때 이 친구는 다음날 이사를 핑계로 집으로 가고 다른 두 친구도 이런 저런 핑계를 들어 슬금슬금 사라진다. 그래서 남은 셋이서 2차를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신촌으로 간다.


 그러나 오랜만에 들린 그 술집도 너무 늦은 시각이라 주인의 반기는 기색도 없을 뿐 아니라 20여명 되는 생일파티 손님들에 밀려 한 쪽 구석자리에서 맥주를 마시다 문 닫을 시간이 되어 떠밀려 나온다. 그러자 또 한 친구도 과음했다 하여 무리할 수 없다고 떠나 두 명이 남아 서성이다 생일 파티 손님 중에 안면이 있던  여성이 승용차를 세워 타라고 하여 엉겁결에 탄 다음 어디로 가느냐 묻자 "샤갈의 마을'이라 한다. 이 술에 취한 여성의 무모한 운전에 술 취한 상태에서도 노심초사하다 도착한 곳은 어느 허름한 연립주택의 난방도 되지 않는 지하실 작은 스튜디오였다. 벽에 샤갈의 모사 그림들이 붙어 있고 여기저기 화구들이 널려 가난한 화가의 방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 여성은 두 남자가 가게에서 사들고 온 위스키 한 병과 자신의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 다섯 병을 한꺼번에 마개를 열어 세 사람은 다시 술 마시기를 하는데 이 여성은 40세까지 대강 이렇게 살겠노라고 선언한다. 이들의 대화 중, 그리고 이 단편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으로 남자 하나가 "당신은 이성보다 감성이 강한 여성이로군요" 라고 하자 한 참 침묵이 흐른 뒤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사람의 생은 언제나 고달픈 법이에요..."라 한다.
 
 사실 이 여성은 떠난 첫 남자를 잊지 못하고 있었으며 두 남자는 과음으로 거의 의식을 잃고 있는 순간에 "이따금 여자 혼자서 술을 마시는 소리, 그리고 공허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아주 먼데서 오는 여음처럼 희미하게 귓전으로 밀려들었다.' 그가 보고 싶어요. 누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줄 수 없나요? 내가 그를 기다린다고...'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에서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중략) 아주 잠시 뒤에 우리는 여자가 마지막 신음처럼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춥고 배고파, 그리고 남자와 자고 싶어...'"


 나는 이 단편을 처음 읽었지만 소설 제목은 수 없이 만났다. 박상우 작가는 1958년 태어나 춘천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강원도 지역 교사로 일하였으며 1999년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여 명성을 얻은 작가이다. 감각적이고 낭만적인 문체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창작활동이 다소 주춤한 듯한 인상을 준다. 박상우 작가를 소개할 때 의례 <독산동 천사의 시>와 함께 이 소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단골로 등장하여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독특하고 멋진 제목을 여러 번 대하면서 언젠가 손에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제 늦게나마 읽기를 마쳐 기쁘다.   내가 이 제목에 매료된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 서양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러시아 화가 샤갈의 그림들 좋아한다. 그래서 아마 나도 두세 번 샤갈의 그림 전시회에 갔었다. 그러나 세 번째인가는 이전 전시회에서 보았던 그림들이 다시 걸려 있어 조금 실망하기도 했으나 한편 다시 찬찬히 돌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또한 나는 샤갈의 그림 제목 중에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있었나 궁금해 하기도 했다. 왜냐면 샤갈의 그림 중에 단연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그림이 <마을과 나>이기 때문에 잠시 착각한 셈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부타 페스트의 소녀>를 쓴 원로시인 김춘수선생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까지 더해져 더욱 착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이 짧은 단편에서 청년시절 끈끈한 유대를 맺었던 여섯 남자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유대감은 옅어지고 마지막으로 두 사람만이 남는 파편화, 소외 그래서 남자 한 사람이 여성에서 그래도 우린 둘이나 남았다고 항변하자 이 여성은 "결국 둘도 안 남는다는 걸 알아야지, 결국은..." 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은 "그 때 우리들 중 하나가 탁자 밑으로 손을 뻗어 하나의 손을 필사적으로 거머쥐었다."로 끝을 맺는다. 인간의 소외, 파편화 속에서도 한 가닥 몸부림처럼 우리들은 손을 뻗어 타인의 손을 잡아 서로 서로 유대의식을 회복할 때 인간성의 회복, 나아가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암시를 전하는 작품이다.  이제 세계 도처에서 이유도 목적도 없이 무차별 총기 난사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대량 살상무기에 의한 살육을 바라보며 더욱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1990년 발표되어 어언 29년이 세월이 흐른 탓인지 처음 보는 4자 성어나 어려운 한문 어휘가 자주 보여 이런 글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 퍽 흥미로워 일부를 옮겨보았다.
 
'망무두서(茫無頭緖)'한 가운데: 정신이 아득해 일의 순서를 찾지 못하다.
'구천일심(九淺一深)'의 테크닉: 남녀 성교 시 남자가 구사하는 성적 기교의 하나.
'무지망작(無知妄作)'의 소산인가?: 아무 것도 몰라 마구 덤벙거림.
'쾌연(快然)': 성격이나 행동 따위가 씩씩하고 시원스럽다.
'면괴(面愧)'스러워지기 일쑤였다.: 낯을 들고 대하기가 부끄러운 데가 있다.
'여음(餘音)'처럼 희미하게: 소리가 그치거나 거의 사라진 뒤에도 아직 남아 있는 음향.
 
 마지막으로 종로 뒷골목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로 나오는 부분의 표현에서 '국도'라는 표현이 몇 번 나왔는데 당시 그렇게 불렀는지 기억에 없으나 지금 표현으로는 '차도'가 적절하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나와 좀 거슬리기도 하였다. 근 30년 전 소설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며 소설도 예전 소설이 더 친근감이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인상 깊고 기억에 남을 소설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