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를 읽고...

깃또리 2018. 6. 11. 10:08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를 읽고...
법정
샘터
2018. 01. 07



 법정스님의 책 마지막 쇄 아홉 권으로 구성된 한 질의 마지막 책읽기를 이제 마쳤다. 원래는 작년, 2017년 11월 초부터 읽기 시작하여 12월 말까지 다 읽으려 했으나 같은 사람이 쓴 책을 연이어 읽다보니  너무 단조로워 중간 중간 다른 책을 읽느라 늦어졌다. 그래도 계획보다 일주일 정도 밖에 늦어지지 않아 마음이 가볍다. 사실 권수를 정하고 기일을 정하여 책을 읽는 방법이 썩 바람직하지 않지만 일을 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목표를 정하지 않으면 책읽기가 게을러지다가 영영 책을 손에 놓게 될 것 같아서 15년 전부터 목표를 정하고 읽고 있다. 이 책도 역시 신문, 잡지에 기고한 서너 페이지 분량의 에세이로 1989년부터 1996년 기간에 쓴 글들이다. 아홉 권을 다 읽고 문득 생각해보니 우연치고는 조금 이상한일로 이 책을 넘겨받은 지 6~7년이 되었으며 그 동안 읽어보려고 이책 저책을 뽑아 책상 위에 두었다가 도로 꽂아두기를 여러 차례 했다. 작년에 내가 다 읽은 다음 사무실 동료에게 12월 말에 주기로 약속하고 아홉 권 중에서 별 생각 없이 손에 잡히는 데로 책을 뽑아들었는데 읽기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처음 읽은 책이 1969년 쯤 쓴 글들이었고 이 책이 제일 마지막 1996년에 쓰신 책이다. 즉 순서 없이 무작위로 읽었는데 우연히도 오래 된 글부터 시작하며 마지막 기간까지 30년에 걸쳐 쓴 글을 순서대로 읽은 셈이다. 우연치고는 기이한 생각이 든다. 내용은 하나도 버릴게 없지만 한 사람의 글을 내리 아홉 권 읽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우연히도 글 쓴 순서로 읽었으니 각별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사무실 동료가 교회에 다니지만 불교 스님의 책을 좋아하여 이 책들을 기분 좋게 넘겨주게 되었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약간의 지루함을 견디며 짧은 기간에 다 읽었으니 사무실 동료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더구나 약간의 변용과 표현이 다를 뿐 거의 같은 내용을 수십 번 반복하는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좋은 의미의 쇠뇌 되어 스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 즉, 이웃사랑, 욕심 버리기, 적게 쓰고 적게 먹기, 말을 줄이기, 홀로서기, 꽃, 새, 나무, 바람, 달, 풀을 사랑하기 등등인데 굳이 어떤 특정한 종교를 떠나 이러한 일은 인간 삶에서 가장 소중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책 내용 중에서 인상 깊은 부분을 간추려 보았다.


<당신은 조연인가 주연인가>
 일본의 나카무라 고지가 쓴 <청빈의 사상>에 나오는 양관 화상(1758~1831, 74)의 이야기로 가난한 암자에 살던 양관 화상은 이불이 없어 낮에 깔고 앉았던 방석을 덮고 자는데 도둑이 들어 이 방석을 훔쳐가려고 하자 양관 화상은 몸을 슬쩍 움직여 도둑이 방석을 쉽게 가져가게 했다 한다.  그 후 도둑은 이불대신 두르고 자던 스님의 방석을 훔친 일을 뉘우치고 돈이 생기자 아내와 의논하여 이불 한 채를 만들어 스님에게 가져와 용서를 빌었다 한다. 일본에도 훌륭한 스님이 많았다 하며 특히 양관 스님은 32세에 깨달음을 얻고 퇴락한 암자만을 골라 기거하며 탁발승으로 청빈하게 살다가 생을 마쳤다 한다.


<수행자에게 보내는 편지>
 중세 독일의 신비주의 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입을 빌려 스님은 후배 수행자들에게 이야기 하였다. "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할 만큼 자유롭게 해방된 상태를 참으로 가난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안 밖으로 홀가분하게 되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전 우주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개체에서 전체에 이르는 길이 여기에 있다."  더하여 앞에서 나온 말이지만, "현재를 최대한으로 사는 것이 수행자의 삶임을 잊지 말라." 현재 가장 많은 신자를 거느리고 있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를 위시하여 세계의 모든 종교는 흔히 내세, 이승, 천국, 천당을 강조하고 이용하여 인간성을 억누른 다음 자신들의 종교 세력의 확장과 교리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종교란 결국 인간을 위한 제도 장치이므로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명백히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지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종교를 떠나서도 우리의 삶은 갈수록 예측이 어렵고 변화무쌍하므로 내일, 내년, 10년 후, 죽음 이후보다는 현재의 삶을 충실하고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그렇다하여 다가 올 미래를 부정하고 준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고 현재의 삶을 소중하게 하며 미래를 기약해야 한다는 뜻이다.


<봄 나물 장에서>
 스님이 마지막 산중에서 기거하신 곳이 오대한 자락의 '수류화개실'이란 작은 집으로  시장을 보려면 강릉시내의 중앙시장을 가셨다한다. 봄나물, 바다해초를 구입하신 이야기와 함께 프랑스 남부지역 아를에 가셨던 내용이 나온다. 스님은 국내외 어디든지 훌쩍 떠나는 걸 좋아하셔서 특히 외국여행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대충 꼽아보면 미국의 L.A., 샌프란시스코, 뉴욕, 샌디에이고 등이고, 유럽의 파리, 런던, 아일랜드,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터키, 그리스, 이스탄불, 아테네, 이라크리온 등이며 그 외에도 인도, 스리랑카, 태국, 남태평양의 어느 섬 등이 방문했던 곳으로 등장한다. 생각하기로 아마 그간 쓰신 책의 인세가 여행경비 충당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행을 통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질적인 종교와 조우하여 편협하고 배타적인 종교관이나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상을 지니게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내가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하여 고흐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었고 고흐의 아를 시절이야기도 잘 알고 있었는데 스님의 글에 내가 모르고 있던 사실이 나왔다. 아를에서 버스로 10분이면 아주 가까운 곳으로 '퐁비에이'라는 작은 마을 언덕에 '풍차 방앗간'이 있으며 1860년 경 우리에게 <별>과 <마지막 수업>으로 잘 알려진 작가 '알퐁스 도데'가 여기서 <풍차 방앗간의 소식>이라는 연작을 썼다 한다. 남 프랑스 아를에는 '미스트랄, Mistral'이라는 프랑스 중앙고원에서 지중해로 불어가는 북서풍, 또는 북풍이 겨울에서 봄 사이에 분다.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프랑스 시인, 작가들은 이 바람을 미화하여 자신들의 작품에 등장시킨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이 미스트랄을 멋진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곳 주민들은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실생활에 큰 고통을 주는 미친 바람정도로 여긴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스님도 사나운 바람 이야기를 하셨다.


<야생동물이 사라져 간다>
 스님은 산에 살다보니 야생동물을 자주 보고 좋아하였지만, 작은 텃밭에 손수 심은 채소를 토끼와 노루들이 띁어 먹어 그물망을 치기도 했다는데 먹는 걸 앞두고 야생동물과 싸우는 것처럼 느껴져 슬며시 망을 걷어버리기도 했다 한다. 그런데 야생동물의 피를 먹겠다고 총을 들고 밤과 낮으로 이산저산을 누비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사람은 어디까지 야만스러워질까 걱정이 된다 하셨다. 더구나 눈데 띄게 동물들의 숫자가 줄어들어 안타깝다 하셨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때만해도 야산에도 산토끼가 뛰어다녔고 중학교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면 연례행사로 전교생이 노루몰이에 나서기도 하였다. 여름이면 더위에 교실 창문을 열어놓고 수업을 받았는데 뒷산에 떼 까치가 까악~ 까악~울어대 시끄럽다고 선생님이 뒷줄에 앉은 동급생을 내보내 쫒아버리게 하였다. 중학생 이후 나는 떼 까치를 보지 못하여 혹시 멸종했는가 알아볼 겸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나는 지금까지 떼 까치가 까마귀와 크기나 색상이 비슷한 까치 종류로 알고 있었으나 "참새목 떼 까치과의 육식성 새로 까치와는 거리가 있는 별개의 종'이란 설명과 몸길이가 불과 20센티미터 정도로 작고 배는 갈색, 깃은 조금 어두운 갈색으로 꽤 아름다운 새이다. 내가 그 동안 수십 년 생각하고 상상하던 새가 아니어서 조금 낭패스럽기도 하다. 하긴 어찌 떼 까치 뿐일까. 화장실이 Poweder room에서 유래 한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는데 최근 어느 책에서 Toilet가 화장실로 번역되지 않아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화장'이란 의미도 지니고 있어 그간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상식이 한 순간 무너지기도 하였다.


<침묵과 무소유의 삶>
 "어떤 사람이 성당에 가서 한 시간이 넘게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신부가 다가가서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그분에게 어떤 기도를 하셨습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분은 어떤 말씀을 하시던 가요? 그 분 역시 가만히 듣고만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말 잘하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은 '침묵'하고 '말을 적게 하기'가 훨씬 어렵다. 특히 지금 세상은 말을 조리 있고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인기가 있다. 심지어 한 나라의 대통령조차도 TV나 토론에서 말로 상대방을 누르는 사람이 권좌에 오르는 시대이다. 그러나 말은 진정성이 있어야 참말이 된다.


<에게 해에서>스님이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카잔차키스의 고향을 찾은 이야기이다. 나도 한동안 이 작가에 매료되어 그의 책을 연이어 몇 권 읽었다. 특히 <그리스인 조르바>는 두 번을 읽고 안정효씨와 이윤기씨 두 사람의 번역본을 구입하여 다시 읽기도 하였다. 법정스님은 작가의 고향 이라클리온에 작가를 기념하는 세 곳을 소개하였다. 역사박물관 안에 '카잔차키스의 방' 카잔차키스의 거리에 있는 '그가 살던 집' 그리고 이라클리온 항구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성루에 있는 '카잔차키스의 무덤'이다. 그의 묘비 글은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그리스 정교회에서 그가 쓴 글들이 종교적으로 불온하고 불경하다 여겨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 묘를 쓰지 못하게 하여 그의 고향에 묻혔으나 평소 그의 자유정신에 합당한 곳에 시원하게 누워 있는 것 같다. 또한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을 충분한 인물임에도 편협하고 국수주의 사람들 때문에 노벨상을 받지 못했으나 오히려 이 사실이 그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생각이 미친 김에 올 해 다시 그의 책을 꺼내야겠다.


<박새의 보금자리>
 박새란 녀석이 난로 굴뚝의 옹색한 틈새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을 보고 그동안 자신이 거쳐했던 곳에 대하여 회상하는 글이다. 법정스님의 삶의 편린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중이 되고자 찾아간 절이 효봉 스님이 계시던 경남 통영 '미래사'이고 중이 되신 다음 스승을 모시고 처음 지내신 곳이 하동군 '쌍계사 탑전'이며 다음으로 '합천 해인사 퇴설당 선원'에서 12년을 지내셨다 한다. 다음으로 옮긴 곳이 '양산 통도사 원통방'에서 불교 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하셨으며 불교사전일로 서울 안국동 '선학원'에서 5.16 혁명을 맞고 사전출간이 되자 다시 합천 해인사 관음전 '소소산방'에서 잠시 기거하시다 대장경 번역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 '봉은사 '다래헌'으로 옮기셨다 한다. 당시 봉은사는 행정구역상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이라 한다. 봉은사는 지금 내가 30년 넘게 사는 아파트에서 걸어서 30분이면 닿은 거리에 있고 집에서 바로 나가면 열리는 큰 대로가 성수대교와 매봉터널로 갈 수 있는 언주로이다. 집 주소도 언주로 146 길 18인데 이 언주로가 바로 언주면의 흔적임을 이제야 알았다. 그렇다면 언주면의 뿌리를 살려 강남구 대신 언주구, 논현동 보다 언주동이란 지명이 더 어울릴 텐데 강남구 논현동이라니 좀 못 마땅하다. 아무튼 '다래헌'에서 6년을 보내신 다음 조계산 송광사 뒤의 옛 암자 터에 열다섯 평 세 칸짜리 집을 지어 '불일암'이라 부르고 15, 6년을 지내셨다 한다.


 그러나 이곳이 너무 알려져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번거로워 훌훌 털어버리고 강원도 오대산 속에 남이 쓰다가 비워둔 집을 조금 손본 다음 '수류화개실'이라 이름 짓고 계신다 하셨다. 마지막 책은 이곳을 배경으로 나온다. 그래서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곳에서 몇 년을 기거하시다가 서울 북악산 아래 옛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주인 김영한(1916~1999)씨가 불교재단에 기부하여 '길상사'라는 사찰이 되었는데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시다 폐암으로 2010년 세수 79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법정스님의 글을 읽고 발자취를 돌아보면 스님은 불교라는 틀에 갇힌 종교인이라기보다 불교를 통하여 인간 삶의 참다운 길을 제시하는 훌륭한 교사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명성이 높은 고승보다 이렇게 삶의 지혜를 쉽게 밝혀주시는 법정스님과 같은 사람이 더욱 친근하고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최근 불교계의 스님들 중에 글도 잘 쓰고 티비에도 자주 출연하여 말도 잘하는 비교적 젊은 스님들이 인기가 있으나 조금 가볍고 진중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래서 법정 스님 같은 분의 글을 더 읽을 수 없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