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물소리 바람소리>를 읽고...

깃또리 2018. 6. 4. 09:11

<물소리 바람소리>를 읽고...
법정
샘터
2017. 12. 24.


 1983년에서 1986년 강원도 외딴집 ‘수류화개실’에서 신문사와 잡지사에 보낸 글을 2001년 손질하여 펴냈던 책이다. 1986년을 기준으로 해도 30년이 넘었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하고 같은 도시에서도 어떤 곳을 1년이 지나 가보면 없던 건물이 들어서서 마치 다른 곳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전자제품은 2~3년만 지나면 신제품에 밀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시위진압, 최루탄, 연탄가스 중독, 다방’ 등이 나와 옛날이야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삶과 죽음,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등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현재 진행형들이다.


 또 아직도 변하지 않은 또 하나는 나라를 이끌고 있는 정치인들의 최근의 행태들이 우리들을 실망시킨다. 또한 기계문명, 전자산업의 발달과 함께 온라인 정보통신 기술이 오프라인 산업현장에 도입되어 혁신을 일으킨다는 제4차 산업혁명이 논의 되는 시점에 아직도 60~70년대나 먼 어느 미개발 나라에서나 일어날 대형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인간존중, 평화로운 사회로 가는 길이 이렇게 힘든가하는 생각이 든다.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테러와 폭력, 핵무기의 위협, 대량살상무기 개발 경쟁 등으로 세계평화가 위협받고 미국의 대통령을 비롯한 최강국가 지도자들의 날선 발언과 험악한 행동을 대하면 지구의 종말이 가까워 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런 근심과 우려를 잠시 뒤로하고 이 책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을 간략히 옮겨본다.
 
<새벽길에서>란 소제목의 글에서 꾀꼬리의 소리가 사실은 처음 목을 띄우기 전까지는 듣기 거북하다가 며칠 지나면 맑고 아름답게 변하였다 한다. 스님이 산, 꽃, 새, 물소리 등 자연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산에 사시면서 직접 관찰하고 들어서 쓰신 내용이라 꾀꼬리 발성 연습이야기는 자못 새롭고 흥미롭다. 새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동안 궁금하게 여기는 일이 있다. 땅위에 짐승들 숫자 이상으로 하늘에 새들이 많지만 그 많은 새들이 수명을 다하여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가 몹시 궁금하다. 즉 산길을 걷거나 도심 거리에서도 새들의 죽음을 자주 보아야 정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에밀 아자르는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썼으며 그 소설에는 리마 북쪽 해변으로 수 많은 새들이 날아와 하늘에서 떨어져 죽는다 하였으나 실제 이야기가 아니고 소설이다.


<그대 자신의 더위가 되라> 어느 제자스님이 양개선사에서 “몹시 덥거나 추울 때, 어떻게 해야 그런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습니까?”라 묻자 대답으로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으로 가라.”라 했다. “그럼 어떤 곳이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입니까?”라 다시 묻자 “더울 때는 너 자신이 더위가 되고, 추울 때는 자신이 추위가 되라.”라 했다 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책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은 죽음을 뜻하며, 삶 자체가 고난, 불행과 함께 하기 때문에 이를 수용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였다. 누군가는 ‘불행’과 ‘고난’도 나름이 아니겠느냐 연거푸 덮치는 불행의 경우 어떻게 수용만하라는 말이냐고 하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최근 아이돌 그룹 맴버 중 하나가 자살로 삶을 마치는 일을 보고 퍽 안타깝게 생각을 하였다. 왜냐면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만 조금 힘들다고 소중한 목숨을 헛되이 버렸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그는 어머니와 누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두 사람은 행복해 보인다라 했다는데 그렇다면 어머니나 누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자살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이기심이 자살로 이어졌다는 생각도 들고 정신치료가 필요했는데 왜 주변에서 무심했는지 아쉽다.


<취봉 노스님> 1983년 송광사에서 입적하신 취봉 스님을 회상하는 글이다. 스님의 일생을 약술한 내용이 일반사람 이력기술과 사뭇 다르고 남달라 요약해본다.


1898. 경남 하동군 쌍계사 아랫마을에서 태어나셨다.
1912. 15세에 쌍계사에 입산 출가.
1916. 19세 송광사 남호화상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다.
1917. 20세에 호은 화상을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다.
1923. 26세에 송광사 강원에서 중등과 학업 수료.
1924. 송광사에서 세운 벌교 송명학교 교원 봉직 시작.
1939. 41세에 일본 경도 임제전문학교 졸업.
       송광사 강원의 강사 취임
       예산 정혜사의 만공선사 회상과 통영 용화사 도솔암 효봉 선사 회상에서 안거 정진을 제외하고 거의 한 평생을 송광사에 계시다.
1949. 1963. 1970. 세 차례 송광사 주지직 역임.
1969. 구산 방장스님과 총림 설립에 참여.
1983. 입적.


 <불교를 누가 고친단 말인가> 나는 석가모니, 불타, 부처님, 세존, 여래 등의 호칭으로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사실을 알고 종합해 보았다.


 석가모니(BC563~483, 80)는 고대인도, 지금의 네팔의 석가 족 출신으로 성은 고타마 Gautama, 이름은 싯타르타 Siddartha,이며 불타, Budda는 ‘깨달은 사람’, 석가모니 Sakyamuni 는 ‘석가족의 성자’란 의미라 한다. 존호로는 세존, 사주, 여래이며 왕족의 태자로 태어나 결혼하였으나 29세에 출가 수행하여 35세에 크게 깨달음을 얻고 80세에 입적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보다 약 500년이나 앞서 세상 사람들을 교화하였으며 그의 가르침은 사후 제자들이 만든 경전에 수록되어 전해온다. 부처님의 말씀은 열반 후 오백 명의 비구가 모여 교법과 계율을 결집했다 한다. 교법은 부처님을 25년 동안 옆에서 모신 제자 ‘아난다’의 기억을 대부분 되살렸고 계율은 ‘우팔리’가 외었다 하며 당시 상황을 ‘율장소품오백결집건도’에 기록하였다 한다. 나는 사실 예수의 가르침을 기록한 성경보다 더 오래 전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이 불타 입적하고 한 참 후에 정리되다보니 사실과 퍽 달라져 과장이나 오류가 섞여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 진 것이라 짐작했었다. 그러나 입적 직후 직계 제자들 오백 명이 결집하여 적었다 하니 그 동안의 내 생각이 빗나갔음을 알았다.


 더구나 아난타에게 열반 직전에 “내가 입멸 후 승가가 만약 그것을 원한다면 사소한 계(小小戒)는 버려도 좋다.”라고 세세한 부탁까지 했다는 구절을 읽고 더욱 신빙성을 얻었다. 그러나 ‘아난다’가 미처 사소한 계의 범위를 불타에게 묻지 않아 오백 명의 비구들 사이에 이론이 분분하다가 ‘마하카샤파’가 “우리들은 세존께서 제정해 놓으신 계율을 남김없이 지킵시다.”로 제안하여 이에 모두 동의하여 “승가는 새 법을 만들지 말고 이미 만들어 놓은 옛 법을 깨뜨리지 말며, 계율을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로 결론지었고 지금도 이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 한다. 더구나 아난다가 세존에게 사소한 계의 범위를 묻지 않은 허물을 참회케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불교의 석가모니의 말씀이 생각보다 왜곡이 없고 직접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변하지 않는 모습>
 책 대부분의 내용이 법정스님 출가 이후 이야기여서 조금 따분하던 차에 이 소제목 아래 내용은 스님이 출가직전인 1950년 전남 흑산도에 갔던 이야기가 흥미롭다. 특히 1984년 즉 34년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흑산도에 있었던 일과 관련된 죽음 이야기가 나와 숙연해진다. 글에서는 직접 언급이 없지만 전남대학교 상과 2학년이던 스님이 섬마을 생활상 조사를 목적으로 흑산도에 갔다가 허름한 걸망을 맨 젊은 스님 둘을 만났는데 그 중 한 스님이 손거울을 꺼내 보기에 속으로 스님도 거울을 보는구나 하고 신기했었다 한다. 흑산도에서 홍도로 갈 때 다시 이 두 스님과 함께 배를 탔으며 다시 다물도에서 마주치고 목포로 돌아오는 배위에서 만나 친해져서 불교의 수도생활도 묻고 헤어질 때는 서운하기까지 했다 한다. 그 후 출가하여 그 두 스님을 어디선가 다시 만나 옛 이야기를 하며 반가워했는데 1984년 그 분 한 스님이 불의에 입적한 송광사 도광스님이라 하며 애석해 하는 글이다. 이 두 분 스님의 수행모습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이 30년이나 여일하였다 회상하며 다른 한 스님은 태고사에 계시는 도천스님이라 하였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두 스님은 평생 같이 다니며 수행하는 ‘수행도반’으로 화엄사에서는 두 스님을 큰 스님으로 모시고 2016년 도광스님 원적 32주기 도천스님 원적 5주기를 맞아 합동추모제와 부도 제막식을 열었다고 나와 있다.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얼마 전 사무실 동료 한 사람이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진리는 하나’라는데 ‘왜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 하느냐’하여 대답이 궁했다는 말을 듣고 다 함께 많은 생각을 하였다. 물론 어린 학생이 큰 문제에 대한 진리를 말한 것이 아니고 평소 생활에 일어나는 사소한 일을 상대로 말하긴 했으나 과연 이 세상에 진리가 얼마나 유효한가를 다시 물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생각이 깊고 삶과 죽음을 깊이 천착한 사람들의 생각은 표현이 조금 다를 뿐 같은 의미를 지닌다.


 로마시대 시인 호라티우스의 Carpe Diem, 카르페 디엠, 중국의 임제선사의 卽時現今 更無時節(바로 지금이다 따로 시간이 없다)는 같은 의미이며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즉 동서양의 진리는 표현이 다를 뿐 동일하다는 생각을 한다.

<발심수행장>은 “시간이 지나가 어느새 하루가 흐르고 어느덧 한 달이 되며, 한 달 두 달이 쌓여 문득 한 해가 되고 한 해 두 해가 바뀌어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된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마침 오늘이 2017년 12월 24일이다. 이제 일주일이면 또 한 해가 간다. 2018년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생각 해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