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공터에서>를 읽고...

깃또리 2018. 11. 6. 12:53

<공터에서>를 읽고...
김훈 장편소설
해냄
2017.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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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김훈씨의 장편소설을 읽었다. 역시 김훈씨의 글은 힘차고 문장이 명료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김훈씨의 글에서 좋아하는 표현들이 자주 반복되어 이제 소위 식상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예를 들면, ‘빛이 들끓는’, ‘빛이 입자로 흩어지다’, ‘하늘빛이 자글거리다’, ‘육신의 적막은 완강하다’ 등등이 그렇다. 모든 것, 음식이든 쾌락이건 글의 표현이든 여러 번 마주하다보면 신선함이 떨어져 감동이 덜어진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주인공 마차세가 강원도 휴전선 GOP에서 상병으로 군복무를 하고 아버지 마동수가 암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나는 1979년부터 마차세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딸 ‘누니’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시점으로 어림잡아 1988년까지 약 9년간이다. 소설이 사실의 진술은 아니지만 개연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앞과 뒤 시점의 정확성이 필요하다. 마차세가 6.25 전쟁 중 부산에서 어머니 이도순의 뱃속에서 잉태되어 임신중절을 하러 병원에 갔으나 의사가 낮술을 하고 병원을 비워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중에 창문 밖에 저녁 찬거리를 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주부를 보고 마음을 돌려 그냥 돌아와 둘째인 차세를 낳아 길렀다 했으니 차세는 나와 같은 1951년생이다. 그런데 대학교 경영학과를 2년 다니다 학비를 댈 수 없어 군대에 들어가 2년 후인 상병 때가 1979년이라면 29살 30살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더구나 입대 전 5년 기간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 어떤 설명 없이 당시 26, 28세에 군에 입대한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것은 소설이라지만 친절하지 않다.


 <작가후기>에 김훈은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말하고 싶었다.”라 하였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곳에도 작가가 말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한반도 근현대사의 불행인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에서 죄 없이 불행에 빠졌던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태어난 땅과 시대가 이들을 슬픔과 고통으로 내 몰았으며 우리의 아픈 역사를 드러내는 소설이다.

 마장세와 마차세 형제의 아버지 마동수는 1910년 태어나 일제 강점기엔 남의 나라인 상해 등지를 떠돌며 뚜렷한 신념 없이 세월을 보내다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6.25 전쟁에 떠밀려 부산 피난생활을 하다 아내 이도순을 만난다. 2살 아래 이도순은 북한에서 결혼하여 피난 중에 남편은 간난 아기를 안고 함께 흥남 부두에서 피난선을 타려는 혼란 속에서 헤어졌다. 부산에 도착한 이도순은 결국 남편과 아기를 찾지 못하고 목숨을 겨우 부지하다 마동수를 만나 함께 살게 되었다.


 마동수와 함께 서울로 올라 온 이도순은 생활 능력이 미약한 남편 때문에 두 아들과 힘든 세월을 보낸다. 형 마장세는 베트남 전쟁의 밀림에서 부대원 몇 명과 고립되어 죽음과 다투는 긴박한 철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부상당한 후임병사를 총으로 쏴 죽이고 살아 돌아왔으나 본의 아니게 무공훈장까지 받고 귀국하였다. 항상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베트남 밀림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일이 머릿속을 맴돌고 아버지의 무능이 겹쳐 한국을 떠나 괌, 팔라우 지역을 떠돈다. 동생 마차세는 제대한 다음 대학 다닐 때 사귀던 미술대학 출신 박상희와 결혼하고 어머니가 7년간 요양원 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한다. 마차세는 여러 일을 하다 군대 동기인 사장 오장춘의 회사에 근무하며 형을 만나는 등 평범한 직장인들이 겪는 여러 가지 일을 겪는다. 등장인물 모두가 힘없는 자들이 악전고투하는 모습, 즉 불안정했던 60, 70년대 한국사회의 실상이 그려지고 있다. 특히 나는 마차세가 일곱 번 입사시험에 떨어지고 여덟 번째 이름만 그럴듯한 ‘운송회사’의 퀵서비스 현장직원이 되어 오토바이를 타는 후반부 부분에서는 책을 덮고 싶었다. 왜냐면 아무리 생활이 힘들어도 도로를 맨 몸으로 달리는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내 박상희의 말이 가슴을 절절하게 하였으며 이제 소설은 마차세의 죽음으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일단 끝까지 읽었으며 다행스럽게 여러 주변의 불행이 오고 지나가기도 했으나 주인공 마차세와 박상희는 동네 작은 옷가게를 여는 부분에서 소설이 끝을 맺는다.


이 소설에서 인상 깊은 부분들을 순서 없이 옮겨본다.
박상희의 아버지는 지방 9급 공무원 퇴직 7년째 되는 사람인데 대학을 마치지 못하였고 탐탁치 않은 직업을 가진 사윗감에 불만의 표시로 “넥타이를 매지 않고 결혼식장에 왔다”라는 부분은 퇴직 9급 공무원 생각을 절묘하게 나타냈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결혼식에서 박상희의 은사인 미대교수가 주례사에서 “생활의 물질적 토대”를 이야기 하였다. 당연하고 쉬운 말이지만 결혼식으로 부부가 삶을 꾸려가는 순간에 현실적으로 중요한 점을 쉽게 이야기 하였다. 마차세와 박상희가 신혼여행으로 아침 바닷가에서 산책을 하며 박상희가 “바다는 항상 새 바다네”하는 대목이 퍽 신선했다. 밀물과 썰물이 뒤바뀌어 항상 새 바다라는 말이 어울린다.  박상희가 신혼시절 된장찌개에 호박을 건져 마차세의 숟가락 밥 위에 얹으며 “호박이 남자에 좋데”라 하자 마차세가 “여자는?”이라 하고 이어 아내 박상희는 “당신이 좋으면 나한테 좋으니까”라 한다. 젊은 신혼부부의 애정이 묻어나는 구절이다.


아내 박상희가 힘들어 하는 남편 마차세에게 자신의 입김을 불어넣어 격려하는 대목이 몇 번 나온다. 소설의 중반부 조금 넘어 부부의 잠자리 묘사가 잠깐 나오는데, “박상희가 마차세의 입으로 숨을 불어 넣었고 마차세가 박상희의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박상희의 몸이 가득찼고 마차세의 몸이 떨렸다.”이다. 섹스의 표현도 이렇게 하면 품위가 있다. 박상희가 임신 사실을 감지하는 날 박차세가 새 회사에서 출근 날짜를 통보받아 기뻐한다. 작은 행복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불행, 비극이 아닌 행복, 희망을 이야기 하는 대목이어서 마치 내 일처럼 마음이 가벼워지는걸 느꼈다.  남태평양에 살고 있는 형 마장세의 부인은 한국여자와 미국 중사의 혼혈로 이름이 ‘린다’이며 형 마장세는 동생 부부에게 형수, 언니로 부르지 말고 그냥 이름 ‘린다’로 부르라한다. 서양관습으로는 그 사람의 위치에 걸 맞는 호칭보다 이름을 선호하며 친근감을 이끈다. 우리의 호칭은 다분히 서열과 거북함을 주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 한국 며느리인 경우엔 이름을 부를 수 없지만 이름 ‘Lily'로 부르니 훨씬 부드럽고 정겨운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들도 남녀노소를 떠나 이름을 점점 호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바람직하다고 본다.


책 뒤에 작가 김훈 씨의 글이 나온다.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어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다. 그 기억과 인상들은 오랫동안 내 속에 서식하면서 저희들끼리 서로 부딪치고 싸웠다. 사소한 것들의 싸움을 말리기가 더욱 힘들었다. 별것 아니라고 스스로 달래면서 모두 버리고 싶었지만 마침내 버려지지 않아서 연필을 쥐고 쓸 수밖에 없었다.a 당대의 현실에서 발붙일 수 없었던 내 선대 인물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그들의 기록, 언행, 체취, 몸짓 그들이 남긴 사진을 떠올리면서 겨우 글을 이어나갔다. 이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나는 그 기억과 인상들이 이제는 내속에서 소멸하기를 바란다.”


 소설을 다 읽고 뭔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김훈씨는 우리나라에 많은 독자를 두고 있는 인기 있는 소설가이지만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에 비하여 국제적 명성이 훨씬 부족하다. 하루키는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작품의 내용도 관련이 있겠지만, 정확한 분석은 아니겠으나 하루키는 1991년부터 1993년 2년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활동했으며 오랜 기간 이탈리아 등지에서 글도 쓰기도 하며, 유럽 여러 나라에서 체류하였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그리스 언어로 된 작품을 번역도 하여 소위 국제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은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고 내용 자체도 인간의 보편성을 그리는데 더욱 가깝게 접근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김훈씨도 앞으로 더욱 좋은 작품을 써서 독자들을 기쁘게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