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내 슬픈 창녀의 추억>을 읽고...

깃또리 2018. 8. 6. 09:26

<내 슬픈 창녀의 추억>을 읽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송병선 옮김
(주)민음사
2016.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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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982년 파리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잠자고 있던 아름다운 여인을 일곱 시간 지켜보고 구상하여 이 작품을 썼다 한다. 같은 해 9월 <잠자는 미녀의 비행기>라는 신문칼럼을 썼는데 55세의 작가가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글이며 한 달이 조금 지나 노벨문학수상자 영예를 얻었다 한다. 나는 지난해 11월과 12월 두 달 동안 가르시아의 대표작인 <백년의 고독>을 읽느라 무척 힘들었다. 책 읽으며 뭐 힘들 것까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 동안 읽다가 그만 두기를 수차례 하였기 때문에 조금 과장하면 이번에야 말로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책은 거들떠보지 않고 매달렸다.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기는 했으나 왜 이 작품이 대단한 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한 번 더 읽으면 혹시 뭔가 얻을 수 있을까 하여 생각 중이다.
 
 소설은 "아흔 살이 되는 날, 나는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나에게 선사하고 싶었다."로 시작한다. 아흔 살의 주인공은 '서글픈 언덕'이란 애칭을 가진 사람으로 부유한 할아버지와 아버지 재산 덕분에 편하게 공부하고 평생 직업으로 라파스의 작은 신문사 기자로 일하며 칼럼을 쓰는 일만 했던 사람이다. 많은 책을 읽어 지식은 풍부하지만 못생긴 얼굴에 십대부터 사창가에 드나들기 시작하고 결혼은 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으나 오십 줄에 들어서는 적어도 한 번 이상 같이 잠을 잔 여자는 총 514명이었고 이때부터는 여자 목록을 작성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여자들과 관계에서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지켰는데 꼭 돈을 지불하는 것과 동거는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순정한 여자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예외였던 경우가 원주민 같은 생김새에 강하고 투박한 소녀티를 벗지 못한 가정부인 ‘다미아나’에게 육체적 갈망을 느껴 같이 지냈으나 돈 받기를 거부하여 대신 월급을 올려주고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한 경우이다.


 '서글픈 언덕'은 한 동안 발길을 끊었던 사창가에서 자신보다 손아래 포주인 로사 카바르카스에게 특별히 '새로운 것'을 구해 달라하여 아흔 살의 자신에게 큰 선물을 바치기로 했다. 포주가 밤 10시에 약속하여 만난 어린 소녀를 그냥 '여자아이'라 불렀으나 주인공은 '어린 돛배'라는 별명을 붙이고 이름으로는 '델가디나'라 하였다. '서글픈 언덕'은 쥐 오줌 풀로 만든 음료수를 마시고 깊이 잠든 나체의 소녀를 새벽 5시까지 황홀경에 빠져 바라보다 화장실 세면대 거울에 립스틱으로 쓴 '호랑이는 먼 곳에서 먹이를 찾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읽고 집으로 돌아온다.


 포주 로사 카바르카스는 '서글픈 언덕'을 '현자 양반'이라고 부르며 '여자 아이'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으니 결혼하면 어떻겠느냐 하자 '서글픈 언덕'은 "섹스란 사랑을 얻지 못할 때까지는 위안에 불과하다"고 하며 거절한다. 주인공은 수차례 사창가 포주의 집에서 많은 돈을 주며 '델가디나'를 만나지만 밤 10시에 보게 되는 어린 소녀는 항상 잠을 자는 상태이고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다. 델가디나는 가난한 집의 큰 딸로 어린동생들을 위해 옷 만드는 공장에서 단추 다는 일을 한다. '서글픈 언덕'은 델가디나에게 근사한 자전거와 장신구도 선물하였다. 이 소설에서 '서글픈 언덕'은 여러 명의 창녀와 만나 긴 시간 동안 이야기도 하고 오래 관계를 유지했던 창녀와 다시 만나기도 한다. 라틴 문화권에서는 몸을 파는 일이나 창녀를 찾는 일도 비교적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불가피한 일로 여기며 일종의 직업으로 인정되어 창녀들이 어느 한 곳에서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살며 주변 사람들과도 유대를 지속하는듯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창녀라면 가장 수치스럽고 못할 짓으로 생각하여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 이런 점도 모두 문화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아흔 살의 '서글픈 언덕'은 1년 동안 어린 델가디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신이 죽고 나면 모든 재산을 물려주기로 결심하자 포주 로사도 "나도 마찬가지예요. 그 애는 내가 책임질 것이고, 나중에 모든 것을, 당신 것과 내 것. 모두를 남겨줄 테니까요."라 한다. '서글픈 언덕'이 로사에게 소녀가 이를 좋아할까라고 묻자 로사는 "아 서글픈 현자양반, 늙는 것은 괜찮지만 멍청한 소리는 하지 마세요. 그 불쌍한 아이는 당신을 미칠 정도로 사랑하고 있어요."말한다.


 소설 마지막 페이지는 '태양은 공원의 편도나무 사이로 떠올랐고, 강이 마른 탓에 일주일이나 늦게 도착한 우편선이 표호하면서 항구로 들어왔다.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어느 일이건 나는 건강한 심장으로 백 살을 산 다음, 어느 날이건 행복한 고통 속에서 훌륭한 사람을 느끼며 죽도록 선고 받았던 것이다."로 끝을 맺는다. 이 문장에서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