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상류엔 맹금류>를 읽고...

깃또리 2018. 8. 16. 09:24

<상류엔 맹금류>를 읽고...
황정은
문학동네
2016. 02. 07.

 

 '2014년 제5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으로 그러니까 2년 전 우연히 서점에 들렀을 때 불쑥 손에 들었던 책이었다. 일곱 사람의 소설 작가 지망생들의 단편이 실렸는데 두 사람이 남자이고 나머지 다섯은 여성이다. 이제 소설 쓰기에 여성들이 더 열심이거나 아니면 재능이 뛰어난지 궁금하다. 우선 대상으로 뽑힌 <상류엔 맹금류>를 먼저 읽었다. 조금 읽다 보니 언젠가 이 작품을 읽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다 읽고 나니 어렴풋이 2년 전에 읽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소설의 발화자는 남자 친구였던 '제희'와 한 동안 사귀다 오래 전에 헤어지고 이제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살고 있는 여성이다. 이 여성은 제희와 교제하던  시절 어느 여름 제희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가까운 수목원으로 나들이 갔던 일을 회상하며 왜 지금 '제희'와 결혼하지 않고 현재의 남편과 살고 있는지를 돌이켜본다. 제희는 네 명의 누나를 둔 남자였고 아버지의 사업 빚에 짓눌려 지내는 궁핍한 가정의 외아들이다. 그래도 가족들 간의 유대는 끈끈하였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부드러웠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수목원 나들이가 화자가 그 가족을 멀리하게 되는 단초가 되어 제희와 헤어졌음을 암시한다. 특히 계곡 아래에서 돗자리를 깔고 지내다 옆에 흐르는 물에 손을 씻고 입가심까지 했던 제희의 아버지, 그러나 계곡에서 올라 와 상류에 맹금류 축사가 있다는 안내판을 발견하고 느꼈던 불쾌함이 그 날의 나들이를 회색빛으로 바꾸었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화자 '나'는 자신에게는 잘하지만 누나, 형 그리고 동생이 없는 외동아들인 현재의 남편과 함께 T.V 를 보다가 어느 장면에서 "그가 웃고 내가 웃지 않을 때, 그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서 부쩍부쩍 다가오는 도로를 바라볼 때, 어째서 이 사람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라 했다. "무뚝뚝해 보이고 다소간 지쳤지만 상냥한 사람들"이었던 제희와 제희 가족과 헤어진 일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날의 나들이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았다고 생각해왔다. 모두들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이다."라고 항변한다. 

 

 세계의 역사도 어느 작은 사건이 빌미가 되어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고 한 사람의 개인사도 한 순간 또는 작은 일들이 그 사람의 삶의 진로를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 허다하다. 이 짧은 작품에서도 그 여름날에 수목원 나들이를 가지 않았더라면, 갔더라도 계곡에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다시 계곡에서 올라와 맹금류 축사가 있다는 표지판을 보지 않았더라면 '나'의 삶은 바뀌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에게는 '나'와 같은 회한과 아련한 슬픔이 내재하고 어떨 땐 이 회한과 슬픔이 우리의 심성을 부드럽게 다스려 삶에 온기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 짧은 글이지만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1984, 고려대학교 국문과 출신, 2013 작가세계 신인상

 

 단편으로 보면 길고 중편으로 보기엔 조금 짧은 소위 중단편 소설이다. 할아버지와 고모와 함께 사는 일본 여학생 ‘쇼코’와 역시 할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소유’ 사이의 꽤 긴 기간 우정과 갈등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특별한 반전이나 눈에 띄는 변화가 없이 마치 어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대략 이 정도의 분량의 글을 읽다 보면 지루하기도 하고 맥이 풀려 읽기를 그만 두기도 하는데 끝까지 책을 내려놓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경우는 젊은 작가의 글이지만 정확히 짚어 낼 수 없으나 작가의 뛰어난 글쓰기의 능력이 아닌가 한다. 1984년 태어나 2013년 이 작품을 발표하였으니 31살의 나이에 쓴 셈이다. 하긴 10년 이상 습작을 했을 테니 어쩌면 이 정도의 실력은 당연한 것은 아닌 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