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the History?>를 읽고...

깃또리 2018. 10. 26. 10:30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the History?>를 읽고...
E. H. Carr 지음/다문독서문화 옮김
다문
2016. 12. 23.

이미지없음


 1991년 초판 발행, 1995년 구입 연도가 적혀있다. 최소한 10년 전, 어느 시기에 한 번 읽었지만 다시 읽었다. 저자 E. H. Carr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 또는 '역사는 과거와 끊임없는 대화이다, History i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라는 말을 듣거나 읽었을 것이다. 또한 E. H.카의 책을 읽지 않고도 이 유명한 말을 떠올릴 것이다. 가끔 역사는 위인이나 영웅의 기록이고 승자의 기록이며 그래서 영어 'History'란 말도 남자들의 이야기, 즉 ‘his story’에서 유래하였다는 우스개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사실 ‘History’는 ‘조사하여 얻어진 지식’, ‘연구나 조사’를 뜻하는 ‘inquire'의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historia’가 기원이라고 사전에서 보여주고 있다.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70년대 말까지 중고등학교에서 '역사, 歷史'라 하면 '과거 지나온 사실을 기록한 것'과 함께 '역사로부터 현재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배운다.' 정도가 역사에 대한 뜻 풀이었고 실제 수업에서는 상급학교 입시나 취직시험을 위해 역사적 인물의 이름, 사건, 연도, 지명 암기가 역사공부였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서서 국내의 민주화운동과 함께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이 책이 국내에 소개되어 인문교양의 필독서로 알려져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본이 쏟아져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우선 저자의 간단한 약력을 적어본다.


 “Edward Hallett Carr는 189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24살에 영국 외무성에 들어가 20년 동안 외교관으로 일하였다. 퇴임 후 1936년 웨일즈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하고, 런던 타임즈 부주필을 역임하였으며 1948년 국제연합 <세계인권선언>기초위원장을 맡았다. 1953년 옥스퍼드 대학교, 1955년 모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가르치고 1982년 케임브리지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카는 역사학을 전문으로 한 학자는 아니었지만 오랜 외교관 생활에서 얻은 지식과 특히 러시아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칼 마르크스, Karl Marx, 1934>, <서구 세계에서 소비에트의 충격, The Soviet Impact on the Western World, 1947>, <볼셰비키혁명, The Bolshevik Revolution, 1958>, <나폴레옹에서 스탈린까지, From Napoleon to Stalin, 1980>와 같은 책을 써서 유럽사회에 러시아 정치사회를 알렸으며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 The History of Soviet Russia> 14권은 그의 최고 역작으로 꼽히고 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쓴 글이 아니고 청자들 즉, 역사학 공부를 하는 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조언하는 형식의 글로 총 6장으로 구성되었다. 나는 오늘 읽은 내용이 다시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잊혀 질 것이 분명하여 읽으면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부분에 표시한 대목 일부를 정리해보았다.


제 1장 역사가와 사실


역사와 사실에 대하여 언급한 여러 역사가들의 문장이 줄줄이 나온다. "우리들이 읽는 역사는 사실을 토대로 한 것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인정된 판단의 체계에 불과하다.” -G. Baraclough.


 "사실은 그 쪽에 무엇인가를 집어 넣어주기 전에는 절대로 설 수 없는 자루와 같은 것.” -Luigi Pirandello

 

그래서 카는 자신의 결론으로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하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이란 생명없는 무의미한 존재이다. 이리하여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 하였다.


제 2장 사회와 개인


 "역사가도 하나의 개인이다. 다른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하나의 사회현상이고 자기가 속한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사회의 대변인이다. 바로 이러한 자격으로 역사가는 과거의 모든 사실에 접근하는 것이다."


제 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


 "역사란 하나의 투쟁과정이어서 그로부터 나타나는 여러 결과는 우리들이 그렇게 좋게 판단하건 나쁘게 판단하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 간접적인 경우보다 직접적인 경우가 많지만- 일부 집단을 희생시켜서 성취한 것이다. 결국 지는 편이 손해를 보는 것이다. 역사에는 고난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모든 위대한 역사 시기에는 승리와 더불어 패배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복잡한 문제이다. 왜냐면 우리에게는 한쪽의 증대된 행복과 다른 쪽의 희생을 잴 수 있는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불행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퍽 흥미 있는 문장을 인용하였다. 영국의 문학가이자 사전 편찬자로 이름난 사무엘 존슨박사(1709~1784)가 '보다 작은 악'이란 폭론에서 언급한 글이다. "모두가 평등한 상태 하에서는 행복한 사람이란 하나도 없을 것이므로 차라리 일부 사람들이 불행한 편이 좋다." 앞뒤 문장을 읽지 않은 상황에서는 퍽 냉혹한 글이지만 인간의 심리를 잘 파악하여 나타낸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어서 엥글스의 유명하고 화려한 구절은 기분 나쁠 정도로 적절하다고 하였다. "역사는 모든 여신(女神)들 가운데서도 아마도 가장 잔인한 여신일 것이다. 전쟁에서뿐만 아니라 '평화적인' 경제 발전에 있어서도 이 여신(女神)은 시체의 산을 넘어서 승리의 전차(戰車)를 몰고 달린다. 불행하게도 너무나도 무지한 우리 남녀들은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난에 시달리지 않고서는 진정한 진보를 위한 용기를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역사와 과학, 더 나아가 인문학과 과학에 대한 카의 통찰이 돋보이는 문장이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부터 인문학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여 인문학에 대한 논지를 옮겨본다. "인문학과 과학이 예전의 편견으로 구분되어, 인문학은 지배 계급의 넓은 교양을 말하는 것이고, 과학이란 이들이게 봉사하는 기술자들의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 있어서의 <인문학>이나 <인문>이란 말은 그 자체가 낡은 편견의 유물에 불과한 것이다.


 과학과 역사와의 대립이라는 것도 영어 이외의 언어에서는 전혀 뜻이 없다는 사실만을 보더라도 이 편견이 얼마나 옹졸한 섬나라 근성에서 나온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카는 자신의 나라 영국의 당시 역사학자들의 사상적 우월의식에 대하여 냉정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글이다. 카는 영국의 주류 역사학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발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 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역사를 다루면서 <법칙>, <원인>은 결정론을 연상시키므로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하였으며 만일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면서, 단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면, 3급 점수를, 한 타스쯤으로 설명하면 중간정도 점수를 받을 수 있으며 원인의 상호 관계를 정리하고 상하관계를 설정하여 궁극적인 결론을 도출하면 높은 점수를 얻는다 하였다.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만일이라는 서두로 가정을 하는 경우 흔히들 '클레오파트라의 코'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그 말을 처음 쓴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역사에서 우연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영국의 역사가 베리(J. B. Bury)는 1909년 <역사에서 다윈주의>라는 논문에서 '우연의 일치라는 요소'에 사람들의 관심을 자아냈고, 또 우연의 일치라는 요소는 '사회진화(社會進化)에 있어서 여러 사건들을 결정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말했다. 그리고 1916년에는 <클레오파트라의 코>라는 제목으로 이 문제에 대한 독립된 논문을 썼다."한다.


 한 개인이나 국가는 역사적으로 흥망성쇠의 변화를 거치는데 이와 관련한 문장도 눈길을 끈다. "역사적 사건의 절정이 아니라 단지 그 골짜기를 지나가는 집단이나 국민에게는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이나 우발적 사건의 작용을 강조하는 이론에 지배되기 쉽다. 시험의 결과를 제비뽑기와 같다는 생각을 하는 학생은 언제나 열등생 사이에서 인기가 있기 마련이다. (중략) 유성(Comet)이라는 이름은 말할 것도 없이 <방랑자>라는 뜻인데, 이러한 명칭은 유성이 제멋대로 하늘을 돌아다닌다는 생각과 그 운동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했던 때에 생긴 것이다. 어떤 일을 불운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 원인을 찾아내는 귀찮은 의무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흔히 쓰는 방법이다. 어떤 사람이 만약 역사는 우연의 연쇄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 사람이 지적(知的)으로 게으르거나 지적 생명력이 약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연으로 다루어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략) 역사에서 우연이라는 문제의 해결은 전혀 다른 사고의 차원에서 추구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중략)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의 구분은 엄격하거나 항구적인 것은 아니며, 말하자면 어떤 사실이든 그 적합성과 중요성이 인정되면 곧 역사적 사실이라는 지위로 승진되는 것이다."


제 5장 진보로서의 역사


 제 4장의 마지막 문장은  "훌륭한 역사가들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미래를 느끼는 법이며, 또한 역사가는 '왜?'라는 물음 이외에도 '어디로?'라는 물음을 가지는 것이다."이다. 즉,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 카는 여러 페이지를 할애하였다. 그 중에서 기억해 둘 내용으로 "역사에 있어서 진보란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 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과정을 가장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객관적인 역사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토니교수의 말을 인용하였다. "역사가들은 승리를 거둔 세력은 전면으로 끌어내고, 패배한 세력은 후면으로 밀어 제쳐 놓음으로써 기존 질서에 불가피성이라는 외관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역사와 관련해서 우리들은 이런 말을 많이 듣거나 하고 있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다."라는 말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마지막 6장은 넓어져 가는 지평선이다.


 "마르크스의 결론적인 견해를 종합해보면 역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그 하나는 객관적인, 주로 경제적인 법칙을 따라 전개되는 사건의 움직임이며, 두 번째는 이에 대응하여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이룩되는 사고의 발전이며, 세 번째는 이에 따른 계급투쟁이라는 형태의 행동이며, 이것이 혁명의 이론과 실천을 조화시키고 통일시키는 것이다." 카는 세계역사를 서양 중심에서 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였다. "과거 400년간의 영어 사용 세계의 역사가 역사상 위대한 시기였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영어 사용 세계의 역사를 세계사의 중심부로 취급하고, 그 밖의 것은 모두들 영어 사용 세계의 역사의 주변적 역사로 취급한다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서양 역사가들이 중국이나 그 보다 더 작은 나라인 한국의 역사를 더 알았더라면 카의 말대로 세계역사를 서양 중심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무지의 소치라 생각한다. E. H. 카는 러시아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역사에 대하여 풍부한 인식의 바탕에서 앞서와 같은 발언을 했을 것이며 그래서 그가 더욱 훌륭한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다시 읽었지만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역사는 반전하고, 과거의 역사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역사에 대한 지식이나 역사의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16년 어지러운 한해를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좋은 책을 다시 읽은 기쁨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