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깃또리 2018. 9. 6. 09:45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김훈
문학동네
2016. 05. 28.



 오랜 만에 김훈씨의 글을 읽었다. 전에 신문을 구독할 때는 때때로 신문 칼럼에서 김훈씨의 글을 읽곤 하였으나 1년 가까이 신문을 보지 않다보니 책 이외 활자로 된 글 읽기가 대폭 줄어들었다. 지방 근무가 끝나면 다시 신문을 볼 까 한다. 이번 책은 사무실 직원으로부터 빌려 보았다. 1부 밥, 2부 돈, 3부 몸, 4부 길, 5부 글로 모두 단음절 소제목이다. 단음절은 대부분 인간의 사고나 생존에 가장 원초적이고 불가결한 요소인 경우가 많다. 생각해보니 특히 우리말에서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인간의 생존에서 최우선인 밥, 몸이 그렇고 갈수록 중시되는 돈, 그리고 삶의 행로에서 의사소통과 정보교환 수단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길과 글이 그러하다.


 책 제목이기도한 '라면을 끓이며'의 글에는 우리나라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에겐 주식으로 또 다른 사람에겐 간식으로 오랜 기간 동안 대접받는 라면에 관한 단상이다. 원래 라면은 서민음식으로 치부되기 때문에 라면을 자주 먹는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비교적 적다. 그러나 김훈씨는 스스럼없이 그간 라면을 애용했다는 사실을 세세히 밝히고 있다. 하긴 김훈씨라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조금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고 돈 앞에 비굴하게 몸을 낮추거나 돈에 집착하여 연연했던 성격의 인물이 아니기에 허름한 식당에서 라면 한 사발로 끼니를 간단히 때우는 일이 많았으리라 짐작된다.


 김훈씨의 글을 읽다보면 같은 라면을 먹었지만 글을 쓰고 생각이 깊은 사람은 느끼는 점도 다르고 표현도 다채롭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김훈씨는 라면을 어떻게 끓이면 자신의 입맛에 맞을까 이 궁리 저 궁리하여 나름대로의 방법을 터득한 내용을 세세히 밝히고 있다.
 "라면을 끓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국물과 면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이것은 쉽지 않다. 라면 국물은 반 이상은 남기게 돼 있다. 그러나 그 국물이 면에 스며들어 맛을 결정한다. 국물의 맛은 면에 스며들어야 하고, 면의 밀가루 맛은 국물 속으로 빼나오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고난도의 기술이다. 센 불을 쓰면 대체로 실패하지 않는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것은 일반 국물음식에 해당되는 원리 일 것 같다. 김훈씨는 라면을 먹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비싼 도자기 그릇에 담아서 깨끗하고 날씬한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먹는다 했다. 무릇 음식이란 대부분 우열이 없고 목을 넘기면 그게 그 것인 경우가 태반이다. 맛있다. 라는 것 역시 혀의 미세포인 미뢰가 신경세포를 통하여 뇌에 정보를 전하여 맛을 느끼게 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맛이란 부질없다. 왜냐면 이제는 대부분 배가 고프거나 영양섭취가 모자라서 음식을 먹는 게 아니고 맛을 우선하고 맛을 내는 일에 조바심을 부리다보니 갖은 조미료와 양념을 첨가하거나 심지어 불순물을 보태기도 하여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결국 음식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조금 과장하면 예로부터 속담에 “양약고구”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와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말은 속담으로 알고 있었으나 공자님 말씀이라 한다.
 
良藥苦口而利於病
忠言逆於耳利於行

 
그래서 나는 어느 식당의 음식 맛이 지나치게 좋으면 오히려 음식에 경계심이 들고 조금 거친 음식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
 
두 번째의 글인 '광야를 달리는 말'은 김훈 자신 아버지 김휘(1910~1973)에 대하여 쓴 글이다. 오래 전 김훈씨가 쓴 어느 책에서도 아버지에 대하여 쓴 적이 있어 일부는 알고 있는 내용이다. 아버지는 정식 문학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60년대 초반 무협소설계통인 <정협지>라는 책을 써 돈도 벌었다 했으나 주변에서 3류 작가라 깔보아 속상해 했다 한다. 또한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상해임시정부 수반 김구선생으로부터 야단맞은 일을 평소에 자랑스러워하고 가끔 상해시절 선배들의 무덤을 찾아가 풀을 쥐어뜯으며 울었다 한다. 그래서 김훈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그 선배들 무덤 가까이에 유택을 마련하였으나 겨울에 돌아가시고 하관하는 날 날이 너무 추워 한나절이나 언 땅을 파야했다 한다.


세 번째 <바다>는 경북 울진 죽변의 바닷가에 자리한 해양연구소인 '동해연구소'라는 곳에서 집필실과 숙소 그리고 구내식당을 제공하여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8개월 가량 생활하면서 느낀 꽤 긴 산문이다. 글을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정부에서 가난한 문인들을 위해 이런저런 지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동해연구소와 같이 정부가 운영하는 전국 곳곳의 연구소 시설에 빈방이 생기면 인터넷으로 공지하여 작가들에게 이용하도록 한다면 큰 비용 없이 작가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이 될 것 같다. 도시에서 떨어진 연구원들에게 가끔 문학 강의도 한다면 더욱 좋은 일일 것이다.


<남대평양>은 김훈씨가 2012년 7일 간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섬들을 여행하고 난 다음 쓴 글이다. 글 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부분은 남태평양 이야기보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5년 간 바다를 누빈 이야기를 간단히 적은 글이다. 이 5년의 항해를 바탕으로 다윈이 후일 <종의 기원에 대하여>란 논문은 사실 ‘자연선택의 방법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 경쟁에 있어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대하여’ 란 긴 제목이며 생물의 진화를 밝히고 그간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창조론에 회의를 일으키도록 하여 인류의 의식을 바꿔 놓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무려 185년 전인 1831년 영국 포츠머스 항구를 떠날 때 다윈은 22살, 영국해군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비글 호의 선장 피츠로이(1805~1865)는 약관 26살이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당시 통신장비나 항법장치도 없었으며 오직 바람에 의지하는 범선으로 그 넓고 사나운 바다를 떠다니며 무려 5년이나 항해를 했다니 한마디로 경이롭다. 나는 몇 년 전에 다윈의 삶에 매료되어 두툼한 <다윈 평전 1>을 구입하였으나 차일피일 지금까지 미루어 지금까지 먼지만 둘러쓰고 서가에 꽂혀있다. 올 해 안으로 읽기를 시작해야겠다.


 김훈씨의 책이 소설이라면 서너 페이지의 후기로 충분하겠지만 수십 개의 내용이 다른 산문집이라서 앞에서 반의 반의 내용도 쓰지 않았지만 길어져서 이쯤해서 끝을 내기로 하고 혹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이 책을 꼭 구입하여 읽기를 권하는 편이 온당할 것 같아 쓰기를 마친다.

그러나 책 표지 다음에 나오는 '일러두기'는 이러함을 밝혀둔다.


- 오래 전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밥벌이의 지겨움>, <바다의 기별>에 실린 글의 일부와 그 후에 새로 쓴 글을 합쳐서 엮었다. 이 책의 출간으로 앞에 적은 새 권의 책과 거기에 남은 글들은 모두 버린다.-

나는 원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마음에 드는 책은 다시 읽기 위해 새 책을 구입한다. 김훈의 여러 권 책 중에서 <바다의 기별>이 그 중 하나여서 내 빈약한 서가에 꽂혀 있다. 저자가 버리는 책에 이 책도 끼어 있어 조금 섭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