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잠수복과 나비>를 읽고...

깃또리 2009. 1. 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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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과 나비>를 읽고...

Le Scaphandre et le papillon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옮김

동문선 현대신서154

 

2009. 01. 01.

 

  지은이 장 도미니크 보비는 1952년 파리에서 태어나 <일간파리>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여 <마탱><파리마치>지에서 경력을 쌓은 후 1991년 전 세계 28개국어로 발행되는 패션잡지 <엘르>지의 편집장이 되었다.

저명한 저널리스트로 멋진 생활을 사랑하며 유머러스한 성격에 앞서가는 정신의 소유자로 자유스런 일상을 마음껏 누리며 인기를 모으며 지냈다.

그러나 1995년 12월 그의 나이 43세에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쓰러져 3주 후에 의식을 회복하였으나 왼쪽 눈꺼풀 외에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움직일수 없는 불행을 맞고 15개월을 병원에서 지내다 사망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약 1년 동안 여성 편집자 클로드 망디빌의 도움으로 유일한 의사 표현 수단인 눈꺼풀을 깜빡이는 방법으로 프랑스 알파벳을 조합하여 이 책을 만들었다.

 

사실 나는 2008년 봄 사무실 근처 동숭 아트홀에 걸린 영화 간판 <잠수종과 나비>를 보았다.

영화나 소설책을 고를 때 나는 대강의 내용을 파악하는게 습관이었는데 잠수종과 나비의 경우는 그냥 뭔가 괜찮은 것 같다는 느낌만 가지고 입장권을 사려고 하였으나 재수없게도 그날 종영되었다고 하여 그러면 간판을 내려야 할 것 아닌가 하는 투정만 하고 나왔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사무실 직원으로부터 이 책 <잠수복과 나비>를 선물 받자 나는 잠수종과 잠수복이 다른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잠수복은 알겠는데 잠수종은 무었인가 궁금하였다.

이리저리 찾아 보니 깊은 강이나 바다에 다리를 놓기 위해서 건설공사에서 사용하는 수중에 설치하는 잠함(Cassion)이 개발 당시에 모양이 종처럼 만들어져 잠수종이라 했으며 일반 독자들에게 잠수종이 생소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책 제목은 잠수복으로 바꾸었던 것 같다.

 

아무튼 대략 20만번의 한쪽 눈을 깜빡이는 힘든 노력을 기울여 자신의 불행과 헤어날 길 없는 절망 속에서도 지나온 삶을 꿈꾸듯 회상하며 가능한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현재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지도록 하였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짧은 머릿말에서 자신의 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마비된 상태에 의식은 정상적으로 유지되어 소위 의사들이 표현하는 Locked-in Syndrome 상태로 자신의 육체를 잠수복을 입은 사람으로 그러나 정신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자유로운 나비처럼 표현하고 있다.

알파벳이란 소제목에는 프랑스 알파벳의 문구에 나오는 빈도수 순서 배열이 나온다.

ESARIN.......QZYXKW

그럼 세계 공용어라는 영어의 알파벳 빈도수는 어떤가 궁금해져 알아 보았다.

EATINORSLHDCNUFPGBYWVKXJZQ

 

소제목 <식물인간>

일반사람들이 뇌사자나 저자 장 도미니크 같은 환자를 별 생각없이 식물인간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동물은 움직이고 영어 Animal 이란 말도 "움직이다"를 어원으로 하고 있으니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과 같다 하여 식물인간으로 부른다.

그러나 멀쩡한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대화를 알아 듣는 그에게 식물인간이라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고 쓰고 있다. - 아니 눈꺼풀로 전달하였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파리든 서울이든 많은 듯하다.

"보비씨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거 알고 있어?"

"물론이지"

"맞아, 정말 식물인간이래"

마치 먹을 거리를 발견하고 군침을 삼키는 독수리처럼 탐욕스럽게 그자들은 이 대화에 달려들더라고 친구들은 전해주었다.

"이제는 나를 인간이라기 보다 과일이나 채소처럼 식물로 분류하는 게 현명하리라는 걸 모르는 바보는 없다는 투였다.(중략) 내가 만일 나의 지적 잠재력이 시금치나 당근의 지적 능력보다 월등하게 우수함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의지할 데라고는 나 자신 밖에 없다."라고 응수하기도 한다.

 

<홍콩의 아가씨들>

장 도미니크 보비는 평소 여행을 무척 좋아했는데 병실에 갇힌 뒤부터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하늘이 온통 잿빛이라 외출할 엄두를 낼 수 없는 날에도 마음껏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이 대목을 읽고 깊은 생각에 잠기며 현재의 삶과 내 주변에 감사하였다.

4시간 이상을 산에 오르면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는 퇴행성 관절이지만 아직은 평지 걷는데는 무리 없는 두 다리와 난시로 가끔 책의 글씨가 흐릿하게 보일 때가 있지만 아직은 안경이란 거추장스런 물건 없이 몇 시간 계속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만도 커다란 기쁨이요 축복이다.

 

그러나 장 보비는 꼼짝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행복했던 지난날을 반추하며 상상의 여행을 하는 낙천적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홍콩에는 프랑스 디자이너 필리프 S가 실내장식을 한 페닌슐라 호텔에 펠릭스 바가 있다는데 이 호사스런 스카이 라운지 의자 10개 등받이에는 당대 유명한 파리 인사 10의 사진이 새겨져 있으며 여기에 장 보비도 끼었다고 한다.- 이 호텔의 에프터 눈 티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도 감탄했다는 이야기기 전해진다.- 언제 가 보아야겠다.

이제 다른 사람들이 수군대듯이 식물인간이 된 그가 새겨진 의자에 워낙 미신을 잘 믿는 중국인들인지라 미니 스커트 차림의 홍콩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자신의 의자 위에 올라가기를 꺼리지 않을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있다.

 

<메시지>

자신이 누워 있는 병원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외관상 병원은 영국의 고등학교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카페테리아를 드나드는 단골 손님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주인공들과 전혀 닮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이 영화는 내가 40대초 중반쯤 아내와 함께 신사동 4거리 근처의 영화관에서 관람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영화 주인공 학생이 책상 위로 신발을 신은 채로 올라가 키팅 선생님에게 뭐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학생의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대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것이 기억에 새롭다.

 

<허풍선이>

청바지를 처음 입기 시작하던 고등학교시절 올리비아라는 대단한 허풍선이 급우를 경멸했던 일을 후회하는 대목이다.

왜냐면 올리비아만큼 힘들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대처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포뮬러 원 자동차 경주에 출전하여 마크도 번호판도 달지 않은 신비스런 백색 경주용차에 침대에 누워 아니 운전석에 앉아 대단한 기량을 발휘하여 죽음의 사선을 넘어 선두를 달리는 거물들 보다 15분 먼저 도착지에 골인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 엄청난 경주과정을 묘사하며 역사적 대전을 나열하는데 프랑스군이 베트남 독립동맹군에 대패하여 8년간의 전쟁을 이끌다 결국 프랑스군이 인도차이나를 떠나게 되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디엔.비엔 푸  전투도 끼어있다.

사실 양식있는 프랑스인은 모르지 않지만 대부분 프랑스인들에게는 부끄럽고 치욕적인 역사적 사실인데 여기에 나와 있어서 눈길을 끈다.

 

책은 마지막으로 <휴가 끝>이란 소제목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프랑스 인들의 긴 여름 휴가가 그와 몇 달을 지냈던 베르크해양병원도 예외없이 책의 원고가 정리되는 즈음 휴가가 끝나 조용하던 병원도 부산해진다. 글을 쓸수 없는 사람의 말을 적은 것을 구술이라 하는데 눈꺼풀 의사표현을 받아 적는 것은 뭐라해야 할지?

아무튼 그의 의사를 받아 적었던 클로드는 몇 달 동안 그의 곁에서 이책의 원고를 만들어 마침 휴가가 끝나는 시점에 퇴고를 거친다.

장 보비는 그녀의 낭독을 들으며 실망스런 부분도 있지만 어떤 페인지에서는 여러 번씩 반복해서 읽어 주었으면 하기도 하며 한편으론 막막한 심정이 된다.

 

갖가지 열쇠가 가득한 세상에서 그의 잠수복을 열어 줄 열쇠는 없을까?

다른 곳에서 구해야 했을 것이다.

그는 그곳으로 간다.

아마 그는 소원대로 한쪽 눈거풀도 조용히 닫고 괴로움도 구속도 없는 한 없이 그 처럼 소망하던 나비처럼 자유로운 곳으로 떠났을 것이다.

 

작년에 작성하였던 초안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겨우 쓰레기 통 신세를 면하여 올해 시작하는 첫날 독후감을 정리하여 되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