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말과 침묵>을 읽고...

깃또리 2018. 5. 30. 16:08

<말과 침묵>을 읽고...
법정
샘터
2017.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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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스님이 세상을 떠나신지 몇 년 전 같으나 2010년이니 벌써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간의 흐름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절실히 마음에 와 닿는다. 스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 몇 가지 당부하셨는데 ‘사리’를 수습한다고 다비식을 치르며 법석을 떨지 말고, 수의도 따로 마련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고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라 하셨다 한다. 생전 스님의 책을 가장 많이 출판했던 ‘샘터’ 출판사도 이를 따르면서 ‘유지에 따라 절판하기로 하고 마지막 쇄’ 아홉 권을 한 질로 묶어 펴냈다.


 나는 ‘샘터’사에 오래 근무한 지인의 호의로 한 질을 선물 받아 그 동안 내 서가에 꽂아 두고 있었다. 사실 서가에는 이미 읽은 다섯 권의 스님의 책이 있어 대부분 제목이 낯설지 않고 시간이 나면 다시 정독하려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한 사람이 이 책들을 무척 좋아한다고 하여 우선 내가 다 읽은 다음 넘겨주려고 제일 먼저 <말과 침묵>을 꺼내 읽었다. 이 책은 내가 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평소 나 스스로 말이 넘친다고 생각했기에 자연스럽게 첫 번째로 빼든 것 같다. 사실 이런 책을 읽지 않아도 인간사에서 말은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넘치거나 올바르지 않으면 크게는 화근이 되고 재앙이 되기 때문에 안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스스로 다시 한 번 경계를 하며 인상 깊은 몇 부분을 옮겨 본다.


 <살아 있는 것들의 행복을 위해> 편에 “서양의 휴머니즘이 ‘인간 중심’이라면 동양의 자비는 인간중심을 넘어 ‘생명 중심’이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동서양의 인식의 차이, 철학적 사고를 단순 명쾌하게 비교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서양철학의 최고 경지에 오른 철학자나 인문학자들이 동양철학, 불교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더 나아가 심취하는 경우가 많은가 보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차원이 다르다 할 수 있다.

 서양철학은 인간사이의 평등, 사랑에 관심을 가지지만 동양, 불교철학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포함하고 더 나아가 전 우주적 평등, 사랑을 이야기 한다. 그래서 ‘살아 있는 생물의 육신을 섭취하는 일을 부모의 육신을 삼키는 일처럼 여겨라’ 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도 있으며 나는 이에 동의한다. 그래서 우리가 입에 넣는 소고기, 닭고기를 아무 생각 없이 삼키지만 사실은 어제 살아 숨 쉬고 우리 곁에 있던 살아 있던 소, 송아지였고 모이를 쪼아 먹던 살아 움직이던 닭이라는 생각에 미치면 우리들은 이 세상 살아 있는 존재에 하루하루, 매 순간순간 빚지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라는 생각이 든다.


<번뇌와 속박에서 떠나라>에 나오는 ‘숫타니파타’의 유명한 글을 옮겨보았으며 여기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제목으로 작가 공지영은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을 사회 전반의 문제로 끌어올려 페미니즘에 관한 논의에 불을 붙였다고 평해지는 책을 썼다.


모든 생물에 대해서 폭력을 쓰지 말고
모든 생물은 그 어느 것이나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반자들 속에 끼면 쉬거나 가거나 섰거나
또는 여행하는 데도 항상 간섭을 받는다
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정진은 불사의 길> 정진하는 사람은 죽는 일이 없고 방일한 사람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죽음 쪽에서 보면 순간순간 죽어오고 있는 것. 그러므로 순간순간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따라 그것이 삶일 수도 있고 죽음의 길일 수도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나온 간단한 대답이다. 그래서 서양 고대 철인이자 작가였던 호라티우스(BC 65~AC 8)의 짧은 시의 마지막 부분에 “Carpe Diem"이 나온다.


Tu ne quaesieris—scire nefas—quem mihi, quem tibifinem di dederint, Leuconoë, nec Babyloniostemptaris numeros.

ut melius, quicquid erit, pati!
seu plures hiemes, seu tribuit Iuppiter ultimam,quae nunc oppositis debilitat pumicibus mareTyrhenum.

Sapias, vina liques, et spatio brevispem longam reseces. dum loquimur, fugerit invidaaetas: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 Quintus Horatius Flaccus


묻지 말아라(왜냐면 안다는 것은 잘못된 행위이다) 신들이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그들이 나에게 무슨 신비로운 것을 생각해냈는지 어떤 바비론의 점술도 찾으려 하지마라!무엇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인내를 갖음이 얼마나 더 좋을까!유피더가 몇 차례의 겨울을 우리에게 주든지 마지막까지 우뚝 서있는 튀레니의 바위가 지금 바다로 쓸어지든지 - 본래 성품으로 살아라포도주의 잔을 비워라  그리고 오래 가지 않는 먼 꿈(그리움)도 접어두어라!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인정 없는 시간은 벌써 도망갔다: 오늘을 잡아라, 되도록 내일을 쉽사리 믿는 일이 적도록 하라


 * 책을 읽으면서 평소 익숙하게 듣고 읽었지만 원래의 출전이나 확실한 의미를 모르고 지냈던
   몇 개의 어휘들은 설명을 읽으며 퍽 흥미 있고 유익하게 생각하였다.


1. 숫타니파타: 숫타(경 經)+ 니파타(집 集) 의 뜻이며 초기 석가의 제자들이 시와 이야기를 시문집으로     모아 묶은 것이며 여러 개의 경이 5장으로 구성되었다 한다.
2. 음사(音사):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를  한자로 옮길때 번역하지 않고 소리 나는 데로 적은 것.
   ‘예’  반야(般若) panna/지혜, 열반(涅槃) nirvana/평안
3. 크샤트리야(원래는 밭 주인) 인도의 세습되는 4 계급제도의 하나이며 경우에 따라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아래와 같이 5 계급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1) 브라만, bhramin/성직자, 학자
  2) 크샤트리야, kshatryia/왕족, 귀족, 법관, 경찰, 의원
  3) 바이샤, vaishya/농민, 상민, 생산자, 연예인
  4) 수드라, sudra/노동자, 하인, 청소부
  5) 파라이야, paraiyar/불촉천민/시체 처리인, 화장실 청소원, 가죽 직인 등

4. 비구(比丘) 빅쿠(산스크리트어) 빅슈의 음역
5. 아라한(산스크리트어) arahan/성자, 공경받은자
6. 애욕, 갈애(渴愛)의 tanha의 번역, 목이 마른 것
첫 번째 책으로 인상 깊게 읽었으며 앞으로 나머지 책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