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서재 결혼시키기>를 읽고...

깃또리 2008. 7. 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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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시키기>를 읽고...

Ex Libris 장서표 <모든 것은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Anne Fadiman 지음/ 정영목 옮김

지호

 2008. 6.15.

 

저자 앤 패디먼은 지적 열정이 가득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으며 아메리카 스칼러 편집자로 지내면서 1997년 <유령이 당신을 붙들면 당신은 쓰러진다.>를 써서 미국 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바 있고 각종 신문이나 잡지에 다방면의 글을 기고하는 인기 있는 미국여성작가이다. 저자가 여기저기에 쓴 글 중에서 책과 독서에 관한 짧은 에세이 18편을 모아 그 중에서 장서표라는 의미의 Ex Libris 를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사실 나는 책에 대한 책이라든가 독서의 기술에 관한 책은 별로 가까이 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런 책을 읽을 시간에 다른 유익한 책을  더 읽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추천하고 빌려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였는데 읽다보니 한 번 읽고 말기에는 아쉬운 흥미있고 유익한 책이었다. 왜냐면 그동안 평소 내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책에 대한 느낌과 독서방법, 책을 구입하고 읽으며 책을 다루고 보관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로 내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 이야기들을 아주 재미 있게 적었으며 저자의 박식함에 질투심이 날 정도였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의 직업도 직업이지만 동서 고금을 넘나드는 해박함과 기억력 등이 탁월하여 책을 손에 놓을 수가 없었다.

 

우리말 번역본의 제목 <서재 결혼시키기>는 책의 첫번째 에세이 <책의 결혼>을 조금 바꾸어 붙인 제목인데 저자의 남편도 폭넓은 독서가이며 수집가로 두 사람이 알고 지낸 기간이 10년에 동거기간이 6년 그리고 결혼하여 5년을 합하여 21년 동안 각자 소유한 책들이 수 천권이었다 한다. 책이 많다 보니 똑같은 책을 두권 갖은 경우도 있고 판본이 다른 책을 각자 가진 경우도 있어 부부의 책을 한 곳으로 정리하려 했으나 이심전심으로 혹시 이혼이라도 하면 책을 나누는데 문제가 될 듯하여 따로따로 보관하였다 한다. 정식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5년이 지나고 아이 하나를 두었을때 마침내 장서합병이라는 결단을 감행하였다 한다. 막상 책을 한 곳으로 정리하다보니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문제에 봉착했다는데 그 과정은 읽는 이에게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몇가지 추려보면 첫째 저자와 남편 책과 겹치는 것이 약 50권 정도였으며 누구의 책을 버리느냐!  책마다 각자의 추억이 스며있어서...자신의 책을 고집하였다는데 사실은 만일 이혼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하여 빨리 정리를 하지 못하였다 한다.

 

둘째로는 어떤 식으로 서가에 꽂아 놓느냐에 대해 고심하였는데 연대순이냐 저자이름 순서냐도 문제가 되었고 서로의 의견을 내세우고 다투다가 겨우 타협을 했는데 후일 저자의 남편은 이 당시 가장 심각하게 이혼을 생각했었노라 고백했다 한다.  

 

셋째는 책을 정리하며 헌사의 존재 여부와 책 여백의 메모의 유무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몇 가지 더 있으나 아무튼 이런 저런 힘든 과정을 거쳐 각자의 책이 우리책이 되어 이부부는 책을 한 곳으로 모은 다음 진정한 결혼을 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한다. 즉 이 부부는 결혼과정보다 각자 소유한 책의 결합이 이 부부에게 더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말이다.

 

소제목 <너덜너덜한 겉 모습>에는 책을 다루는 방법에서 정 반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책을 사랑하는 방법의 극단에 대한 것이다. 먼저 저자의 아버지는 항공기 여행 중에서 짐의 무게를 줄이려는 목적에서 다 읽은 책의 페이지는 찢어서 쓰레기 통에 버리고 사우나 안에서도 책을 읽어 뜨거운 열기로 책이 바삭바삭 분해되어 버리는 경우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다. 남편 조지 또한 책을 험하게 다루는데 책을 쫙펴서 읽는 버릇으로 책의 중간이 벌어지도록 만든다 한다. 저자도 비교적 책을 곱게 다루지 않는편으로 읽던 곳을 표시하기 위해 엎어 놓는 일은 다반사이고 책 귀퉁이를 접기도 하고 읽은 후 복사하겠다는 표시는 아래 모퉁이를 접는 나쁜 버릇이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는 비교적 책을 깨끗이 간수하는 편이지만 읽다가 독후감을 쓸 때 필요한 경우를 대비하여 모퉁이를 접거나 옆에 필기구가 있으면 밑 줄 긋기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남이 빌려준 책을 보다가 한 동안 모퉁이 접기나 밑 줄을 긋기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기어코 밑 줄 긋기를 해버리고 다 읽은 후 돌려주지 못하게 되어 새책을 사서 빌려준 사람에게 돌려 준 경우도 몇 번 있다.

반대로 책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재미 있는데 저자의 대학 동기는 읽던 부분을 표시하려고 비싼 은제 티파니 책갈피 대신 자신의 명함을 사용했다하는데 그 이유는 명함이 은제 책갈피보다 얇아서 책에 자국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다.

 

생각해보니 책갈피에 대해서는 나도 몇가지 다른 사람과 다른 방식을 애용한다. 예를 들면 수 년전 샌프란시스코에 갔엇는데 전차의 티켓이 독특하였었다. 전차 운전수는 길죽한 종이에 시간이 눈금으로 인쇄된 티켓을 승객에게 주면서 승차시간 눈금 부분을 찢어서 준다. 우리나라는 환승시간이 30분이며 전자 텃치식 카드이지만 그 곳은 환승시간이 2시간으로 길지만 아직 전자텃치카드를 도입하지 않고 운전기사가 찢어진 티켓을 직접 확인하는 조금 불편한 방식을 쓰고 있다. 어느날 아래 부분이 조금 잘린 원상과 다름없는 티켓을 갖게 되어 나는 책갈피로 사용하다가 서울에 돌아와서 아예 비닐코팅을 하여 책갈피로 사용하고 있다.

또 다른 경우는 학수고대하던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전시회나 음악회에 다녀와서 그 여운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입장권을 책갈피로 사용하다가 비닐코팅한 경우도 있어 책을 읽을 때마다 당시의 흥분과 기억을 반추하는 내 나름대로의 방식을 오래 전부터 지속하고 있다.

 

책의 정리와 보관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에서 한 몫을 거들고 있다. 영국은 입헌군주국이지만 실질적 정치는 총리가 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유능하고 훌륭한 여러 사람의 총리를 배출하였고 총리 본인들에 대한 얘깃거리도 많은 편이다. 앵초꼿을 좋아했던 디즈레일리와 정적 관계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번갈아 총리자리를 맡았던 글레스턴 또한 많은 일화를 남긴 사람인데 책의 보관. 정리에 남다른 면을 보인 사람으로 이 책에 등장한다. 그는 88세라는 당시로는 퍽 장수하였으며 엄청난 독서가였으므로 죽기 전 2만권의 책을 자신이 직접 손수레에 실어 하워든마을 도서관에 기증하고 직접 책을 서가에 정리할 정도로 책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였다 한다. 그는 총리시절 과도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큰 나무를 도끼로 쓰러트리거나 거리의 창녀를 찾아 잡담하기 그리고 자신의 서고의 책 정리였다 한다.

 

나도 수년전 동생이 책 대여점을 열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읽었던 책을 모두 주어버리고 그 후 모아진 책이 수 백권 밖에 되지 않지만 작은 방의 두 벽면을 바닥에서 천장까지 차지하고 있다. 언젠가 읽겠다고 구입하고 읽지 않은 책도 여러권 있고 그 중 몇 권은 아마 죽기전에 읽지 못할 것 같은 책도 있겠지만 선뜻 서가에서 내다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나도 가끔 서가의 책을 �어보고 읽지 않고 꽂힌 책을 언젠가 읽어야 하는 다짐을 하며 서가에서 꺼내 책을 �어보기도 하고 이 칸의 책을 저 칸에 옮겨도 보면서 책과 얽힌 추억도 다시 새겨보는 버릇도 있다. 한정된 벽면을 늘이기도 어렵고 새 책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 할 수 없이 가장 밉보이고 허술한 책이 서가에서 끌려나와 폐지 위에 섞이는 비운을 맞는다.  책 자체를 좋아하는 애서가 중에는 책을 두권 구입하여 한 권은 서가에 고이 보관하고 또 한권을 읽기용으로 한다는 사람도 있다 하는데 나도 비교적 책이 손상을 입지 않도록 주의를 하며 때로는 겉 포장을 하여 읽기도 한다.


 책 표지 비닐 커버를 한동안 문구점에서 팔기도 하였는데 나는 신문에 끼어 들어오는 백화점 광고 전단지을 이용한다. 두께가 너무 두껍거나 �지도 않을 뿐더러 재질, 색상 크기 등이 책 커버로 안성맞춤이어서 오래 전부터 애용하고 있다. 책 이야기에서 조금 빗나가지만 모아둔 광고지를 식탁에 2장 깔면 굳이 식탁 위를 행주로 훔칠 필요가 없다. 조금 고급식당에 가면 식탁 위에 깨끗한 종이를 깔듯이 말이다. 어차피 백화점 광고지를 보는 일도 드물고 설령 필요하다고 해도 한 달에 한 두번 보아도 되는데 매일 신문에 끼어 들어오니 그 종이를 낭비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워낙 영리한 사람들이니 지겹도록 보게 하여 쇄뇌시켜 지름신을 만들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그런면이라면 나는 백화점 사장의 뜻에 충분히 부응하는 셈이다. 왜냐면 하루 두 번 이상 일요일에는 세 번씩이나 광고지를 보기 때문이다. 물론 식탁에 깔린 광고지를 읽지는 않고 볼 뿐이지만... 이 글을 만일 백화점 사장이 읽는다면 광고지 전단배포를  중단할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책 커버와 식탁깔개종이를 구하기 힘들테니까......

 

책에 써 넣는 헌사에 대한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어느날 헌 책방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 "OOO 에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조지 버너드 쇼가" 라는 헌사를 써서 증졍했던 책을 발견하였다 한다.  실망한 그는 다시 그 헌책을 구입하여 "새삼 존경하는 마음으로 조지 버너드 쇼가"라는 헌사를 한 줄 추가하여 보낸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자신과 주변 인물이 소유한 책의 헌사에 대하여 몇가지 흥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관련하여 내가 기지고 있는 책 몇 권의 헌사를 말하고 싶다. 올해 내 생일을 맞아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동료 셋과 저녁 식사와 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한 사람으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다. 취기가 약간 오르자 세 사람이 돌아가며 그 자리에서 책에 헌사를 적었는데 아마 평생 간직 할 좋은 추억이 되는 기념품이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로 내가 자청해서 헌사를 부탁한 경우도 있는데 역시 짧은 만남이었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도록 다리를 만든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어서 헌사에 대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전통적으로 속표지에는 책을 쓴 저자만이 헌사를 쓸 자격이 있다는 것이며 일반인은 면지에 헌사를 하는 것이 예의 바른 일이라고 한다. 앞으로 혹시 헌사를 쓸 일이 있으면 참고할 일이다.

 

그나 저나 다 읽은 이 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서가에 꽂아 두었다 언젠가 다시 읽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