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죽은 자로 하여금>을 읽고...

깃또리 2018. 10. 11. 10:50

<죽은 자로 하여금>을 읽고...
편해영 장편소설
(주)현대문학
2018. 08. 10.


 일반적으로 책 한 권을 읽으려면 최소한 대여섯 시간이 걸린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동안 함께 할 책을 고르는 일은 항상 쉽지 않다. 이미 검증된 책을 보려면 고전으로 알려진 책을 고르면 되지만 고전만 읽기는 따분하여 최근 출판된 책을 찾아보는데 이 일도 역시 간단치 않다. 신문이나 여러 매체의 서평이나 저명인사의 추천을 참고하기도 하지만 가끔 실망하기도 하고 너무 어렵거나 취향에 맞지 않아 책을 내려놓을 때도 있다. 어느 책을 읽다가 도중에 그만 두는 일 또한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려운 책일 때는 내가 이 정도의 책도 감당치 못하는가 하는 자괴감으로, 취향이 맞지 않을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은 다 좋아하는데 나만 그런가 하는 생각으로 그래서 대개 일단 손에 든 책은 대부분 끝까지 읽는 편이다.


 왜 내가 이런 긴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이 책을 고르는 데도 몇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올해 2018년 4월 출간으로 최신간이고, 둘째는 국내 일군의 여성작가 중 인기 순서로 편해영씨는 비교적 앞줄에 서 있는 작가이며, 셋째는 제목이 뭔가 의미가 깊은 듯한 느낌을 주었으며 마지막으로 표지가 하드커버에 크기도 휴대하기에 좋은 120cmx180cm에 두께도 2cm정도로 보기에 좋았다. 편해영 작가의 이름도 어쩐지 작가로 어울리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면 재미있는 소설을 쓰긴 하지만 김애란보다는 더 작가적인 이름이다.


 만일 내가 언젠가(물론 이런 일이 쉽지 않겠지만...)책을 펴낸다면 이런 판형의 하드커버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소설, 책 내용은 한마디로 별 감흥이나 재미가 없다. 책 뒤의 황종연이 쓴 <작품해설>의 첫 문장은 "편해영이 <죽은 자로 하여금>에 그려놓은 이인시는 아마도 김승옥의 무진, 박완서의 현저동, 조세희의 행복동, 신경숙의 구로동 등과 함께 한국 문학 독자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이다. 사회소설의 테두리에서 작품에 등장하는 동네들을 단순 열거하는 일은 몰라도 내가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사랑하고, 높이 평가하는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같은 줄에 세워 이야기 하는 일은 동의하기 곤란하다. 나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서도 작가가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대강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소설의 지리적 배경은 서울에서 가까운 '이인시‘라는 작가가 설정한 가공의 항구 도시로 한동안 크기가 세계 몇 번째에 꼽히는 골리앗 크레인이 움직이던 조선소가 있는 도시였으나 조선업이 쇠락하여 골리앗 크레인이 다른 나라로 팔려 나가고 조선소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진 썰렁한 도시이다. 위치는 다르지만 거제도 조선소를 모티브로 삼은듯하다. 주요 등장인물인 '이석'은 조선소가 생기기 전 이곳 고등학교를 나와 간호보조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이 도시의 종합병원인 '선도병원'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며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였다. 또 다른 주인공 '무주'는 이석보다 약간 나이가 적으며 서울 어느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윗사람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고 마무리하려다 뒷일이 잘 풀리지 않아 선도병원으로 직장을 옮겨왔다. 무주는 선임자 이석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나 그의 과거 업무상 비리를 알게 된다. 오랫동안 고질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우리나라 병원의 각종 부조리한 문제를 배경으로 인간관계, 양심 지키기, 타인과의 갈등, 선과 악 그리고 산업사회 영리조직에서 일어나는 제반문제를 다루었다. 황종연은 자신의 해설 제목을 <신자유주의의 시대의 공포와 희망>이라 하였고 소제목은 1. 메디칼 드라마 서사의 전복 2. 생존의 기업화, 사회의 경제화 3. 불안, 공포 그리고 시간의 끝 4. 비극 대 소설 5. 희망의 태아를 감싸는 두 손 으로 나누어 무려 39페이지에 걸쳐 자신의 문학적 견해를 밝히고 있다.


 나는 일부 긍정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긴 해설을 읽었으나 다른 글에서도 자주 마주했던 '신자유주의'가 궁금하여 이 기회에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알아보았다. "19세기의 자유방임적인 자유주의의 결함에 대하여 국가에 의한 사회정책의 필요를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의 자유기업의 전통을 지키고 사회주의에 대항하려는 사상"으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안에서도 어느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가 있을 텐데 조금 궁금하다. 또한 이 소설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공익성이 요구되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자본주의의 폐단을 고발하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내가 이 소설을 읽느라 보낸 몇 시간이 그리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공익성을 이야기 할 때 어김없이 학교, 병원을 앞세운다. 그나마 학교는 비교적 국가 관리체제로 유지되지만 병원은 대부분 자유경쟁원리에 따라 운영되면서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갖은 병폐를 안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어느 의미에서 사회고발 소설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 소설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 병원 시스템 혁신에 기여해야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소설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해설을 읽기 전 전혀 신자유주의에 대한 암시를 받지 못한 점이 나의 소양부족은 아닌 가 자책하며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