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자기 앞의 생>을 읽고...

깃또리 2008. 6. 29. 14:45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

 

2008. 6. 5.

 

 

본명이 로망 카시유인 저자 로맹가리는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는 곧 이혼하여 배우로써 니나라는 예명의 어머니 밑에서 자라다 3살 되던 해에 차르 니콜라이 2세가 몰락하자 서유럽을 향해 긴 여정을 시작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남부 니스에 정착한다. 억척스런 어머니 덕에 로맹가리는 부족함없이 성장하여 고등학교 성적은 상위였고 19세에 가명으로 소설 '죽은자들의 포도주'를 투고하기도 하였다.

변호사가 되려고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연수 중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공군에 복무하여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제대 후 외교관이 되어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주재 프랑스 총영사를 역임하였으며 재임 시기에 많은 소설을 발표하여 작가 대열에 올랐다.  그의 가정생활로는 30세에 보그 편집자인 일곱살 연상 레슬리 블랜지와 결혼하였으나 16년 후인 45세에 이혼하고 당시 21세인 할리우드 배우 진 세버그와 동거를 시작하였다. 42세에 <하늘의 뿌리 Les Racines du Ciel>로 공쿠르상을 수상하여 정계와 예술계에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인기스타가 되어 프랑스에 돌아왔다. 47세 되던 해에 외교관 생활을 그만두고 전문작가의 길로 들어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자신의 화려한 이력에 평론가들이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자 에밀 아자르란 가명으로 61세인 1975년 <자시 앞의생 La Vie devant Soi>를 발표하여 공쿠르 상을 두 번 받는 사건을 일이킨다 . 원래 공쿠르상은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 관례가 있어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65세에 별거하던 당시 41세의 진 세버그의 시체가 실종 10일만에 차량안에서 발견되었으나 약물 과다로 인한 자살로 밝혀져 작가는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늙고 외로운 작가는 다음해 입안에 권총을 넣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소설의 일인칭 화자 모하메드/모모는 열살 아니 열 네살의 소년이다. 청춘을 창녀생활로 연명하다가 이제는 창녀의 아이들을 맡아 기르며 생계를 꾸려가는 로자 아주머니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는 모모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과 유대관계 그리고 인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먼저 로자 아주머니와 모모는 외로운 사람들이지만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각종 질병과 비만으로 시달리는 로자 아주머니는 급기야 치매 증세까지 보이며 죽음으로 치닫으며 모모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로자의 밑을 닦아주고 목욕을 시키며 보살핀다.

아래층에 살고 있는 양탄자 가게를 하였던 하밀 할아버지로부터 모모는 인생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웠는데 특히 하밀 할아버지는 노망들기 전에 모모에게 들려준 "사람은 사랑할 사람이 없이는 살 수 없다."라는 말을 항상 잊지 않았다.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와 관계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p 174

 

드디어 로자 아주머니는 숨을 거두고 모모는 로자가 평생 원하던 이스라엘의 동굴대신 건물 지하실로 로자 시신을 옮기고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향수와 초를 사서 뿌리고 밝히며 3주 동안 지내다 진동하는 악취로 인해 윗층사람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끔찍한 광경을 목도한다.

모모는 알고 지내던 성우가 직업인 부유한 나딘 아주머니 집으로 보내지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 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이 조르니 당분간 함께 있고 싶다.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이 소설에는 창녀 로자, 카메룬 출신의 흑인 청소부 왈룸바, 세네갈 사람으로 여장 남자이며 권투선수였던 롤라 아줌마 그리고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창녀들이 등장하는 배경은 살풍경하지만 힘든 삶을 살아가는 서로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싶어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가슴 훈훈한 소설이다.

세상의 삶은 이렇게 빈곤 속에서 소회된 약자들끼리 서로를 감싸며 생을 가꿀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