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Miracle, I Lived. Miracle I Will Live.을 읽고.

깃또리 2009. 7. 26. 23:28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Miracle, I Lived. Miracle I Will Live.을 읽고...

장영희에세이

샘터

 09.06.07.~21.

 

 

  온 세상을 향기로 감싸던 라일락과 하얀 자태로 발걸음을 멈추게 하던 목련이 지자 뒤 이어 수국과 넝쿨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나 올 봄은 더욱 아름다운 계절로 느껴졌다. 그러나 지난 5월 9일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 병마와 싸우다 장영희교수는 세상을 떠났다. 먼저 명복을 빈다.

나는 지상을 통하여 장영희교수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아마 십여년도 더 오래된 어느 날 월간동아 칼럼을 읽다 장영희교수는 내가 배웠던 중학교 영어교과서 저자 장왕록교수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퍽 반가웠었다. 다음에 장교수는 생후 3개월만에 소아마비로 장애자가 되어 그 동안 많은 어려움을 딛고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박사학위를 받아 모교인 서강대에서 영문학교수로 재직하며 그가 번역한 <종이시계> 에세이 집<내 생애 단한번> 문학 소개서<문학의 숲을 거닐다><생일><축복>등 그녀가 펴낸 대부분의 책을 읽었다. 나는 어느 해인가 책 읽은 소감을 적은 편지를 두 번 보낸적도 있다. 당시 편지 끝 부분에 많은 독자들의 답장에 부담이 있을테니 답장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내용을 적기도 했다. 가끔 신문지상에 나오는 동정기사를 읽고 유방암수술과 척추암 그리고 작년부터 간에 암이 전이되어 투병기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쾌차하기를 바랐다. 그 동안 두번이나 암을 이겨내고 다시 강단에 섯기 때문에 이번에도 기적같이 병마를 이겨내고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씩씩하고 재기 넘치며 박학한 그녀의 글을 다시 읽을 수 있기를 내심 기대하였다.


그러나  장인이 돌아가셔서 진해중앙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올리는데 신부님께서 장영희교수의 부음 소식을 전하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강론을 하셨다. 다음날 사무실에 출근하여 점심시간에 샘터사 직원을 우연히 만났는데 장영희교수의 마지막 책이 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선물로 주어서 받아 들고 그녀 생전에 병실문병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 전에 이루어졌었던 장영희교수의 출판기념 서명대열에 끼어 볼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프롤로그

<나, 비가 되고 싶어> 그녀의 에세이 <내 생애 단 한번>의 책 제목을 정하는 과정과 그 이후의 일들 또 다른 책들의 제목 정 할 때와 이번 책 제목으로 청송감호소 수인 한사람이 추천했다는 제목이 바로 <나, 비가 되고 싶어>였다고 한다. 그러나 투병 중이고 지금까지의 삶이 기적 같고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지금 자신의 생활이 기적이기에 기적의 책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제목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않았지만 어쩌면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실망스런 일에 휘말리게 되어 짧은 삶이 오히려 죽은자에게 영원한 삶, 남은자들에게는 순수한 죽음으로 비추어질지도 모르겠다.


<다시 시작하기> 1984년 6년간 노력을 기울여 쓴 박사 논문 최종본을 승용차 트렁크에 넣어 두었으나 도둑을 맞아 1년을 다시 고생하여 논문을 끝냈다고 한다. 15년이 흐른 뒤에 생각해보니 그 당시는 처참한 심정이었으나 지나고 보니 일생에서 1년은 순간이었고 1년 더 공부하면서 훨씬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다. 자격시험에서 처음 응시하여 재수좋게 합격하면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실력은 더 쌓을 수 없는 경우이다. 몇 번 시험에 떨어지고 나면 대부분 겸손해지고 더 많은 부분을 공부하여 실력이 우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자주 시험에 떨어지는 것도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미술관 방문기> 세계 4대 미술관 중에서 하나라는 보스톤 미술관에 폴 고갱의 대작 <우리는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고 가고 있는가?>라는 다소 긴 제목의 그림을 조카들과 함께 감상을 마치고 정문 앞에서 지나가던 나이 지긋한 한국인 기념사진을 찍어주어서 고맙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인화해보니 머리가 나오지 않게 일부러 찍어 실망하였지만 오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오히려 더 생생한 사진이 되었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동안 장영희교수는 바쁘기도 하여 미술, 음악 등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고 보스톤 미술관도 처음 갔었다고 고백하였는데 나에게는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의 도깨비> 동료교수가 좋은 글이라고 보내준 메일내용에 조목조목 방항의 사족을 달았다는 자신의 삐뚫어진 마음을 소개한 내용인데 퍽 재미 있어서 옮겨 본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개인적으로 나도 퍽 좋아하는 말이다.

(그래 나는 오늘도 헛되이 보냈다. 아니 오늘뿐인가, 어제도 그제도 계속 헛되이 보냈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어제 죽은 사람 대신 살아 있어 미안해하라는 말인가.)

열광하는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다.

(이 말은 거꾸로 뒤집으면 한결같은 삶이 별 볼일 없다는 뜻 아닌지?)

남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말이다. 우산을 들어 주면 둘 다 조금씩이라도 비를 피할 텐데 왜 멀쩡한 우산을 두고 함께 비를 맞아야 하지?)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릴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이것도 오래가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일이 늘 잘 풀리고, 그건 오래 간다. 내 삶은 잘 풀리지않는다. 그것도 오래간다.)

사람은 누구에게서나 배운다. 부족한 사람에게서는 부족함을, 넘치는 사람에게서는 넘침을 배운다.

('부족함' '넘침'을 배워서 무엇 하는가.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딱 '알맞음'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신뢰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성실할 수 있다.

( 이 말은 정말 꼭 날 두고 하는 말 같다. 난 기분파이고, 걸핏하면 내 말을 어기고, 어떤 때는 똑똑하고 어떤 때는 바보고, 절대 나 스스로 신뢰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성실할 수 없단 말인가?)


<사랑을 버린 죄>완전히 서로의 입장이 바뀐 장영희교수도 아는 사람의 실화를 소개하고 있다. 장교수의 고교친구의 아들이 자신의 학교제자였는데 실연을 당하여 그 학생과 어머니가 괴로워했는데 알고 보니 제자를 차버린 그 여학생이 사실은 실연 당한 어머니가 처녀시절 사귀다 내친 남자의 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영희교수는 친구 아들에게 영국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이 말한 It is better to haved and lost than not to have loved at all. 사랑하고 잃는 것이 사랑하지 않는 것 보다 낫다.라는 이야기를 해주며 위로해 준 일이 있다고 한다.


<20년 늦은 편지> 돌아 가신 어버지에게 늦었지만 쓰는 편지였는데 영국의 작가 새무얼 버틀러가 했다는 "잊히지 않은자는 죽은 사람이 아니다."를 회상하며 편지 추신란에 '이 글을사랑하는 나라로 보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모든 분들에게 보냅니다.'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장영희교수도 우리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동안 살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의미로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말과 행동을 사려깊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름다운 빛> 강원도 홍천군 희망리의 용간난 할머니의 남편이 사소한 실수로 국유림을 태워 벌금 130만원을 갚다가 죽음이 이르자 부인에게 유언으로 잔금을 꼭 갚아달라고 했다 한다. 어려운 형편에 조금씩 갚아 20년만인 2001년 다 갚았다는 이야기를 쓰며 장영희교수도 그 동안 자신을 조금이라도 위해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언제 쓴 글인지 대충은 짐작이 가는데 이미 죽음을 예상하고 쓴 글임에 틀림이 없어 마음이 아파 옮겨 본다.

 

"독자 여러분, 칼럼 연재는 끝났지만 마음은 늘 여러분 곁에 머물 것입니다. 이제껏 우리가 함께 나눈 용기와 인내,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제 마음의 샘터가 되어 외다리라도 넘어지지 않게 받쳐 주는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빚을 지고 떠나기 전에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고백합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무위의 재능> 내 예상과는 달리 장영희교수는 평소 자신이 게으르고 약속시간을 잘 어기며 어영부영 시간을 낭비하는 버릇을 가졌다고 고백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갖은 재능 중에 '무위의 재능'이라 명명하였다. 또한 건망증과 집중력이 부족하고 길눈도 대단히 어둡다고 한다.그러다보니 욕실에서 한동안 바디로션을 샴푸로 알고 쓰면서 왜 이렇게 거품이 나지 않는 샴푸가 있는가 불평하면서도 용기를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무위의 재능에 관련하여 미국의 작가 T.S. Eliot 가 한 말을 인용하였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악을 행하는 것이 낫다.  그것은 적어도 살아 있다는 증거이니까.'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비교적 자투리 시간조차도 무엇이든 하는 편이니까 작가가 살았다면 나는 많은 친찬을 받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무릎 꿇는 나무>  총망 받던 제자가 어려움에 빠지자 위로하는 글을 쓰며 해발 3천미터가 넘는 록키산맥 정상부근 수목한계선에 무릎 꿇은 듯한 나무들이 눈보라와 강풍을 버티며 자라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되는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은 나무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어쩌면 우리 모두는 고통과 불행 속에서 인생의 참뜻을 이해하고 삶의 진리를 터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2003년 12월 척추암으로 항암치료를 위해 샘터에 연재하던 '새벽 창가에서'를 멈추고 2년 세월 동안  돌이켜보고 싶지도 않은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보냈다 한다. 치료가 어느정도 효과를 나타내 일상으로 돌아온 시기에 이글을 쓰면서 김종삼시인의 '어부'라는 시를 읽고 그 시의 한 귀절을 이 책의 제목으로 하였다고 한다.

바닷가에 메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괜찮아> 저자가 초등학교1학년때 집앞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가위를 쩔렁쩔렁거리며 지나가던 깨엿장수 아저씨가 흘깃 보고 지나가다가 다시 돌아와 깨엿 두개를 주며 미소지으며 "괜찮아"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공짜로 받아도 괜찮다는 말인지 아니면 목발을 짚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하지만 그 이 후 "괜찮아"라는 말을 들으면 희망의 말로 새겨져 영원히 용기를 얻는 다고 하였다.


<민식이의 행복론> 제자들에게 행복에 관한 영어에세이를 숙제로 내주었는데 민식이란 제자는 학교 앞에서 친구들이 트럭에 치어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한다. 복도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짧은 순간 한 친구는 숨을 거두었고 다른 친구는 다행히 '엄마, 나 오줌 마려워!'라고 하며 소리치며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아났다고 한다. 삶과 죽음을 한 순간 경험한 민식이는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고 죽지않고 살아서 먹고, 입고, 자고, 그리고 똥, 오줌 잘 싸고 지낸다면 충분한 것이 라고 썼다 한다. 결국 행복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이 글을 읽고 나역시 행복이란 무엇인가 자주 생각하며 지내지만 특히 괴로움을 당할 때마다 더 나쁜 상황을 상정해 보면서 나는 그래도 행복하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지낸다.


<재현아!>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제자 재현이에게 선생으로써 형식적인 격려와 충고만 해주고 있는 사이에 어느 날 e-mail로 유서가 도착하고 몇 시간 후 관악경찰서로부터 재현이란 학생이 지하철 선로에 투신하여 자살하였다는 비보를 들었다고 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 챙기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쓴 글이다. 우리 주변에도 자신의 괴로움을 하소연 할 곳 없어 혼자 끙끙대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만일 내가 이런 경우에 마주하였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아라> 영국 속담 Count your blessings.을 인용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장애인 장영희교수를 "천형 같은 삶"이란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는데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전생에 그 무엇인가 좋은 일을 많이 한 천사였음에 틀림잉 없으며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니 자신의 삶은 누가 뭐래도 천형은 커녕 천혜의 삶이다 라고 하였다. 사실 나도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어려운 일이나 아쉬운 일에 부딛혔을때조차도 나는 행복하다 위안하며 주번의 작은 기쁨을 살아 있기 때문에 누리는 축복으로 생각하였다.


<김점선 스타일> 화가 김점선씨도 작년(200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영희씨가 글을 쓰고 김점선씨가 그림을 그려 함께 펴낸 책 <생일>로 두 사람은 더 가까워졌으리라 추측된다. 김점선화가는 장영희씨에게 푸른 풀밭에서 웃음 가득히 내 달리는 빨간 말 그림을 선물하였고 저자는 그가 느끼는 김점선화가에 대한 생각을 적고 있다.

"나는 김점선 씨 옆에 있으면 늘 그렇게 웃기 때문이다. 사는 게 재미있어 못 견디겟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평화와 행복을 주체할 수 없어서 끝없이 웃는다. 그녀의 순발력과 기발함, 그녀의 활기가 지리멸렬한 삶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기 때문이다. 김점선씨는 이제?껏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겉 모습은 터프하지만 속은 말랑말랑하고 여리다. 겉은 씩씩하고 대범하지만 속은 여리다. 겉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순하고 착하다. 겉으로는 짐짓 무관심, 모른척 하지만 그녀의 머리는 비상하여 이 세상의 모든 지식에 해박하다. 무엇보다, 겉으로는 엄숙해 보이지만 그녀는 끝없이 유쾌, 통쾌, 명쾌하다."

 

장영희교수의 마지막 책을 다 읽고 독후감도 아닌 이런저러 이야기를 적은 이 글을 컴푸터에 옮기는 일도 벌써 한달이 지났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수 많은 말을 해왔고 어쩌면 필요없는 말도 수 없이 한 것 같으나 어느 식사자리에서 장영희교수의 이야기를 하다가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불쑥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장영희교수 같은 분에게 하루, 한달, 일년의 삶은 참으로 소중하고 아쉬웠던 기간일텐데 만일 내 삶이 이미 정해져 늙어 기력없이 사는 일년을 뚝 떼어서 장영희교수에게 줄 수 있다면..." 말하고 나자 좀 엉뚱하고 물론 실현 불가능한 헛소리이지만 내가 생각해도 지금까지 내가 한 말 중에서 가장 멋진 말이라고 생각이 든다.


삶의 애착을 놓지않고 치열하게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난 장영희교수의 명복을 다시 빌며 하늘나라는 병도 없고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는 끝없이 자유롭고 평안한 곳이 되기를 꿈꾸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