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사피엔스, Sapiens>를 읽고...

깃또리 2018. 5. 24. 10:09

<사피엔스, Sapiens>를 읽고...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김영사
2018. 04. 15.



 책 앞표지에 제목 <사피엔스>와 함께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이라는 문구가 있다. 또한 뒤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보인다. "인간 역사와 미래에 대한 가장 논쟁적인 대서사, 문명의 배를 타고 진화의 바다를 항해한 인류는 이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왜 사피엔스 종만 살아남았나? 인간은 왜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동물이 되었는가? 과학은 모든 종교의 미래인가? 인간의 문명은 발전하였고 이런 발전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었는가? 인간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 인가? 역사, 사회, 생물, 종교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역사의 시간을 종횡무진 써내려간 문명 항해기, 이제 우리는 무엇을 인간이라 할 것인가?”


 지구의 생성이 40~46억 년 전이라 하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15만 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 신화, 역사, 문화, 종교, 과학기술을 아우르는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이다. 작년부터 읽으려 했으나 이런저런 일로 미루다 올 4월 초부터 2주일에 걸쳐 읽었다. 평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인류 역사와 생물, 종교, 과학,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통시적으로 명쾌하게 펼쳐 보이는 책이다. 몇 년 전에 출판된 명저 <Guns, Germs and Steel/ 총, 균, 쇠>를 쓴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UCLA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역사와 현대 세계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진 책,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라는 짧은 서평이 책 뒤에  보인다. 저자 유발 하라리 또한 <총, 균, 쇠>에 깊은 감명을 받고 이 책을 썼다하며 나는 그 동안 몇 번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내려놓았으나 올 해 안으로  꼭 읽으려 한다.


 <사피엔스>를 읽고 나서 한 가지 생각이 가정 먼저 떠올랐다. 이런 책은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 읽을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데 영향력이 있는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 그리고 대기업집단 소유주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마침 페이스 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의견이 보인다. “수렵 채집이던 인류가 어떻게 오늘날의 사회와 경제를 이루었는지 알려주는 인류문명화에 대한 거대한 서사”

 일반적으로 책을 읽고 지식을 더하고 감동하는 일만으로는 이 세상이 조금도 바뀌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하다. 또한 마크 저커버그나 몇 사람의 관심과 결심으로 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이 세상에 현존하는 사피엔스는 비탈진 언덕을 구르는 거대한 바퀴처럼 아래로 아래로 굴러 언젠가는 깊은 낭떠러지나 깊은 바다로 사라질 운명이라는 암울한 생각도 지울 수 없다. 하긴 수백 년 또는 그 이상 오래 전에 종말론이 떠돌았었고 식량부족, 참혹한 전쟁으로 지구의 멸망을 우려했으나 아직도 세상은 그런대로 이어지는 걸 보면 비관론만으로 우울해 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사실 수백 년 넘게 인간은 신의 존재를 믿고 신의 구원을 기대하였으나 이제 신은 어디에도 없으며 신의 구원도 요원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하나님, 알라를 외치고 있지만 과학, 생물학, 진화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어떤 창조주, 신이 존재하지 않고 단지 인간의 상상 속에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사피엔스 스스로 지구의 멸망을 막거나 늦추는 일에 뛰어 들어야 하고 또한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텐데 현재의 상황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쉬운 예로 세계 최강 10 개국의 군사비의 반만 줄인다면 세상 모든 나라의 기아와 가난을 막을 수 있다 하는데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고 오히려 군비강화에 힘쓰는 상황이다. 인류의 출현과 광대무변한 우주를 정확히 파악하고 기술하는 일은 불가능하고 단지 그간의 지식과 상상이 모아져 이런 뛰어난 책이 출판되었으나 이 책의 한계도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저자는 기독교인이나 불교, 이슬람교도가 아닌 소수 종교에 속하는 유대인인 덕분에 비교적 편견 없는 시각으로 서양과 동양의 역사, 종교문제를 거리낌 없이 다룬 듯 하다.


 만일 이런 책이 중세시대에 나왔더라면 불에 태워지고 저자는 화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지금도 일부 광신자들은 이런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치 어떤 사악한 물건인 듯 배척하고 아예 귀를 닫으며 갖은 궤변과 교묘한 이론으로 자신의 신을 옹호한다. 인간의 그릇된 신념이 얼마나 강하며 이 신념으로 불행한 일이 허다하게 일어난 걸 생각하면 실상 인간은 지극히 불합리한 존재라는 생각도 버릴 수 없다. 그러나 저자는 비교적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종교를 거론하면서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와 함께 여타 세계 여러 소수종교를 이야기 했으나 유대교에 대하여 언급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학자의 양심에 따라 좀 더 균형감각을 지녔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유대교 역시 세상을 흐리게 하는데 다른 종교와 크게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많은 내용을 정리하는 일은 어려워 내 기준에서 일부 흥미로운 부분을 간추려 보았다.


 우주의 나이는 약 135 억년(번역자: 137억 년)이고 지구의 나이는 46억년, 지구에서 38억 년 전에 생물이 탄생하였다고 보고 있으며 인류는 약 250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에서 진화했다하였다. 저자는 원시 인류 구분을 유럽과 서부 아시아의 네안데르탈인, 아시아 동쪽 호모 에렉투스, 그리고 아프리카 동부 인류를 사피엔스라 구분하여 부르고 사피엔스가 15만 년 전에 동서로 이동하여 교배를 진행하며 네안데르탈인을 압도하여 지구에 살아남아 약 7만 전부터 3만 년 사이에 원시시대 인지혁명을 일으켰다고 보았다. 사실 원시인류 구분은 학자마다 다르고 명칭도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어 복잡하다.

 책은 제1부, 인지혁명, 제2부, 농업혁명, 제3부, 인류의 통합, 제4부 과학혁명으로 나누어 전반부는 호모사피엔스 출현 이후의 기나긴 세월의 점진적인 변화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제12장 <종교의 법칙>에서 다신교와 일신교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로마제국은 여러 종족의 다신교에 대하여 관대하였으나 기독교를 받아들인 다음 일신교인 기독교는 사랑과 관용을 내세우면서 다른 종교는 말할 필요 없고 조금 해석을 달리하는 같은 기독교인을 수백만 명 학살했다 하였다. 그래서 비기독교 시기의 로마제국이 기독교 박해로 발생한 희생자를 다 합하여도 몇 천 명을 넘지 않는다 하였다. (P-307) 그러나 기독교를 국교로 한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의 싸움에서 몇 배가 넘는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 몰렸다 하였다. 같은 신을 믿는 사람들의 사소한 종교적 해석을 이유로 자행된 참혹한 살육은 이루 말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여러 번 언급하였다. 이는 비단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이슬람교의 시아파와 수니파도 말할 나위가 없다. 즉 종교란 어디까지가 선인지 구분이 힘들다는 생각에 나도 동의 한다.


 제15장 <과학과 제국의 결혼>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 탐험대가 지금의 서인도제도를 발견하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신대륙인지를 몰랐으며 1499~1504년 사이에 이탈리아 선원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1502~1504년 사이에 탐험기록을 출간하여 새로운 대륙임을 주장하였고 지도 제작자 마르틴 발트레뮐러는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신대륙의 발견자로 잘못 알고 지도 제작하면서 새로운 대륙을 아메리카로 이름 붙였다 한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아메리카 대륙의 이름이 아메리고 베스푸치로부터 이름이 연유한 것까지는 알고 있었으나 이런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또 한 가지는 동양에서 미국, 美國이라 부르는 명칭이 혹시 ‘아메리고’라는 이름에 ‘아름답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하였으나 후일 알게 된 사실로는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일하러 갔던 중국 노동자들이 고향에 편지를 보내면서 아름다운 하와이 섬을 미국 땅으로 아름답다 생각하여 ‘美國’이라 불렀다라는 설이 신빙성이 있다 한다.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가서, 제국은 과학을 지원하여 세계 곳곳을 탐험하여 새로운 땅을 제국에 편입시키고 이 땅을 착취하고 경영하고, 이익을 다시 과학에 돌려주는 형태였는데 서구 열강의 대표적인 대상지역이 인도, 호주, 남아시아, 남북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식민 지역이었다. 이 과정에서 호주의 태즈메니아 인의 멸종, 잉카, 아즈텍 문명이 사라지고 천 만 명이 넘는 뱅골 인이 때죽음을 당했으며 아메리카 인디언의 슬픈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외에도 1800년 후반 서방 세계로부터 당한 중국의 치욕 등을 길게 서술하였다.


 제 16장 <자본주의의 교리>에서는 제국이 과학과 함께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와 손을 잡아 어떻게 식민지를 만들어 관리하였으며 왜 노예무역이 위세를 떨칠 수 있었는가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여기에서도 기독교의 선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악행을 기록하고 있다.

 제 17장 <산업의 바퀴> 특히 영국의 산업혁명이 어떤 역할을 하여 유럽의 변방이자 작은 섬나라에 불과했던 작은 나라가 해가 지지 않는 대 제국이 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산업혁명을 꼽았다. 그러나 이 장에서 내게 특히 흥미 있는 이야기는 1820년 대 서양의 화학자들이 광석에서 알루미늄을 분리하는 방법을 알아냈으나 비용이 많이 들어 초기에는 금보다 비쌌다 한다. 그래서 1860년 프랑스 나폴레옹 3세는 가장 신분이 높은 손님은 알루미늄 식기로 대접했고 그 다음 신분은 금으로 된 나이프와 포크를 준비했다 하니 지금으로 보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내가 어릴 때 알루미늄을 ‘양은’ 즉 서양의 은이라 부르며 소중하게 생각했었으니 그냥 웃을 일이 아니다.


 제 19장 <끝없는 혁명>에서 ‘현대의 시간, 이란 소제목 안에서 1800년 대 초 영국은 각 도시마다 시간이 달라 가장 차이가 나는 곳은 무려 30분이나 되었다 한다. 이런 차이에도 큰 불편이 없었으나 1820년 대 스티븐슨의 최초의 상업용 기차가 리버풀에서 맨체스터 사이를 운행하면서 기차 시간표를 만들고 도시마다 다른 시각표를 통일하기 위해 그리니치 천문대 표준시를 따르도록 했다 한다. 최초의 기차 철도가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다른 도시 사이에서 놓인 게 아니라 리버풀과 맨체스터인 걸 보면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맨체스터에서 모든 물자의 해상 수송기지인 리버풀 항구로 물품을 실어 나르기 위해 이 두 도시 사이의 철도가 우선했으리라 생각된다. 이장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쓰였다.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가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우리는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갈림길에 서 있다. 한 쪽으로 난 문과 다른 쪽으로 열린 입구 사이에서 초조하게 오락가락하고 있다. 역사는 우리 종말에 대해 아직 결정 내리지 않았으며, 일련의 우연물은 우리를 어느 쪽으로도 굴러가게 만들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관점을 유보하며 독자들의 깊은 생각을 요구하고 있다.


 제 19장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저자는 지난 500년은 깜짝 놀랄만한 혁명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시기라 하였다. 현생 인류의 탄생을 15만 년 전으로 보면 500년은 0.33퍼센트에 해당하는 아주 짧은 기간이다. 다시 이해가 쉽게 환산하면 1년 365일 중에서 하루 조금 넘는 기간이다. 즉 이런 짧은 기간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 존재가 사피엔스이며 이 변화가 과연 어느 방향으로 갈지조차 모르는 게 현실이라 하였다. “그간 인류는 모든 것의 역사를 연구했다. 정치, 사회, 경제, 성역할, 질병, 성적 특질, 식량, 의복……하지만 이것들이 인류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멈춰서 생각하는 일은 드물었다.” 과연 인류가 점점 행복해지고 있는가? 아닌가? 에 대한 물음이다. 그러나 이를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화학적 행복’이라는 소단원에서 “생물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감정세계는 수백만 전의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생화학적 지배를 받는다. 신경, 뉴런, 시냅스 그리고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 다양한 생화학적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 나는 이 부분에서 평소 종교나 광신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행복을 떠올려보았다. 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조차도 신이나 집단의 우두머리를 위해서 참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에게도 어떤 ‘화학적 행복’이 적용 되는가 궁금하다.


 마지막 20장은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이다. 역시 이 장에서도 종교 특히 기독교인들이 듣기에 거북한 내용이 수시로 나온다. “40억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선택의 법칙에 따라 진화했다. 지적인 창조자에 의해 설계된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스스로 한계를 초월하는 중이며 예를 들면, 유전자 조작으로 새로운 생명체의 출현, 복제 생물, 사이보그, 죽음을 뛰어넘는 소위 ‘길가메시 프로젝트’ 등에 이미 발을 내딛고 있다고 하였다.

 책을 읽다보면 15만 년 전의 원시인류부터 현대 인류 그리고 앞으로 출현 할 신인류를 포함하여 종교, 제국, 자본주의 그간 인간이 만든 제도에 의해 어떻게 세상이 변했는가를 거대담론으로 종횡무진 펼치는 능력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인류, 종교,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가슴을 서늘하게 하기도 한다. 특히 인류가 다른 동물과 차별되어 이 지구의 주인공이 된 것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하였다. 이 상상력이 신도 만들고 위계질서도 만들어 인도의 카스트제도, 미국의 흑백 인종 차별, 히틀러의 야망을 키웠다 했다. “대부분의 사회정치적 차별에는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신화가 이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문장들이 가슴을 울린다. 시간이 되면 다시 읽고 싶은 책이며 저자가 쓴 또 다른 책 <호모 데우스>도 찾아 읽으려 한다.


* 책을 다 읽고 저자가 쓴 <후기>와 번역자의 <옮긴이의 말>을 읽었는데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전체 맥락을 알 수 있는 내용이어서 옮겨 보았다.


<후기>


신이 된 동물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의 한구석에서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을 쓰는 별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다. 이후 몇 만 년에 걸쳐, 이 종은 지구 전체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가 되었다.
 오늘날 이들은 신이 되려는 참이다. 영원한 젊음을 얻고 창조와 파괴라는 신의 권능을 가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불행히도 지구상에 지속되어온 사피엔스 체제가 이룩한 것 중에서 자랑스러운 업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주위 환경을 굴복시키고, 식량생산을 늘리고, 도시를 세우고, 제국을 건설하고, 널리 퍼진 교역망을 구축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의 고통의 총량을 줄였을까? 인간의 역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개별 시피엔스의 복지를 개선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다른 동물들에게는 큰 불행을 야기 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지난 몇 십 년간 우리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서는 마침내 약간의 실질적인 진보를 이룩하였다. 기근과 전염병과 전쟁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의 상황은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대다수 인간의 상황이 개선되고 있지만 이는 극히 최근의 일이며 확신하기에는 상황이 지나치게 불안정하다. 더구나 인간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의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불만족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우리의 기술은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왕복선으로 발전해왔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친구라고는 물리법칙밖에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옮긴이의 말>


<사피엔스>는 2011년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로 출간된 이래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국제적인 베스트셀러다. 저자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에서 세계사를 가르치는 유발 노아 하라리 박사, 스스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그는 ‘빅히스토리’를 서술하였다. “매우 큰 질문들을 제기하고 여기에 과학적으로 답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총, 균, 쇠>는 보여주었다.”


 저자는 생물학과 역사학을 결합한 큰 시각으로 우리 종, 즉 호모 사피엔스의 행태를 개관한다. 약 3만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에는 최소한 여섯 종의 호모(사람) 종이 있었다. 예컨대 동부 아프리카에는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아시아 일부에는 직립원인이 거주했다. 모두가 호모, 즉 사람 속, 屬의 구성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우리 종밖에 남지 않았다.  저자는 이에 덧붙여 사피엔스가 이르는 곳마다 대형 동물들이 멸종했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생물학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종이다. 생태학적 연쇄살인범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멸종시킨 종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면 아직 살아 있는 종을 보호할 동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책의 주된 주장이다. 더 나아가 이 같은 협동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믿을 수 있는 독특한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신, 국가, 돈, 인권 등이 그런 예다. 인간의 대규모 협동 시스템 - 종교, 정치체제, 교역망, 법적 제도 -은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허구, 즉 지어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종의 가장 독특한 특징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 종의 역사는 세 가지 혁명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지 혁명(우리가 똑똑해진 시기), 농업혁명(자연을 길들여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게 만든 시기), 과학혁명(우리가 위험할 정도의 힘을 갖게 된 시기)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불과 20여만 년 전에 등장했다. 그 이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류는 동아프리카를 떠돌며 수렵채집을 하는 중요치 않은 유인원 집단에 불과했다. 그리고 약 7만 년부터 이들은 매우 특별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이를 ‘대약진 Great Leap Forward'이라고 했다. 그동안 선박, 전투용 도끼, 아름다운 예술을 발명했으며, 이것이 바로 인류를 변화시킨 첫 혁명인 인지혁명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저자는 발견되지 않은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를 근거로 제시한다. 이 덕분에 뇌의 배선이 바뀌어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단과 집단 간의 협력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이후 약 12.000년 전 인류는 농업혁명에 돌입했다. 수렵채집 시기에서 농업의 시기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식량의 90퍼센트는 기원전 9500~3500년에 우리기 길들인 가축과 농작물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의 부엌은 고대 농부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농업 덕분에 가용 식량은 늘어났지만, 이 같은 번영의 결과는 행복이 아니라 인구 폭발과 만족한 엘리트였다. 농부는 수렵채집인들 보다 더욱 열심히 일했지만 그 식단은 빈약했고 건강도 나빴다. 잉여 농산물은 특권을 가진 소수의 손으로 들어갔고, 이것은 다시 압제에 사용되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가장 큰 사기였다. 인류가 밀을 길들인(작물화) 것이 아니라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땀 흘려 자신을 키우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농업혁명은 제국을 출현시키고 교역망을 확대했으며 돈이나 종교 같은 ‘상상의 질서’를 낳았다.

 

 과학혁명은 약 5백 년 전 일어났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성장, 글로벌화,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확대, 환경파괴를 불렀다. 이것은 차례로 250년 전의 산업혁명, 약 50년 전의 정보혁명을 유발했다. 후자가 일으킨 생명공학 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우리의 감정과 욕구가 이 중 어느 혁명에 의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의 식습관, 우리의 감정, 성적 특질은 수렵채집 시대에 맞춰진 우리의 마음이 후기 산업사회의 환경과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거대 도시, 항공기, 전화, 컴퓨터 ……“오늘날 우리가 먹을 것이 가득한 냉장고가 딸린 고층 아파트에 살지만 우리의 DNA는 우리가 여전히 사바나에 있다고 생각한다.” 설탕과 지방에 대한 우리의 강력한 욕구가 대표적인 증거다.

 유발 하라리는 과학혁명의 후속편인 생명공학 혁명이 결국 다다르는 곳은 ‘길가메시 프로젝트’라고 주장한다(‘길가메시’는 죽음을 없애 버리려 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웅이다).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프로젝트가 결국 성공하리란 것을 저자는 의심치 않는다. 인류는 앞으로 몇 세기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생명 공학적 신인류, 영원히 살 수 있는 사이보그로 대체될 것이다. 환경파괴로 인해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영생은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인간의 일상적 행복은 물질적 환경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는 유명한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돈은 차이를 가져오지만 그것은 가난을 벗어나게 해주었을 때뿐이다. 그 단계를 넘어서면 돈이 더 많아져도 행복 수준은 거의 혹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복권에 당첨되면 잠시 행복해질 수 있지만 대략 1년 6개월이 지나면 일상적 행복은 예전 수준으로 돌아온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사피엔스가 놀라울 정도로 잘하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같은 정도로 잘못한 영역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극단적으로 유능하지만 이 같은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매우 미숙하다. 우리가 전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지녔는데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저자의 독특하고도 흥미진진한 주장을 도처에서 접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우리는 언어능력 덕분에 공통의 신화 혹은 허구를 발명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화폐, 종교, 제국이었다. 이것이 대륙을 가로지며 사람들을 결속했다.” 자본주의는 경제이론이라기보다 일종의 종교이다. 제국은 지난 2천 년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정치체제였다. 오늘날 가축의 취급 방식은 역사상 가장 큰 범죄다. 현대인은 옛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인간은 현재 스스로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 있다.……“

 물론 이 책의 주장에는 상당한 반론과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인지혁명이 7만 전에 실제로 일어났는가가 그런 예이다. 그보다 수만 년 내지는 수십만 년 전부터 인류의 지능이 높았다는 증거들이 있지만 그동안 부당하게 무시되어왔다는 주장이 대두된다. 과학혁명에 대해서도 ‘그런 이름의 급격한 혁명 같은 것을 없다’는 이론이 오히려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나의 의견은 이렇다. “빅 히스토리가 새롭게 각광받는 것은 문제의식이 새롭기 때문이다. 증거가 충분할 리 없다. 거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인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핵심이다. 열린 마음으로 인간이라는 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따라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