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서 있는 사람들>을 읽고...

깃또리 2018. 5. 31. 12:33

<서 있는 사람들>을 읽고...
법정
샘터
2017. 12. 07.


 이 책의 서문은  1978년 송광사 뒷산에 있는 ‘불일암’에서 썼으니 정확하게 40년 전 글들이다. 다섯 권 째를 읽다 보니 겹치는 글도 있고 문체도 엇비슷하여 약간 지루하고 식상한 느낌도 있으나 마음 수양을 위해 같은 내용의 불경을 수백수천 번 독송하는 스님의 기분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었다. 대부분 부처님 말씀과 수양이 깊은 선사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법정스님의 의견을 힘주어 역설하는 부분도 지나칠 수 없어 중요한 부분을 정리해본다.


 첫 째, 부처님을 바라보지 말고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마찬가지로 어느 지체 높은 스님이나 사찰을 찾지 말고 경전을 따르라는 말이다. 이는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해당하는 말이다. ‘모든 종교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과 같아 드디어 드넓은 바다에서 모두 만나 하나가 된다’는 말도 했는데, 평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생각도 이와 다름없어 기쁜 마음이 들었다. 법정스님은 현재 한국불교의 타락과 혼란을 걱정하고 질타하였는데 나는 기독교나 천주교 또한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을 하며 4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지금도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인간은 과거와 미래보다 ‘현재의 삶, 현재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소위 불교, 기독교를 이끄는 몇 인물들은 걸핏하면 천국과 연옥, 천당과 지옥을 꺼내들고 내세를 위해 현생을 희생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보면 가소롭기 그지없다. 그들의 입에 발린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종교를 팔아 자신들에게 육체적 노동력이나 물질적인 헌금을 더하라는 속임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면죄부와 크게 다름이 없다. 물론 그 수가 일부라고는 하지만...
 법정스님의 책 다섯 권 째를 읽었어도 스님은 천국, 천당, 또는 내세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즉 불교의 중요한 교리가 ‘윤회’지만 이를 팔아 현세를 희생해야 한다는 말은 없다. 옳은 말이다.


 세 번째, 법정스님의 책에는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자주 나온다. 하긴 우리나라 70년대의 정치상황이 암담하였고 혼미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편 경제성장은 비약적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이에 걸 맞는 정신적, 정서적 변화가 뒤따르지 않고 있음을 걱정하는 내용이다. 역시 40년의 세월이 지났으나 지금의 현상을 보면 정치, 사회적으로 민주화의 진전은 다소 이루어졌으나 정치인의 자질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지능적이고 교묘하고 현란한 화술로 포장된 정치 술수만 늘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법정스님이 눈을 뜨고 입을 열면 오늘의 한국정치를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하다.


 넷째, 종교의 위치, 종교의 본분에 대하여 한마디로 ‘이웃사랑’이라 하셨고 특히 불교는 기독교의 ‘인간사랑’에서 한 발 나아가 ‘생명사랑’ 다시 말하면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을 전파하는 일이라 하셨다. 이를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가 출가한 사람은 모든 걸 버려야 한다 하였다. 즉, 철저한 ‘무소유’ 물질, 정신을 포함하여 모든 욕심에서 벗어나야하고 철저한 독립된 홀로서기로 자시 스스로 서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임재선사 같은 분은 극단적으로 부처도 죽이고, 부모도 죽이고, 자신까지 죽이라는 말까지 남겼다 한다. 사람은 빈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역시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빈손으로 떠나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고 나눔과 배품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출가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도, 나 역시 소유의 집착을 줄이고 끊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법정스님의 글 중에서 여러 번 반복되어 나오는 문장 중 하나가 ‘지식보다 지혜’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여러 번 마주하다보니 과연 나는 지식에 매몰되어 ‘지혜’에 소홀하고 있지 않는 가 뒤돌아본다. 지혜를 얻고, 지혜롭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본다. 다시 책의 앞부분부터 넘겨보며 중요한 부분을 정리해본다.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지혜는, 아는 것을 ‘가설한다’, ‘통합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혜를 무분별지(無分別知)라고도 한다. 이 지혜는 인격과 직결된 것이므로 거리에는  행동과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사변적인 지식이 아니라 끝없는 ‘빛’ 즉 지혜라고 불교경전에서는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지식은 단지 ‘분별’이라는 말이며 분별을 넘어서 ‘무분별지’에 다가가야 한다는 뜻이다. 명심해야 할 말이다.


<쥐 이야기>


 스님이 지리산 어느 궁벽한 암자에서 계실 때였다 한다. 공양을 남겨 배고픈 중생이 와서 먹도록 하는 일을 ‘헌식’이라 하고 평소 다람쥐나 새가 먹기 때문에 헌식자리가 꽤 어질러진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얼마 전부터 헌식자리가 깨끗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큰 쥐가 한 마리 기다리고 있어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헌식으로 몸을 불려 다른 쥐보다 훨씬 커보였다 한다. 스님은 이전에는 쥐꼬리만 보아도 질겁했으나 산 중에서 인연이라 생각하시고 헌식의 양도 늘려주었는데 발소리에 도망가지도 않고 기다릴 정도로 가까워졌다 한다. 그래서 어느 날 쥐가 다 먹기를 기다려 한 마디 해주었다 한다.

 “쥐야, 네게도 영혼이 있거든 내 말 들어라. 네가 여러 생에 익힌 업보로 그같이 흉한 탈을 쓰고 있는데, 이제 청정한 수도장에서 나와 같이 지낸 인연으로 그 탈을 벗어버리고 다음 생에는 좋은 몸 받아 해탈 하거라. 언제까지 그처럼 흉한 탈을 쓰고 있어서야 되겠니? 부디 해탈 하거라. 나무아비타불!”

 쥐는 움직이지 않고 듣고 있었는데 기이한 일은 그 다음 날 쥐가 보이지 않아 웬일인가 했더니 그 쥐는 헌식돌 아래 죽어 있었다 한다. 사람도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은데, 스님은 염불과 함께 땅에 묻어주며 부디 다음 생에는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자했다 한다. 그 쥐가 정말 알아들은 건 지! 아니면 우연히도 마침 수명이 다해 다음 날 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고 약간 으스스한 생각이 들 정도의 이야기이다.


<비 悲>


“유행가 가수들이 지칠 줄 모르고 지칠 줄 모르고 불러대는 노래가 ‘사랑’이고, 교회의 목사나 성당의 신부님이 주일에 설교하는 내용이 ‘사랑’이다. 불교용어로는 이것은 ‘자비’라고도 하며 기쁨을 주는 것을 ‘자 慈’라고 하며 고통을 덜어주는 것을 ‘비 悲’라 한다. 불교에서 신음〔悲〕이 ‘슬플 비’이지만 이 ‘비’는 슬프다는 뜻보다는 ‘괴로워서 신음하다’로 산스크리트어에서 왔으며 동정은 자기 자신은 상처 받음 없이 남을 위로하지만 신음은 동정을 넘어서서 함께 앓는 것이다.”


책에 나온 여러 불교 선사 이야기를 간추려 본다.


1. 조주선사는 8세기 후반부터 9세기 말까지 120세를 살았다고 전해지는 중국 당나라 조주출신 선사로 스승 남전을 40년이란 긴 기간 모시다 나이 60세에 운수승이 되어 세상을 떠돌다 80세에 작은 절의 주지가 되었다 한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화장하고 사리를 거두지 말고 재를 흩어버려라.”는 유언을 남기고 앉은 채 입적했다 한다. 법정스님은 생전 조주선사의 가르침을 소중하게 생각하였으며 그래서 자신의 유언도 조주선사와 같음을 알 수 있다.


2. 효봉스님 이야기는 지난 네 번째 책에서 간단히 옮겼는데 이 스님의 스승은 ‘금강도인’으로 불리는 ‘석두’화상이라 한다. 선사와 화상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석두스님은 79세에 생을 마치며 “내가 만든 법/ 그거다 군더더기다/ 오늘 일을 묻는가/달이 일천강물에 비치리”가 열반송이라 한다.


3. 서산대사 휴정과 사명스님은 같은 시기에 활동하셨고 사명스님이 서산대사를 뵙기 위해 묘향산을 찾았다 한다. 휴정이 사명에게 “어디서 오는고?”라 묻자, “옛길을 따라 옵니다”라 하자 “옛길을 따르지 말라!”라 했다 한다. 선은 모방과 획일성을 배격하고 매일매일 새로워져야 한다는 가르침이라 한다.


 우리 일반 대중은 불교의 전통과 유구한 부처님의 변함없는 가르침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정체되었고 독선적인 경전에 갇혀 있는 종교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 동안 위대한 스님들의 끊임없는 정진과 구도로 조선시대 500년의 억불정책과 홀대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기독교와 함께 양 대축을 이루는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신문기사에 따르면 며칠 전 스님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적어 광고까지 하였다하니 불교는 더욱 새로워져 대중의 사랑을 받는 종교로 거듭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