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조르바를 위하여>를 읽고...

깃또리 2018. 9. 11. 09:01

<조르바를 위하여>를 읽고...
김욱동
민음사
2018. 7. 10.


 집 근처에 서점이 없어 아쉽게 생각하던 차에 퇴근길에 몇 걸음 더 돌아가면 닿는 곳에 <Life Books>이라는 멋진 서점이 문을 열었다. 원래는 수입의류와 잡화 그리고 몸에 지니는 소품을 팔던 가게였는데 문을 닫고 서점이 들어서서 반가우면서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서점이 잘 될까 걱정이 앞선다. 1층 서점 아래는 지하층이지만 시야가 막히지 않은 계단으로 이어져 지하실 같은 느낌이 없는 공간에 커피 샾이 있다. 일반 서점과 달리 서가는 벽 쪽에만 두고 공간에 책상을 배치하고 책상 위에 책 표지를 볼 수 있도록 진열하여 표지를 보고 쉽게 책을 고른 다음 곳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책을 펴 볼 수 있게 하였다. 다른 서점처럼 책등의 제목만 보고 서가에서 책을 뽑아보기보다 이렇게 책표지를 본 다음 책을 고르면 훨씬 친근감이 더해지고 자연스럽다. 진열된 책은 소위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아니고 다른 서점에서는 어디서 찾아야 할 지 모르는 독특한 내용의 책들이 많다. 갈수록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들고 서점도 대형화 하는 추세에 이런 서점은 한마디로 책을 사려는 사람에겐 즐겁지만 이런 곳에 서점을 열면 하루에 몇 권이나 팔릴까 내심 걱정스럽다.


 아무튼 나는 서점 첫 입장을 스스로 기념하기 위해서 책 두 권을 샀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집에 두 권이나 있으나 그리스어-영어-한글로 중역된 책이기 때문에 그리스어 전공자가 직접 그리스어에서 우리말로 옮긴 책이어서 주저 없이 구입하였다. 마침 이 책 옆에 김욱동교수가 쓴 <조르바를 위하여>라는 책이 보여 함께 구입하였다. 이 책의 부제목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삶과 문학'이며 그리스의 크레타 섬 출신 카잔차키스의 소개와 그가 쓴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관한 내용을 적은 책이다. 내가 읽은 어느 글에서 카잔차키스가 노벨 문학상 후보에 두 차례 오른 적이 있으나 막상 상은 타지 못했다 하였는데 이 책의 저자 머리말에는 1951년과 1956년을 비롯하여 무려 아홉 차례나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타지 못했다 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로 2014년 피터 빈이 새롭게 영어로 옮겨 출간한 번역본을 바탕으로 자신이 <그리스인 조르바(민음사)>를 새롭게 번역하였기 때문이라 하였다. 과거 번역본들이 그리스어에서 직접 한글로 옮긴 것이 아니라 프랑스어 판을 영어로 중역하여 다시 우리말로 옮긴 번역본이라 원전에 못 미치는 부분이 많다하였다. 책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1. 크레타 섬의 이단아 니코스 카잔차키스
 
 1) 카잔차키스는 그리스 아테네 법과를 졸업하고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유학을 마치고 1914년 동료 시인이자 친구인 앙겔로스 시켈리아노스와 함께 고국 그리스 곳곳을 여행했다. 카잔차키스는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통하여 인간적 성숙과 함께 문학적 소양을 쌓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프롤로그에서 "내 삶에서 큰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라 쓰기도 했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를 떠나 머물렀던 곳은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이탈리아, 러시아, 스페인이었고 여행한 나라는 키프로스, 이집트, 시나이 산, 체코슬로바키아, 니스 그리고 1935년에 중국과 일본이었으며 1957년엔 당시 중국 공산당 정부 수상이었던 주은래(저우언라이)의 초청으로 두 번째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2) 크레타의 이단아


 카잔차키스는 1883년 3월 3일 크레타의 제일 큰 도시이며 항구도시인 이라클리오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농사를 지으며 농산물과 포도주를 사고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 미할리스와 어머니 마리아 밑에서 태어났다. 1902년 이라클리오 김나지움 과정을 마치고 이테네 법과 대학에 입학하여 1906년 '프리드리히 니체의 정의철학과 국가'라는 논문 제목으로 '주리스 독도르, Juris Doctor'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여기 doctor가 들어가 박사로 혼동하기 쉬우나 당시는 학사, 석사, 박사를 통틀어 부르는 호칭이라 요즘으로 치면 법학학사 학위와 같다 한다. 1907년 파리 소르본 대학교 법학대학에 입학하여 똑같은 제목에 논문 내용을 일부 고쳐 써서 1909년 졸업하였다. 당시 대학교의 수학기간도 지금처럼 4년인데 소르본에서 2년을 공부하고 마친 걸 보면 아테네 대학교육 4년을 인정하여 소르본에서는 3 학년에 편입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이렇게 대단한 작가에게 대학교 교육 기간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궁금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후일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인물을 몇 사람 거론하였는데, 프리드리히 니체와 소르본 대학교 은사였던 앙리 베르그송 교수이며 그의 강의는 평생 그의 철학, 문학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하였다.


3. 민족주의자에서 세계주의자로.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이탈리아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와 그리스와 크레타의 민족정신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여러 활동을 했으나 이후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체류하면서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주의자가 되었다.


 4. 팔방미인의 작가 카잔차키스.


 카잔차키스는 노벨상 후보에 아홉 번 올랐으며 1957년에는 후보에 오르긴 했으나 알제리 태생의 알베르 카뮈가 수상이 돌아갔으며 뒷날 카뮈는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 문학상 선정위원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말하며, "카잔차키스는 자신보다 백배는 더 노벨 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라는 말을 했다 한다. 카잔차키스는 소설은 물론 희곡, 장편 서사시, 아동문학, 여행기, 연구서, 자서전, 회고록 등 실로 다양한 문학작품을 쓴 작가라 했다.


 5. 왜 글을 쓰는가.
 
 많은 작가들이 '왜 글을 쓰는가'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이 책을 쓴 김욱동교수는 먼저 조지 오웰의 네 가지 글을 쓰는 충동을 소개하였다. 첫째, 이기적/똑똑하게 보이고, 죽은 뒤에도 명성을, 둘째, 심미적/외부세계에 말의 아름다움을, 세 번째, 역사적/뒷날 후세가 사용할 수 있도록, 네 번째, 정치적/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보려는 생각, 그러나 김욱동 교수는 자신의 견해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자아의 실현과 표현, 두 번째,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를 풀기 위해서인데 여기서 카잔차키스가 바로 두 번째 해당되는 사람이라 하였다. 왜냐면 그는 자신의 글에서 작품을 쓰고 나면 속이 후련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고 여러 차례 밝혔기 때문이라 한다. 사실 지금은 금전만능의 세상이라서 글을 쓰는 목적의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 생각하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꼭 금전적인 목적보다는 앞에서 내세운 이유들이 더 그럴만한 이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6. 호메로스 이후의 가장 위대한 작가.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의 호메로스 이후 가장 뛰어난 작가임이 분명지만 그의 종교관과 국가관 더 나아가 세계관이 그리스 정교회와 정치인들과 달라 평생 배척을 받았고 죽어서도 조국 그리스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고향 크레타에서 카잔차키스를 늦게나마 인정하고 받아들여 이라클리오공항을 그의 이름을 따서 카잔차키스 공항으로 바꾸고 작은 기념관도 세워 그를 기리고 있다 한다. 또한 '니코스 카잔차키스 친구협회'가 결성되어 13개 나라에 회원을 두고 있다 한다.


 2장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구상과 집필 그리고 출간에 얽힌 여러 흥미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첫 번째로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지금까지 알려지고 있는 '알렉시스 조르바'가 아니고 '알렉시스 조르바스'이며 카잔차키스는 이 작품을 집필하면서 처음에는 <알렉시스 조르바스의 성인전>이라 했으나 그리스에서 처음 출간된 텍스트에 따르면 <알렉시스 조르바스의 삶과 시대>였다 한다. 그러나 조르바스가 불어, 영어 등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조르바'로 알려져 지금 어느 번역본이나 모두 '조르바'로 하고 있다 한다. 그래서 김욱동 교수도 할 수 없이 이를 따랐다 한다. 또 김 교수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1인칭 화자 '보스'의 역할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보고 있다. 첫 번째는 1인칭 화자인 '나'는 오직 스토리 전달하는 역할, 두 번째는 스토리 전달 역할과 함께 작중인물 자격, 세 번째는 주인공으로 '참여적 1인칭 화자'로 자신의 경험을 전달해 주는 역할까지 이다. 그 외에도 카잔차키스가 스스로 밝힌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인 프리드리히 니체와 앙리 베르그송의 이야기, 카잔차키스가 불교를 포함하여 유교, 도가, 원효사상까지도 어느 정도 심취한 흔적이 있다는 견해와 실존주의에 기울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이 얇은 책의 반 정도까지 내용을 요약하였으나 그 외에도 <그리스인 조르바>를 분석하고 설명하며 소개하는 여러 내용이 나온다. 김욱동 교수의 견해가 조금 아전인수 격으로 흐르고 일부 반복되기고 하여 조금 지루하였으나 인내심을 발휘하여 끝까지 읽었다.


 어느 글에서나 마찬가지로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가 니체의 영향으로 '신의 부재 또는 사망'을 토대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초인사상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겐 거북한 내용의 책이다. 또한 남성 우위 또는 성적자유를 내비치는 대목이 많아서 여성독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소설이므로 세상의 절반을 함께 하는 독자들의 지지가 다소 염려스럽다. 아무튼 그동안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이 소설에 얽힌 세세한 이야기와 카잔차키스라는 인물에 대한 지식을 보탤 수 있는 유익하고 흥미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