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연을 쫒는 아이, The Kite Runner>

깃또리 2018. 10. 1. 09:23

<연을 쫒는 아이, The Kite Runner>
할레드 호세이니 Khaled Hosceini / 이미선 옮김
2016. 0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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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에 호세이니의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A Thousand Splendid Suns>을 읽었다. 작가가 <연을 쫒는 아이>를 2003년,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2007년 출간했으니 순서대로 보면 나는 뒤바꿔 읽은 셈이다.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외교관 아버지와 여자고등학교 선생이던 어머니 사이에서 1965년 태어났다. 5살 때는 아버지가 이란 주재 아프가니스탄 대사여서 테헤란에 살았고 8살에 카불, 11살에는 파리로 옮겼다가 15살인 1980년 아버지가 미국으로 망명하자 캘리포니아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하였다. 잦은 이주로 19살 늦은 나이에 산호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샌디에이고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1996년 31살에 L. A.에서 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단편을 쓰다가 2003년 첫 장편 <연을 쫒는 아이>를 출간하였다.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 인이 쓴 최초의 영어소설이라 하며 2004년 미국도서관협회 '청소년이 읽을 만한 성인 도서'로 선정되고 아마존 및 뉴욕 타임즈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으며 전 세계 38개국 언어로 번역되는 등 널리 알려 진 소설이다.


 외교관 아버지 덕분에 일찍 영어에 친숙했으리라 추측되지만 15살에 미국에 이주하여 불과 10년이 조금 지나 영어로 소설을 쓰고 인정을 받아 인기를 얻은 걸 보면 작가의 탁월한 재능과 함께 각고의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라 믿어진다. 호세이니 삶의 궤적을 살피다 보면 유럽의 폴란드 출신 조셉 콘라드가 떠오른다. 그는 20세에 거주하던 폴란드를 떠나 영국으로 이주하여 선원이 되었다. 많은 시간을 바다에서 보내면서 영어로 쓴 책을 읽고 습작을 한 다음 영어로 소설을 써 한 때 영국의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실리기까지 했다. 교과서에 실리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작품성과 함께 정확한 영어문법과 적절한 어휘 사용이었다 한다. 충분하게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왜냐면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문법이나 어휘 선정에 더욱 치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콘라드가 폴란드 출신인 줄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2013년 동유럽 여행을 하던 중 폴란드의 낯 선 지명의 도시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호텔 이름이 콘라드, Conrad여서 작가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어렴풋 기억이 떠올라 호텔방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와 다시 보았다. 호텔 이름 Conrad 옆에 선박의 닻, Anchor 모형이 붙어 있어 그제서야 해양소설의 개척자이기도 한 콘라드가 연상되어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니 조셉 콘라드가 바로 이 도시 Kracow 에서 한 동안 살았다 하여 짜릿한 흥분을 느끼기도 하였다.


 이야기가 한 참 다른 길로 나간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미르'이며 화자로 '나'가 빈번히 나오는 1인칭 소설이다. 아미르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1963년 태어난 것으로 되었으니 작가가 1965년생으로 2년 빠르지만 소설의 전체 내용은 작가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말 그대로 아프가니스탄 출신인 한 소년의 성장소설이다. 내가 이 소설을 그 어떤 흔한 성장소설보다 흥미롭게 읽은 점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의 근대사와 함께 후반부에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샌프란시스코에 네 번을 갔다 왔으며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엔 한 달 정도를 샌프란시스코 Pier 39 가까운 동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곳은 어느 해 지진을 피해 몰려 온 바다사자와 영화 The Rock의 배경이 되었던 Al Catraz 섬이 바로 앞에 보이고 금문교도 30여 분 걸어가면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소설의 시작도 금문교 공원에서 시작하고 아미르가 활동하는 지역도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 중간지역이어서 눈에 익은 지명이 자주 나타나 반가웠다.


 아미르는 사업으로 재산을 모은 건강한 아버지와 아버지의 하인 '알리' 그리고 알리의 아들 '하산'과 카불의 부자 동네 큰 저택에서 살았다. 학교교사였던 어머니는 아미르 출산 후 건강이 나빠져 세상을 떠나 아미르는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으로 죄스런 마음과 그리운 마음을 함께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순탄했던 아미르의 삶은 종족분쟁과 탈레반의 준동으로 고향 카불을 떠나 파키스탄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하여 삶의 큰 변화를 맞는다.  미국 도착은 1981년 18살 때였고 이주지는 캘리포니아 산호세 조금 위의 프리몬트로 이곳 프리몬트 올른 고등학교를 마칠 때 20세로 졸업생 중 최고령이었다. 그 해 아버지는 50세였다고 하니 30세에 아미르를 낳은 셈이다. 이 부분에서 아미르는 아수라장 같은 자신의 조국 아프가니스탄과 비교하여 미국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미국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은 채 노호하며 흐르는 강과 같았다. 이 강물에 들어가서 내 죄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강물을 따라 먼 곳으로 실려 갈 수 있었다. 유령도, 추억도, 죄도 없는 곳으로." 이 인용문 중에서 '내 죄'가 이 소설을 끌어가는 한 축이다. 즉,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낼 때 하인 알리의 아들 '하산'은 아미르 보다 한 살 아래였으나 아버지 알리가 하층 계급인 ‘하자라인’이기 때문에 아미르도 역시 하인 신분을 물려받았다. 아미르는 아버지와 함께 저택에서 살았으나 알리와 하산은 정원 한 구석 어두컴컴한 흙담집에서 살았다. 아미르는 하산이 다려 준 옷을 입고 학교에 갔으나 하산은 집 청소, 정원 일 등 말 그대로 어린 하인에 불과하였다. 아미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미르의 시중을 들고 아미르의 말 상대, 놀이상대를 하면서 한 번도 아미르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말 끝 마다 ‘아미르 도련님’이라고 불렀다.


 아미르는 하산을 좋아하면서도 자신에게 조건 없이 복종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고 밉기도 하여 골탕을 먹이며 일부러 억지를 부리기도 하였다. 두 아이 사이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건은 아미르가 명절 연싸움에 참가하자 여러 어려운 일을 하산이 도맡아하여 아미르가 연싸움에서 최종 우승자 두 사람 중에 하나가 되었다. 마지막 도전자의 연이 아미르의 연줄에 끊겨 멀리 날아가자 하산이 주워오는 일도 역시 하산의 일이었다. 카불의 연싸움은 우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도전자의 끊어진 연을 누가 주워오는가도 연싸움 행사에서 중요한 일이었다. 이 연싸움 우승으로 아미르는 아버지로부터 처음으로 칭찬다운 칭찬을 받는다. 평소 마음이 여리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야생 곰과 싸워 이긴 일이 있을 정도로 당당한 아버지로부터 기죽어 지내던 아미르가 겨우 기를 펼 수 있었다. 두 번째 사건은 아미르의 학교 동급생이며 부잣집 아들로 난폭한 골목대장 아세프와 그를 따라다니는 두 친구로부터 하산이 성적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멀리서 숨어 보고도 아미르는 전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물론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지만 그럴만한 용기도 없었다. 그 외에도 아미르는 비겁하다 할 자신의 태도를 탓하고 스스로를 비난하지만 누구와도 상의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이런 죄의식을 피하기 위해 알리와 하산이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지기만을 바란다. 결국 아버지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알리와 하산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떠난다.


 알리와 하산이 간단한 짐을 꾸려 아버지 차에 올라 버스터미널로 떠나는 모습을 자신의 2층 창문에서 내려다본다. 이 시점이 1975년 12살 때이다. 그래서 소설이 시작되기 전 이 책 표지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두 줄의 글이 "1975년 겨울로 인해 모든 것이 확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그 해 겨울로 인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이다. 다시 미국 생활로 돌아와 아미르는 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함께 벼룩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장군이었고 미국으로 이주해서도 이크말 타헤리 장군으로 불리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친구의 딸 소라야 타헤리와 1988년 25살 때 결혼한다. 결혼 다음 해 카불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소설을 써서 출판한다.


 이 부분에서 소설은 시간적 도약을 하여 2001년 12월 파키스탄의 라힘 칸의 전화를 받아 이야기가 새롭게 전개된다. 라힘 칸은 카불시절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이다. 아버지와 달리 어린 아미르의 글 솜씨를 일찍이 눈여겨보고 격려하였으며 따뜻한 시선을 보냈던 인자한 어른이었다. 또한 그는 아미르 가정사를 누구보다도 소상히 알고 있었다. 라임 칸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 페샤와르로 망명하여 그동안 아버지 바바와 꾸준히 연락하고 지냈으나 바바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자신도 늙고 병들어 마지막으로 아미르를 만나고 싶어 한다. 이때가 아미르 나이 38살이었으므로 라임 칸도 70세 가까이 되리라 생각된다. 라임 칸은 죽기 전 자신이 알고 있는 아미르 가정사의 비밀을 들려준다.

 첫 번째로 알리의 아들 하산은 알리의 아들이 아니라 바바의 아들, 즉 아미르의 이복동생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절름발이에 천민 하지라인 알리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불임자였으며 그의 아내 사나우바르는 젊고 요염하였으며 남성을 유혹하는데 능숙한 여자였다 한다. 즉 알리는 아버지 바바와 사나우바르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하자라인은 천민이고 파쉬툰 족은 지배족이기 때문에 하산의 아버지 알리는 모든 비밀을 간직하고도 묵묵히 하인의 자리를 지키고 주인의 명예를 위해 하산을 친 자식처럼 키우기까지 하였다. 이 모든 과거의 비밀을 듣던 아미르는 망연자실하여 라힘 칸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어요? 서른여덟 살을 먹은 난 이제야 비로소 내 삶이 모두 빌어먹을 엄청난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았는데요. 무슨 말로 이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하나도 없다고요." 하며 라임 칸의 아파트에서 뛰쳐나왔다.


 이후 1/3 조금 넘는 부분은 아미르가 알리와 하산을 찾아나서는 부분을 세세히 그리고 있다. 알리와 하산 두 사람은 얼마 전 분쟁 중에 죽었고 하산의 아들 소랍을 아프가니스탄 시골 마을에서 찾았다. 소랍을 데리고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어렵고도 긴 여정을 거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과정이 길게 펼쳐진다. 어린 시절 자신의 잘못과 아버지의 죄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아미르는 목숨을 거는 상황도 피하지 않는 대목은 퍽 감동적이다. 특히 하자라인 킬러로 변한 아세프와 만나 생사를 건 싸움, 아니 일방적 폭행을 당하는 부분은 차마 읽어나가기에 참혹한 대목이기도 하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는 하산의 아들 소랍이 연을 날리고 옛날 하산이 했던 것처럼 끊어진 연을 아미르가 찾아오는 일을 자청하며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다. "너를 위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누구나 있을 철없던 어린 시절의 잘못과 아버지의 죄까지 갚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건 아미르...아프가니스탄의 비극... 타헤리 소라야와 사랑 등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 책 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