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읽고...

깃또리 2018. 5. 25. 11:15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읽고...
은희경
창비
2018. 4. 15.


 내가 오래 전 이 소설의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 그리고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고도 장편소설인줄 알았다. 책표지에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가 크게 적혀 있었고 속표지도 마찬가지여서 차례에 나오는 6개의 작은 제목조차 장편소설의 소제목으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 <의심을 찬양함>을 읽은 다음 <고독의 발견>을 읽었는데 주인공도 전혀 다르고 내용도 이어지지 않았으나 작가의 의도적인 소설기법으로 좀 특이한 소설이려니 하다가 두 번째 편을 다 읽고 아무래도 이상하여 책 표지를 다시 보았더니 ‘은희경의 소설집’이 눈에 들어왔다. 즉 단편소설 여섯을 모은 책이고 그 중 하나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이다. 순전히 나의 부주의와 무지 탓이었다. 그래서 차례를 다시 자세히 보았더니 마지막 단편이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이며 이 단편은 오래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나서 우선 이 단편을 다시 읽고 난 다음 제일 마지막으로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읽었다.


 언젠가 이야기 한 것처럼 장편소설은 후기를 쓰기가 비교적 쉬운데 단편은 아무래도 스토리가 짧고 단순하여 두 세 페이지를 채우기가 쉽지 않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주인공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어느 날 나타나 이태리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던 일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시작하는데 소제목이 <봄눈>이다. 주인공은 이때 몸집이 다른 애들보다 불어나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의기소침하였고 이 식당 벽에서 처음으로 나중에 알았지만 보띠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았으며 창밖에 눈이 내리던 그 봄을 잊지 못한다. 다음으로 부자집 아들 친구 아버지 서재 책상 위에 펼쳐진 오스트리아 빈 박물관 소장의 도록에서 ‘빈렌도르프의 비너스’ 실린 페이지를 뜯어 훔친 이야기를 하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주인공의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을 넘어 체중을 줄이려는 여러 노력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체중 감량에 대한 긴 이야기 속에 인간의 식성, 식욕, 본능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인간의 식용에 대하여 상당히 학문적이고 전문적이며 심리적 문제를 다룬 관련 서적을 많이 읽은 듯하다.


 왜냐면 최근 나는 이스라엘의 대학교수 유발 노아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 Sapiens>를 읽었는데 이 책은 15만 년 전의 원시 인류부터 현대 인류의 진화과정을 비롯하여 인류 문명사를 폭 넓게 다루었고 여기에서 아직 인간의 뇌가 원시인류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부분에 대하여 기술한 부분이 있다. 즉 현대 인류는 음식물이 차고 넘치도록 풍부해도 우리의 뇌는 아직도 원시 수렵시대 노동과 생존을 위해서 식량이 바닥이 나 굶게 될 것을 대비하여 지방과 당분을 몸 안에 축적하려는 원초적 본능이 남아 있다 하였다. 그래서 당분과 지방이 몸에 이롭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대인은 아이스크림과 같은 당분 그리고 육류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다 알려진 일이지만 작품을 쓰기 위해서 아마 작가는 다시 읽고 일부는 인용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작가가 이 작품을 쓸 시기가 아직 <사피엔스>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니 아마 다른 책들을 보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다시 이와 관련한 몇 문장을 옮겨본다. “다이어트가 어려운 것은 몸속에 장착된 수백만 년이나 된 생존본능 씨스템오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철저히 지방을 모아 저장하는 돌도끼 시대의 씨스템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인의 미와 건강 기준은 몸속의 지방을 남김없이 태워 없애야 하는 것이다. 다이어트는 원시적 육체와 현대적 문화 사이의 딜레마 일 수밖에 없다.” 주인공의 눈물겨운 체중 줄이기 노력으로 거의 목표에 다 달을 즈음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듣고 배다른 동생이 상주역할을 하는 빈소에 들러 이제 뚱뚱했던 아들만을 기억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영정 사진을 보며 뜨거운 국밥을 두 그릇이나 비운다.


 그는 이 순간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나를 멸시한다고”  그때 상주인 배다른 동생이 조화 뒤 벽에 기대 놓았던 커다란 액자를 가져와 내밀었는데 액자는 집에서 포장한 듯 신문지로 꼼꼼히 싸여 있었고 주인공은 오래 전 기억이지만, 가로와 세로의 크기가 눈에 익었기 때문에 무엇이냐고 묻지 않고 받았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소설 주인공은 용돈으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자기 방의 벽에 비너스의 그림을 걸었다는 내용이 소설 중반부에 나오긴 하지만 어떻게 이 그림이 집을 나간 아버지로부터 이복동생의 손에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소설을 다시 읽으면 아마도 실마리가 풀리겠지만 이런 사실이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의심을 찬양함>이란 단편은 ‘유진’이라는 젊은 여성 주인공이 동명이인들과 혼동과 실수를 벌이는 내용의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유진’과 만나는 남자가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의 큰 도시 중 하나여서 크고 작은 미술관이 여럿 있으나 제일 잘 알려진 미술관은 <MOMA in SF>이다. 시내 중심지에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자신이 자주 선택하는 ‘테라코타’로 외벽을 설계하여 독특한 인상을 주는 미술관이기도 하다. 남자는 자기 형이 이곳에서 마티스의 복사그림 포스터를 샀으며 미술관 야외 까페에서 멋진 브런치를 잊지 못한다 하였다. 나는 사실 이 미술관을 2002년과 2017년 두 번이나 간 일이 있으나 동행이 있어 마음대로 돌아보지 못하여 이곳에 야외 까페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혹시 다음에 가게 되어 기억이 나면 들려 볼 일이다.


 사무실 근무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플레너 노트 이야기 중에 헤밍웨이와 피카소도 썼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제는 워낙 좋고 새로운 디자인의 다이어리가 나와 인기가 그만 못하지만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는 일은 대단하다. 예술에 관한 이야기 중에 “예술은 사람들이 사고하는 일정한 패턴을 배반함으로써 긴장을 만들어 냅니다. 모두가 예상하는 패턴과 어긋날 때에 농담이 성립될 수 있듯이”란 문장이 나온다. 사람과 사람의 끌림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객관적 정보가 아니에요. 설명할 없는 감각과 느낌입니다.”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므로 항상 일정하고 평범한 범주에서 벗어나는 풍경, 말, 이야기들이 유명한 그림, 농담, 소설이 되는 듯하다.

 

 이 작품을 쓴 은희경씨는 1959년 전북 고창 출신으로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로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마침 내가 고창에서 상하초등학교와 고창중학교를 다녀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는 곳인데 그래서 은희경 작가의 작품은 더욱 관심이 많다. 8년 전쯤 저자가 참석하는 어느 모임에 가서 직접 만나 고창 이야기도 하고 구입한 소설책에 저자 사인도 받은 일이 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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