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어둠의 심연, Heart of Darkness>를 읽고...

깃또리 2018. 6. 28. 08:51

<어둠의 심연, Heart of Darkness>를 읽고...
조셉 콘래드 지음/ 이석구 옮김
을유문화사
2017.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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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어둠의 심연, Heart of Darkness> 영문판 몇 페이지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지금도 영어실력이란 게 별로지만 당시는 지금보다 어휘 실력도 훨씬 부족하고 영문 원서를 읽은 경험도 적어 그야말로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과 씨름하며 고심참담하다가 결국 읽기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소득이라면 조셉 콘래드라는 작가의 이름과 문학적으로 그의 빛나는 발자취를 약간이나마 알게 된 것이 큰 소득이었다. 영문 제목, Heart of Darkness 를 "암흑의 핵심 또는 어둠의 심연"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어쩐지 '어둠의 심연'이 발음에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그 후 14년이란 세월이 흐른 2013년 아내와 함께 동유럽 여행의 기회를 맞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시작하여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관광하고 슬로바키아를 지나 폴란드 땅을 밟았다. 여행 안내자 설명에 의하면 수도 바르샤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하고 복구하였으나 역사적으로 볼만한 게 없다 하며 하루 일정에 들어 있는 ‘Krakow, 크라코우’라는 도시는 우리나라 경주와 같은 오래된 도시이며 폴란드 제2의 큰 도시로 둘러볼 명소가 많다 하였다. 사실 나는 서유럽에 비해 동유럽은 평소 지식도 부족하여 폴란드와 헝가리는 어느 나라가 위도 상 위쪽인지 아래쪽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했으며 더구나 크라코우라는 도시는 이름조차 생소하였다. 하룻밤을 묵게 된 호텔은 새롭게 지은 최신 건물이었지만 교외 한적한 곳에 있어 주변이 한적하였다. 버스에 내려 여행 가방을 끌며 바라본 호텔 이름이 'Conrad'였다. '콘라드' '콘래드' 어디서 읽거나 본 듯하였으나 막상 실마리가 떠오르지 않아 가방을 객실에 두고 다시 나와 보았다. Conrad 옆에 선박의 Anchor가 보이자 폴란드인가 헝가리 출신이지만 영어로 많은 해양소설을 썼던 '조셉 콘래드'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러나 확인을 위해 호텔 로비 젊은 여성 안내원에 호텔 이름과 작가 콘래드가 관계가 있느냐 물었더니 이 도시가 그의 고향이라 하여 순간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 가벼운 전율이 일었다. 마침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 폰으로 조셉 콘래드를 검색하여 간단히 그의 삶과 작품을 더듬어 보고 다음날 유서 깊은 성당을 비롯하여 여러 명소를 구경하면서 귀국하면 콘래드의 작품을 찾아 읽어보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어려웠던 몇 페이지의 영문 읽기 실패 때문에 쉽게 콘래드의 책을 손에 들지 못하고 이번 번역본이나마 읽기를 마쳤다. 번역본이지만 수사가 화려하고 본문의 내용에서 암시하는 의미가 간단치 않아 약간 긴 중편이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다 읽고 나서도 작가가 무엇을 독자에게 전하려 하는지 다 알 수는 없었다. 번역자 이석구 교수의 해설 <콘래드의 소설과 타자의 재현>에서 "이 소설이 갖고 있는 의미의 모호성과 복잡성은 심리비평, 신화 비평, 페미니스트 비평, 탈식민주의 비평, 해체주의 비평 등 실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였다."라 하였다. 여기서 해설자는 '타자에 대한 재현'에 초점을 맞추어 길게 설명하고 있다. 즉, 심리 비평에서는 개인의 정신세계의 깊숙이 숨어 있는 억압된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취하며, 페미니스트 비평에서 타자는 남성들의 모험의 성취를 그려내는 남성적 장르로서의 모험소설이 이러저러한 정치적 이유로 주변화 하거나 혹은 악마화 하는 여성의 모습을 취하며, 탈식민주의 비평에서는 타자는 대조 효과를 통해 유럽인의 영웅적 위상과 인간적 면모를 더욱 빛나게 하는 야만적인 흑인의 모습을 취한다.'라 하였다. 소설의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템즈강 남단의 그레이브랜드 항구에 정박한 어느 선박 갑판에 선장, 변호사, 회계사, 선원이었던 '말로' 그리고 화자가 등장한다. 말로는 동양의 부처님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자신의 수많은 항해 경험 중 아프리카 콩고 강을 거슬러 올라간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소설은 구성되었다. 일반적으로 소설가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이 가장 좋은 소재이고 다음으로는 남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 그리고 책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 이 소설은 콘래드의 오랜 선원 생활 경험으로 쓰여 더욱 사실성을 높이고 여기에 앞에서 말한 인간의 본성, 악과 선의 문제 등을 다루어 세월이 흘러도 이 작품의 빛이 바래지지 않는 것 같다.

 

 말로는 아프리카 콩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상아와 같은 고가품을 값싼 유럽산 물건으로 원주민과 바꿔 많은 이익을 취하는 회사의 교역소이자 전초기지를 방문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야기 한다. 강 깊숙한 곳에서 일하던 교역 소장 '커츠'라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많은 부분이 작가가 실재 겪은 일과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을 조금 바꿔 이 소설을 썼다 한다. 나는 우리말 번역본을 읽을 때 항상 과연 번역이 잘 된 책인지 아닌지 궁금해 하면서 읽곤 한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다." 또는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서로 상반되는 말이 있듯이 번역을 규정하기도 어렵고 번역의 우열을 평가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번역 과정도 공격적이냐 수동적이냐 하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어느 편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다. 아무튼 원문을 직접 읽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경우가 드물어 좋은 번역자 또는 공을 들인 번역판을 찾아 읽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이 번역본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번역이 꽤 꼼꼼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로는 예를 들면 233페이지 주. 37에서 '노턴'판은 important drainage pipes이고 다른 영문판은 imported drainage pipes로 달라 번역자는 후자를 선택했다 한다. 또 하나는 주. 39에서 영문판 중에 어떤 책은 문장 부호 물음표 '?'가 있으나 어떤 책은 없는데 문장 성격이나 상황으로 보아 물음표가 있어야 해서 번역문은 물음표를 붙였다 했다. 이렇게 공들인 흔적이 있는 부분을 읽으면서 신뢰를 얻게 되어 이런 책은 구입하여 서가에 꽂아 두었다가 다시 읽고 싶다.  아울러 역자는 판본 소개도 친절하게 하였다.

 

조셉 콘래드의 연보를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1857년 : 12월 3일 당시 러시아 속국이었던 폴란드 베르시체프의 가난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1862년( 5세): 바르샤바로 이사 부모 두 사람이 폴란드 독립운동으로 러시아 블로그다로 유배됨.
1865년 (8세): 어머니 폐결핵으로 사망.
1868년 (11세): 크라쿠프로 이주, 아버지 사망.
1874년 (17세): 마르세이유에서 선박회사에 입사 몽블랑호 승선.
1876년 (19세) :서인도제도, 남아메리카 항해.
1878년 (21세): 마르세이유를 떠나 영국 도착, 증기선 메이비스 승선 콘스탄틴노블 항해.
1884년 (27세): 방콕으로 출항, 봄베이 방문, 1등 항해사 자격 취득.
1886년(29세): 영국으로 귀화, 선장 자격 취득.
1887년 (30세): 말레이 군도 4회 항해.
1888년(31세):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항해.
1890년 (32세): 아프리카 콩고 강 운항.
1893년( 35세): 마지막 항해.
1895~1921년( 37세~63세): 자신의 항해 경험을 바탕으로 다수의 해양소설 집필 발표.
1914년(57세): 가족과 함께 고향 폴란드 방문.
1923년(66세): 미국 방문.
1924년 (67세): 영국 기사 작위 거절하고 캔터베리 근처 집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연보와 작가의 소개를 보면 콘래드는 영국에 처음 도착하여 배를 타기 시작하여 영어를 사용하는 선원과 처음 만나 영어로 말하는 걸 배우고 글을 배웠다 하는데 그의 나이가 21살이다. 이 나이면 아무리 폴란드어가 유럽권 언어라 해도 영어를 배워 소설을 쓰고 이 소설이 영국 교과서에 실린 정도이니 콘래드는 언어에 선천적으로 뛰어나기도 하고 많은 책을 읽고 쓰기를 했던 것 같다. 대단한 인물이다. 모국어 대신 다른 나라 말로 문학 작품을 쓴 사람은 새무얼 베케트가 영어 대신 프랑스어로 희곡을 썼고 최근엔 인도 벵갈어를 모국어로 쓰던 줌파 라히리가 미국에 귀화하여 영어로 작품을 쓰다가 이탈리아어를 배워 이제 이탈리아로 소설을 써서 발표하고 있다. 역시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