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책이 되어 버린 남자, Das Buch>를 읽고...

깃또리 2018. 10. 30. 13:21

<책이 되어 버린 남자, Das Buch>를 읽고...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지음/ 남문희 옮김/ 무슨 그림
비채
201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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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역사는 유구하고 책에 얽힌 이야기는 많기도 하고 다양하다. 또한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책을 좋아하고 책에 남다른 애착을 기울이는 사람도 많다. 책을 좋아한다는 말에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책읽기보다 책 자체를 좋아하여 수집에 열정을 쏟는 사람이다.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책을 읽지 않고 책 수집에 열중하는 일은 호사한 취미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에 책읽기에 몰두하는 사람을 서치[書癡]라 하였다. 백치(白癡), 천치(天癡)에 쓰이는 ‘癡’가 붙었으니 책만 읽는 바보라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Bookworm, 책벌레'라 하는데 나는 처음 이 단어를 보았을 때 책을 손상시키는 좀 벌레인가 했다. 그러나 서치는 좀 어려운 말이고 흔히 ‘책벌레’란 말을 우리들도 오래 전부터 썼었다. 같은 사람을 동양에서는 ‘바보’로 서양에서는 ‘벌레’로 보는 것이 흥미롭다. 우리말 ‘책벌레’가 영어에서 유래 한 것 같기도 하는데, 아니면 우연한 일치인지 퍽 궁금하다.


 <책이 되어 버린 남자> 이 책은 책 제목이 궁금증을 부르고 책의 커버가 하드커버에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지인의 서가에서 빌려와 보관하고 있다 몇 달 전에 읽었으나 추천사와 달리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후기를 쓰려 해도 줄거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쓰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었다. 내가 놓친 부분도 있고 건성으로 읽어 그런가 하여 다시 읽었으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책 내용 중에 서양의 유명한 철학자나 작가들의 책에 대한 명언이나 경구가 많이 보여 나는 책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독일 사람이고 여러 정황으로 보아 독일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남자는 40세 ‘비블리’씨로  회사원으로 결혼은 하였지만 아내와 같이 살지 않고 가끔 친구처럼 만나는 사람이다. 쉽게 말하면 별거는 했으나 사이좋게 지내는 사이인 셈이다. 비블리씨는 책을 좋아하여 많은 책을 서가에 둔 애서가인데 어느 날 벼룩시장에서 겉표지는 떨어져 나갔으나 손에 쥐기에 딱 알맞은 크기의 작은 책 한권을 손에 넣었다. 책 제목은 <Das Buch, 그 책>이다. 사실 이 책은 벼룩시장에서 누가 주인도 모르게 갑자기 판매대에 놓여져 서점 주인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비블리씨가 돈도 주지 않고 그냥 집에 가지고 온 책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읽기 시작하여 2시간 반 만에 마지막 페이지를 닫았는데 그 후로는 꿈에 책이 나타나 잠도 편히 자지 못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비블리씨는 그간 애써 수집한 장서에 대한 매력을 갑자기 잃어 15,000 마르크에 모든 책을 중고서점에 넘겨버리고 훔쳐온 <그 책>만 남겼다. 그래도 매일 밤 비블리씨는 뒤숭숭한 꿈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결국 탈진하여 병원에 실려 갔으나 의사는 특별한 병명을 찾지 못한다. 비빌리씨의 유년시절 이야기와 그간 책에 얽힌 긴 이야기가 책의 반을 차지하다가 비블리씨가 서서히 변신하여 한 권의 책이 되어 버린다. 책이 된 비블리씨는 제일 먼저 자신의 방 청소를 하러 온 여자 청소부의 가방에 넣어져 집에 들어가 청소부 딸의 책상에 놓여 읽히게 된다. 그러나 읽다 흥미를 잃은 소녀가 책을 바닥에 팽개친다.


 청소부 어머니는 필요 없는 책이라 생각하였으나 버리기 아까워 동네 도서관에 가져간다. 사서는 아무 책이나 기증받지 않는 규정 때문에 조금 망설이다 받아주었다. 책은  도서관장, 출판사 편집자, 베스트셀러 작가의 손을 거친 다음 출판사 사장, 길 가던 청년 그리고 다시 고물상에 들어갔다가 비평가의 책상에 놓인다. 비평가 비르시-모린스키는 '국내 문단의 가장 유명한 비평가'와 '문단의 교황'이란 호칭으로 불리는 독단적인 판단과 비평으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다. 비평가는 <그 책>을 읽으면서 '헛소리' '지루해'와 같은 말을 남발하기 시작하다 책의 날카로운 모서리로 이마를 공격당하여 도망치다가 계단에 굴러 떨어져 사망한다. "그는 수많은 책들에 사형선고를 내린 재판관을 직접 '제 손으로' 죽음으로 이끈 세계 최초의 책이었다." 그러면서 성경의 한 구절을 변용했다. '책을 공격 한자,  책으로 망하리라.'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는지 퍽 궁금하다.

 비블리씨는 죽은 비평가의 짐 정리과정에서 소규모 제본업자의 손에 들어가 가죽 표지로 다시 씌워지고 말끔하게 손질되어 100 마르크로 근사한 신사에게 팔려 웅장하고 고풍스런 서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신사는 <그 책>을 꺼내 읽다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화가 나 책을 돌려주러 나가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책은 신사의 시신과 함께 관에 넣어져 묻혔으나 방부제 덕분에 썩지 않아 신사의 부인이 죽은 뒤 합장하려고 관을 파헤친 굴삭기 운전하던 청년의 손에 들어간다. 가난한 청년은 단 몇 마르크라도 받기 위해 중고서점에 팔았으며 판매대에 놓인 책은 지나가던 여자 대학생의 눈길이 닿아 비블리씨의 뜨거운 욕망이 분출되어 책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으나 바로 숨이 멎어 종말에 이른다.


 여학생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비블리씨가 사망하여 구급차에 실려 가는 정황을 지켜 본 다음 다시 돌아와 책을 구입하였다. 이 여학생의 이름은 로마나 부크이다. 비블리씨의 시신은 대학병원에 기증되었고 로마나 부크는 자신이 혼자 사는 방에서 책을 읽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로마나 부크란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마지막 26장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만일 책을 손에 넣고 거의 끝까지 읽던 중인데, 즉 그 안에 담긴 내용을 건성으로 대충 알아가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예고도 없이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남은 문장들이 무슨 중요한 의미를 품은 것만 같아서 억지로 읽어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고, 활자들이 흐릿해지면서 크기가 작아지다가 결국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도 왠지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다면, 당사자가 채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미 책이 되어가는 단계가 진행된 것이다. 변화가 끝나기까지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변화는 완만하지만 분명히 진행된다. 이 변화를 멈추기란 불가능하다.”


  책에 관한 책이다 보니 책과 관련한 여러 경구가 등장한다. 몇 개를 옮겨본다.


 "책장은 곧 그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나에게 당신이 가진 책들을 보여 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줄 수 있다." -알프레드 마이스터


 "남자가 여자와 책 중에서 어디에 인생을 바칠 것인지를 놓고, 왜 방황해야 한다는 말인가!" -한스 폴 베버 


 지금까지 내 경험이나 주변 사람들을 눈여겨보면, 부부사이가 원만하고 가정이나 직장에 큰 탈이 없는 사람은 대부분 책을 보지 않는다. 아니 책을 볼 겨를이 없을 것이다. 왜냐면 부인이 책을 좋아하여 같이 책을 읽는다면 모를까 - 두 부부가 모두 책을 좋아하는 경우도 드물다 - 사랑스럽고 사이가 좋은 부인을 내버려두고 혼자 책을 읽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 책을 읽고 책으로부터 위안을 얻으며 책으로부터 지식을 구하면서 현실적인 괴로움에서 헤어 나오기도 한다. 일종의 현실 도피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방법으로 독서가 큰 힘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책은 가장 현명한 노인이요, 가장 용감한 대장부이다. 책은 가장 모성 깊은 여인이요, 가장 사랑스럽고 귀여운 소녀이다. 일곱 권의 책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을 사귈 필요가 없다." -뵈리스 프라이헤어 폰 뮌히하우젠 책이 모성 깊은 여성이고, 사랑스런 소녀라면 앞서 말한바와 같이 잔소리하거나 나들이를 하자는 부인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반대로 아내가 책을 좋아하고 남편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겠는데,결국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비블리씨처럼 독신자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책과 결혼생활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왜 일곱 권일까 이 부분이 궁금하다. 그렇다면 책과 가정, 부인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책 마지막 부분에 눈이 크게 떠지는 대목이 나온다. 고대 독일어로 Buch(책)이라는 뜻의 'buoh'라는 단어는 원래 '한데 묶인 너도 밤 나무판'이라는 뜻으로 고대시대에는 글자를 적어 넣은 책 구실을 했다 한다. 고대 중국에서도 대나무에 글을 써서 묶은 죽간, 竹刊 모습에서 책, 冊이 나왔으니 동서양이 대략 비슷하다. 나는 다른 어느 책에서 사람가죽으로 책의 장정을 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어느 남자는 자신의 다리 가죽으로 자신의 연애시를 쓴 책을 장정하여 흠모하는 연인에게 책을 바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만일 이 사실을 안다면, 책을 받은 여인의 기분이 어떠할까 퍽 궁금하다. 


 나는 아직까지 책으로 변신할 정도의 독서광은 아니어서 비블리씨 같이 될 걱정은 없어 안심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책을 읽고 자랑한다거나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말을 들으면 몹시 초조해지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에 허둥대기도 한다. 또 신문 Book 섹션을 읽을 때 이런저런 책이 눈에 들어 올 때도 역시 마음이 불편하다. 왜냐면 책은 하루도 빠짐없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읽는 시간은 한정되었기 때문에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사실 책을 읽는데 들어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그래서 가끔 책을 읽는 것 보다 더 유익한 일은 없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책 읽기를 대신하여 다른 여가활동을 하고 후회하지 않는 일은 등산이나 산책 말고는 별로 없다. 다행히 그래도 주변에서 책 읽는 일을 칭찬하는 사람이 많아서 기쁘다. 누구나 칭찬에 기분 나쁠 사람은 없다. 더욱 칭찬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읽어야겠다.


 사실 이 책은 정효원이라는 설계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하던 젊은 친구의 책으로 읽고 돌려주기로 했으나 내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오래 시간을 끌다 이 젊은 친구가 49세라는 짧은 삶을 마치고 올해 2018년 6월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이 책을 돌려주지도 못하고 어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R. I.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