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게으른 산책자를 읽고...

깃또리 2018. 10. 23. 12:38

게으른 산책자를 읽고...

A Stroll through the Paradoxes of Paris

Edmund White 지음. / 강주현 옮김

효형출판

200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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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에드먼드 화이트는 미국인으로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몇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다가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16년을 살았다. 그는 <한 소년의 이야기 > <결혼한 남자>등 많은 책을 썼으며 천재작가 장 주네의 전기를 출판으로 열권의 책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이런저런 공로가 인정되어 '프랑스 예술및 문학회'의 정식회원이 되었다. 2000년엔 도빌 페스티벌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얻었다.

 

 그런데 이 작가는 공공연히 밝히는 동성애자로써 유럽과 미국과 달리 아직 동성애자에 대한 지위와 인식이 부족한 국내 실정으로 책을 읽다 보면 조금은 어색한 점도 있다. 그러다 보니 책의 곳곳에 동성애자의 시각으로 보고 쓴 부분들이 다수 있으며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는 약간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다행히 여행중에 San Francisco 에서 활발한 동성애자들의 행동을 보고 들은 경험이 있어 다소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동성애자의 이해를 돕거나 설명하는 내용은 아니며 내용은 프랑스 파리의 이곳저곳을 문화, 생활사 측면에서 소개하는 글인데 독자는 다행히 짧은 기간이지만 두번에 걸쳐 파리를 관광한 경험이 있어 콩코드광장에서 개선문 부근이 소개 될 때는 당시의 기분이 되살아나 약간의 흥분마저 느끼게 되었다.

 

  작가는 파리를 이렇게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파리는 혼자서 산책하는 사람을 위해 꾸며진 듯한 세계다. 걸어다녀야 색이 바랬더라도 감칠맛 나는 파리의 세세한 부분까지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제목을 게으른 산책자라고 번역한 이유가  책 뒤의 역자 후기에 나와 있지만 파리는 원래부터 어스렁거리며 시내를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하였다. 즉, 파리의 산책 역사는 자못 짧지 않다고 하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로 보들레르를 내세우며 그의 글을 인용하였다. 19세기에 파리를 누빈 산책자 가운데 최고는 보들레르가 지적한 풍자화가로 콩스탕탱 기를 소개하였으며 이 산책자를 이렇게 쓰고 있다.

" 대기가 새의 세계이고 물고기이듯이 민중은 그의 세계다....관찰자는 가면을 쓴 채로 모든 곳에서 즐거움을 끌어내는 왕이다."

 

 작가가 미국인이다보니 프랑스와 미국을 비교하는 재미 있는 대목이 나온다. "미국인들은 인도(보도)를 익명성이 보장된 뒷무대라 생각하지만 프랑스인들에게 인도는 무대자체다. 따라서 미국의 직장 여성들은 회사까지 가는 길에는 외모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지만, 회사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운동화를 벗고 하히힐로 갈아 신는다. 반면 프랑스 여인은 집을 나서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대에 오른 것이라 생각한다...." 나라마다 국민성이 다르고 습관이 달라 이를 문화적 차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보기에 같은 서구인이라도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노예제도와 흑인에 대한 인권 이야기가 나오는데 최근에 읽은 링컨의 전기에서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포한 해가 1862년인데 프랑스에서는 16세기에 이미 노예제도를 페지하였고 1788년 흑인의 권리보장을 위해 '흑인의 친구들' 이란 단체가 결성되었는데 여기에 낯 익은 인물들이 보였다. "철학자 콩도르세, 정치지도자 미라보, 미국 독립전쟁을 이끈 프랑스 영웅 라파예트가 회원으로 가입했다. 계몽 시대에 노예제도 철폐를 앞장서서 주장한 투사, 레날 신부도 흑인의 친구였다."

 

  이 책에서 미국인으로 파리에 건너와 성공한 인물들을 적고 있는데 특히 미국의 인종차별에 실망하여 조국을 떠난 흑인 인물들이 여럿 있다. 이런 인물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으로 시드니 베쳇을 들었다. 그는 천재적인 아프리카계 뮤지션으로 클라리넷과 소프라노 색스폰의 달인으로 위대한 재즈 독주가였다고 한다. 원래 재즈는 미국 뉴올리언즈를 무대로 탄생했는데 이 책에서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그의 전기를 쓴 존 칠턴에 따르면 베쳇은 '아프리카, 미국, 프랑스의 특징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재즈를 만들어냈다. 세상 어디에서도 연주된 적이 없는 새로운 재즈였다' 베쳇은 재즈가 프랑스와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 재즈는 프랑스 지방 이름을 본뜬 뉴올리언즈에서시작 되지 않았던가! 베쳇의 말처럼 ' 프랑스가 아프리카에 더 가깝다.'" 그리고 뉴올리언즈는 프랑스계 이민자들이 아메리카에 개척한 지역으로 '새로운 오를레앙'의 영어식 표기이다.

 

 작가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인사들 중에 많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특히 20세기 들어서 세계문학계를 빛낸 프랑스 동성애 작가로는 의식의 흐름의 작가 마르셀 푸르스트, 전원교향악으로 알려진 앙드레 지드, 천재 작가 장 주네, 장 콕크,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등을 꼽고 있으며 미셀 푸코도 이런 사람의 범주에 든다고 한다.

 

 아무튼 프랑스라는 나라가 역사적으로 봉건왕조를 타파 하느라 많은 피를 흘린 대가로 지금은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이 충만한 나라이며 예술분야에서도 폭 넓은 수용정신을 가졌으며 이런 풍토가 동성애자들이나 흑인들에게 많은 차별없이 활동무대를 제공하였다고 본다. 또한 인간 삶 자체를 철학적으로 파악하는 국민성을 가진 나라 파리는 도시 자체가 한가로이 걸으며 사색할 수 있는 산책자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고 미루어 생각해보면서 책을 덮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