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봉 등정기 2004. 3.
그간 수차례 북한산과 도봉산을 올랐으나 두 산의 주봉이나 품고 있는 능선이름, 두 산의 이격거리나 경계등 총체적인 인식이 부족하였다. 그 동안 북한산은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타고 북한산 입구에 내려 오르기 시작하여 백운대 정상에 오른 다음 우이동쪽이나 구기터널쪽으로 내려오는게 고작이었고 작년 가을에는 똑 같은 코스에 겨우 원효봉을 추가하여 정상에 올라 갔다가 다시 내려와 이 코스를 밟은게 그나마 발전한 정도였다. 도봉산의 경우에도 도봉산역에 내려 곧 바로 도봉산입구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녹여원 근처를 지나 다락능선을 타고 역시 만장봉 정상에 올랐다가 반대방향으로 하산하여 다시 도봉산입구로 내려오는 정해진 코스였다. 여기서도 얼마전 선배를 따라 의정부시청 뒤로 해서 포대능선을 거쳐 같은 코스를 밟았던게 조금 변화시킨 코스였다. 그러나 얼마전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산 지도를 한동안 눈에 익혀서 북한산과 도봉산의 전체적인 윤곽을 이해하고 혼자라도 새로운 코스로 가기로 마음 먹고 어제는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연신내역에서 내려 북한산을 오르는 코스를 선택하였다.
-등산 코스 연신내역 #2번출구-연신초교(우)-연신중교(좌)-향로봉 왼쪽 산길-비봉-사모바위-승가봉-문수봉 우회로-대성문-보국문-대동문-동장대-하산길- 할렐루야기도원-우이동 버스 종점.
처음부터 이 코스를 정한게 아니고 지도에 있는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서 있었다는 봉우리를 찾아 가 보기로 하였는데 이 봉우리가 바로 비봉이었다. 깊이 생각을 하지 않아 비가 있었다고 하여 비봉이라 하는 줄도 모르고 올라 갔는데 가면서 생각해보니 석비가 있었다고 하여 비봉이란 이름이 붙은게 확실하였다. 주변을 둘러 보니 마침 이틀전 내린 비로 소나무 잎에 붙어있던 먼지도 씯겨내려 진초록 밝은빛을 띄었고 봄 햇살도 화창하게 비추어 산행에 더 없는 좋은 날씨였다. 10시30분에 연신내역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여 향로봉 근처에 도달 하였을 때 제법 높은 고지인데 어디서 염소울음 소리가 들려 처음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으나 몸을 돌려 보니 까만 작은염소 한 마리가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처음엔 눈을 의심 할 정도였다 왜냐면 사람도 오르는데 숨이 차는 꽤 높은 봉우리였기 때문이다. 염소는 사람도 크게 두려워 하지 않으며 손을 내밀자 가까이 다가 왔으나 내 손에 먹이가 없는 걸 알고 더 이상 다가 오지 않았다. 조금 있자 또 한마리가 나타나 신기해서 한참 바라 보고 서 있는데 지나가던 어느 아저씨가 저 아래서 키우는 염소가 여기까지 올라왔구나 라고 중얼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염소와 작별하고 산길을 가면서 이렇게 사람이 많이 다니고 별스런 사람이 많은데도 방목하여 마치 야생 염소처럼 키우는게 퍽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넓은 산에 놓아 기르는데도 누가 나쁜 마음을 가지지 않고 염소가 제 주인을 찾아가도록 손을 대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12시 반경에 목적지라 할 수 있는 비봉에 다달았는데 국보 3호인 진흥왕순수비가 있던 자리에는 1972년까지 있던 비의 파손이 걱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전하였다는 내용을 담은 원래 크기의 비석이 서 있었는데 기왕이면 복제비석을 세워 두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다. - 앞으로 이런 나의 의견을 국립중앙박물관측에 건의 할 예정이다. 원래 있던 비석은 한 동안 무학대사가 세운 비석으로 알려져 있다가 1916년 금석학의 대가이고 추사체로 잘 알려진 완당 김정희가 올라가 고증하여 신라 24대 진흥왕이 각 지역을 둘러보고 나라의 경계임을 알릴 목적으로 세운 전국 4개의 비석 중 하나임을 밝혔다고 한다. 그 4개란 함경도의 마운령비를 비롯하여 황초령비, 창녕비, 북산산비 라고 한다. 근 1500년간의 오랜 풍상으로 글씨가 마멸되었으나 만주의 광개토호태왕비 다음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적가치가 있는 비라고 한다. 이 비봉은 조선건국에 일조한 무학대사가 도읍지로 한양을 정하기 전에 올라가 지세와 풍수를 가늠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비봉의 위치가 북한산의 다른 봉우리에 비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는 점으로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멀리 한강의 희끗희끗한 물길이 보였으며 이미 끼기 시작한 시내 공해때문에 뚜렸히 보이진 않지만 서쪽의 당인리 발전소의 굴뚝에서 부터 남산타워와 동쪽의 상계동 아파트 밀집지역까지 몸을 한바뀌 돌리면 다 보이는 좋은 위치였다. 그래서 진흥왕순수비도 여기 있었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며칠전에 온 봄비에 씻긴 깨끗한 너럭바위에 앉아 가지고 간 점심인 한줄의 김밥과 과일을 기분좋게 먹고 북한산의 정상인 백운대 방향으로 발길을 향하였다. 그러나 백운대 정산오르기에는 너무 무리여서 어느 지점에서 하산길을 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소나무의 강인한 모습이 더욱 자주 눈에 띄어 사진기에 담았는데 강릉지역의 낙락장송 소나무와 또 다른 면모로 북한산 비봉주변의 소나무는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북풍한설에 제대로 크지는 못했으나 모진 환경에 자신을 버티기 위해 키는 작고 아래 몸통은 굵고 바위에 이리저리 뿌리를 내려 그야말로 악전고투하는 모습이 처절하게 느껴졌다. 특히 바위 틈에 뿌리를 내 박고 홀로 서 있는 모습은 실로 삶의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는것 같아 외경스럽기까지 하였다.
대성문 근처에서 지도를 펴 보고 있는데 나보다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교양 있어 뵈는 분이 실례지만 어디로 가려 하느냐 물으며 자기는 오늘 북한산성을 일주하여 12 문을 다 돌아 보려 한다고 하며 의향이 있으면 같이 가자고 하였으나 나는 중간중간 사진도 찍고 천천히 가려 한다고 정중히 사양하였다. 그러고 나서 지도를 훑어 보니 그 분이 말한데로 북한산성을 따라 문이 14 개나 되었다. 언젠가 나도 이 코스를 답사해 보려고 한다.
"북한산성 14 문" 은 다음과 같다.
서암문(일명:시구문)-대서문-기사당암문-부왕동암문-청수동암문-대남문-대성문-보국문-대동문-용담문-위문-북문. 여기서, 暗門이 몇개 보이는데 이는 정식 성문이 아니고 적이 잘 발견하지 못할 지점에 설치하는 숨은 문이라고 한다.
북한산성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고 일부 구간은 끝나고 이제 다시 시작하는 지점에서 하산하기 시작하였는데 내려 오다 보니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이어서 혹시 휴식년제에 해당하는 코스가 아닌가 걱정 하였는데 조금 내려 오니 추측한데로 입산통제 코스였으나 조금 더 내려오자 약수터가 나타나고 제대로 된 길이 나타나 안심하였다. 거의 다 내려 오자 절도 아니고 규모가 큰 기와집들이 나타나 자세히 보니 할렐루야 기도원이라 간판이 보여 개신교 관련 건물도 기와집으로 지어 놓으니 그런데로 보기가 괜찮았다. 기도원 조금 지나 어떤 할머니가 길가에 책상을 놓고 앉아 맞은편 간이 식당에서 국수를 들고 가라고 하셨다. 가격은 990 원이라 하며 원래 무료였는데 먹고 가는 사람이 미안해 할 것 같아 돈을 조금 받는다고 해서 조금 출출하기도 하여 들어 갔는데 몇 등산객이 국수를 들고 나도 한 그릇을 청하여 먹었다. 먹고 있는 도중에 길 옆에서 안내하시던 할머니가 들어오자 일하시던 아주머니가 춥지 않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추워서 걱정을 하면 하느님이 어느새 나타나셔서, 보이진 않지만 담요를 덮어 주고 가시거든 그러고 나면 몸이 더워지기 시작해, 하느님은 정말 자비로우시기도 하단 말야." 정말 그런가! 인간의 신념이 굳어지면, 불가사의 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까.-끝.
비봉 가는 길에 만난 염소 아저씨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렌체 회상... (0) | 2005.08.11 |
---|---|
ASIAN ART MUSEUM (0) | 2005.06.11 |
북한산 야생화... (0) | 2004.06.14 |
두물머리가 보이는 문철봉에 올라... (0) | 2004.06.01 |
북한산 오봉 등정기... (0) | 2004.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