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멀고도 가까운>을 읽고...

깃또리 2018. 11. 5. 13:06

<멀고도 가까운>을 읽고...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반비
2018. 7. 22.

이미지없음


 집 근처 새로 문을 연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면서 알게 된 작가 리베카 솔닛은 어떤 책에서는 레베카 솔닛으로 표기했으며 2000년에 <원제: Wanderlust>라는 책을 출간하고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번역본이 <걷기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민음사에서 출간했다. 그러나 2017년 국내 ‘반비’라는 출판사에서 <걷기의 인문학>으로 제목을 바꾸어 새로 출판하여 서점에 놓여 있었는데 몇 페이지를 읽고 나서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구입하려 했으나 읽은 다음 책을 쌓아두어야 하는 일이 떠올라 일단 미루었다. 내가 이용하는 도서관에 검색했더니 작가의 책이 소장되었고 역시 작가가 쓴 이 책 <멀고도 가까이>가 있어 두 권을 대출하여 <멀고도 가까이>를 먼저 읽었다. 부제가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이고 영어 제목은 <The Faraway Nearby>이다. 차례를 보면, 살구, 거울, 얼음, 비행, 숨, 감자, 매듭, 풀다, 숨, 비행, 얼음, 거울, 살구인데 첫 번째와 마지막이 '살구'이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던 집 마당에 있던 살구나무에서 마지막 살구를 수확하여 잼, 절임을 하여 먹기도 하고 그리고 술을 담가 유리병에 넣어 친구들에게 선물하거나 방문객에게 대접도 하고 자신이 먹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몇 차례 반복하여 나온다. 책 전체를 대표하여 흐르는 내용은 인간의 '감정이입'으로 아들, 딸 네 명을 낳아 기른 후 남편과 이혼한 어머니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하여 끊임없이 인간관계와 감정의 흐름을 배경을 바꿔가며 변주하여 이야기 한다.


 자신의 어머니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대학을 다니지 못한 일을 아쉽게 생각하여 뉴욕대학교의 행정과 직원으로 일하면서 교수들의 강의를 듣고 부지런히 책을 읽어 상당한 지식과 문화적 소양을 갖춘 사람으로 소개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어머니와 어릴 적부터 사이가 어긋나 버린 이야기를 두 번째 '거울'에 길고 자세히 적었다.   두 사람 사이를 설명하면서 논쟁, 비난, 시기심, 트집, 따돌림, 분노, 오해, 질투와 같은 단어를 쓴 걸 보면 모녀 사이가 무척 험난했으며 급기야 딸 솔닛은 17살이 되던 해 가방 하나를 들고 집을 나와 독립하였다 한다. 심지어 검은 머리를 지닌 어머니는 딸의 블론드 머리를 질투하였는데 그러나 저자는 불편하고 힘든 어머니와 관계를 끊지 못하고 길고 긴 불화 속에서도 모녀의 관계를 이어간다. 결국 어머니는 여든이 되기 두 해 전에 알츠하이머 증세가 심하여 요양병원 신세를 지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어머니는 이전의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고 보호해야 할 어린애일 뿐이었다. 저자는 알츠하이머 증세에 대하여 자세히 기술하여 이 병에 대한 두려움을 독자들에게 일깨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중 하나가 치매이며 치매를 예방하거나 증세를 누그러뜨리는 몇 가지 방법들이 나와 있으나 치료나 완치되지 않는 질병에 속한다. 아직 글 읽고, 쓰기에 불편이 없어 나는 가끔 이런 글을 적으면서 치매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듯하여 즐겁게 생각하기도 한다. 작가 솔닛의 글을 읽다보면 어원이나 어휘에 많은 관심과 지식이 있다. 하긴 대부분의 글 쓰는 사람들의 공통적 관심 중 하나가 어휘이기도 하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이야기 하면서 응급 상황(emergency)이란 무엇일까? 질문과 함께 "이 단어의 어근을 보면 '부상(emergence)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고, 그 다음엔 '나타나다(emerge)'까지 이어 진다 응급 상황이란 무언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나오는 '응급 상황'의 첫 번째 정의는 "가라앉았던 시체가 수면 위로 떠오는 것, 현재는 많이 쓰이지 않음"으로 이는 '부상'의 정의와 동일하다. 두 번째 정의는 "가려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마치 물놀이 하던 사람이 갈대를 헤치고 나오는 것처럼, 이렇게 응급 상황에 대한 어휘를 이야기 한다.


 원래 merge는 '융합' ‘합병’을 의미하여 회사의 인수, 합병을 흔히 M&A 라 할 때 M은 merge(합병) 이고 A는 acquisition(인수) 이다. 그러나 영어를 순서대로 우리말로 제대로 옮기려면 '합병 인수'라고 해야 하나 우리 말 발음이 '인수 합병'이 더 발음하기 좋아서 영어와 순서가 다르게 하는 것 같다. 책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얼개로 하여 읽기와 쓰기, 삶과 죽음에 대하여 폭 넓고 깊은 사유를 펼친 책으로 한 번읽고 잊을 책이 아니다. 책 마지막 부분은 결국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를 회상하는 글로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