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이어령, 보자기 인문학>을 읽고...

깃또리 2018. 8. 27. 12:29

<이어령, 보자기 인문학>을 읽고...
이어령
마로니에 북스
2016. 02. 11.


 꽤 오랜만에 이어령씨가 쓴 책을 읽었다. 책 표지를 열면 표지 날개에 저자의 약력이 소개되었고 대표 저서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이 보인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29살 이어령씨가 1962년 8월부터 10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형식으로 쓴 에세이를 묶은 책으로 1년 안에 당시로는 경이적인 30만부가 팔렸고, 일본, 대만의 지식인들로부터 주목을 끌었으며 영문으로 번역되어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교재로 사용되기도 한 대단히 유명한 책이다. 최근 에세이 발간 40주년 기념 개정판도 나와 반세기 가까운 시기에 "3 세대에게 읽히는 책"이라는 애칭도 얻고 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도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욱 큰 인기를 누린 책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최근 읽은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자신의 특정 종교관을 너무 지나치게 내세워 사이비 전도사 글 같아서 실망을 하였다. 결국 책에 실망을 넘어 이어령씨에 대한 기존의 존경과 찬탄이 흐려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시 이 책 <이어령, 보자기>를 손에 들고 끝까지 읽기를 마치고 나서 내가 왜 이어령씨 책을 다시 집어 들었는가 생각해보니 내가 지난 12월과 1월 두 달 동안 너무 재미없는 책에 매달리고 나서 소위 머리를 식히려고 도서관에서 빼 든 책으로 귀결 지었다. 즉, 재미없었던 책이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1. 2권과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 1.2.권이었고 이 기간에 함께 읽은 책이 <Desert Flower> 영문판으로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왜냐면 수년전에 읽었으나 전철 안에서 책을 잃어버리고 다시 새 책을 사두었는데 새로 구입한 책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다시 읽어보니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어 흥미가 반감하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이어령씨의 책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예상처럼 그저 그런 정도였다. 그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몇 가지이다. 첫째 이어령씨도 이제 나이도 많아서 인지 새로운 상상력이 예전과 달랐으며 나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모르게 지식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에 전처럼 작가에게 환호할 정도가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책 한 권을 읽었으니 눈에 들어오는 몇 가지라도 적어 두어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책 제목이 요즘 여기저기서 화두로 삼고 있는 인문학이고 이 인문학 중에서도 '보자기 인문학'이다보니 보자기에 대한 이야기가 줄지어 나온다. 특히 동양 3국인 중국, 한국, 일본의 보자기 비교를 비롯하여 보자기와 용도가 비슷하다 할 서양의 가방에 대하여 장황한 비교가 나온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대부분 교과서를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메고 다녔으며 어깨에 메는 책가방은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반에서 한 두 사람뿐이었고 당시 어른들은 '란도셀'이라 불렀다. 지금까지 란도셀이 영어 단어에서 본 일이 없어 궁금했는데 네덜란드어인 란셀, Ransel의 변형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일본에 네덜란드 신문물이 일찍부터 유입되어 아마 그 당시 명칭이 변형되어 전해 진 것으로 추측된다. <좌우가 없는 짚신의 세계>라는 소단원에선 엘리베이터에 관한 글이 보인다. 나도 평소 Elevator라는 영어 단어가 위로 올라가는 의미를 지녔는데 지금처럼 오르내리는 장치의 명칭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였다. 에스컬레이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개발했을 때 오르는 일이 힘들기 때문에 단순히 사람을 위로 오르도록 경사로 된 움직이는 벨트에 사람이 앉을 수 있게 하여 에스컬레이터는 단순히 상승하는 기구였다. 차츰 발전하여 지금처럼 서서 오르고 내리는 장치로 발전했다 한다. 엘리베이터 역시 오르기 전용이었다가 내려오는 장치가 더해져서 명칭의 불일치가 일어났다고 추측된다.


 그러나 저자는 이와 다른 견해를 피력하였다. 서양은 두 가지 기능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엘리베이터라는 단어에는 양자 중 한 쪽을 쓰러뜨리고 하나 만을 선택하는 서양의 토너먼트 경기의 환호성이 새겨져 있다."라 하였다. 또 "서양의 경우는 반드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이항대립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는 배제해 버리는 엘리베이터 형이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나 한국의 '승강기'는 "상반된 양쪽 개념을 동시에 살렸다."라 하면서 "무언가 양면성을 갖고 있는 두 가지의 대립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동시에 하나의 단어로 감싸는 융통성과 포용력이 있다."라 하였다. 나는 다른 어휘나 서양 사람들의 개념은 잘 모르겠으나 이 경우는 저자의 강변이고 조사 부족이 아닌가 생각한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서양에서 명칭이 처음으로 정해질 때는 상승용도였을 뿐이었고 내려오는 기능이 추가되었을 때는 너무 오랜 기간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의 어휘가 정착되어 새로운 어휘로 바꿀 수 없었던 것이 아닌 가 추측된다. 일본과 한국에 엘리베이터가 도입되었을 때는 이미 상승과 하강 기능이 합해져서 두 가지 기능을 표시할 수 있는 적당한 '승강기'라는 어휘가 만들어졌고 에스컬레이터는 적당한 어휘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영어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저자의 견해는 너무 비약이 심하지 않은가 한다.


 또 다른 주장으로 "한자 문화권에서는 단순히 '출입구'라고 부르는 것을 서양인은 출구 Exit, 입구 Entrance로 나누어 부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글이 보인다. 그러나 내가 보는 견해로는 서양의 건축물의 경우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시설의 경우 동선의 흐름이 겹치지 않도록 입구와 출구를 분리하는 경향이 있고 동양의 경우는 이 개념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Entrance를 현관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현관에 해당하는 Porch 라는 영어는 건물의 출입구를 뜻하고 프랑스어에서 온 Foyer, Vestible 등도 거의 영어화한 현관에 해당하는 말이다. 저자가 Entrance 하나만 지적하여 이야기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언어, 어휘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만 어휘는 제각각의 특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환경, 문화, 역사적 배경에 따라 어느 분야 또는 개별 어휘의 세분화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쉬운 예로 인척관계를 중히 여기는 우리에게는 손위의 남자 형제는 '형' 아래는 '아우, 남동생', 여자 형제도 '누나' 아래는 '여동생' 등으로 구별하여 대화중에 누가 연장자 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영어권 사람들은 Brother, Sister 만 이야기하여 궁금하게 만들어 이야기 중에 Elder냐 Younger냐를 묻기도 한다. 영어에서 고모, 이모의 구별도 없는 것은 마찬가지 이다. 즉 우리 문화권에서는 친족의 관계가 더욱 세밀하고 그런 걸 더 중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 식, 주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의, 의복에 관해서 그간 내가 만난 영어문장에서 우리와 사뭇 다른 경우를 보았다.


 우리말에서 의, 에 해당하는 일반명사는 의복, 옷, 의류, 복장, 의상, 피복, 입성 등 정도이다. 그러나 영어는 Clothes, Dress, Garment, Suit, Outfit, Ware,  Robe, Tailer, Habit 등 실로 다양하다. 즉 의복은 동서양 모두 중요하게 여긴 품목인 듯하다.

 내가 몇 가지 저자의 주장에 대하여 비판하긴 했지만 오랜 기간 일본에서 공부하고 생활하였으며 문화 인류학적 관심을 지닌 저자의 박식함은 따를 만한 사람이 드물다.


   <황홀한 사람>이란 소제목에 일본 후생노동성에서 중년과 노년을 대신할 새로운 말 찾기 경연대회를 열어 50~69세를 실년, 實年 70세 이상을 숙년, 熟年이라 정했다는데, 농담 중에 나이 지긋한 사람을 '숙성한 분'이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일본 숙년에서 유래했음을 이제 알았다. 우리보다 일본은 새로운 어휘를 창안하는데 훨씬 빠르고 재치 있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다. 가능한 우리도 일본처럼 새로운 어휘를 재빠르게 우리말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생각이기도 하다.


 영국인은 노인을 Old라 하지 않고 Age, 그레이 Gray라 부른다고 하며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를 더욱 거부감이 없도록 Silver를 이곳저곳에 붙였다 한다. 그래서 경로석을 Silver seat, 노후 설계를 Silver plan, 개발도상국자원봉사를 Silver volunteer란 조어를 만들었다 한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는 ‘백발, 이 white hair가 아니라 ‘은발, silver hair, 로 표현한다. 일본에서는 추한 것도 아름답게, 싸고 난폭한 것도 온화하게 바꾸는 노력을 하여 예를 들면 태평양전쟁의 패전을 '종전 終戰, 세계 5위권의 군대도 '자위대 自衛隊' 주유소 가격도 Price up을 '가격이 달라졌습니다.' 후퇴를 '진로를 바꾸어 나간다'라는 의미로 '전진, 轉進' 상점 문을 닫아 폐점을 '준비 중 準備 中', 엘리베이터 고장도 '조정 중, 調正中'이라는 표현을 쓴다하였다.


 일본어는 거친 욕이 없어 우리말 '바보'에 해당하는 '빠가야로'가 큰 욕이라 할 정도로 언어의 부드러움을 중시하고 직선적인 표현을 하지 않아서 가장 순화된 언어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 보면 본심을 드러내지 않거나 솔직한 표현이 아니고 속 시원한 의미가 아니어서 우리와 여러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의 국민성과 언어구조를 우리도 얼마쯤은 이해 할 필요도 있고 일본도 우리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여 서로 배려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지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책을 다 읽고 나서 좀 실망하였으나 요약을 하려고 다시 이곳저곳을  읽다보니 책을 펼치고 있었던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