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버리고 떠나기>를 읽고...

깃또리 2018. 6. 8. 12:45

<버리고 떠나기>를 읽고...
법정
샘터
2018. 01. 06.


 작년 2017년 12월 말까지 법정스님의 마지막 쇄 9권을 다 읽으려 했으나  여덟 권 까지 읽고 마지막 한 권은 이제 읽었다. 여덟 권 째가 <버리고 떠나기>이고 새해 2018년 첫 후기를 쓰게 된 책이다. 스님은 2010년 79세로 세상을 떠나셨으니 평균 수명 정도는 되지만 사망원인이 폐암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왜냐면 평생 공기 좋은 산속에서 생활하며 항암성분이 많다는 차를 누구보다 많이 드셨을 테니 그렇다. 그러나 담배 연기와는 다르지만 아궁이에 불을 때고 매일 방안에 향을 피워 그 연기가 폐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그 원인이 아니라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다 한다. 폐암은 단지 담배, 스트레스, 공해 등을 조심해야 한다는 견해가 타당성이 있다 한다.


 아무튼 사망 원인으로 각종 암이나 사고사로 목숨을 잃지 않는다 해도 아직까지 100세를 넘기는 사람이 드물고 이 땅에 지금 숨을 쉬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100년 안에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이런 엄연하고 어김없는 법칙을 일찍 인식한 사람은 삶을 지혜롭게 꾸려나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흔들리며 살아간다. 인생, 삶의 지혜를 일찍 터득하는 몇가지 방법으로 종교, 학습, 독서, 올바른 스승이나 주변인물의 영향을 꼽을 수 있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습득하기도 한다. 나는 늦게나마 스님의 책을 일시적이나마 여러 권 읽게 되어 일종의 감화에 가까운 경험을 하며 삶과 죽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간추려 적어본다.


 <나의 휴식시간>
 스님은 "나에게는 좋은 책을 읽는 시간이 곧 휴식시간이다."라 하셨는데 나도 평소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 반가웠다. 그러나 같은 페이지에서 "지식이 낱말의 연결구조인 언어의 세계라면 지혜는 심연과 같은 침묵의 세계다. 침묵이 받혀지지 않는 언어는 영혼의 메이라가 없다."라 하였다. 잡다한 지식에 대하여 경계를 하라는 말로 생각되어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 생각한다. 경계할 일이다.


 <도라지 꽃 사연>
 스님은 풀, 꽃, 나무, 별, 달 그리고 새소리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 하였다. '머슴새'가 여러 번 나오는데 표준말로는 '쑥독새' 이며 '밀화부리'는 처음 보는 새 이름으로 검색해보았다. 일부 지방에서 '콩새'라고 부르며 '참새목 되새과' 인걸 보면 참새와 크기와 빛깔이 비슷해서 나와 같은 일반인은 보고도 그냥 지나쳤던 새인 것 같다. 야생 도라지꽃을 유심히 본 느낌을 쓰면서 '한 평생 우리가 밤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라 하셨다.


 계산상으로 1년에 12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으나 기상 상태로 불 수 없거나 다른 일로 밤하늘을 올려다 볼 기회가 없어 일 년에 대여섯 번 정도라 하면 평생 그 횟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10여 년 전 부터 춥고 음산한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어나고 새소리가 맑아지는 새봄이 오면 이런 화사하고 행복한 봄을 앞으로 몇 번이나 맞을까? 헤아려 보곤 한다. 장구한 시간의 흐름에서 보면, 20세의 젊은이나 60세의 노년에 접어든 사람이나 남아 있는 봄의 횟수는 큰 차이가 없다. 한 마디로 현재 같이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서있는 젊거나 늙은 모든 사람은 100년 이내에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를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스스로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천 년 만년 사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니지만...

 

<잔인무도해진 우리 인생>
 실제 일어난 일이라면 너무 충격적이고 믿기 힘든 이야기여서 뭐라 하기 안타까워 그대로 옮겨본다.
"어느 절 비구니가 가을에 다람쥐 굴을 발견하고 파보았더니 소두 한 말 남짓 도토리가 있어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도토리묵을 해 먹을 요량으로 죄다 꺼냈다. 그 다음날 아침 섬돌 위에 벗어 놓았던 신발을 신으려고 했을 때 섬뜻한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한다. 겨울 양식을 빼앗긴 어미 다람쥐가 새끼들을 데리고 나와 고무신짝을 물고 죽어 있었다 한다. 그 비구니는 자신의 허물을 크게 뉘우치고 자신의 고무신짝을 물고 죽은 그 다람쥐를 위해 7일마다 재를 지어 49재를 지내주었다 한다."


 오늘 아침 사무실에 출근하여 이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했더니 직원 한 사람이 원래 다람쥐는 한 곳에 먹이를 저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리스크 매니지멘트를 하기 때문에 다람쥐가 자살 할 리가 없었을 텐데 하여 한바탕 웃기도 했다. 또 한 사람은 어릴 적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로 남편 다람쥐가 가을 한철 아내 다람쥐와 부지런히 양식을 모은 다음 겨울이 시작되면 아내 다람쥐를 내쫒고 눈 먼 다람쥐를 아내로 맞는다 한다. 그런 다음 상했거나 맛없는 도토리를 아내에게 주면 '에구~ 맛이 이상하네...'라는 말을 한다 하여 다시 웃음바다를 이뤘다. 스님은 다음 이야기로 자신을 따르던 개까지 때려 죽여 잡아먹는 잔인무도한 우리들에 대하여 원망과 슬픔을 토로하였다. 극히 일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우리 자신을 뒤돌아 볼 이야기이다.


 <무엇이 전쟁을 일으키는가>
 "어떤 종교의 성전에는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곰곰히 생각해보면 신이 자신의 모습대로 인간을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신의 형상대로 신을 창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스님은 "종교가 생기고 나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이 있고 나서 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여러가지 문화현상 중의 하나가 종교임을 알아야 한다."라 하셨다. 평소 내가 생각하는 종교관과 거의 일치하여 반갑고 기쁘다. 리처드 도킨스의 역작 <만들어진 신, 2006 원제: The God Delusion>은 이를 조리 있게 논증하고 있다. 그러나 눈먼 종교인들에게는 부질없는 내용일 것이다.


<버리고 떠나기>
 사실 내 서가에는 오래 전에 읽었던 법정스님의 책이 너 댓 권 꽂혀 있으며 이미 읽은 지 10년이 넘는다. <버리고 떠나기> 이 책도 이미 읽었다는 말인데 다시 읽으니 처음 읽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 설 수 없다. 그러므로 차지하고 채우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침체되고 묵은 과거의 늪에 갇히는 것이나 다름없고 차지하고 채웠다가도 한 생각 돌이켜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비우는 것은 새로운 삶으로 열리는 통로다." 그래서 스님은 책도 다 읽은 다음 모아지면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버린다 하였다. "버리고 떠나라"했으니 어차피 우리들은 자신이 버리지 않아도 떠날 때는 단 한 장의 지폐도 가져 갈 수 없고 남의 손에 의해서 버려지기 전에 스스로 버릴 것은 버리고 남에게 요긴할 것은 선물로 주고 가면 지구 환경에도 유익할 것이다. 금전이나 물건을 주는 방법도 자기의 아들, 딸로 고집하지 말고 절실하게 필요하거나 어려운 사람에게 주고 가면 더욱 빛이 날 것이다. 버리고 주는 일도 한꺼번에 하기보다 차근차근 자주적이고 의식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여 나 역시 이를 실행에 옮기려 한다.

 우선 이 아홉 권의 스님의 책부터 떠나보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