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행복의 건축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를 읽고

깃또리 2009. 3. 10. 17:38

행복의 건축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를 읽고...

by Alain de Botton 알랭 드 보통 / 정영목 옮김

이래

2009. 02.20.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1969년 태어났으며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수학하고 자전적 경험과 풍부한 지적 위트를 결합하여 사랑과 인간관계에 관해 탐구한 독특한 연애소설 3부작 <Essay in Love><The Romantic Movement><Kiss & Tell>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또한 우아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아우르며 현대적 일상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에세이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The Consolation of Philosophy><The Art of Travel><Status Anxiety><The Architecture of Happiness>등을 연이어 출간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2003년 프랑스 문화부장관으로부터 <슈발리에 드 로드르 데자르 에 레트르>라는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유럽 전역 뛰어난 문장가에게 수여하는 <샤를르 베이옹 유럽 에세이 상>을 받기도 하였다.


 책은 전체 6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첫장 행복을 위한 건축에서 작가는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이탈리아 백운암 산맥을 어느 여름날 산책을 하였는데 프로이트는 주변의 화사함에 즐거워하였으나 시인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이 언젠가 소멸한다는 사실에 우울해하며 땅만 처다 보고 걸었고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이 창조한 세상은 아름다움도 시간에 따라 퇴락해 간다고 서글퍼했다는 일들을 적고 있다.

즉, 똑 같은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을 찬탄하고 어떤 사람은 소멸과 덧없음을 느끼듯이 건축도 사람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진다는 말일 것이다.


 아울러 존 러스킨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할만한 베니스에 대한 글인<베니스의 돌>에서 이 도시 덕분에 마음이 드높아 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한다. 바꾸어 말하면 아름다운 집은 행복을 확실하게 보장해주지도 못 할 뿐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성격도 개선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며 왜 저자는 이런 긴 이야기를 꺼냈느냐면 독일 신학자 파울 틸리히는 어린시절 훌륭한 부모와 교사 밑에서 교육받으면서 냉랭한 마음으로 예술을 대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대대원 3/4이 전사한 참혹한 전투에서 살아 돌아와 휴가동안에 베를린 카아져 프리드리히 미술관에 우연히 들려 산드로 보티첼리의 <노래하는 여덟 천사와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와 아들>이란 그림을 보고 걷잡을 수 없는 감동으로 흐느꼈다고 한다.  이를 그는 계시적 환희라고 불렀으며 이러한 감정변화는 전쟁의 참호 속에서 겪은 잔혹과 말할 수 없는 부드러운 분위기 사이에서 발행하는 불일치 때문이었고 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고통과 대화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고 술회하였다 한다. 다시 말하면 슬픔을 아는 것이 건축을 감상하는 특별한 선행조건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전적으로 동감은 하지 않지만 건축뿐 아니라 모든 예술작품은 인간의 감정변화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며 평소 무심코 듣던 클래식컬 음악 소품이 우연히 어느 날 똑 같은 음악이 마음 깊숙이 위안을 주는 경우가 있었던 점을 경험할 때 저자의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하기도 한다. 또한 나의 경우 오랜 기간 건축기술자로 일해 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건축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건축이란  아무 곳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어느 특별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장소성으로 주변 환경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더구나 훌륭한 건축가를 만나야하고 또한 설계를 이해하고 열의를 지닌 건축시공기술자와 수많은 상이한 직종의 전문기술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좋은 건축물의 탄생은 그야말로 타고난 운이 필요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철학자 비트켄슈타인은 빈에서 누이를 위해서 집을 짓느라 3년간 학계를 떠났는데 처음 생각보다 너무나 어렵고 힘든 건축일에 집 짓는 일을 마치고 쓴 그의 저서<논리철학 논고>에'철학이 어렵다고 하나 건축가가 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썼다고 한다. 나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그간 크고 작은 건축물 건립에 30여년동안 약 20여개 이상의 건물을 지었지만 그런대로 만족할만한 건물은 단지 한두 건물에 그칠 따름이다.


소제목 <어떤 스타일로 지을 것인가?>에서는 정말 기상천외하고 흥미로운 건물을 소개하고 있다. 1767년 영국의 뱅거자작과 부인 앤 블라이는 둘 다 건축에 일가견이 있으나 서로 건축관이 달라 두 사람 사이에서 건축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민에 봉착했다 한다. 결국 건축가 스트랭퍼드 로크는 기발하게도 3층 규모의 워드성의 전면은 남편의 취향에 맞춰서 고전주의 양식으로 뒷면은 작은 뾰족탑이 달린 성곽풍의 고딕양식으로 설계하여 부인의 요청을 들어 주었다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내부에서도 남편의 사용공간인 음악실, 층계참 등은 도리스식 벽과 기둥으로 고전적인 느낌으로 하고 부인이 사용하는 공간에 해당하는 부분들은 부챗살 장식이 들어간 둥근 천장과 뾰족한 아치모양의 벽난로를 두어 고딕 분위기로 꾸몄다한다.  하긴 우리주변에서도 주인 남편과 안주인의 취향이 서로 달라 작은 별장을 세우는 동안 옥신각신하는 경우를 허다하게 보아왔고 심지어 작은 집수리를 하는 일에도 벽지와 화장실 타일선정에서도 극명한 취향의 차이로 건축가나 시공자가 애를 먹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근대 3대 건축가라면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로에,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를 꼽는데 특히 르 코르뷔지에를 앞자리에 두는 사람이 많다. 그가 설계한 파리 서부 푸시아에 설계한 빌라 사부아는 근대건축의 전범으로 삼으며 특히 그가 채택한 삘로티, 수평연속 창, 수평지붕과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등은 그의 5대 건축원리라고도 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의 58페이지에서 72페이지까지 무려 14페이지에 사진을 곁들여 빌라 사부아의 사용자에 대한 배려부족과 억지스러움을 조롱을 섞어 기술하고 있어 흥미롭다.


 1928년 파리에 살고 있던 피에르와 에밀리 사부아부부는 몸이 허약한 아들 로제를 위해 센강을 굽어 볼 수 있는 숲 속에 당시 혈기 왕성한 스위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에게 시골집 빌라 사부아설계를 의뢰하였다. 당시까지 개인집 15채를 지었으며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어가고 있던 건축가는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 1923년>에 엔지니어들은 건강하고 정력적이며 적극적이고 유능하며 균형이 잡혀 있고 행복하게 일 한다 그러나 건축가들은 환멸에 사로잡혀 있고 빈둥거리며 거만하거나 까다롭다. 이것은 그들이 할 일이 곧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역사적 기념물을 세울 돈이 없다. 그러나 모두가 목욕은 하고 살아야 한다! 엔지니어들은 이런 것들을 제공하며 따라서 그들이 우리의 건설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그는 미래의 주택들이 금욕적이고 깨끗하며 규율과 검약이 지배하는 곳이기를 바랐다. 이에 따라 집의 기능은 1. 더위, 추위, 비, 도둑, 호기심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켜주는 피난처. 2. 빛과 태양을 받아들이는 그릇. 3. 조리, 일, 개인생활에 적합한 몇 개의 작은 방.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빌라 사부아는 건축가의 기대와는 다르게 많은 문제를 만들었다고 저자는 냉소적인 표현으로 길게 적고 있다.

"빌라 사부아는 실용적인 정신을 가진 기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술적 동기에서 나온 비실용적인 건물이다. 아무런 장식 없이 텅 빈 벽은 장인들이 스위스에서 수입한 값비싼 모르타르를 사용하여 손으로 만든 것이다. 이 벽은 레이스처럼 섬세한 작품이며 반 종교개혁 교회의 보석으로 덮인 본당 회중석만큼이나 감정을 자아내는 데 기여한다.


 모더니즘 자체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 빌라의 지붕 역시 부정직하며 그 결과는 더 파멸적이다. 사부아부부가 처음에 반대를 했음에도 르 코르뷔지에는 평평한 지붕이 물매가 있는 지붕보다 더 좋다고 고집했다. 아마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근거만 들이댔을 것이다. 즉 평평한 지붕이 건축비도 싸게 먹히고 관리도 용이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고 설득한 것이다. 사부아 부인이 일층에서 발산되는 축축한 증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체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가족이 이사한 지 불과 일주일이 안 되어 지붕에서 아들 로제의 침실로 물이 샜다. 그 양이 너무 많아 아이는 가슴에 염증이 생겼고. 이것이 폐렴으로 발전하는 바람에 아이는 샤모니 요양원에서 1년을 보내야 했다. 빌라가 완공되고 공식적으로 6년 뒤인 1936년 사부아 부인은 그 평평한 지붕의 성능에 관한 그녀의 감정을 빗물이 튄 편지지에 담아 건축가에게 보냈다. 르 코르뷔지에는 곧 수리를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그 기회를 이용하여 고객에게 전 세계의 건축비평가들이 그의 평평한 지붕설계를 얼마나 열광적으로 환영하는지 이야기했다. 아래층 현관 탁자에 방명록을 갖다 놓고 그곳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이름과 주소를 적으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수많은 저명한 인사의 서명을 수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유명인사 서명을 수집하라는 이런 권유는 류머티즘에 시달리는 사부아 가족에게 별 위안이 되지 않았다. 내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요구를 한 끝에 당신은 결국 1929년에 당신이 지은 이 집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지요. 사부아 부인은 1937년 가을에 이렇게 질책했다. 이것은 당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이며 나는 청구서대로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이곳을 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바꾸어 주세요. 내가 법적인 행동에 의지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져 사부아 가족이 파리에서 피신을 하게 되었을 때에야 르 코르뷔지에는 특별히 아름답기는 하지만 대체로 사람이 살기는 힘든 이 생활용 기계의 설계 문제로 법정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디자인과 실용성에 관하여 저자는 1925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마르셀 브로이어가 디자인한 B3의자를 사진과 함께 특유의 재치 있는 글 솜씨로 조롱 섞인 비평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의자가 우리 사무실에도 있으며 지금은 지하실 복도에 앉는 주인도 없이 먼지만 뒤 집어 쓰고 있다. 만일 이 의자가 모든 사람에게 앉는 의자로써 사랑을 받는다면 지금과 같이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았을 테니까 결국 알랭 드 보통의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심미안에 대한 통찰력으로 저자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란 우리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투사를 견딜만한 내적자산을 갖춘 것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그런 작품의 좋은 특질을 단지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련한다.  따라서 최초의 관객이 사라지고 나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 이런 위대한 작품은 우리의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속 좁은 연상의 밀물과 썰물 위에 우뚝 서서 자신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라는 의미 깊은 말을 하고 있다.


 저자는 르 코르뷔지에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내용을 책 중간에서 다시 펴고 있다.

즉, 1923년 프랑스 기업가 앙리 프뤼게가 보르도 근처 자신의 공장 노동자 주택단지를 르 코르뷔지에에게 의뢰하여 입주하였으나 건축가 생각과 달리 낮에 공장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오는 노동자들에게는 딱딱한 분위기로 하루 종일 육체적으로 시달리던 공장 모습이나 다름없는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불만을 품고 당초의 평지붕 위에 지붕을 씌우고 덧문을 달았으며 꽃무늬의 벽지를 바르거나 말뚝 울타리와 앞뜰에 다양한 분수와 땅 신령을 세웠다 한다. 결국 취향이나 미에 대한 개개인의 차이를 어느 한 사람이 강요하거나 제어할 수 없음을 증명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리하여 작가 스탕달은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만큼이나 아름다움의 스타일도 다양하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시인 노발리스는 "예술작품에서는 질서의 베일을 통해 혼돈이 아른거려야 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노라니 건축에 대한 공부를 상당기간 한 사람으로 생각되며 우리나라 건축가들도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