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를 읽고...

깃또리 2018. 10. 17. 12:35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를 읽고...
김연수
창비
2016. 11. 05.


 '창비'에서 펴낸 '20세기 한국소설 50'이란 시리즈에서 배수아, 김연수 외 몇 소설가의 중, 단편이 실린 책이다. 사실 배수아의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와 하성란의 <곰팡이 꽃>에 기대하고 도서관 서가에서 뽑았지만 생각과 달리 김연수의 단편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가 가장 인상 깊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 제각각이고 선호에 차이가 있다. 이 단편 소설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읽어나가다 보면 허구의 소설이 아니고 작가가 마치 일기를 쓰거나 집안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실적이고 최근 시류에도 부합하는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1인칭 화자인 '나'가 아버지와 어머니와 겪는 갈등이나 행동을 묘사되는 부분이 특히 그러하다. 그래서 작가는 타고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였다. 최근 내가 읽은 한강, 배수아의 소설에서 독일을 배경으로 쓴 작품이 있었는데 이 소설도 독일 이야기가 자주 나와 우연치고는 세 작가가 모두 독일을 배경으로 하였다. 작가 소개를 보면 1970년 김천 출생,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졸업, 1993년 '작가세계'에 시로 데뷔하였고 이내 소설로 바꾸어 1994년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다>가 당선되었다 한다. 작가 소개 난에 "다양한 스펙트럼의 지적 편력과 서사적 실험을 거치면서 지난 시대의 풍경이나 사건 등을 실감 나게 재현하고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문명과 야만 등을 넘나들며 삶의 미래를 탐색해왔다."라고 작가의 소설 세계를 간단하게 평하였다.

 

  소설 내용은 생일이 조금 늦은 동갑내기 배 다른 동생을 둔 주인공 '나'가 이복동생 '재식'과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고통을 받는다. 독일에서 돌아온 '나'는 그동안  남몰래 쌓아 둔 마음속의 짐을 벗기 위해 '재식'의 거처를 찾아 만나보기로 하고 그전에 재식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르네 마그리트의 여섯 개의 그림을 모아 놓은 포스터 북과 미셸 푸코가 쓴 <This Is Not a Pipe>를 구입한다. 나는 재식을 만난다. 정작 재식은 언제나 '나'에게는 패배자였지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출 후 홀로서기하여 중학교 미술선생이 되어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해가 진 어스름부터 시골 가게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나'는 재식이 품고 있던 생각들을 비로소 잠잠히 들으면서 마그리트 그림에도 눈길을 주었다. '나'는 그림을 보면서 "재식과 나는 완전히 같지도 않지만, 전혀 다른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재식의 세계는 뒤집힌 나의 세계이며, 나의 세계 역시 뒤집힌 재식의 세계였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사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크게 다를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별반 다를 바 없고 서로 뒤집힌 세계를 살고 있다는 말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는 말에 동감한다. 소설 마지막 페이지는 '나'가 독일행 비행기 표를 들고 공항 탑승구를 걸어가는 뒤에서 어머니가 '다음에 올 때는 제발 참한 색시 하나 만들어서 와라.'라고 하자 "이제 겨우 무덤 하나를 무너뜨리고 가는데, 또 어머니가 만드는 그 무덤 속으로 들어가란 말인가? 나는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로 끝난다.

 

 벨기에 출신 르네 마그리트(Rene-Francois Ghislain Magritte 1899~1967)는 초현실주의 미술가로 1953~1954년 <빛의 제국, The Empire of Light>을 그렸는데 이 그림이 현대미술에서 팝아트와 그래픽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다. "나에게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라는 그가 한 말이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내가 출퇴근하며 지나치는 어느 도로변에 위치한 높은 빌딩 벽에 이 글귀가 크게  붙어있어 낯익은 문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빛의 제국>이 내게는 초현실주의 그림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튼 최근 읽은 단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