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김훈의 <바다의 기별>을 읽고...

깃또리 2009. 7. 9. 12:56

<바다의 기별>을 읽고...

김훈 에세이

생각의 나무


2009.06.13.

 

<바다의 기별>은 13개의 에세이 그리고 부록에 그동안 김훈씨가 펴낸 책들의 서문과 각종 문학상 수상소감 등을 실었고 부록 2에는 표지그림을 그린 화가 오치균의 그림 5점이 딸려 있다. 김훈이 글을 써 펴낸 책이 헤아려보니 16권 쯤 되는듯하고 내가 그 중에서 7권을 읽었으며 이번이 8권 째이니 꼭 반을 읽은 셈이다. 그런데 김훈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항상 감탄한다.

 어떤 이유로 감탄하느냐고 묻는다면 딱 부러지게 뭐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 <바다의 기별>을 읽으면서 내가 김훈의 글에 감탄을 하는 이유 몇 개가 분명해졌다.


 김훈씨가 나보다 몇 살 위이긴 해도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그래서 그의 글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이 나와 대략 비슷하기 때문에 내가 김훈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의 폭이 넓고 깊이가 깊은 것이 아닌가 한다. 또 하나 김훈의 어휘구사와 조합은 가히 절묘하기 이를 데가 없어 어떻게 이렇게 능수능란하게 문장을 이어가는 가 탄복하기도 한다.

책 제목이자 첫 번째 나오는 소제목<바다의 기별>에서 나오는 표현으로 김훈은 고향이 원래 서울 북촌 토박이지만 이제는 일산에 살고 있으며 한강하구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바다는 멀어서 보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바다의 기별이 그 물가에 와 닿는다."

바다가 보이지는 않지만 멀리 아스라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바다와 맞닿은 정경을 이렇게 기막히게 표현하였다.


 김훈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하 이야기를 <광야를 달리는 말>이란 소제목에 풀어 놓았다. 나는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긴장과 호기심으로 그리고 가슴 뭉클한 심정이 일어나 읽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쉬었다 다시 읽고 처음부터 한 번 더 읽었다.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은 대개 엇비슷하게 고난과 쓰라린 사회 환경을 어렵게 헤쳐 나갔던 사람들이었고 김훈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 그 아버지들의 나이를 훨씬 넘어선 우리들이 조금 무식했고 가부장적이었으며 이해하기 어려웠던 우리 아버지들을 이제는 충분히 이해하고 남의 아버지 이야기이지만 나는 우리 아버지를 회상하며 한동안 책을 덮고 있었다.

 김훈의 아버지가 어느 추운 겨울에 문인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청년작가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을 읽고 그 충격에 밤새워 이야기 하며 "이제 우리들 시대는 이미 갔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며 작가 김훈은 식은 안주를 연탄아궁이에 데워서 가져가 드리느라 밤새 들락거렸다는 부분도 퍽 인상 깊었다. 또한 상하이 임시정부 수반 김구의 수발을 한동안 들었던 김훈의 아버지는 김구선생님의 기일이 되면 효창공원 김구의 묘소 앞에 쓰러져 "선생님, 선생님"을 부르며 새벽까지 울었다. 는 대목도 가슴 뭉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사한 나날들> "삶은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일 뿐이다. 죽어서 소멸하는 사랑과 열정이 어째서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을 들볶아 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사람과 열정으로 더불어 하루하루가 무사할 수 있다는 것은 복 받은 일이다."

첫 월급을 받은 딸이 용돈 15만원과 휴대전화를 아버지인 김훈에게 선물로 주어 이를 받은 작가는 "진부한 삶의 끝없는 순환에 안도한다."라고 하였는데 나도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한다. 당시에 대단한 성취였다고 또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돌이켜 보면 삶에서 희미하게 빛바래지는 얼룩일 뿐이다. 작가의 일상에 대한 담담함이 묻어나는 좋은 글이다.

 

 <생명의 개별성> 노환으로 오래 병실에서 고생하던 장모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 이렇게 두 사람의 죽음을 가까이 본 작가의 생로병사 아니 그 중에서 특히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담았다.

 "창세기 이래로, 인간은 죽음으로써 지구를 구해냈을 것이다. 다들 죽어 없어지지 않았더라면 또 다들 살 자리가 없어서 죽었을 터이다. 그래서 죽음이야말로 인간이 세계와 후손을 위해서 베푸는 가장 큰 보시이며 은혜일 것이다. 나는 산 자들의 그 어떤 위업도 그 죽음이 베푸는 은혜만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 자는 필멸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 못한다."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죽음이 없다면 어찌 세상이 지금과 같을까. 또한 죽음은 누구에게도 공평하여 세상의 질서 제일 꼭대기에 위치하여 세상을 관장하는 가장 엄격한 규칙이기 때문이다.


 <회상> 김훈이 3살 때 6.25 전란을 맞아 기차 지붕에 올라 부산으로 피란 가는 시절부터 60세에 이른 자신의 삶에 대한 간단한 소개 글인데 아마 어느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쓴 글인 것 같다. 대학 영문학과를 다니면서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들을 공부하며 그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있는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간 도서관에서 노산 이은상선생이 번역한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고 당시 공부하던 낭만주의 시들은 매우 아름답고 원대한 이상을 표현한 문학이지만 인간 현실을 말하기에는 매우 빈약하다는 인식에 도달하자 영문학이 싫어졌고 데모로 시끄럽고 마침 등록금 낼 형편도 어려워 2학년 2학기에 학교를 그만두고 군복무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또 기자생활 27년을 했는데 기자가 된 이유도 무슨 특별한 생각은 없었고 단지 취직자리의 하나로 막연한 생각으로 신문사에 입사했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젊은 시절 난중일기를 읽고 난 다음 그의 머리 속에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떠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37년이란 세월이 지나 <칼의 노래>를 써내려갔는데 불과 두 달 동안이었고 하루는 쓰고 하루는 쉬었으니 사실은 약 40일 정도 써서 펴낸 책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긴 세월동안 김훈의 머릿속을 맴돌고 정리되었던 이순신의 정신세계를 이리저리 가다듬었다가 김훈은 단숨에 써 버린 셈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짜르트가 머릿속의 악상을 평소에 정리하고 있다가 단숨에 곡을 쓴 일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훈은 글의 객관적 진술과 주관적 정서표현에 대하여 길게 적고 있다. <난중일기>가 어떤 수사가 없이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사실에 김훈은 깊이 영향을 받아 그도 그와 같이 글을 쓰고자 결심하였다고 한다.


 <말과 사물> 영어는 조사가 없이 동사가 목적어를 바로 지배해버리지만 우리들에는 몇 개 되지도 않는 조사가 한국어의 모든 언어장치, 문법구성, 사유전개를 펼치며 우리말은 조사의 매개 없이는 불가능하며 이 조사는 조사 안에 자유의 여백과 창조공간이 있지만 한편으로 모호하고 어렵고 힘들다고 토로하였다. 각 언어의 장점으로 한문은 포괄성과 개념을 규정하는 힘이 강하고 독일어계통은 강고한 논리의 틀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말은 서정시에는 적합하지만 법전을 기록하는데 명석성이 떨어져 허약함을 드러낸다고 하였다. 저자는 <칼의 노래> 첫 문장으로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정했지만 처음에는 "꽃은 피었다."라고 했다가 며칠 동안 고민하다 "꽃이 피었다."로 고쳤다고 한다. 즉, 객관적 진술과 정서적 세계의 차이에서 고민했다는 이야기이며 결국 그는 객관적 진술형식을 좋아한다는 말이며 앞으로도 그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즉, ‘꽃은’ 정서적인 표현이며 ‘꽃이’ 는 객관적 진술이라는 말인데 그러고 보니 김훈의 글들이 왜 다른 작가의 글과 다름을 확실히 보여주는 내용이다.


 김훈은 시간에 대한 깊은 생각도 하고 있으며, 음악은 그 자체로 자족의 세계이고 설명이 필요 없으나 언어는 많은 결함과 취약함을 내포하고 있어 소설가는 불안한 언어로 불안전한 세계에 사는 불안전한 인간에 대해 쓴다고 하며 이 사실이 작가들을 힘들게 한다고 하며 그러나 자신도 이를 감내하며 한줄 한줄 쓰다가 세상을 마치려 한다고 비장하고 비감한 글로 마치고 있다.


 글을 쓰는 누군들 생각 없는 자가 없겠지만 특히 김훈씨 삶의 과정과 글에 대한 생각을 읽어 보니 그는 인간의 삶과 언어에 대하여 정말 깊은 성찰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부록1의 서문들과 수상소감도 한 페이지라고 빼 놓을 수 없는 좋은 글들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