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가을 음악...

깃또리 2006. 10. 24. 13:24

사람들이 계절에 맞춰 옷을 골라 입는다.

F.M. 라디오에서 요하네스 브람스의 곡들이 부쩍 자주 들린다.- 결국 가을이 왔다는 표시이리라.

 

 어느 계절보다 가을엔 브람스의 음악을 듣기에 좋은 계절임을 안다는 이야기이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을 악성이라고 추앙하는데는 그의 음악의 위대함에 더하여 육체적 고통과 사랑의 실연을 뛰어 넘은 인간적 승리자였기에 때문이리라.

 

 그러나 남녀의 사랑에서 격조 높은, 아니 이런 경우에 격조 운운 하는게 적절할 지 모르겠는데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이른 나이인 24세에 격정을 절제 할 줄 알았던 브람스는 그래서 후일 사람들이 남녀 사이에 친구가 존재하는가 대한 논쟁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항용 입에 올려는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즉, 자기에겐 음악선배의 부인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슈만의 부인 클라라 슈만을 깊이 사랑하였지만 " 남녀 사랑에서 격정은 음식에서 나쁜 음식과 같아 육체를 해친다."는 내용의 편지를 불과 20 조금 넘은 나이에 클라라에게 써 보낸 그는 절제의 도를 깨친 사나이였다.

 

 아마 현재를 사는 누군가는 소심하고 용기없는 자라고 깎아 내리겠지만 세상에는 이런 순진한 남자들이 간혹 있어서 남녀 사랑의 격을 한층 높이기도 한다.

 

 브람스는 독일 북부의 함부르크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으나 젊은 시절엔 돈을 벌기 위해 거리의 악사생활을 했던 가난한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엔 아버지에게 배우다 다른 스승에게 음악을 배운 뒤에 20세 되던 해에 당시 비인에서 이름을 날리던 슈만을 찾아 갔는데 슈만은  브람스를 천재라고 칭찬하며 음악계에 소개하여 브람스는 평생 슈만을 은인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브람스는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하게 되었고 브람스 나이 23살에 슈만이 죽자 브람스의 사랑은 깊어 졌으나 앞서 얘기한대로 일정한 선을 유지하며 브람스는 남은 일생동안 슈만 가족을 위해 경제적 도움을 주기 시작하였다.

 

  브람스가 다른 여성과 전혀 관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프라노 가수와 약혼까지 했으나 파혼한적도 있었고 슈만의 세째딸에게 실연 당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실패는 브람스의 거침없는 성격도 문제가 되었지만 사실 한 구석에 차지하고 있는 클라라의 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리라 생각할 수 있다.

 브람스는 음악적 창작력이 쇠퇴하여 자살을 생각하고 유서도 쓴적도 있었으나 오랜 기간 음악 작곡 활동을 하고 평생의 연인 클라라가 사망하여 마음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바로 다음해에 64세의 나이에 아버지와 같은 병명인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무튼 브람스가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 않고 20대에 사랑하기 시작하였던 여성에게 죽기 전까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울였던 사랑의 감정을 평생 유지하고 경제적 도움을 두었다는 사실은 후세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에 충분한 지순한 사랑이야기임에 틀림없다.

 

 브람스의 음악은 시기적으로 낭만주의 음악이 무르익은 시기였으나 베토벤을 전범으로 삼아 바하음악까지 선이 닿는 신고전주의의 본보기 음악으로 간주되고, 그래서 독일의 3 B 라 하여 바하  Bach, 베토벤 Beethoven, 브람스 Brams를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 바그너와 대립 관계에 있었던 바그너도 사람에게 따라서는 가벼이 볼 수 없기도 하지만...

 

 그의 음악은 브람스의 내성적 성격과 독일적 사색과 침잠된 우울(멜랑콜리)이 적절히 담겨져 작풍은 낭만적인 반면 객관적, 절재음악적 태도를 항상 견지하였다.

 이런 음악적 경향으로 브람스가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퇴고와 퇴고를 거듭하여 작곡한 제 1교향곡은 당시 저명한 음악 평론가 한스 폰 뵐로는 베토벤의 대를 잇는 다는 의미에서 베토벤 제 10 교향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본인은 자기가 존경해 마지 않는 베토벤의 동렬이라는데는 기뻐했지만 너무 과분한 대접이라 사양하였다고 한다.

 

 브람스는 4개의 교향곡을 썼는데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작품이나 특히 마지막 교향곡이 가장 명곡으로 평가 받고 있다.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도 No.77 은 협주곡의 최고 작품으로 여겨지는데 우리집에도 벌써 26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음색에 전혀 변화가 없어 듣게 될 때마다 감탄하는 도이체그라마폰 제작에 비엔나 필하모니을 유진 요오컴이 지휘하고 나탄 밀스테인이 바이올린을 연주한 테이프가 아직도 건재하다.

 나는 지금 이테이프를 보고 있노라면 그 당시 4.5 파운드에 샀기 때문에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불과 7000원 정도이지만 테이프에 담긴 브람스의 정신에 테이프의 30년 가까운 생명력이 한데 어울려져 마치 귀한 보석을 보는 느낌을 갖는다.

 

 또다른 작품으로는 어머니의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작곡한 독일 레퀴엠(진혼곡), 현악 6중주곡, 클라리넷 3중주곡 등이 추천할 만하다.

 

 브람스는 음악사와 음악이론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하며 함브르크에서 태어 났지만 빈에 정착하면서 주변 휴양지를 옮겨 다니며 작곡 활동을 하였으며 비교적 늦은 나이인 46세에 태양이 밝게 비치는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깊은 인상을 받아 죽기 전까지 8 번이나 다시 방문하였다 한다.

 브람스는 평소 그렇게도 존경하고 흠모하던 베토벤이 묻힌 비인 중앙공원에 유택을 삼아 죽어서도 그의 소원이 이뤄진 샘이다.

 

 수염을 가득 기르고 항상 조금은 우울하고 조금은 화난 얼굴로 연신 담배를 피워 대며 평생을 이루지 못한 사랑에 가슴이 무거웠을 음악가 브람스를 생각하며 초추의 양광이 내리 비치는 창가에 앉아 그의 음악을 듣는 호사를 누린다면 이 가을도 결코 쓸쓸하지만 않을 듯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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