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ASIAN ART MUSEUM

깃또리 2005. 6. 11. 23:45
 

ASIAN ART MUSEUM

2003. 6.

 

 

 

 작년에 왔을 때 시청 Civic Center 건물 주위를 돌아 보았는데 서울과 달리 시내노선이 하나뿐인 BART 라 부르는 San Francisco 지하철의 시청역에서 가까운 도심에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하철역과 시청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엔 주로 흑인인 Homeless 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대부분 아시아계와 히스페닉계로 보이는 노점상인들이 또 한 쪽에 좌판을 벌이고 있어 왜 이 지역에 이러한 살풍경인 모습인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매주 정해진 요일에만 노점상이 열린다 한다.

그러나 일단 시청 건물 바로 앞에는 다시 평온한 느낌을 주는 잔디 밭이 펼쳐지고 주변도 깨끗하였다.

 

 시청 현관에서 바라 보아 왼쪽에 웅장한 석재 마감 건물이 보이는데 윗부분에 Asian Art Museum 그 밑엔  Chong Moon Lee Center 라고 크게 새겨져 있어 짐작으로 San Francisco 는 전 세계에서 화교의 수가 가장 많은 도시이고 화교의 역사도 길어 어느 화교 재력가가 큰돈을 기부하여 박물관을 운영하는구나 생각을 하였다. 건물 양식을 대강보니 1920~1950 년대 에 지어진 건물로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제 막 수리를 마친 듯하게 보였었다.

 들어가 보려다 시간도 그렇고 다음으로 미루었었는데 서울에 돌아온 얼마 후 우연한 기회에 한국교포 이종문이란 사람이 실리콘 벨리에서 큰 돈을 벌어 샌 프란시스코 시에 많은 돈을 출연하여 아시안 문화 박물관을 새롭게 단장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아, 바로 내가 지레 짐작한 그 박물관의 기부자가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구나 다시 가게 되면 들어가 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어제 들어가 보니 원래 시립 도서관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이태리 여성 건축가가 설계를 담당하여 얘기 듣던데로 한국교포 이종문씨가 거금 1500 백만 달러를 헌금하였고 그 외 여러 단체와 개인이 기부금을 출연하여 올 초 4 월에 개관하였다고 안내문에 나와 있었다.

현관 입구 입장권 발매소 옆 벽에 기부자에 대한 감사의 글이 새겨져 있었고 입장하면 1 층 홀에도 다시 기부자 명단이 대리석에 새겨져 있었는데 가장 많은 액수를 기부한 이종문씨가 단독으로 가장 위에 다음 아래엔 금액순으로 개인과 단체의 명단이 새겨져 있었는데 두 번째 기부자 명단 다섯 중에 우리나라 삼성전자가 보였다.

 

 중앙 홀에서 바로 이어진 넓고 화려한 대리석 계단을 오르니 호화로운 큰 문 위에 Samsung Hall 이란 이름이 붙은 방이 나나났는데 천장이 족히 15 미터는 됨직한 넓고 아름다운 방으로 주로 특별행사에 사용 되는 듯하였다. -아마 두번째 기부자 그룹 중에서도 삼성이 가장 큰 금액을 낸 듯 하였다. 삼성 홀의 넓은 방 한 가운데 긴 테이블에 각종 과일과 채소가 놓여 있고 나이든 분들이 이십여명 둘러 앉아 있었는데 아마 요리 강좌 같아 보였기에 조용히 들어가 방을 둘러보고 나왔다.

 

 전시실은 2. 3 층에 있었는데 국가별로 나뉘어져 있어 원래는 3 층 맨 끝 방인 1 번 부터 관람하도록 순서가 되어 있었으나 나는 우선 2 층의 한국실부터 보러 들어갔다.

한국실은 21,22, 23 번 3 개 실로 이루어져 있었고 한 쪽 벽에 한국지도와 함께 간단히 한국을 소개하고 있었다. 지도를 보다 보면 항상 관심이 가는 독도는 분명하게 우리나라 영토로 나와 있었고(물론 작은 지도라서 독도라는 표기는 없었지만) 동해는 우리나라 가까이엔 East Sea 그리고 일본 가까이엔 Japan Sea 라고 병기 되어 있었다.

 전시품은 그리 숫자가 많지 않았고 삼국시대 토기, 고려 청자, 조선백자 순으로 몇 점이 진열되었고 궁중 신부가 입는다는 설명과 함께 활옷 한 벌 그리고 아무래도 여성 관람객이 많아서인지 가장 발길이 자주 머무는 것은 돌에 입는 다는 설명이 붙은 어린애 색동 저고리 앞에 몇 여자 관람객이 유심히 보고 있었다.

병풍, 두루말이 그림 등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질이나 양에서 그리 풍부한 전시물이 아니어서 아쉬웠다.

 

 한국실을 마치고 다시 1 번 방부터 시작하였는데 인도지방 문화와 예술품 전시였으며 그러다 보니 불교와 석가모니에 대한 소개를 길게 하고 있었다. 하긴 동양 문화권의 대부분이 불교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으니 당연한 배려라고 생각하였다.

 눈에 띄는 대목은 2500 년전에 태어난 석가의 일생이나 활동 설명에서 신비스럽고 주술적이며 환상적인 부분은 후세에 덧붙여졌을 거라는 해설이 눈에 띄어 다도 이 의견에 동의하며 서양 정신사를 지배하는 그리스트교의 예수 부분에 대해서도 2000 년전에 활동했던 Good Teacher 라는 표현의 책을 읽은 적이 있으니 나무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 층을 내려와 시작하는 방이 일본실로 차문화의 소개부터 일본의 불교문화 설명 그리고 일본 고대 아스까 문화와 막부시대 등의 소개를 비교적 길게 하고 있었다.

일본실은 전시실의 수로만 비교해도 우리의 두 배 규모여서 한국사람이 가장 많은 액수를 기부하고도 이런 형편인게 아쉬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항상 문화재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면 떠오르는 대목으로 우리나라는 몽고의 침략과 임진왜란, 정유재란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 한국전쟁으로 온 나라의 초토화가 여러번 반복되었으므로 이나마 남아 있는게 신기 할 정도이고 일본은 태평양 전쟁으로 두 도시가 핵 폭탄 재앙을 맞은 것을 제외하고 외침이 없었기에 비교적 문화재 손상이 적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모든 문제에 일본과 비교해 보는 것도 소아적인 행태인 듯하나 그래도 가까운 나라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비교하게 되고 한편으론 일본같은 나라가 옆에 있다는 것도 우리가 분발하게 하는 동인이 되므로 그리 나쁠 것이 없지 않은가 생각도 해본다.

 

 어쨌든 한국의 기업인이 미국의 대도시 시청 앞에 세워진 박물관에 가장 많은 기부를 하여 오고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으로 받고 있어 가슴 뿌듯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한가지 기억 남는 일로는 1층의 한쪽 방에 박물관 건립 과정이 죽 나와 있었는데 이종문씨가 한 얘기로 "미국이 나에게 훌륭한 교육 기회와 뛰어난 기술자들과 함께 일할  기회를 주어 감사하다." 란 말이 있었는데 과연 미국 정부의 교육 부문에 대한 배려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 이런 원동력이 아직은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되어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끝.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캄보디아 앙코르 왓 가는길...  (0) 2005.09.14
피렌체 회상...  (0) 2005.08.11
북한산 야생화...  (0) 2004.06.14
북한산 비봉 등정기...  (0) 2004.06.01
두물머리가 보이는 문철봉에 올라...  (0) 2004.06.01