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에세이스트의 책상>을 읽고...

깃또리 2018. 10. 16. 12:41

<에세이스트의 책상>을 읽고...
배수아
문학동네
2016.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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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략 10년 전쯤 일군의 국내 젊은 여성작가들이 각종 문학상 수상자로 매스컴에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한강, 배수아, 편해영, 권여선, 황정은, 김애란 등으로 기억된다. 권여선(1965~ )은 1996년 <푸르른 틈새>로 1996년 등단, 배수아(1965~ )는 1993년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으로 등단하여 2004년 <독학자>로 동서문학상 수상, 한강(1970~ )은 2005년 <몽고반점>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 황정은(1976~ )은 2005년 <마더>가 신춘문예에 당선, 편해영(1972~ )은 2000년 <이슬털기>로, 김애란(1980~ )은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2002년 등단하였다. 당시 이들의 작품을 몇 읽어보니 이전에 내가 읽었던 글에 비해 문체와 작법이 사뭇 다르고 소설 내용도 읽기가 거북하고 흥미가 없었다. 아마 내가 이청준, 이문열 또는 그 이전 작가들의 소설에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이 들으면 어이없어할 또 다른 이유로 배수아, 한강의 소설에 손을 대지 않았다. 소설가라면 뭔가 생각이나 옷을 입은 모습이 일반인과 다르고, 이름도 작가에 걸맞아 한다고 생각하여 배수아. 한강이란 이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름이 ‘수아’. ‘강’이라니 너무 가볍고 품위 없다 생각했었다. 하긴 이름이란 할아버지, 아버지가 손자, 아들, 딸이 태어나면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름을 지어받기 때문에 나의 이런 생각에 작가들은 화를 낼 일이다.


 아무튼 올해 한강의 영국 ‘맨부커 국제상’ 수상이 계기가 되어 나는 한강의 소설 <희랍어 수업>을 구입하여 읽고 배수아의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를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권 모두 술술 읽히는 소설이 아니어서 다시 읽어보려 한다. 그러고 보면 이제 이 두 사람도 젊은 작가라고 하기엔 나이가 적지 않다. 한강씨가 1970 년생이니 올해 46세이고 배수아씨는 65년생이니 50을 넘었다. 세 번째 읽은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우연히 도서관 서가 사이에서 서서 읽은 장석주의 산문집 <장석주의 비주류 본능>에서 추천한 세 권의 책 중에 한 권이다. 나머지 두 권은 서정인의 <모구실> 하일지의 <진술>로 모두 읽었다.


 이 책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작가의 말'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소설이면서 에세이 형태를 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독일 베를린과 베를린 근처 작은 도시이며 등장인물은 다섯 사람 정도이다. 이 소설의 특징으로 주요 등장인물들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더구나 주인공 '나'는 한국인으로 20대 중반 쯤으로 짐작되지만 역시 여성인지 남성인지 끝까지 읽어도 가늠키 어렵다. 주요등장 인물로 화자인 '나' 그리고 '나'가 사랑하는 독일인 M과 , 역시 독일인 요하임과 에리히 그리고 후반부에 나오는 한국인 '수미' 이다. '나'는 ‘M’을 사랑했다고 하지만 글 어디에도 열정적 사랑을 표현하는 부분은 없다. 기껏 이런 문장을 읽을 수 있다.


 "'나'는 ‘M’의 맨발을 다 닦은 다음 바닥에 앉아 M의 젖가슴 위에 머리를 기울이고 M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었다. 내 머리칼은 빗물과 습기 때문에 축축했는데 ‘M’은 그것을 가슴에 꼭 안고 있었다." 이 글로 보면 '나'는 남성 같고 ‘M’은 여성 같다. 그러나 '나'는 ‘M’과 결별하는 이유에서 "M은 나의 세 번째 독일어 강사였던 에리히가 페니스를 가진 남자이며 보통의 여자들이 추구하는 보통의 쾌락을 재공 한다고 하며 단지 순수한 육체적 호기심 때문이라는 변명에 수치심과 분노하였다." 그렇다면 이글로 보아 에리히는 남성이고 ‘M’은 여성으로 보인다. '나'가 여성이라면 ‘M’과는 레즈비언 사이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런 부분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배수아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병무청 공무원으로 잠시 일하다 독일에서 1년 독일어를 배우고 번역자 겸 전업작가가 된 사람으로 글쓰기와 음악에 깊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 왜냐면 배수아의 글에는 빠짐없이 글쓰기와 음악 특히 서양음악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이 소설이면서 에세이 형태라고 앞에서 말했는데 글쓰기와 음악 특히 음악에 대한 내용이 전체의 1/3 이상을 차지한다. 나는 글쓰기를 자신 있게 말할 수준은 아니지만 글 읽기는 보통 사람보다 조금 많은 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음악에 대해서는 글 읽기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많은 관심을 두었다. 책 읽기는 시간과 장소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악을 듣기가 수월하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음악은 조용한 곳에서 마음 편하게 스피커에서 울리는 음악을 들어야 제격이다. 더욱이, 콘서트홀에 가는 일은 일 년에 겨우 몇 번뿐이어서 항상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나는 음악에 대한 관심은 잃지 않고 있다.

 이 책에서 음악에 대한 정의와 찬사가 줄줄이 나와 몇을 옮겨본다.


 주인공 '나'가 M을 소개하는 소설의 첫 부분에서 "책과 언어가 M에게 절대적인 세상의 징표였다면, 음악은 접근할 수 없는 정신이고 종교이고 영혼 그 자체였다." '나'가 초대받은 어느 슈베르트 애호가 집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주인은 "우리가 들은 슈베르트 음악은 그의 전부이며, 그것을 사랑하는 나의 전부이고 온 영혼으로 말하는 쾌락이고 창세기와 묵시록, 이 세상의 시작과 종말이다." 이 대목에서 프란츠 슈베르트에 대한 이야기가 한 페이지 이상 나온다. 내가 별도로 슈베르트의 전기나 평전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고 있던 내용들이 나와 흥미롭다. 나는 슈베르트가 30세 조금 넘은 나이에 요절했으며 가난과 질병 속에 살다 세상을 떠났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평생 가난했고 무명이었으며 외모도 못생긴 편이어서 어느 여성으로부터 사랑도 받지 않았고 더구나 피아노 연주자였으나 손가락이 짧고 굵었으며 근시에 과음으로 항상 부스스했다 한다. 슈베르트 다음으로 쇼스타코비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쇼스타코비치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그가 병원에 있으면서 완성한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죽음에 대한 강한 예감이 느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많은 사람들이 바흐의 케논을 좋아한다. 나 역시 좋아한다. 바흐의 음악은 기교가 없고 단순해도 깊고 넓다. 그래서 바흐의 음악을 ‘바다와 같다'라고도 한다. 우리는 ‘바하’로 표기했었고 실제 발음은 ‘바흐’로 독일어로 ‘시냇물’이지만 그의 음악은 바다이다. 케논 모음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747년 포츠담에 있는 프리드리히대왕을 바흐가 방문했을 때 왕으로부터 받은 주제를 기본으로 그가 했던 즉흥연주를 토대로 작곡한 것이라 한다. '케논'과 '트리오 소나타'와 '푸가'로 이루어진 바흐의 이 '음악의 봉헌, Musical Offering, Musikalisches Opfer in C Minor BWV 1079'은 바흐의 수많은 곡들 중에서 내가 가장 먼저 좋아하게 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이곡들이 결국 한 대왕에게 바쳐진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인 의미 '제물'라란 뜻을 가진 단어에서 유래된 '봉헌'이나 ‘헌정’ 등으로 이름 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많이 실망하였다. 그는 1750년 죽었다."


 '나'는 ‘M’과 헤어졌으나 ‘M’을 그리워하며 긴 회상으로 사랑, 언어,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이 부분에서 "나는 ‘M’에게서 언어를 배우는 대신 음악을 배워야만 했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언어가 아니라 음악으로 대화를 나누었더라면 M에게 완전히 놓여나든지 아니면 ‘M'완전히 소유했을 것"이라는 후회도 곁들인다. 이 회상에서 'M'의 입을 빌린 마지막 문장은 "음악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에게 속하지 않는 어떤 것이다."라는 최상의 찬사가 나온다.
 
 어느 소설을 읽고 시간이 지나면 줄거리를 잊기도 하고 어느 땐 읽었던 기억조차도 없는 경우가 있다. 나는 책을 읽고 바로 재차 다시 읽은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는 2000년 맨부커 상을 받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이다. 대개 몇 년 후에 다시 읽는 경우는 많지만...그러나 배수아의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이틀이 지나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그 이유로는 음악에 대한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서였고 다음으로 주인공 '나'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나'는 분명히 한국인으로 국내에서 대학을 다니고 독일 베를린에서 독일어를 배우는 사람이다. 언어, 음악 그리고 독일에서 독일어를 배운 사람이니 작가 배수아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학교 선생들의 지시에 따라 학습하는 걸 싫어하여 독학을 좋아하지만 독일어는 너무 힘들어 독일사람 선생으로부터 배우길 원했다. 학교는 물론 여럿이 배우는 학원 같은 곳도 싫어 혼자 또는 두서명이 배우는 소위 일대일 수업으로 독일어를 공부한다. 'M'은 두 번째 선생이고 언어학 전공이고, 이상주의자, 예술지상주의자로 잘 생긴 사람이지만 허약하다. 베를린 가까운 작은 도시 시때포슈의 '겨울공원' 근처에서 산다. '나'는 한 달간 'M'에게 독일어를 배우고 마지막 시기엔 '선생이 아니라 함께 살았다"라는 문장으로 보아 3주는 선생, 1주일 정도는 동거정도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요하임은 'M'과 친구이다. 그러나 성향이 'M'매우 다르고 생활환경도 다르다. 요하임은 어머니가 복잡한 남자관계로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스스로 벌어 늦게 대학에 다니는 사람으로 물리학을 공부한다. 티비를 경멸하는 현실론자이며 돈을 버느라 용접공으로 일한 경험도 있고 23살에서 25살 정도로 여겨지며 베를린 시내에 산다.


 에리히는 세 번째 독일어 선생이지만 '나'를 지도하는 기간도 역시 한 두 달 정도로 보인다. 훔 볼트 김나지움 출신으로 영어와 독일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에리히는 수업시간엔 엄격하지만 그외 시간엔 즐거운 사람으로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을 불러 파티도 열었다. '나'가 여성인지 남성인지를 가늠케 될 힌트가 되는 부분으로 파티에 참석해야 하는 '나'가 옷이 마땅치 않다고 하자 'M'이 "여자애들에게 전화해서 빌려 달라고 해 볼 수 있어"라 한다. '나'가 여자임을 분명히 나타내는 문장이다. 또 에리히가 파티를 열었던 날 자신의 부엌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이 모인 거실을 향해 "아가씨들!"이라 부르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책 후반부에 '나'가 서울로 돌아와 스위스 부모와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수미'와 어울려 지내는 부분에서 수미는 분명히 여성으로 나오고 '나'와 두 사람이 함께 영화를 보고 나와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다음의 문장으로, "수미는 근심스럽게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커피 탁자 위에 놓인 내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꼭 감싸 잡았다. 나는 좀 당황했다. 수미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노골적으로 애정을 표시하는 편이 아니었다." 이 부분으로 보면 '나'는 남성 같이 보인다. 작가는 치밀하고 의도적으로 '나'의 성별을 독자들이 가늠하기 어렵게 장치했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작가 배수아의 문학작가로서의 의식세계를 엿 볼 수 있는 부분이 이어진다.

 수미는 화장술이나 패션에도 뛰어났다. 매우 세련되어 보이는 외모이면서 마음은 소박하고 친절했다. 그린피스, 야생동물보호, 반전평화운동, 채식주의, 티베트불교, 발랄라이카연주, 시베리아지방, 사형제도폐지, 레즈비언 어머니들을 위한 모임까지 수미는 관심을 갖거나 가졌던 테마는 다양하고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나'는 이 수미에게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다.


 긴 문장 중에서 "수미는 인간이 가장 비속하게 오감에 충실할 때 사랑하게 되는 것들을 스타일리시하게 사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수미는 수많은 '군중 속의 한 사람'이고 반면 ‘M’은 내가 영혼을 바쳐 읽지 않으면 안 되는 '마치 그림이 전혀 없는 책과 같다'라 하였다.

 '나'가 쇼스타코비치 다음으로 페이지를 할애한 음악가는 ‘베른트 알로이스 침머만’이었고 이 작곡가가 우울증으로 고생하다 자살하기 5일 전에 쓴 두 작품을 길게 이야기 한다. 마지막 부분은 ‘M’에게 편지를 쓰는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M’에게 무엇인가 쓸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내 책상은 그것이 어디에 있든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장소가 되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책의 제목에서 들어있는 책상이 처음으로 나오는 부분으로 이 소설이 에세이로도 구분되는 이유를 제공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