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생명의 한 형태, Une Forme de Vie>를 읽고...

깃또리 2018. 9. 14. 10:28

<생명의 한 형태, Une Forme de Vie>를 읽고...
아멜리 노통브/ 허지은 옮김
문학세계사
2016.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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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오랜만에 노통브의 소설을 다시 들었다. 비교적 짧은 소설이며 소설의 전개는 크게 변화없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반전이 한 번 일어날 뿐이다. "오늘 아침, 나는 새로운 유형의 편지를 받았다."라는 첫 문장으로 소설 속의 내레이터 '나'의 이름은 바로 작가 자신 아멜리 노통브이다. 원래 작가 노통브는 독자들에게 편지 답장을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 해도 창작활동과 여행 그리고 각종 행사에도 부지런히 참석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수많은 독자들에게 답장 편지를 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인데 아무튼 독특한 소설만큼이나 개성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이 창작된 배경을 소개하였다. 이라크 바그다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이등병 멜빈 매플은 6년 넘게 전쟁을 치르면서 자신의 비참한 삶을 알리려고 노통브에게 2008년 12월 18일 처음 편지를 보내며 답장을 기대한다고 했다. 작가는 처음엔 장난 편지인가 이리저리 생각해보다 장난 편지나 가짜 편지는 아닌듯하다고 여겨 무시 할 수 없다 생각하여 중립적 해결책으로 자신의 책 중에서 영어 번역판에 헌사를 적은 책 한 권을 보냈다. 39살의 미군 매플은 무슨 이유든 간에 인간이 인간을 살상하는 전쟁에 환멸과 좌절을 느끼고 폭식을 하여 몸무게가 거의 200킬로그램에 불어난 것을 하소연하는 편지를 보냈었다. 노통브는 미국행정부의 반감을 표시하며 매플을 위로하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는 방식을 통하여 독자들이 편지를 읽도록 하며 그 내용에 전쟁에 대한 작가의 견해 그리고 편지 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였다. 작가는 일단 아는 것이 많아야 하고 자신이 아는 것을 독자들이 흥미를 느껴 읽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으로 보면 노통브와 같은 작가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에서도 맬빈의 몸이 엄청나게 불어나 몸에 맞지 않는 군복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군대의 '부대' 'corps'와 '시체, corpse'를 언어의 유희대상으로 삼았다. 나도 이 단어를 꽤 오래 전에 대했을 때 미국의 공병대에 해당하는 COE가 Corps of Engineering 이므로 발음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었다. 즉 부대의 corps는 '코:ㄹ~'이고 시체는 '코:프스'에 가깝기 때문이다.


 후반부에서 맬빈은 사실 자신은 이라크에 주둔한 병사가 아니며, 미국에서 인터넷 서핑으로 세월을 보내는 한심한 사람이며 단지 노통브의 관심을 얻고 싶어 사기 편지를 보냈다고 고백한다. 노통브가 까다롭고 시니컬한 사람이어서 자신의 편지 답장을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여러 번 답장을 해주고 속아 넘어가 마음이 편치 않고 이제 더 이상 사기 행각을 하고 싶지 않다며 용서를 빌었다. 한 동안 노통브는 멍하니 정신을 놓았으나 다시 생각해보고 멜빈에게 답장을 썼다. "나더러 용서를 하라고 했나요, 하지만 용서를 하고 말게 하나도 없는걸요. 당신을 용서한다는 건 당신이 나에게 잘못을 했다는 뜻이잖아요. 당신은 잘못한 게 없어요."라 하였다.


 오히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작가는 약간 사기 기질이 있으며 오히려 멜빈에게 위대한 대가라고 칭찬한 노통브는 멜빈과 주고받은 편지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벌꿀이 든 빵을 먹으며 편지 끝에 의례적으로 쓰는 영어 'Sincery'에 해당하는 불어 'Sincere'의 어원이 꿀과 관계가 있다 했다. 즉, "Sine cera"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밀랍이 없는' 의미로 깨끗하게 거른 최상급 꿀이라 했다.


 멜빈은 노통브가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까지 하자 감격하여 긴 편지를 썼다. 이 편지 속에 그간 노통브에게 받은 편지를 묶어 제목을 '생명의 한 형태'로 했다 한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거짓말 편지를 쓸 수 없어 편지 마지막에 "이제 내가 살아야 할 이유로는 뭐가 남았나요?"라는 질문을 하였다. 답장을 받은 노통브는 멜빈을 만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멜빈은 꿈인가 생시인가 놀란다. 노통브는 자신이 왜 이렇게 무모하게 행동하는지를 따져본다. 그 이유 중에 멜빈은 역언법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역언법(逆言法, paraleipsis)이란 어휘는 처음 보았다. 옮긴이의 설명으로는 "중요부분을 생략함으로써 오히려 주의를 끄는 생략법"이라 하였다. "역언법을 쓰지 않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인데, 나는 말이지, 의미론적인 확신이 있다면 아무리 먼 곳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거든. 나에게 언어란 가장 차원이 높은 현실이란 말이야."라는 구절이 나온다.


 작가의 평소 신념, 성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노통브의 소설이 나에게 흥미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비롯한다. 내가 평소에 언어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 노통브 소설 곳곳에서 발견되는 언어에 관한 지식이 소설의 구성과 함께 어우러져 빛을 발휘한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노통브가 미국 워싱턴 공항에 도착하기 전 기내에서 미국에 발을 디딜 것인가 아니면 고의로 테러리스트를 자청하여 관타나모 수용소로 갈까 하는 망설임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다분히 미국의 전쟁수행에 대한 조롱과 편지쓰기에 대한 찬사를 보여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