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라일락 향기속에...

깃또리 2005. 4. 21. 14:36

미스 김 라일락

2005. 4.

 

 

 

 이제 봄도 무르익어 맨 먼저 꽃 망울을 터트린 산수유 개나리가 앞 다투어 노란꽃을 피워 삭막한 도시 아파트를 채색하고 귀부인 같이 우아한 하얀 목련과 호들갑스럽기까지 하던 벚꽃이 봄밤을 수 놓더니  이젠 진달래와 4 월의 꽃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라일락이 피기 시작하여 온 세상을 향기로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 보도에 놓인 대형 화분엔 펜지가 가득 담겨 키작은 꽃대를 바람에 흔들며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제 다 져버린 산수유부터 시작하여 라일락이 필 때까지 봄의 꽃잔치가 겨우 20 여일 정말 짧은 기간에 피고 진 참으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봄마다 피는 벚꽃을 보며 가슴 앓이를 한다는데 그 이유는 오래 전 병든 아버지가 벚꽃 구경을 시켜 달라고 졸랐으나 워낙 일이 바뻐 하루하루 미루다 소원을 못 들어 드리고 결국  아버지는 그 봄의 끝자락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삶도 사랑도 다음으로 미루어서는 안되는 현재형으로 이루어야할 일인 듯합니다.

 

  중학생 시절에 우리나라의 4 월을 대표하는 꽃으로 수수꽃다리를 도안으로 우표가 발행되어 나는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당시 우표 수집을 하였기 때문에 비교적 일찍 수수꽃다리란 꽃나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수수꽃다리와 라일락이 같은 종류라는 건  수 년전 원예과 출신인 사람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우연히 알게 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라일락 Liliac은 용담목 물푸레과에 속하고 학명은 Syinga Vulgaris 이며 원산지는 코카서스와 아프카니스탄 지역으로 아랍어와 페르시아말로 "푸르다"란 어원에서 연유했다 합니다.

 

 전 대통령이었던 노태우씨가 즐겨 불러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베싸메무쵸의 가사에 리라꽃이 나오는데 바로 리라 Lilas 는 라일락의 프랑스어이며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서울에서 귀족 초등학교로 알려졌었던 리라국민학교도 사실은 라일락 초등학교인 셈이다. 꽃말은 청춘 또는 젊은 날의 회상이라고 합니다. 식물 학자들은 서양 정향나무라고도 하고 서양 수수꽃다리라고 부른다 합니다. 라일락이란 서양 이름 때문에 오랫 동안 나는 우리나라엔 없었던 외래종으로 만 알았으니...

 

 여기 라일락에 대한 쓸쓸하고 서글픈 사연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86 년 전인 1917 년에 윌슨 이란 미국 선교사가 우리나라에서 우연히 발견한 키가 작고 향기가 진한 수수꽃다리를 미국 하바드 대학교 원예 실습장에 가져다  심었다고 합니다. 후에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우리나라에 왔던 원예과 출신인 매더 란 미국인 적십자 직원이 1947 년 북한산 백운대 근처에서 한국산 라일락을 발견하여 씨를 따 모았다 한다. 그가 미국에 귀국한 후에 모교인 뉴햄프셔 대학 원예실에 파종하였고 수 차례 품종 개량하여 그 중에서 가장 키가 작고 아담한 라일락을 탄생시켜 결국  상품 가치가 우수한 신품종 라일락을 탄생시켰다 합니다. 자기가 한국에서 근무 할 당시 여직원 여러명이 "미스 김" 이었던게 생각이 나서 이 품종 개량 한 나무에 "미스 김 라일락"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합니다. 이 시기가 1954 년이라 쯤이라 합니다.

 

 새로운 품종의 라일락을 본 미국인들은 당연히 높은 가격으로 구입하여 정원에 심었으며 1970 년 중반에 국내에 역 수입 되어 지금은 여기 저기 심어져 있습니다. 내가 본 곳만 해도 북한산 아래 4.19 묘지 경내와 서울 한 복판 삼성전자 본사 건물 뒤 화단에도 여러 그루 있는 걸 보았습니다.

 

 사실 우리 같이 문외한 눈으로 토종 라일락과 미스 김 라일락을 구별 할 감식안도 없지만 이 맘때 쯤 감미로운 향기로 온 천지를 감싸는 라일락을 보면서  미스 김 라일락의 과거의 여정을  생각해 보며 즐거워 해야할 지 아니면 슬퍼해야할 지 한 그루 나무에 얽힌 사연을 알고 그저 향기에 감탄만할 수 없는 심정이 됩니다. 오늘도 아파트 화단에 핀 라일락 향기에 취해 지나치면서 미스 김 라일락 에 얽힌 사연을 되새겨 봅니다.

 

 고려 시대에 몽고의 침략으로 민생이 도탄에 빠졌으며 몽고군은 으례 고려 여인들을 전승 노획물로 끌고 갔다 합니다. 대개는 이역 만리에서 성적 노리개와 노역으로 시달리다 늙으면 돌봐 주는 사람 없이 쓸쓸히 목숨을 다 하였는데 그 중 일부가 어찌 어찌하여 다시 고국 고려에 돌아오는 일이 있었는데 이 여자들을 "고향에 돌아온 여자"라고 하여 "還鄕女 환향녀" 라 부르며 몸을 버린 여자라 하여 천시했다 합니다.

 

 이 고려 여인들이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고 제나라의 못난 남자들 때문에 끌려 갔지만 천신 만고 돌아온 자기 나라에서도 따뜻한 대우도 못 받았으며 갖은 수모를 당했는데 이 환향녀가 세월이 흘러 행실이 나쁜 여자의 대명사가 된 환향녀-화냥년이 되었다 합니다.

 

 물론 미스 김 라일락이 무슨 나쁜 행실을 한 건 아니지만 머나먼 타국에 갔다가 고향에 돌아 오긴 왔으므로 미스 김 라일락을 환향수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으며 고려의 여인 환향녀와 겹쳐지는 슬프고 기구한 운명에 대한 가슴 아픈 상념을 떠올려 보며 다시는 이땅에 환향녀와 환향수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것 같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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