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모래톱 이야기>를 읽고..

깃또리 2018. 8. 21. 09:02

<모래톱 이야기>를 읽고..
김정한 지음
범우사
2016. 02. 08.


 

 하루 24시간을 크게 나누면 일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 먹고 마시는 시간을 제외하면 평균 4시간 정도가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이 된다. 결국 20시간은 기본적 생존을 위한 시간이고 4시간만이 자신의 주체적 삶을 영위하는 시간인 셈이다. 사람마다 습관과 취향에 따라 이 시간을 다르게 활용한다. 젊은이들은 오락, 게임, 영화, 독서, 티브이 시청 등으로 중장년층은 대부분 티브이와 신문 읽기, 독서 등인데 점점 독서시간은 줄어드는 추세인 것 같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이번 2016년 구정을 맞아 5일간의 긴 휴식기간에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기쁘게 느낀 책 읽는 즐거움 때문이다. 티브이 시청이나 신문 읽기로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상식을 얻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책 읽기로 내가 모르는 새로운 지식을 얻고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의 문화에 가까이할 수 있는 일은 그 무엇과 견줄 수 없는 즐거움이다.
 
 40대 초반의 소설가들의 작품집인 제5회 젊은 작가상 수상집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같은 시대에 살고 있으나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으며 30년 넘게 나이가 차이나는 젊은 작가들의 감성을 전해 받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대충 알고 지내던 아인슈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과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도 이번 휴일을 빛나게 해주는 책들이었다.
 
 책장을 훑어보다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를 다시 꺼내 읽었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짧은 단편이라 잊을 만하면 다시 읽어보는 작품이다. 6.25 전쟁을 치른 얼마 후인 60년대 초반 낙동강 하구 삼각주 모래섬에서 일어나는 일을 배경으로 쓰여진 이 소설을 다시 읽어도 새롭다. 이 단편이 1966년 발표되었으며 8년 후인 1974년 나는 부산에서 일하면서 '하단, 河端'이라는 곳에 두어 번 갔었기 때문에 더욱 이 소설에 정서적 공감을  하는지 모르겠다. 글을 쓴 김정한선생은 1908년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단편 <사하촌, 寺下村>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일제에 항거하여 붓을 꺾었다가 해방 후 교직에 몸을 담고 지내며 20년 넘은 침묵을 깨고 쓴 작품이 바로 <모래톱 이야기>이다. 1969년 발표한 <제3 병동>도 함께 읽었는데 두 작품 모두 가난의 질곡에서 헤어나지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들을 그렸다. 이들이 대대로 살아오며 지켰던 생존을 위한 토지가 일제와 권력자들의 농간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부조리한 현실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삭막한 풍경 속에서도 <모래톱 이야기>에서 담임선생이 초등학생 제자 건우의 가정방문에서 마주한 건우 엄마에 대한 인상은 요즘 글에서 얻을 수 없는 정감을 느낄 수 있어 이 부분을 옮겨보았다. 

 

 "상냥하게 웃었다. 가정조사표에 있는 서른세 살의 나이보다는 훨씬 핼쑥해 보였으나 외간 남자를 대하는, 붉은빛이 연하게 감도는 볼에는 그래도 시골 색시다운 숫기가 내비쳤다."

 

 부산시내에서 강을 건너 모래섬에 온 아들의 담임선생을 위해 젊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다섯 홉짜리 정종을 사 오도록 하여 선생을 대접하는 부분은 이렇다.

 

 "나는 미안스런 생각으로 건우 어머니가 따라 주는 술잔을 받았다. 손이 유달리 작아 보였다. 유달리 자그마한 손이 상일에 거칠어있는 양이 보기에 더욱 안타까울 정도였다."

 

 나는 이 단편을 읽으면서 '연민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라는 구절이 생각났으며 건우의 담임선생이 건우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조금 더 깊어져 사랑으로 나아갔더라면 이 소설이 더욱 빛나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제3 병동>에서도 국립대학교 부속병원 레지던트 의사 김종우가 폐결핵과 장질부사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어머니를 간호하러 온 19살의 산골처녀 강남욱에게 느끼는 연민이 너무 사무적이어서 아쉽다. 몰론 현실적으로 "착실한 의사 아들에 일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까지 일류대학교를 다닌 다음 레지던트 코스의 젊은 의사 김종우"가 가난에 찌든 산골처녀를 사랑하기엔 너무 장애가 높겠지만 소설 속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것이다. 왜냐면 소설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과  환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불편하고 열악한 병실에서 어머니를 간호하다 장질부사에 감염된 딸, 강남욱을 진찰하는 의사 김종우의 모습을 그린 대목은 이러하다.

 

 "청진기의 하얀 꼭지는 그녀의 흰 가슴패기를 여기저기 더듬는다. 아직 총각 의사인 김종우씨의 눈은 강남욱 처녀의 토실토실한 젖퉁이와, 달무리 같은 젖꼭지판과, 약간 가무스름한 젖꼭지에 자꾸만 머뭇거리게 마련이겠지."

 

 60년대에 쓰여 진 작품이라 상당히 예스런 표현이 자주 등장하여 일견 흥미로운 책 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