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책이 입은 옷>을 읽고...

깃또리 2018. 6. 19. 08:50

<책이 입은 옷>을 읽고...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2017. 08. 18.



 저자 줌파 라히리가 자신의 소망대로 모국어나 다름없는 영어를 제쳐두고 이탈리아어를 배워 이탈리아어로 두 번째 책을 펴냈다. 첫 번째 이탈리아어로 쓴 책인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영어판 제목: In Other Words>는 지난 달 읽었는데 이 번 책도 역시 에세이로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책이다. 본문이 87페이지에 중간 중간 새로운 장을 시작하는 두 페이지는 소제목 글씨뿐이어서 이런 페이지를 제외하면 본문내용은 70페이지도 되지 않아 이런 경우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탈리아어를 잘하는 사람이 교정을 보았겠지만 아무튼 40세가 넘어 외국어를 배워 글을 써서 책으로 펴낸다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번 책 역시 책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 쓰는 일을 즐기며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책에 관한 생각도 많으며  독특한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옷을 입는다. 옷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원래는 기후나 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기 시작했으나 지금은 지위, 권력, 신분 그리고 종교적, 문화적 표상과 상징이 되었으며 미의식의 표현수단이 되었다. 또한 옷 속에 들어있는 인간 개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줌파는 책의 텍스트와 표지의 관계를 인간의 육체와 옷으로 대비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더구나 줌파는 인도 뱅골 출신 부모가 영국으로 이주하여 런던에서 태어나 일찍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이라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으며 아직도 완전한 정체성을 지니지 못하였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옷으로라도 최소한의 인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나타내려는 어머니와 어린 시절 다툼이 있었다 한다. 줌파의 소설 주인공들은 대부분 인도 태생이거나 미국에서 출생한 인도계 2세 들이지만 대부분 여성들은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은 것으로 나오며 사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여성의 한복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사리가 등장한다. 디자인이나 옷감 종류 등이 다양하다. 인도라는 나라가 워낙 크기도 하고 여러 민족이 어우러져 살며 역사도 깊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줌파가 희망하는 책 표지에 대한 생각을 읽어보면 지금까지 자신은 책 다섯 권을 썼고 20여 개국에서 번역본이 나와 모두 100여권의 책이 출판되었으나 책 표지 디자인에 자신의 의견이 들어간 책은 아직 없다 하였다. 책 표지는 모두 출판사가 책의 판매를 겨냥하여 기획, 디자인하며 내용이 좋으나 책이 생각만큼 팔리지 않으면 표지를 재 디자인하여 인쇄한다고도 하였다. 이러다보니 자신이 쓴 똑 같은 내용의 책이라도 번역본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표지를 만나게 되어 이럴 땐 퍽 당황스럽다 하였다. 줌파가 학생시절 눈에 띄는 외모에 어딘가 다른 분위기의 옷을 입고 다녀 주변 사람의 시선을 끌었던 즐겁지 않은 시기에 차라리 교복을 입었으면 했다 한다.


 그리고 방학을 맞아 인도 콜카다에 가면 그 당시 인도 학생들은 학교에 따라 다른 교복을 입었기 때문에 학교를 중심으로 일체감을 갖추면서 다시 교복 속에서 익명성을 지닐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러웠다 한다. 그래서 여러 명의 남녀 사촌들이 아침에 교복을 입느라 수선을 떨 때 은근히 부러웠다 한다. 그러나 책에 대한 줌파의 생각은 모름지기 책은 내부 텍스트의 뛰어남으로 인정을 받아야 하고 표지의 디자인이나 과장된 선전 내용으로 책이 압도당하지 않아야 한다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학생들의 교복처럼 전집 출판물의 표지가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이 대목에서 내가 한 가지 얻은 지식으로 미국의 전집들은 대부분 작고한 작가의 작품이지만 유럽은 생존한 작가의 작품도 포함한다고 하였다. 미국의 출판계가 생각보다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들며, 또한 세월이 흘러 많은 독자들로부터 검증된 글이 미국의 전집에 들어가는 것 같다.


 책 제목, 저자 그리고 출판사 이름만 있는 전집의 단순한 표지를 줌파는 좋아한다고 하면서, 또 다른 생각을 밝히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영국의 여성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책은 그녀의 친 언니인 버네사 벨이 직접 표지를 디자인 했는데 줌파는 이를 좋아하고, 미국의 삽화가 에드워드 고리가 표지를 그린 포켓북 전집도 역시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나 만일 자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모란디'의 정물화나 마티스의 콜라주를 책의 옷으로 입히고 싶다했으나 상업적 관점이나 독자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하였다. 마티스는 익히 아는 화가이지만 모란디는 처음 보는 이름이다. 알아 볼 일이다. 책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 문장으로 줌파의 갈등을 보여준다. "나는 어딘가에 속하고자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려고 필사적으로 애썼다. 한편으로 어딘가에 속하는 걸 거부하고, 혼란스러운 여러 정체성이 날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는 영원히 이 두 길 이 두 충동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것이다."
 
 나는 이 짧은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간 가지고 있던 몇 가지 궁금증이 풀렸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단편 <The Third and the Final Continental>의 주인공이 도서관 직원이었는데 줌파의 아버지가 인도 콜카다의 어느 도서관 사서였다고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이 단편소설에서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이주하여 어렵게 공부하여 미국 MIT 대학교 도서관 직원으로 취직한 주인공 이야기는 줌파의 아버지를 모델로 약간 변형하여 쓴 이야기인 셈이다. 또 <Mrs Sen>에서 남편 Mr. Sen은 인도계 미국 대학교 수학교수였으며 Mrs Sen은 인도에서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나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부인으로 나오는데 아마는 줌파의 어머니를 모델로 삼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줌파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대학교수, 고등학교 선생, 대학교 연구원 등 학교에 관련한 인물들인데 이는 줌파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나도 사실 책 표지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보기 좋은 광고지를 골라서 구입한 책의 표지에 겉을 씌우고 다 읽은 다음에 포장을 벗겨내고 책꽂이에 둔다. 두 가지 목적을 지녔는데 기왕이면 책 표지가 손상되는 걸 원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모인 전철이나 버스에서 내가 읽는 책을 들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무실 동료 한 사람은 보기 좋은 책 표지를 왜 감싸느냐고 힐난하였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껏 표지를 보고 만지는 일도 즐겁지 않느냐는 말이다. 일견 일리가 있으나 아직은 책 표지 망가지는 일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로알드 달이라는 영국 작가가 쓴 <Matilda>를 구입하여 읽었는데 어느 날 서점에서 같은 책이면서 표지가 다른 게 있어서 여러 번 망설이다 이 책을 구입하여 같은 책이 두 권이다. 순전히 책 표지인데 나중에 산 책의 표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줌파는 표지에  대하여 에세이를 썼으나, 사실 나는 줌파가 자신의 번역본에서 책 제목이 원본과 얼마나 다르게 나오는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왜냐면 줌파의 영문판이나 이탈리아 어 판과는 한 참 다른 제목으로 한글판이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표지보다 책 제목이 더욱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줌파의 영문판과 이탈리어 어 판 제목과 한글판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어서 적어 보았다.


Interpreter of Maladies(1999)/축복 받은 집
The Namesake(2004)/이름 뒤에 숨은 사랑
Unaccustomed Earth(2008)/그저 좋은 사람
The Lowland(2014)/저 지대
The Clothing of Books(2016)//책이 입은 옷
In Other Words(In altre parloe 2017)/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지금까지 책에 대한 책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중에 하나가 <서재 결혼시키기, Ex Libris>였다. 책 읽기와 함께 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는 항상 즐겁다. 줌파의 다른 책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